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소리 14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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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98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었니

― 순백의 소리 14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6.10.25. 4800원



  달팽이가 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달팽이가 기는 소리’를 살며시 헤아릴 수 있습니다. 참새나 박새가 날갯짓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작은 새가 날갯짓하는 소리’를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습니다.


  우리 곁에는 늘 수많은 소리가 있습니다. 도마질을 하는 소리, 설거지를 하는 소리, 마루를 걷는 소리, 고양이가 쥐를 잡는 소리, 사마귀가 작은 풀벌레를 낚아채는 소리가 있어요. 거미가 줄을 치는 소리에, 거미줄에 날벌레가 잡힌 소리가 있지요.



‘아아. 저 노래꾼이, 진짜 기분 좋아 보여.’ (45쪽)


‘씽씽 바람소리. 아오모리는, 와 이래 춥노? 바람에 지지 않을 만큼 켜지 않으면 안 들린다.’ (80쪽)



  만화책 《순백의 소리》는 악기를 켜는 사람들이 소리를 어떻게 악기 하나에 담아내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악기를 켜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떻게 어디에서 살아왔느냐에 따라서 악기에 담는 소리가 다릅니다. 고단하게 살아온 사람은 고단한 나날이 악기에 실려요. 바람을 마시며 살아온 사람은 바람결이 악기에 실려요.


  도시에서 버스하고 전철을 늘 타던 사람은 버스하고 전철이 도시를 가로지르며 내는 소리에다가, 버스하고 전철을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소리를 마음에 담다가 악기로 옮길 테지요. 눈이 펑펑 쏟아지는 고장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악기에 ‘눈이 내리는 소리’를 담아낼 테지요. 무더운 여름에 땡볕을 맞으며 밭에서 땀을 흘리는 길을 걸어온 사람이라면 땡볕 소리를, 여름 소리를, 땀이 볼을 타고 흐르는 소리를, 볕에 살갗이 타는 소리를 악기에 담을 테고요.



‘그렇게 여러 사람의 관심을 받고, 그럼에도 진심으로 임하지 않는 것이 화가 난다. 처음 들은 그 마구잡이 소리에서 미래를 느낀 것도 부아가 치밀어. 나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112쪽)


“강하다. 하하, 하긴 가난 속에서 태어났으니까. 나한테는, 미움이 담긴 소리로 들려.” (121쪽)



  더 높은 소리가 없고, 더 낮은 소리가 없습니다. 더 센 소리가 없고, 더 여린 소리가 없습니다. 모든 소리에는 삶이 깃듭니다. 모든 소리에는 이 삶마다 다른 이야기가 흐릅니다. 모든 소리에는 한 사람이 살아온 생채기도 아픔도, 웃음도 기쁨도 실려요. 악기를 켜는 사람 앞에 서서 노래를 듣는 사람은 ‘악기를 켜는 사람’이 지은 삶하고 ‘악기에 담긴 노래를 듣는 바로 우리’가 이제껏 살아온 길을 되새기면서 찡하고 뭉클합니다. 2017.5.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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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다이家 사람들 4 - SC Collection SC컬렉션 삼양출판사 SC컬렉션
모리모토 코즈에코 글.그림,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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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94



생각을 읽어도 알지 못하는 생각

― 코우다이 家 사람들 4

 모리모토 코즈에코 글·그림

 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7.1.20. 7000원



  코앞에 마주한 사람이 머릿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이 사람 생각을 모두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여러 가지’는 그야말로 여러 가지일 테니까요. 이 여러 가운데에는 ‘생각’도 있으나, 아직 ‘생각으로 굳히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도 있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해서 ‘읽는다’고는 할 수 없다고 할 만해요. 책을 ‘본다’고 해서 누구나 책을 ‘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코헤이야말로 바쁘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무리해서 맞춰 주고 있잖아.” “무리하고 있지 않아. 오고 싶어서 온 거야. 그리고 만약 나중에 곤란해져도 내가 결정해서 한 일이니까, 곤란해져도 상관없어. 곤란하게 만들어도 돼.” (17쪽)


‘하지만 알맹이는 그 남자가 훨씬 어른일 테지. 왜냐하면 시게코 씨는 보기와는 다르게 실은 소심하고 의외로 혼자서 끙끙 고민하는 타입인 것 같으니까. 그런 사람이 택하는 사람은 분명히 엄청 착하고 포용력이 있고 강한 사람이야. 아마도.’ (26쪽)



  《코우다이 家 사람들》(삼양출판사,2017) 넷째 권을 읽으면서 ‘본다·읽다’ 사이에 오가는 흐름을 헤아립니다. 얼핏 보기에는 ‘생각 읽기’를 하는 듯하지만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은 막상 들여다보더라도 못 읽거나 엉뚱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이나 영화나 그림이나 사진에서도 똑같아요. 글씨를 훑는다고 해서 읽기가 되지 않아요. 주루룩 흐르는 영화나 그림을 본대서 이 영화나 그림에 깃든 뜻을 읽지는 못합니다. 단추만 누르면 찰칵 하고 나오는 사진을 그저 바라본대서 이 사진마다 무슨 이야기가 있는가를 읽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미츠 오빤 알겠어?” “아니. 스스로도 모르는 거 아닐까? 망설이고 있는 거겠지.” “아마도 준도 망설이고 있는 거 아닐까?” (45쪽)


‘어, 어쩌지, 고기!’ ‘고기 어쩌지? 어머니!’ ‘어쩜 좋으니! 실수를 했어! 스키야키용 고기. 아끼지 말고 가장 비싼 걸로 살걸 그랬다!’ ‘양도 부족해요. 어머니가 아끼셔서 그래요!’ (83쪽)


‘어째서 우리 키에지? 아니, 딱히 의심하는 건 아니야. 우리 키에는 착하고 좋은 아이니까. 그 누가 우리 키에를 선택한다 해도 신기할 건 없어! 그렇지만 이 남자가 우리 키에의 진정한 장점을 알까?’ (86쪽)



  읽을 수 있는 힘은 다릅니다. 보는 힘도 다르지요. 보기에 읽지는 못하는 얼거리하고 다르게, 보지 못하더라도 읽을 수 있다고 할 만해요. 《코우다이 家 사람들》에 나오는 꿈 많은 아가씨는 ‘보는 눈’은 아니나 ‘읽는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머릿속 들여다보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젊은 셋은 들여다보기는 하더라도 ‘본 것에 깃든 뜻이나 이야기’까지는 제대로 못 짚어요.


  어쩌면 이들은 너무 많이 보기 때문에 헤맬는지 모릅니다. 보고 싶지 않아도 자꾸자꾸 수많은 사람들 머릿속이 보이다 보니 그만 갈피를 못 잡고 헤맬는지 모르지요.


  왜 그렇잖아요, 책을 지나치게 많이 보는 사람은 책 지식은 많아도 정작 ‘책으로 얻은 지식을 삶에서 살리지 못할’ 수 있어요. 책만 보느라 바쁘니까요.



“속은 강한 사람이에요. 아마도 저보다 훨씬요.” “그, 그래?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낙천적이고 재미있고 상냥한 일을 공상함으로써 많은 것들을 혼자 스스로 극복해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88쪽)


‘나의 정직한 마음. 그녀를 보고 싶어. 이야기가 하고 싶어. 줄곧 평생 함께 살아가고 싶어. 그것뿐이야. 그녀를 향한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만 있다면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거야.’ (146쪽)



  마음이 맞는 두 사람은 함께 바라보고 함께 느끼며 함께 사랑을 짓는 길을 가는 사람이지 싶습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같은 자리에 있어도 엉뚱한 곳을 바라볼 뿐 아니라, 하나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겠지요.


  즐겁게 바라보며 즐겁게 읽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따사로이 마주하면서 따사로이 생각을 나눌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북돋울 수 있습니다. 2017.4.1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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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호빵맨입니다 - 세상에서 가장 약한 영웅이 전하는 정의와 용기의 말들
야나세 다카시 지음, 오화영 옮김 / 지식여행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297


‘영웅 없는’ 호빵맨 만화를 그린 할아버지
― 네, 호빵맨입니다
 야나세 다카시 글
 PHP연구소 엮음
 오화영 옮김
 지식여행 펴냄, 2017.3.17. 12000원


  테즈카 오사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숨을 거두는 마지막날까지 펜을 손에서 안 놓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나서 몸을 내려놓은 뒤에라야 비로소 ‘새로운 만화 그리기’를 멈추었다지요. 테즈카 오사무 님은 ‘할아버지 나이’에도 어엿하면서 씩씩하게 늘 새롭게 만화를 그려서 아이들한테 웃음하고 눈물을 베푼 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호빵맨’이라는 만화를 그린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테즈카 오사무 님보다 나이가 더 위이면서 더 오래 살았다고 해요. 만화가 길을 걷고 싶었으나 막상 만화가로는 도무지 길이 트이지 않아 괴로울 적에 ‘무명인 이분’을 테즈카 오사무 님이 몸소 말을 여쭈며 만화영화 일에서 미술감독을 맡긴 적이 있대요. 그러나 이런 일을 맡으면서도 정작 이녁 스스로 만화가로서는 설 길을 찾지 못했다는데, 바야흐로 일흔이 넘은 나이에 ‘만화가’라는 이름을 얻었답니다.


뒤늦게나마 예순을 넘긴 즈음부터 욕심이 사라졌다. “만화는 예술이야” 하고 거들먹거리지 않게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 그것은 요컨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6쪽)

난해한 시에는 도무지 마음이 가지 않는다. 몇몇 사람만이 이해하는 시는 시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두루 이해하며, 많은 사람에게 폭넓게 사랑받는 서정성 넘치는 시, 될 수 있는 한 그런 시를 써 왔다. (39쪽)


  야나세 다카시 님이 아흔 넘은 나이에 글을 쓴 《네, 호빵맨입니다》(지식여행,2017)라는 책을 읽는 내내 곰곰이 생각합니다. 저도 아흔 넘은 나이에도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서 제 나름대로 걸어온 길을 젊은 뒷사람한테 즐겁게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아흔 살뿐 아니라 백 살이 넘은 뒤에도, 또는 백열 살이나 백스무 살에도, 어쩌면 이백 살까지 기운차게 살아서 젊은 뒷사람이 새롭게 기운을 북돋우도록 이끄는 말을 남길 만하면 신나겠구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야나세 다카시 님은 자그마치 일흔이 넘고서야 비로소 이녁 어릴 적 꿈인 ‘만화가’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흔넷 나이에 조용히 숨을 거두기까지 ‘만화 새롭게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해요. 《네, 호빵맨입니다》라는 책도 아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 썼으니 대단하지요. 이분한테는 ‘나이’가 조금도 걸림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분한테 나이는 ‘남들보다 더 오래 살면서 더 오래 삶을 지켜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기쁨이라 할 만합니다. 더군다나 ‘남들보다 더 오래 꿈을 못 이룬 쓰라린 맛’을 삭히고 달랜 이야기까지 들려줄 수 있지요.


“호빵맨을 그린 게 저예요”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깜짝 놀란다. 아무래도 아흔 넘은 할아버지가 호빵맨을 그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 드디어 인기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때가 일흔 살 고희를 맞이한 후였다. 적어도 1년은 채우자는 마음으로 시작했건만 벌써 20년이 넘었다. (49, 65쪽)

운이 그렇게 ‘나 몰라라’ 하는 식의 수동적인 개념이라면, 노력할 의미 따위 없어지고 만다. 운이란 스스로 불러들이고, 스스로 붙잡는 것. 자신의 힘으로 개척하고, 자신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67쪽)


  한국에서 예순 넘은 나이에 비로소 수채화라는 그림을 홀가분하게 그리고서,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즐겁게 이 수채화를 그리다가, 마지막 숨 한 번 들이쉴 때까지 붓을 놓지 않던 박정희 할머님을 떠올려 봅니다. 이 수채화 할머님이나 야나세 다카시라는 만화 할아버님은 이녁 스스로 이루려는 꿈을 늘 가슴에 품으셨어요. 비록 이 꿈을 예순 해나 일흔 해를 사는 동안 한 번조차 못 이루더라도 이 꿈을 고이 품으셨습니다. 품고 품으며 또 품어요. 다시 품고 새로 품으며 거듭 품어요. 언제인가 꼭 이루겠노라 하는 마음으로 참말 씩씩하게 삶을 일굽니다.

  우리 둘레에는 일흔뿐 아니라 여든이나 아흔이 되어도 꿈을 못 이루는 이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고 죽기를 되풀이해도 도무지 꿈하고 맞닿지 못하는 이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꿈은 어떻게 이룰까요? 꿈은 왜 못 이룰까요? 가난하기 때문에 꿈을 못 이루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힘이 들거나 나이가 많아서 꿈을 못 이루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꿈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 탓에 꿈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우리 스스로 꼭 하루라도 꿈을 놓거나 잊는 사이에 꿈하고 멀어지는구나 싶어요. 아흔넷이라는 나이까지 호빵맨 만화를 그린 만화 할아버지는 우리 젊은이한테 이 대목을 차분하게 짚어서 일깨우려고 합니다. 다만 가르침을 베풀지는 않아요. 이녁 스스로 아흔이라는 나이를 훌쩍 넘도록 살며 늦깎이 만화가 길을 이루어 살다 보니 ‘꿈은 젊은 날 이루든 늙은 날 이루든 모두 똑같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네 하고 밝힙니다.


모두 입을 모아 ‘한 치 앞은 어둠’이라고 말하지만, ‘한 치 앞은 빛’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구십 년 이상 살다 보니, 확실히 이 말의 의미가 온몸으로 전해진다. (87쪽)

한 걸음 한 걸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기 힘들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을 수십 년이나 이어나가면, 언젠가 원대한 목표에 이를 수 있다. (105쪽)


  한 치 앞을 보아도 어둠일 수 있습니다만, 아흔 넘은 만화 할아버지는 이를 다르게 들려줍니다. 우리가 한 치 앞조차 제대로 못 보기 마련이라면서, 그 한 치 너머는 온통 눈부신 빛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한 치를 넘어서기까지 일흔 해가 걸릴 수 있고 아흔 해가 들 수 있습니다만, 꿈을 바라보려는 마음을 즐거이 붙잡을 적에 꿈을 이룬다고 이야기해요.

  만화 할아버지는 아흔이 가까운 나이에 이녁 고향마을에 ‘만화 박물관’을 지었다고 해요. 다른 사람 돈을 빌리지 않고 ‘만화 할아버지가 만화를 그려서 번 돈’만으로 한갓진 이녁 고향마을 한켠 아주 고요한 곳에 만화 박물관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 만화 박물관은 도쿄 같은 도시하고 매우 먼 터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올는지 알 수 없었대요. 아니 이 외딴 시골마을에 지은 만화 박물관까지 애써 찾아올 사람이 있을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지요.

  만화 할아버지는 이녁 꿈이던 만화가 길을 일흔 해 남짓 고이 품으면서 이루었듯이 ‘즐겁게 만화를 그려서 기쁘게 벌어들인 목돈’을 고스란히 만화한테 바치고 싶다는 뜻으로, 또 고향마을에 선물을 돌려주고 싶다는 뜻으로 만화 박물관을 지었답니다. 그리고 이 만화 박물관은 아주 외진 시골에 있으나 늘 엄청난 손님 물결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해요. 호빵맨 만화 박물관은 박물관이면서 놀이터라는데, 만화 할아버님 뜻을 받들어 일본 곳곳에 새로운 ‘호빵맨 만화 박물관(+ 놀이터)’이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괴물을 때려눕힐 때도 마을이나 숲을 파괴하고 만다. 그걸로 정의가 이긴 것이 된다. 어딘가 영 석연치 않다. 아무리 결전을 벌여도 정의의 영웅은 옷이 찢어지거나 더러워지지 않는다. 이 역시 이상하다. 온갖 무기를 연달아 선보이면서 펑펑 요란하게 불길을 일으키는 영웅을 보고 박수 치며 흥분하다니. 일종의 ‘전쟁 찬미’처럼 여겨진다. 어린아이의 잠재의식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119쪽)


  일흔을 훌쩍 넘기고 만화가 길을 걸을 수 있던 할아버지는 호빵맨 만화에 ‘주인공’을 수없이 많이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호빵맨 하나만 주인공이 아니라 자그마치 2000이 넘는 주인공(등장인물·캐릭터)이 있다고 해요. 이녁은 ‘영웅’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이웃이나 동무를 그렸다고 해요. 어느 한 사람 영웅이 번쩍 나타나서 모든 ‘나쁜 놈’을 때려눕히거나 죽여 없애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서로 아끼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평화로운 나라를 꿈꾸면서 ‘죽는 마지막날까지 힘이 닿는 대로 새로운 주인공을 그리려’고 했답니다.

  《네, 호빵맨입니다》를 읽으면 만화 할아버님 어릴 적 이야기도 살며시 흐릅니다. 1919년에 태어난 할아버님한테는 매우 똑똑하고 잘생기고 의젓한 동생이 있었다는데, 이 훌륭하고 멋진 동생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적에 군인으로 끌려가서 바다에서 하루아침에 죽었다고 합니다. 할아버님도 군인으로 끌려갔으나 용케 할아버님은 살아남았다고 해요. 끔찍한 전쟁을 겪으면서, 게다가 그 전쟁에서 ‘일본이 전범 나라’였던 대목을 치러내면서, 만화 할아버님은 이 전쟁이 얼마나 그악스럽고 끔찍한가를 뼛속 깊이 배웠다고 해요.

  이리하여 만화를 그리려는 꿈을 일흔 해 동안 품는 나날에도 ‘영웅은 그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답니다. ‘영웅 주인공’이 온갖 첨단무기를 내세워서 ‘나쁜 적’보다 훨씬 더 ‘파괴를 일삼는 짓’을 벌이는 그런 만화가 아니라, ‘작고 착하며 여린 이웃’이 주인공이 되어 서로 아끼고 보듬을 줄 아는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를 그리려고 했답니다. 호빵맨이 아톰 못지않게 아이들한테서 사랑받는 어여쁜 동무가 되는 까닭을 넉넉히 읽을 만합니다. 얼굴(호빵)을 가난하고 배고프며 고단한 이웃한테 떼어 주면 그만 힘을 잃는 호빵맨이요 다른 아무 재주가 없는 호빵맨입니다. 이 가녀린 호빵맨은 바로 아흔 고개 할아버지가 아이들한테 젊은이한테 우리 모두한테, 이녁 온몸과 온마음을 나누어 주고 싶은 사랑을 그린 빛줄기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2017.4.1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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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샤 2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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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92



사람을 따뜻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 이누야샤 2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2.3.25. 4500원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몸뚱이로서는 틀림없이 사람이더라도, 속으로 따스한 사랑이 흐르지 못한다면 ‘사람 같지 않다’고들 해요.


  우리는 둘레에서 이런 사람을 곧잘 만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 ‘사람 같지 않은 꼴’이 될 수 있고요. 따스한 사랑이 없으면 차가운 몸짓이 됩니다. 차가운 몸짓은 메마른 몸짓으로 이어지고, 매몰차거나 딱딱한 몸짓으로 나아가기 일쑤입니다. 따스한 사랑이 아니기에 누구한테나 차갑거나 딱딱한 몸짓이나 말씨로 마주하겠지요.



“흥. 역시 반요는 별 수 없다니까. 딱하게도, 이걸 써서 진짜 요괴가 되고 싶었지?” (39쪽)


“우라란 놈, 빗에 자기 혼을 옮겨 놨었군. 그래서 베어도 찔려도 반응이 없었던 거야.” (60쪽)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어.” “그게 어땠는데?” “조금은 사이좋게 지낼 생각이 든 거야?” (62쪽)



  만화책 《이누야샤》는 긴 이야기를 통틀어 언제나 한 가지를 되새겨 줍니다. 바로 ‘사람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되새겨요. 사람이면서도 사람한테 따스하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사람이 아니기에 사람한테 따스하지 않은 목숨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니되 사람한테 따스한 목숨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덧붙여 사람이기에 사람으로서 사람한테 따스한 사람들 이야기가 있지요.


  네 갈래 길이라 할 텐데, 이 네 갈래 길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을 이 넷 가운데 골라 본다면 어느 길이 즐거울까요? 어느 길이 아름다울까요? 어느 길에서 기쁘고, 어느 길에서 사랑이 싹틀까요?



‘왜 저러지? 뭔가 기분 상할 말을 했나? 난, 어머니에 대해 물었을 뿐인데. 아버지가 요괴고, 이누야샤는 반요. 설마, 이누야샤의 어머니는 인간이라거나.’ (77쪽)


“보이되 보이지 않는 장소. ‘진짜 문지기’는 결코 볼 수 없는 장소. 그것이 네 오른쪽 눈에 봉인된 흑진주였을 줄은.” (121쪽)


“셋쇼마루 님, 당신은 철쇄아를 뽑지 못했습니다! 그렇지요?” “이누야샤라면 뽑을 수 있다, 라는 말이냐?” “당연하죠! 아버님께서 이누야샤 님께 무덤을 맡기신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142∼143쪽)



  제아무리 대단한 재주가 있더라도 따스한 마음이 없다면, 이 대단한 재주는 무시무시한 곳에 쓰이거나 휘둘리기 쉽습니다. 제아무리 아무런 재주가 없더라도 따스한 마음이 있다면, 이 따스한 마음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보듬는 살림으로 이어집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머리가 있더라도 따스한 마음이 없다면, 이 뛰어난 머리는 무서운 곳에 섣불리 쓰이거나 휘둘리기 쉬워요. 제아무리 뛰어난 머리가 없더라도 따스한 마음이 있다면, 이 따스한 마음은 모든 것을 녹이고 달래면서 우리 삶에 기쁜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지요.



“푸하! 죽는 줄 알았네. 너! 나까지 진짜 죽이려고 했지? 톡톡히 반성하게 해 줄 테니까, 각오해!” (161쪽)


“힘내, 이누야샤! 방금 한방 들어갔어!” “이거 봐, 들어가긴 뭐가 들어가?” “

그치만, 그건 네 칼이잖아? 난 네 힘을 믿어.” (168쪽)



  사랑을 믿기에 사랑을 바라봅니다. 꿈을 믿기에 꿈을 마주합니다. 《이누야샤》에 나오는 카고메와 이누야샤는 서로 다른 몸이고 마음이지만, 앞으로 크게 하나가 될 꿈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길을 갑니다. 엄청난 시간을 가로질렀다고 하지만, 어느 모로 보면 그 엄청난 시간은 아무것이 아닐 수 있어요. 지난날도 오늘날도 앞날도 따로 쪼개지거나 갈라진 따로따로가 아닐 수 있어요.


  우리는 늘 같은 때를 살고 같은 곳에 있을는지 모릅니다. 마음이 있기에 이어지고, 마음을 아끼기에 만납니다. 마음으로 함께하며, 마음으로 노래해요. 마음으로 손을 내밀고, 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하지요.



“어떻게 카고메가 철쇄아라는 검을 뽑았는지. 역시 네게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일까?” “음.” “내 생각에는, 카고메가 인간이기 때문에 뽑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지. 본디 철쇄아는 이누야샤 님의 아버님께서, 인간인 어머님을 지키고자 만든 요도라오. 따라서 인간을 자비롭게 여기고, 지키려는 마음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검.” (184∼185쪽)



  온누리에 있는 모든 돈이 오직 하나 ‘사랑’에 따라 흐를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온누리 모든 사람이 오직 하나 ‘사랑’을 그리면서 마음밭을 살뜰히 가꾼다면 참 아름답겠지 하고 생각해 봅니다. 누구보다 제가 먼저 사랑을 보고 생각하고 그리고 품으면서 하루를 짓자고 새삼스레 다짐합니다. 저는 따스한 마음으로 하루를 열고 하루를 닫으면서 활짝 웃음짓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2017.4.10.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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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7-04-12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니메이션 성우분의 연기도 볼만합니다~

숲노래 2017-04-12 09:0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일본판에서 그런가요, 한국판에서 그런가요?
저는 일본판 만화영화로만 보았습니다 ^^
책도 만화영화도
모두 훌륭하지요!

만화애니비평 2017-04-13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판 애니 맞습니다. 카고메 성우분이 실력이 대단한 분이라..ㅎㅎ

숲노래 2017-04-13 11:0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나중에 그분이 목소리를 낸 다른 작품도 찾아보아야겠네요 ^^
말씀 고맙습니다
 
아르슬란 전기 6 - 만화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다나카 요시키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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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97



‘핏줄’이 아닌 ‘따스한 슬기’여야 할 우두머리

― 아르슬란 전기 6

 타나카 요시키 글

 아라카와 히로무 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7.2..25. 5500원



  한국에서 2017년에 새로운 물결이 일었습니다. 아마 한국처럼 이런 물결이 이는 나라도 지구별에서는 드물리라 생각해요. 한때 독재 권력자가 새마을운동이라는 물결로 사람들 머릿속을 휘저었고, 한때 남북녘이 서로 미워하며 총칼로 죽이는 물결이 일었으며, 한때 축구 하나로 온누리에 붉은 물결이 일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런 물결하고는 사뭇 다르게 독재 권력자 한 사람을 끌어내리는 촛불 물결이 일기도 했습니다.



“원한으로 따지면 그대보다 내가 더 먼저일 걸세.” “어떤 원한인데?” “나를 돌팔이 화가라고 불렀거든.” (36쪽)


“죄 없는 파르스 백성의 마을을 불태우고, 엑바타나를 혼란에 빠뜨린 이유가 무엇이란 말이오?” “정통한 왕위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의식이었다! 곧 가면을 벗고 정통한 왕 히르메스가 루시타니아로부터 파르스를 해방할 것이다!” (43쪽)



  한때 한겨레는 총칼을 두려워했습니다. 총칼을 두려워하면서도 서로서로 총칼을 겨누어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총칼이 무엇인가를 차츰 깨닫다가는 굳센 너울로 거듭나서 따사로운 촛불이라는 새로운 너울이 되기도 해요.


  촛불이 무너뜨린 것은 독재 권력자 한 사람만이 아니라고 느껴요. 우리 마음속에 모든 일은 우리 작은 손으로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일으켰구나 싶어요. 남이 해 주어야 하는 일이 아닌, 스스로 하는 일이라는 대목을 일깨웠지 싶어요. 남한테 기대는 마음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일어서는 마음을 세웠다고 느껴요.


  이러한 흐름을 돌아보면서 만화책 《아르슬란 전기》(학산문화사,2017) 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어느덧 여섯째 권에 이르는 이 만화책은 ‘핏줄’ 이야기를 다룹니다.



“설령 파르스 왕가의 피를 잇지 않은 자라 해도 선정을 베풀고 백성의 지지를 얻는다면 어엿한 샤오일 것이오! 달리 또 무슨 자격이 필요하단 말이오!” (47쪽)


“왕자님은 나 같은 아랫것까지 걱정을 다 해 주네.” “그런 분이시지.” (84쪽)



  ‘아르슬란’은 임금 핏줄 가운데 ‘적통’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리하여 스스로 ‘적통’이라고 일컫는 이가 군대를 일으켜 숱한 마을을 불사르면서 ‘적통 임금’이 되겠노라 하고 외칩니다. 이런 외침을 들은 적잖은 이들은 이 ‘적통 권력자’ 둘레에 모여듭니다. 그러나 이이 둘레에 모이지 않는 몇몇 이들은 아르슬란 곁에 있습니다. 아르슬란 곁에 있는 이는 ‘핏줄’이 아닌 ‘따스한 슬기’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는 작고 여린 임금을 모시려 합니다.



“나르사스처럼 똑똑한 사람이 왜 그런 것도 모르지?” “그럴지도 모르지. 허나 그대의 나르사스라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네.” (98쪽)


“하물며 전하 자신은 이 사정이나 비밀에 아무 책임이 없지 않으신가.” “그렇군. 자네에게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지 … 자네라면 이해할 테지만, 전하는 부하에게 질투라는 것을 하지 않으시지.” (173쪽)



  위가 있기에 아랴가 있습니다. 아래가 없다면 위가 없겠지요. 거꾸로 위가 없으면 아래도 없을 테고요. 서로 동무가 되고 이웃이 된다면 위아래로 나뉘지 않습니다. 서로 손을 맞잡아 동무나 이웃으로 지낸다면 평화롭습니다.


  온누리에서 불거지는 모든 전쟁은 서로 동무나 이웃으로 여기지 않은 탓입니다. 너랑 내가 동무나 이웃이 아니기에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 맙니다. 너랑 내가 미움으로 가득하니 싸우고야 말아요.


  아무리 ‘적통이라는 핏줄 임금’이라 하더라도 위아래를 갈라서 권력을 휘두른다면 이이는 안 아름답습니다. 나라를 이끌 사람이라면, 마을을 이끌 사람이라면, 또 한 집안을 이끌 사람이라면 ‘핏줄’이 아닌 ‘사랑’이 있을 노릇이에요. 오직 따스한 마음과 슬기와 사랑일 적에 집안도 마을도 나라도 이끌 만합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미움과 싸움만 있겠지요. 사랑이 없는 곳에는 새로움도 넉넉함도 즐거움도 피어나지 못한 채, 그저 싸움이랑 다툼이랑 겨룸만 판치겠지요. 2017.4.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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