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이 1

우리 어머니하고 1층 이웃집 아주머니가 신문을 돌리는 곁일을 하시니 날마다 몇 가지 신문을 읽는데, 나라에서 ‘청소년헌장’을 내놓았다는 글이 아주 짤막하게 나온다. 아주 짧은 글이라 청소년헌장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는 알 수 없다. 신문글을 오려서 이튿날 학교에 가서 교사들한테 묻는다. 어떤 교사도 ‘청소년헌장’이란 말을 들은 적이 없단다. 어제 오린 신문글을 보여주니 들은 적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참 어이없는 교사들이로구나 싶으나 꾹 참고서 한 말씀 여쭙는다. “선생님, 신문에 나온 글로는 청소년헌장 줄거리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 학교가 청소년을 맨날 두들겨패고 욕하기만 하는데, 청소년한테 지켜야 할 사항이나 청소년이 누릴 권리를 담았을 청소년헌장 줄거리를 알아내어서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적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우리 중학교가 중학교다운 모습 아닐까요?” 울그락불그락하는 교사들 얼굴을 곧바로 느낀다. 청소년헌장을 들먹이는 아이를 차마 때리거나 을러댈 수는 없다 싶다고 여겼는지 교실로 돌아가라고 한다. 이레 뒤 드디어 청소년헌장을 전지에 펜글씨로 옮겨적어서 골마루 귀퉁이에 세운다. 골마루 귀퉁이에 선 청소년헌장을 다시 따진다. “선생님, 거기에 두면 누가 읽나요? 건물로 들어오는 한가운데 문가에 세워야지요.” 교사는 교장하고 회의를 해보겠다고 하더니 건물 한가운데 문가로 옮겼다. 그러나 이레가 더 지나니 이 청소년헌장을 치우네. 그러고서 학교 곳곳에서 때리고 갖은 거친 말이 새삼스레 똑같이 춤춘다. 1990.5.2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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