어깨동무

둘레에서 다들 어려운 말로, 아니 대학생이거나 대학원생이고, 또 의사나 변호사라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 또 글깨나 쓴다는 이들이 ‘민주·평화·평등·통일’ 같은 말을 읊는다. 틀리거나 나쁘거나 잘못된 말은 없다고 느낀다만 하나같이 겉돌거나 허울같기만 하다. 똑똑하다는 분들하고, 또 말 잘하고 높은자리에 있다는 분들하고, 같은 모임자리에 있다가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디긴 전철길에서 책을 펴서 읽다가 덮는다. 눈을 감고서 생각한다. 그분들이 읊는 말이 왜 이토록 겉돌거나 허울같은가 했더니, 그분들은 입으로는 외칠는지 몰라도 ‘어깨동무’를 하지 않더라. 내가 그분들 어깨에 손을 올릴 수 있을까? 그분들은 내 어깨에 아무렇지 않게 손을 올린다만, 나처럼 어리거나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그분들 어깨에 손을 올리면 어떻게 여길까? 버릇없거나 건방지다고 대뜸 말하더라. 그러면서 민주니 평화니 평등이니 통일이니 하고 읊으신다. 참 껄끄럽다. 남녀평등이든 여남평등이든,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 끝나는 일이다. 어느 한쪽이 높거나 낮아서는 못하는 어깨동무이다. 어려운 말을 할 까닭 없이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같이 걸을 줄 알면 다 이룬다. ‘연대’도 ‘연합’도 아니다. ‘어깨동무’를 하면 된다. 1994.7.1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