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

끔찍한 짓을 시키려고 하기에 미끼를 던진다. 보라, 낚시꾼이 무엇을 매달아서 물에 띄우는가. 미끼를 매단다. 먹이 아닌 미끼를 매달아 물에 띄우면, 물고기는 멋모르고 좋아서 덥석 물다가 아가리가 찢어지거나 목숨을 잃는다. 포스코는 고흥하고 해남에 핵발전소하고 화력발전소를 때려짓겠다고 하면서 ‘위험 위로금’을 2000억 원 준다고 했는데, 이 2000억 원이란 돈이 바로 미끼이다. 얼핏 목돈으로 보이지만, 고흥군만 해도 고흥에 있는 김 공장이 한 해 벌어들이는 돈이 2000억 원이라 했다. 김 하나로도 2000억이면, 굴에 바지락에 미역에 매생이에 쭈꾸미에 삼치에 갑오징어에 …… 얼마나 많은 바닷것이 있는가를 돌아보자. 미끼가 없어도 밥이 넉넉한 깨끗하며 아름다운 시골은 늘 넉넉하게 살아왔고 푸짐하게 살아갈 만하다. 미끼로 꼬이려고 하는 이는 하나같이 틀림없이 못된 짓을 감추면서 눈속임을 하려는 몹쓸 무리라고 느낀다. 그런데 고흥군수나 군청 벼슬아치는 미끼를 덥석 물려고 한다. 그 미끼를 어떻게 쓰려고? 고작 그 미끼로 고흥군을 통째로 말아먹으려고? 2011.12.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공항 2

하늘길을 열어 나라하고 나라를 잇는 나루, 곧 하늘나루가 공항이다. 그런데 이 하늘나루에 비행기가 뜨고 내릴 적마다 소리가 어마어마하다. 하늘나루 곁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고, 논밭을 지을 수 없고, 학교도 마을도 설 수 없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늘길을 이어 서로 가까이 오가는 일은 좋은데, 그토록 끔찍하게 귀를 찢는 소리는 어찌해야 좋을까? 서로 가까이 오갈 수 있다면, 끔찍한 소리쓰레기는 눈을 감아도 될까? 민간항공보다 군수공항은 더 귀를 찢는다. 총알하고 미사일하고 폭탄을 싣고 다니는 전투기나 전폭기는 어마어마한 소리로 바람을 찢고 귀를 찢는다. 우리는 서로 죽이려고 하는 전투기나 전폭기를 굳이 거느려야 할까? 귀를 찢는 군수공항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까? 조용하게 평화를 지키는 길을 생각하는 마음을 키우기는 어려운가? 2019.3.1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깊이

깊이가 있는 말이 따로 없다. 깊이가 없는 말이 따로 없다. 깊이는 우리 스스로 마련한다. 사람들이 어느 말을 널리 써 주었기에 그 말이 깊지 않다. 우리 스스로 살아낸 숨결을 담아낸 낱말이기에 비로소 깊다고 한다. 어느 분은 ‘가령’이나 ‘전혀’가 깊이있다고 여겨 이 말씨를 붙잡는다. 누구는 ‘이를테면·그러니까·곧’이나 ‘도무지·하나도·조금도·참’이 깊이있다고 여겨 이 말씨를 보살핀다. 어느 말씨로 이야기를 편들 대수롭지는 않다. 낱말은 가리거나 고를 줄 알되, 이 낱말로 줄거리를 엮어 이야기를 들려줄 줄 모른다면, 그저 껍데기이다. ‘나’하고 ‘본인’ 가운데 어느 쪽이 깊이있다고 할 수 없다. ‘아무튼’하고 ‘하여간’ 가운데 어느 쪽이 깊이있다고 할 수도 없지. 먼저 삶이 깊이있다면, 깊이있는 삶에서는 어느 말을 쓰든 다 깊기 마련이다. 그리고 깊이있는 삶은 차츰차츰 어린이 말씨로 다가선다. 깊지않은 삶, 곧 얕은 삶은 차츰차츰 사람들 꼭대기로 올라서려고 하는 벼슬아치 쪽으로 기운다. 1995.10.8.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훌륭한

훌륭한 글이나 책을 못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왜 못 알아볼까? 사람들 스스로 얼마나 훌륭한가를 모르기에, 이웃 글이나 책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못 알아보리라. 사람들은 저마다 엄청나게 훌륭한데, 스스로 훌륭한 줄 까맣게 잊거나 모르기 일쑤이니, 곁에 훌륭한 이웃이 있어도 못 알아채고야 만다. 훌륭한 이는 훌륭한 이웃을 알아본다. 어느 글이 훌륭하다고 여긴다면 바로 그 훌륭한 글을 알아볼 만한 눈썰미라는 뜻이다. 어느 글이 훌륭한 줄 모른다면 아직 스스로 얼마나 훌륭한가를 살갗으로 못 느끼면서 산다는 뜻이다. 때로는 다른 까닭이 있다. 훌륭한 줄은 알되 시샘하거나 미워하거나 뒷셈이 있을 적에는 모른 척하더라. 2019.3.1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헌책 4

신문배달 자전거를 몰아 헌책집을 찾아간다. 헌책집 문간에 자전거를 세운다. 헌책집에서 장만한 책은 짐받이에 묶는다. 바람을 가르며 달려와서, 다시 바람을 가르며 신문사지국으로 돌아간다. 한 달 벌이 16만 원으로는 새책 몇 권 사기 어렵다. 외대학보에 틈틈이 글을 보내 받는 글삯을 보태어 헌책집에서 책을 고른다. 똑같은 책이 둘 있으면 조금 더 허름에서 300원이나 500원이 눅은 책을 고른다. 한 권이라도 더 읽고 싶기에 서서 열 권을 읽고 나서야 한 권을 산다. 그렇지만 다 읽은 책도 사서 다시금 읽고 싶다. 언젠가는 오늘하고 다르게 책을 맞이할 수 있겠지. 책집에 서서 부리나케 읽어치우는 길이 아닌, 느긋하게 책칸을 보금자리에 꾸며서 언제라도 되읽을 날이 있겠지. 1995.8.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