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다 1

학교에서 몸을 잰다. 양호 선생님이 줄자로 가슴둘레, 허리둘레를 잰다. 줄자가 살에 닿을 때마다 모두 간지럽다면서 낄낄댄다. 해마다 신체검사라면서 몸을 재는데, 왜 교실에서 한꺼번에 우르르 시킬까. 키에 몸무게에 온갖 것을 재는데, 이러느라 하루를 다 쓰니 수업을 안 해서 좋지만, 누가 키가 더 크네, 누가 더 무거우니 뚱뚱하네 하는 말이 듣기 싫다. 속옷을 빼고 옷을 다 벗기고서 하루 내내 있어야 하니 이런 짓도 싫다. 1987.3.10. 


재다 2

키재기를 하듯 점수재기를 한다. 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이란, 또 다달이 치르는 시험에다가 모의고사라는 시험까지, 온통 점수재기이다. 학교는 점수재기를 이레가 멀다 하고 하면서 0.1점뿐 아니라 0.01점까지 갈라서 등수를 골마루에 큼직하게 붙인다. 시험점수가 0.1점이라도 높으면 모범생이거나 착한 학생일까? 시험점수가 0.01점이라도 낮으면 불량학생이나 쓰레기일까? 1992.7.1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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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은 헌책이다

헌책집을 바탕으로 삼되, 헌책집뿐 아니라 책과 책길과 책삶과 책넋과 책사랑과 책꿈과 책벗과 책지기와 책마을과 책노래와 책숨과 책꽃, 여기에 삶과 삶길과 삶넋과 삶사랑과 삶꿈과 삶벗과 삶지기와 삶노래와 삶꽃 들을 아울러서 엮는 이야기꾸러미를 하나 내기로 한다. 이 책에는 어떤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 우리 “헌책방 사랑누리” 이웃님한테 여쭈어 본다. 여러분이 참으로 멋스러운 이름을 알려준다. 이러다가 어느 분이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한마디를 들려준다. 어, 어, 어. 아주 놀라운 말이다. “맞네요, 아주 놀랍고 멋지네요, 제가 이 이름을 써도 될까요?” 하고 그 이웃님한테 여쭌다. 이웃님은 상냥하게 웃으며 대꾸한다. “호호호. 어머, 모르셨어요? 이 한마디는 바로 최종규 님이 쓴 글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호호호.” “네? 제가 이런 말을 글로 썼다고요? 아, 저 스스로 워낙 글을 많이 쓰니, 제가 쓰고도 제가 쓴 글인 줄 잊었네요. 아, 아, 하하하, 고맙습니다! 저를 새롭게 일깨워 주셨어요! 사랑해요!” 2004.2.4.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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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

신안군에 마실하고서 깜짝 놀랐다. 군청이 으리으리하다. 진도군에 마실하고서, 구례군에 마실하고서 깜짝 놀랐다. 다들 군청이 큼직큼직하다. 고흥군에 살면서 새로 지은 고흥군청 건물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이제껏 본 시골 군청 가운데 가장 우람하다. 고흥은 한국에서 가장 손꼽히는 ‘인구 감소 지역’으로 머잖아 군이 사라질 수 있을 만큼 아슬아슬하단다. 어린이도 젊은이도 아주 빠르게 줄어들었는데, 이제 늙은 할매하고 할배만 가득한데, 군청 건물은 으리으리하고, 군청 공무원은 1000이라는 숫자로 물결을 친다. 어디 고흥뿐이랴. 한국은 시골 지자체 몸집이 너무 크다. 시골 공무원이 너무나 많다. 2019.2.3.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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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다

갑자기 구름이 몰려들더니 몇 분쯤 벼락에 소나기에 얼음비에 드센 바람까지 몰아친다. 어두컴컴한 하늘이 되어 온 들을 빗물로 적신 몇 분이 지나가자, 구름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멀리 뭉게구름 몇 보이더니, 무지개가 곱게 걸친다. 햇살이 눈부시다. 이런 날씨를 몸으로 처음 맞이한 아이들이 쉬잖고 떠든다. 오늘 코앞에서 지켜보고 겪은 이 하루를 엄청나게 나누고 싶은가 보네. 2019.3.1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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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금지

‘주차금지’ 알림판이 버젓이 선 자리에 자동차를 세우는 사람이 많다. 꽤 많다. 이런 곳이 아니어도 아무 데나 자동차를 안 세우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사람들 거님길에까지 자동차를 아무렇게나 세우는 사람이 무척 많다. 한국이란 나라는 면허를 너무 쉽게 주지 않을까? 자동차를 아무 곳에나 세우는 사람이 있으면 벌금도 벌금이지만 바로 면허취소를 할 노릇 아닐까? 술 마시고 모는 사람도 바로 면허취소를 할 노릇이요, 골목에서 마구 내달리는 사람도 바로 면허취소를 할 노릇이요, 골목을 걷는 아이들 뒤에서 빵빵대는 사람도 바로 면허취소를 할 노릇이요, 찻길 가장자리를 얌전히 달리는 자전거를 한켠으로 밀어붙이는, 위협운전 하는 이도 바로 면허취소를 할 노릇이요 …… 한국은 운전면호 따기는 대단히 쉬우면서, 면허취소는 그리 잘 안 하는, 뭔가 뒤집어진 나라이지 싶다. 설마 한글 ‘주차금지’를 못 읽는 사람한테 면허를 주었을까? “차 대지 마시오”쯤으로 쉽게 적어야 비로소 읽고서 버릇을 고치려나? 1992.2.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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