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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 7 - 완결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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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13



모든 소리를 들어 보렴

― 목소리의 형태 7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10.31. 5500원



  오이마 요시토키 님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대원씨아이,2015)는 모두 일곱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이 만화책은 열너덧 살부터 읽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만화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열너덧 살이 넘는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서 마주하는 일일 뿐 아니라, 초등학교에서도 흔히 마주하는 일이 되리라 느낍니다.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아이들 이야기요,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짓으로 아프거나 슬픈 아이들 이야기이거든요.



‘진정한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진정한 ‘모두’는 다 죽고 마는 걸까.’ (7쪽)


“난 이제 괜찮아. 그럭저럭.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고. 나도 한마디 할게. 니시미야. 니시미야. 미안해.” (28∼29쪽)


“내 딴에는 네 목소리를 듣는다고 들었지만, 사실은 착각이었어. 그럴수밖에. 얘기해 주는 게 전부일 리가 없는데 그게 그 사람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30쪽)



  한때 다른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던 아이 가운데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따돌림을 받거나 괴롭힘을 받는 아이로 바뀝니다. 어느 한 아이를 함께 따돌리거나 괴롭히던 수많은 아이들은 어느 날부터 갑자기 ‘그냥 착하고 얌전한 아이’인 척을 합니다. 어른들 앞에서는 갑자기 이처럼 겉모습을 바꾸더니 어른들이 없는 뒤에서는 ‘새로운 아이’를 짓궂으면서 끔찍하게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짓을 해요.


  다만 이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는 만화가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참말로 벌어진 일을 만화로 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만화책에 흐르는 이야기와 엇비슷한 수많은 ‘따돌림·괴롭힘’ 이야기가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널리 있다고 느낍니다.


  ‘왕따’나 ‘이지메’나 ‘집단 따돌림’이란 말이 없던 내 국민학교 적을 돌아보아도, 그무렵에 ‘반 따돌림’이나 ‘학교 따돌림’을 받는 아이가 있었어요. 집이 가난해서 차림새가 꾀죄죄하다든지, 얼굴이 못생겼다든지, 힘이 여리면서 너무 순둥이 같은 아이라든지, 이런 아이들이 반이나 학교에서 참말로 아프게 따돌림을 받았어요. 게다가 이렇게 따돌림을 받는 아이들한테 부드러이 다가서서 돕거나 말을 섞으면 이런 아이도 따돌림을 받았지요. 나는 ‘반 따돌림’이나 ‘학교 따돌림’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따돌림을 받는 아이한테 부드러이 다가서다가 놀림이나 따돌림을 받은 일이 꽤 잦았습니다. 그리고 따돌림을 받는 아이한테 부드러이 다가선 뒤에 ‘나를 다시 본 아이들’도 더러 있었어요.



“울어서 될 일이면, 울었으면 좋겠어. 나한테 오늘 이후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좀더 모두와 함께 있고 싶어. 많은 걸 얘기하고, 또 놀고도 싶어. 그걸 도와줬으면 좋겠어, 네가. 살아가는 걸 도와줬으면 좋겠어.” (38∼39쪽)


‘오늘부터 제대로 모두의 얼굴을 보고 인사하자. 그리고 듣자. 모두의 목소리를. 좋은 소리든 싫은 소리든.’ (65쪽)



  내 어릴 적을 더 더듬어 봅니다.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는 아이들은 학교랑 집 사이에서 늘 혼자 다녔어요. 하루 내내 늘 혼자 책상맡에 조용히 앉아서 지내요. 체육 시간에도 혼자 바깥에서 맴돌고, 낮밥을 먹는 때에도 그야말로 고개를 폭 숙이고 조용히 수저질만 해요.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나로서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혼자 구석진 곳에 있는 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를 불러서 함께 밥을 먹는다든지, 동무들하고 도시락을 들고 책상을 붙여서 함께 밥을 먹는다든지, 체육을 할 적에 이 아이를 우리 편에 끼우고 내가 공받이를 해 주거나 일부러 이 아이하고 쉽게 죽거나 한다든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좀 멀어지지만 이 아이네 집 언저리까지 함께 걸어가 보거나 하곤 했어요.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런 일을 국민학교 여섯 해 동안 퍽 자주 하면서 한 가지를 느꼈어요.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더없이 착한 아이들이고 집에서 여러모로 어머니 아버지를 도와서 살림을 많이 맡기도 하고 집에서 동생들을 얼마나 아끼고 살뜰히 보살피는지 몰라요. 게다가 이 동무들은 집에서는 ‘학교에서 보여주지 않는’ 엄청나게 해맑은 낯빛으로 웃음을 지으며 재잘재잘 수다쟁이로 지내더군요.



“고민이라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거랑 어머니가 바라는 거랑 둘 중 어느 쪽으로 할지? 그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안 그랬다간 후회할걸. 나도 전력으로 응원할게.” (122∼123쪽)


“엄마는 왜 이 일을 할 생각을 했어?” “재밌을 것 같아서.” (144쪽)



  나는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를 일곱 권째 읽는 동안 한 권마다 퍽 오랫동안 찬찬히 삭였습니다. 나는 어릴 적에 반이나 학교 동무를 얼마나 아끼는 아이였는가 하고 돌아보았습니다. 따돌림을 받는 아이하고 때로는 툭탁거리며 싸움질을 하기도 했고, 싸움질을 그친 뒤에는 서로 마음을 풀고 예전보다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기도 했어요.


  이때에 내가 느낀 한 가지가 있다면, 누군가를 따돌리는 아이는 집에서 그리 사랑받지 못하는 하루를 누리는구나 싶었어요. 누군가한테서 따돌림을 받는 아이는 집에서는 학교와 달리 밝으면서 홀가분하게 동생을 따스히 이끌었어요.


  어릴 적에는 노느라 바빠서 여기까지만 얼핏 느끼고는 거의 잊었습니다. 이러다가 《목소리의 형태》라는 만화책을 천천히 읽고 되새기면서 ‘동무와 동무 사이’를 새삼스레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가 동무이고, 동무를 사귀는 마음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어요. 내가 아끼는 동무는 누구이고, 나를 아끼는 동무는 누구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지요.



‘중학교 시절, 나 자신의 미래는 보잘것없는 것이 되리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상상 속의 미래도 몹시 눈부셔 보인다. 아찔하리만치 희망으로 가득하다. 내가 옛날 니시미야를 싫어했었던 것처럼, 이 문 너머에 있는 것은 분명 쓰라린 과거일 것이다. 그래도 또 하나 있는 것이 있다. 가능성이다. 그것은 언제든 열 수 있다. 살아 있는 한.’ (186∼187쪽)



  나는 국민학교라는 곳을 마친 지 거의 서른 해가 되었습니다. 내 어릴 적 동무뿐 아니라 나도 참 나이를 먹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내가 신나게 뛰놀던 어릴 적 나이를 누리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우리는 서로 어떤 사이가 되어야 즐거울까요? 우리는 왜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누군가한테서 따돌림을 받아야 할까요? 즐겁게 어우러지면서 어깨동무를 하면 안 될까요? 모든 목소리를 고루 들으면서 다 함께 아끼는 마음이 되면 아름답지 않을까요?


  얼굴이 이쁘장해야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착할 때에 아름다운 사람이리라 느낍니다. 동무들 목소리를 꾸밈없이 고루 들을 뿐 아니라, 바람과 구름과 풀과 나무와 꽃과 잠자리와 참새와 지렁이 목소리도 두루 들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고우면서 슬기로운 마음이 되리라 느낍니다.


  오늘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속삭입니다. 얘들아,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들아, 우리를 둘러싼 수만은 아름다운 숨결이 우리한테 베푸는 소리를 들어 보렴. 개구리뿐 아니라, 빗물뿐 아니라, 바람뿐 아니라, 나무뿐 아니라,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많은 숨결이 나누어 주는 소리를 함께 들어 보자. 2016.7.1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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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그리고 3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정은서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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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35



꿈부터 그리고 만화를 그리자

― 그리고, 또 그리고 3

 히가시무라 아키코 글·그림

 정은서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6.6.15. 8000원



  꿈을 잊는 사람은 꿈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꿈을 잊었으니 꿈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꿈하고는 멀어지는 길로 갈 테니까요. 꿈을 잊지 않을 적에 비로소 꿈으로 나아간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온마음을 기울여 꿈을 품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나 이녁 꿈을 이루는 길이 되지 싶어요.



‘대학 재학중에 순정만화가로 데뷔하겠다고 결심하고 여기로 왔는데, 저는 만화를 그리는 일조차 없이 4학년을 맞이했습니다.’ (7쪽)


‘목표를 소리내어 말하는 것은 중요하다고들 하지요? 그 말은 정말이랍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던 제가 그때부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취한 행동. 그것은 현재 만화계의 숙적이 된 이른바 신고서점(새책 같은 헌책 파는 책방)에서 알바를 시작한 것입니다.’ (10∼11쪽)



  만화가라는 길을 걷겠다는 꿈을 키운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이지만 정작 대학교를 다닐 적에는 이 꿈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넉넉히 남아도 이 꿈을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놀았다고 해요. 이러다가 대학교를 마칠 무렵에 비로소 다시 떠올렸고, 대학교를 마친 뒤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던 때부터 악착같이 이 꿈에 매달렸다고 해요.


  《그리고, 또 그리고》(애니북스,2016) 셋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돌기에 만화가라는 꿈으로 나아가지는 않아요. 시간이 거의 없다고 할 만하기에 꿈으로 못 나아가지 않습니다. 꿈을 온마음으로 그릴 적에 비로소 꿈으로 나아갔습니다. 꿈을 잊을 적에 그야말로 꿈하고 동떨어진 자리에 섰어요.



‘선생님은 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한결같이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43쪽)


‘인간이란 신기합니다. 시간이 남아돌아 주체하기 힘들던 학생시절에는 전혀 그리지 않았던 주제에, 하루 중 자유시간이 퇴근 후 겨우 몇 시간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81쪽)



  오직 만화가만 이와 같으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우리 누구나 이와 마찬가지가 되리라 느껴요. 나 스스로 이루려는 어떤 꿈이 있으면, 이 꿈을 입으로 말하고 몸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늘 생각하면서 마음에 담을 줄 알아야 할 테지요. 이러면서 배워야지요. 늘 새롭게 배워야지요. 이루려는 꿈을 배우고, 이루려는 꿈으로 가는 길을 배워요. 이루려는 꿈으로 누리는 삶을 배우고, 이루려는 꿈을 짓는 손길을 배워요.


  거의 밤샘을 하다시피 지내더라도 만화를 그릴 수 있어 기쁩니다. 온갖 일로 몸이 고되더라도 꿈으로 나아가는 길이기에 다시 기운을 차립니다. 아주 작은 틈이라 하더라도 책을 읽든 만화를 그리든 노래를 부르든 춤을 추든 할 수 있어요. 날마다 꾸준히 마음을 기울이면서 어느새 조그맣게 열매를 맺어요. 씨앗 한 톨이 커다란 나무가 되듯이, 또는 맛난 열매를 맺듯이, 참으로 날마다 바람과 해와 비와 이슬을 머금으면서 무럭무럭 자라요.



“잠깐만요, 선생님. 그건 무리예요. 지금 꼭 그리고 싶은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야시. 그리고 싶은 주제가 없어도 상관없다. 그저 그리면 된다. 눈앞에 있는 것을. 그리고 싶은 주제를 찾으니까 안 되는 거야. 그래선 그릴 수 없게 된다.” (98∼99쪽)



  만화가가 되려는 사람은 어떤 만화를 그려야 할까요? 이 만화는 되거나 저 만화는 안 될까요? 더 나은 만화나 덜 좋은 만화가 있을까요?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은 고향에 있는 ‘그림 선생님 집’에서 ‘그림 그리기’를 배우는 동안 ‘꿈을 짓는 몸짓’을 단단히 배웠다고 할 만합니다. 다만 이때에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는 잘 배우지 못했다고 해요. 마음이 늘 딴 데에 있었으니까요.


  예술이 되는 그림을 그리든, 만화라는 그림을 그리든, 그저 그리려는 대로 그리면 됩니다. 집에서 겪은 일을 그리든, 동무나 이웃하고 얽힌 일을 그리든, 내키지 않으나 여러 달 몸을 담그는 일을 그리든, 그저 그리면 됩니다.


  그리고 또 그리면 될 노릇이에요. 스스로 나아가려는 대로 그리면 될 노릇이에요. 어버이라면 아이를 사랑하면 될 노릇이에요. 글쓰기도 사진찍기도 늘 이와 같아서, 스스로 지으려는 대로 모든 열매를 맺으니, 씩씩하고 즐겁게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될 노릇이에요.


  그리고 또 그리기에 만화가로 거듭납니다. 꿈꾸고 또 꿈꾸기에 이 꿈을 이룹니다. 아침저녁으로 고운 손길이 되어 살림을 짓기에 살림꾼이 태어납니다. 꿈을 새로 짓는 이는 모든 꿈을 언제나 스스로 일굽니다. 2016.7.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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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10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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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34



따돌림받는 동무한테 사랑스런 손길을

― 은빛 숟가락 10

 오자와 마리 글·그림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6.6.14. 5000원



  누군가 나를 따돌린다면 나는 어떤 마음이 되어야 할까요? 나를 따돌리는 사람들 옆에 굳이 있어야 할까요, 아니면 나를 따돌리는 사람들하고 멀리 떨어져서 조용히 있으면 될까요?


  나는 누군가를 따돌리는 사람은 아닐까요? 누군가 내 옆에 있으려 하는데 나로서는 어느 누군가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조용히 내치거나 드러내어 밀치지는 않을까요?



‘훨씬 더 나중 일이었다. 점심시간엔 노리카와 친구들이 있는 교실에 놀러갔고 수업이 끝나면 부활동도 있었다. 집에 돌아가면 루카가 있어서 루카를 돌보느라 매일 바빴기 때문에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되기 전까지 새로운 반에서 자신이 겉돌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했다. (6쪽)


“친구 사귀는 방법을 모르겠어. 히카리가 전학 가고, 여자는 홀수가 됐어. 노리카랑 친구들 교실에 가기도 껄끄러워져서, 이젠 계속 혼자서 급식을 먹고 있어.” “계속이면 얼마나?” “3주 정도.” “괴롭힘 당하고 있어?” “그건 아닌 것 같아. 단지 어느 그룹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어 …… 애들 시선이 신경 쓰여서 그렇게 못 하겠고, 왠지 점점 그냥 말을 거는 것도 무서워졌어.” (20∼21쪽)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6) 열째 권을 읽습니다. 《은빛 숟가락》 열째 권에서는 이 만화책에서 주인공을 이루는 어느 한 집안에서 막내인 ‘중학생 가시내’ 이야기가 첫머리부터 흐릅니다. 이 아이는 집에서나 마을에서나 학교에서나 살가우면서 따스한 마음으로 지내는 아이입니다. 수수하면서 착하게 지내는 아이인데 이 아이는 어느 날 다른 까닭이 없이 조용히 따돌림을 받습니다.


  이른바 잘난 척을 하는 일도 없고, 자랑을 하는 일도 없지만 따돌림을 받습니다. 눈에 뜨이는 뭔가를 하는 일도 없고, 어떤 일을 앞장서서 벌이지도 않는데 따돌림을 받습니다. 이런 따돌림이란 무엇일까요?


  가만히 보면 따돌림이란 ‘누가 어떤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저지르거나 일으키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따돌리기 장난’을 벌이는 일이 꽤 흔하다고 느껴요. 그러면 이때에 ‘따돌림을 받는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절당하면?” “거절당하지 않아. 게다가 거절하는 애라면 친구 안 해도 돼. 괜찮아. 내가 호의를 갖고 대하면 상대도 호의를 갖고 응할 거야. 호의에는 호의, 악의에는 악의. 상대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야.” (22쪽)


‘‘진짜 시시하지?’ 미유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그 시시한 일로 계속 고민하고 상처받았던 난 그럴싸하게 웃을 수 없었다.’ (34쪽)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리를 짓습니다. 저마다 마음에 드는 짝꿍을 찾거나 동무를 찾아서 무리를 짓습니다. 커다란 무리가 있고 둘이서 조그맣게 이루는 무리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무리가 생길 텐데, 어느 무리에도 들지 못하는 아이가 어김없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무리에도 들지 못하는 아이를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무리도 있을 테지만, 못 본 체하거나 안 받아들이려는 무리도 있을 테지요.


  아이들은 ‘시시한 일로 따돌림받는 생채기’를 쉽게 씻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시시한 일로 누군가를 따돌린 짓’을 마음에서 쉽게 지울 수 있을까요? 따돌림받은 아이가 마음에 생채기가 남은 일을 둘레에서는 어느 만큼 헤아릴 만할까요? 누군가를 따돌리는 아이들은 이렇게 누군가를 따돌리면서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웃음’이나 ‘노래’가 흐를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따돌리는 사람은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거나 가꿀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따돌리는 짓을 하는 사람은 ‘누가 나를 이처럼 따돌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혀서 자꾸자꾸 새롭게 누군가를 따돌리는 짓을 하고 또 하는 뺑뺑이에 갇히지는 않을까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단다. 아픈 게 아닌 이상, 미유도 누군가가 들어주길 바라고 있을지 몰라.” “…….” “넌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해?” “난, 거짓말을 한 건 충격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같은 상황은 뭔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91쪽)


“옆에 있는 훌륭한 아파트가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 “나한테는 사실대로 말해 주면 좋았을걸!” “그렇게 생각했어. 손가락 걸고 약속한 날 집에 가서 엄청 후회했어. 내일 학교에 가면 사실대로 말해야지 하고.” (96쪽)



  만화책 《은빛 숟가락》에 나오는 어린 가시내한테는 ‘말을 섞을 사람’이 있습니다. 비록 따돌림을 받는다지만, 마음으로 사귀는 벗이 있어서 아픔을 털어놓습니다. 이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스스로 말을 털어놓을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 줍니다. 이윽고 아이가 어머니한테 그동안 겪은 일을 털어놓자 어머니는 다시금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이 실타래를 아이가 스스로 어떻게 풀면 좋을까’ 하는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줍니다.


  만화책을 읽으면서, 만화책에 나오는 여러 사람 모습을 살피면서, 만화책에 나오는 온갖 이야기를 읽으면서, 조용히 생각에 잠겨 봅니다. 따돌림을 벌이는 아이들은 틀림없이 ‘바보스러운 장난과 얽힌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즐겁게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바라리라 느낍니다. 겉치레로 탈을 쓰는 바보짓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허물없이 살가이 나눌 이야기를 바라리라 느껴요.


  사랑을 받지 못하는 터전에서 지내기에 그만 이웃이나 동무를 따돌리고 말리라 느껴요. 사랑을 받는 터전에서 지내기에 이웃이나 동무한테도 늘 스스럼없이 기쁘게 사랑을 나눌 수 있을 테고요. 그러니까 누군가를 따돌리는 아이가 있다면 이 아이는 틀림없이 ‘사랑받지 못하는 살림’을 누리느라 괴로운 아이라고 느낍니다.



‘내일 학교에서 지낼 일은 일단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오늘은 둘이서 새콤달콤한 구운 사과를 먹자. 아마 조만간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에는 무지개도 뜰 거야.’ (98쪽)



  아이는 스스로 씩씩하게 서면서 새로운 하루를 꿈꿉니다. 다른 것은 더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오늘 이 자리에서 ‘마음 아픈 동무’가 스스로 아픔을 털고서 새롭게 일어서기를 바라면서 따사로이 지켜보고 싶다는 꿈을 키웁니다. 이러면서 이 아이도 스스로 더욱 씩씩하게 서자는 다짐을 합니다.


  스스로 웃으려 마음을 쓰면서 참말 스스로 웃음을 짓습니다. 스스로 노래하려 마음을 기울이면서 참말 스스로 노래를 짓습니다. 스스로 사랑스러운 살림을 바라면서 참말 스스로 사랑스러운 손길로 살림을 짓습니다.


  머잖아 비가 그쳐요. 머잖아 맑게 개요. 머잖아 해도 뜨고 무지개도 떠요. 여느 집과 마을과 고장에 언제나 따사로운 숨결이 파란 하늘처럼 싱그러이 흐를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2016.7.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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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2
나치 미사코 지음, 이기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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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33



곁에 있는 숨결하고 마음으로 얘기 나누기

― 네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2

 나치 미사코 글·그림

 이기선 옮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펴냄, 2016.2.25. 7000원



  우리 집 큰아이가 나비를 잡습니다. 처음에는 못 본 척합니다. 한 마리를 틀림없이 잡았는데 또 잡는다고 부산을 떨기에 넌지시 물어봅니다. “벼리야, 나비를 잡으면서 나비한테 물어보았니?” “응? 뭘?” “나비한테 널 잡아도 되느냐고.” “…….” “나비는 너한테 잡히려고 태어났을까, 아니면 나비는 꽃을 찾아 날아다니려고 태어났을까?” “…….” “누가 벼리를 잡아서 좁은 곳에 가두면, 벼리는 어떤 마음이 될까?” “싫어.” “그러면, 나비를 잡아서 좁은 곳에 가두면, 나비는 그 좁은 곳에서 숨을 쉴 수 있을까?”


  아이는 한참 머뭇머뭇하다가 나중에 나비를 풀어 줍니다. 좁은 곳에 갇혔던 나비는 날갯짓을 제대로 못하다가 이내 홀가분하게 날아갑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하루 지난 뒤에 다시 나비를 잡는 놀이를 합니다.



“아, 고론은 꿈속에서 엄마와 형제들을 만나고 있어요.” (29쪽)


‘흰 고양이는 행운을, 검은 고양이는 지혜를 준다고 들은 적이 있지만, 당신의 고양이가 보여주는 꿈에 이길 수는 없어요.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꿈에는.’ (36쪽)



  나치 미사코 님 만화책 《네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AK커뮤니케이션즈,2016) 둘째 권을 읽습니다. 2014년 가을에 첫째 권이 나왔고, 한 해 반 만에 둘째 권이 나옵니다. 번역이 좀 늦구나 싶지만, 둘째 권이 나왔으니 반가운 노릇입니다.


  이 만화책은 ‘고양이 마음을 읽는 아가씨’가 나옵니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은 많지만 ‘고양이 마음을 읽는 사람’은 그리 안 많다고 해요. 그래서 고양이를 기르거나 가까이하기는 하되 정작 고양이는 어떤 마음인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고 합니다. 이때에 ‘고양이 마음을 읽는 아가씨’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해요. 고양이 마음을 읽고 싶어서 답답한 사람들 마음을 풀어 준다고 합니다.



‘새끼 고양이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은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걸. 그래서 안아 줄 손을 기다렸다.’ (81쪽)


“빵, 안전한 장소가 준비돼 있는데 왜 인간을 피하는 거니?” “흥! 안전한 장소라고? 난 갇혀 사는 거 싫어. 밖에는 팔짝팔짝 뛰어오르는 작은 벌레들이 엄청 많아서 언제든 놀 수 있어. 들판은 최고야.” (116쪽)



  고양이 마음은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요? 고양이 마음을 읽기는 어려울까요? 어쩌면 ‘고양이 마음’쯤이야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사람 마음’도 못 읽는데 왜 고양이 마음까지 읽어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면 그렇지요.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제대로 못 읽거나 안 읽곤 합니다. 우리 둘레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놓치거나 고개를 돌리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 함께 사는 수많은 나라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살림을 짓는가 하는 대목을 아예 모르기까지 합니다.


  서로서로 마음을 안 읽거나 못 읽기 때문에 전쟁무기를 자꾸 만들어서 전쟁을 일으키리라 느껴요. 서로서로 마음을 읽으면서 어깨동무를 한다면 전쟁무기가 없이도 얼마든지 평화를 이루리라 느껴요. 만화책 《네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고양이 마음을 읽는 이야기가 흐릅니다만, 이 만화책에 나오는 ‘고양이’를 ‘이웃’이나 ‘동무’나 ‘한식구’로 바꾸어서 생각해 볼 노릇이지 싶어요. 우리가 함께 지을 사랑과 삶을 생각해 보아야지 싶어요.



“(고양이) 도라는 유키의 친구니?” “네.” “그럼 도라를 찾아볼까?” “어떻게요?” “마음속으로 도라를 부르는 거야.” “마음속으로?” (160∼161쪽)


“난 널 훌륭한 고양이라고 생각해. 무엇보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지켜 나가고 있잖아? 너와 헤어지는 건 슬프지만 네 마음을 존중하겠어. 우리랑 갈지 여기 남을지 네가 결정해.” (186쪽)



  ‘고양이 마음을 읽는 아가씨’는 길고양이를 찾는 아이한테 넌지시 얘기합니다. 그 길고양이를 찾고 싶다면 ‘마음속으로’ 불러 보라고 얘기해요. 아이는 놀라지요. 이제껏 마음속으로 그 길고양이를 불러 보아야지 하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 이 대목에 실마리가 있어요. 고양이 마음은 어떻게 읽을까요? 바로 ‘내 마음’을 기울여서 읽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요. 고양이 마음을 읽으려면 ‘내 마음’을 먼저 고양이한테 보내야 해요. 내가 널 사랑한다고, 내가 널 아낀다고, 내가 널 좋아한다고, 내가 널 그린다고, 내가 널 바란다고, 내가 널 반긴다고, 내가 널 따사히 품고 싶다고, 이런 마음을 먼저 보내야 고양이가 이 마음을 받고는 나한테 마음을 보내 줄 수 있어요.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서도 이와 같으리라 느껴요. 아이하고 어른 사이뿐 아니라, 아이하고 아이 사이에서도, 또 어른하고 어른 사이에서도, 서로 따사롭고 너그러우면서 보드랍게 마음을 주고받을 적에 비로소 아름다운 사랑을 이루리라 봅니다. 2016.6.2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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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26 한정판 - 완결
이시키 마코토 지음,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32



‘끝’이 끝이 아닌 이야기

― 피아노의 숲 26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

 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5.6.14. 6500원



  이시키 마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피아노의 숲》(삼양출판사) 스물여섯째 권이 나왔습니다. 스물다섯째 권으로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짓는구나 하고 느꼈는데 한 권이 더 나왔습니다. 이제 스물여섯째 권은 참말로 ‘끝’을 맺는 이야기이리라 생각합니다. 설마 여기에서 일부러 한 권을 더 늘리지는 않을 테지요. 스물여섯째 권은 ‘추억의 미니 화보집’이라고 해서, 첫째 권부터 스물다섯째 권에 이르는 겉그림을 한 자리에 모으는 조그마한 책을 선물로 붙여 주었습니다.



“너의 피아노는 우연인지 기적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안에서는 대 사건이었어.” “고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도 모든 게 대 사건이에요. 피아노는 우연이 아니었다고 믿고 싶지만, 결과는 기적이네요.” (12쪽)



  ‘숲 가장자리’에서 태어나 마을이나 학교나 사회에서 온통 버림이나 따돌림을 받는 터전을 겪어야 하던 ‘이찌노세 카이’는 ‘아지노 소우스케’를 만나면서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어요. 카이는 숲에 버려진 피아노를 오직 제 놀잇감이자 놀이동무로 삼으면서 어린 나날을 보냈는데, 카이가 숲에서 찾은 버려진 피아노는 바로 ‘아지노가 버린 피아노’였다지요. 아지노는 사고로 한손을 쓸 수 없는 몸이 되면서 피아노를 스스로 버렸는데, 마침 아지노가 버린 피아노가 뜻밖에 ‘숲 가장자리’로 흘러들었고, 그곳에서 외톨이처럼 자라던 카이가 ‘버려진 피아노’를 버려진 피아노가 아니라 ‘숲을 밝히는 고요한 새 피아노’로 여겼어요.



“불만이 있으시면 다음부턴 회장님이 이곳에 오셔서, 직접 그 귀로 경연자들의 피아노를 들어 주세요!” (41쪽)



  만화책 《피아노의 숲》은 바로 이 같은 줄거리로 첫머리를 열었습니다. 버려진 마을과 버려진 아이가 버려진 연주자한테서 버려진 피아노를 만나는 이야기가 첫 줄거리예요. 이 다음부터는 아지노가 ‘작은 초등학교 음악 교사’로 일하면서 살림돈을 버는 줄거리가 흐르고, 이때에 카이를 만나는 줄거리가 흐르지요. 아지노는 이녁이 버린 피아노가 ‘피아노도 노래도 배운 적이 없는 시골스러운 아이’가 마음껏 치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요. 바야흐로 새로운 눈을 뜬다고 할까요. 이제껏 배운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할까요.


  아지노는 카이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꿈꾸기로 하지요. 아무것도 모르지만 모든 것을 하는 카이를 보면서, 이 아이가 앞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익혀서 ‘어떤 것’도 카이 마음대로 이룰 수 있도록 길동무가 되겠노라 하고 꿈을 꾸어요.



“이찌노세 군은 앞으로 자신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인생에 있어서, 당신을 피아니스트로 복귀시키는 일이 절대 불가결이라고 하더군요.” “네?” “그렇게 말하며 저에게 당신의 수술을 의뢰해 왔습니다.” ‘뭐?’ “수술 얘기는 이찌노세 군이 아니라, 모두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아지노 씨. 사고로 부상을 입은 당신의 왼손 얘기입니다.” (108∼109쪽)



  아지노한테서 피아노와 노래와 삶과 살림과 사랑 모두를 처음으로 배우는 카이는 아지노한테서 배우면 배울수록 ‘고마움’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데, 여기에 한 가지 마음을 더 키웁니다. 무엇인가 하면, ‘숲 가장자리 마을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던 저를 살려내면서 키운 아지노한테 무언가 하나 ‘선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키우지요.


  이 꿈은 바로 ‘한손을 사고로 잃어 피아노 연주자로 더는 뛰지 못하는 아지노’한테 ‘사고로 잃은 한손’을 되찾도록 하는 일입니다.


  아지노가 한손을 잃다시피 한 때에서 스물다섯 해가 흐른 때에는 ‘옛날에는 할 수 없던 수술’을 ‘이제는 손쉽게 할 수 있는 수술’로 바뀌었다고 해요. 참말 그렇겠지요? 만화책 《피아노의 숲》이 처음 나오던 때만 하더라도 인터넷은 그리 발돋움하지 않았고, 손전화도 그냥 ‘전화만 되던 손전화’였습니다. 만화책 주인공인 아지노한테 스물다섯 해가 흐른 나날뿐 아니라, 이 만화책이 나오고 또 나오며 기나긴 해가 흐른 나날을 돌아본다면, 참으로 모든 것이 아주 새롭도록 달라지거나 거듭났습니다.



“아지노의 손이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지노는 그런 생각이 없더라도요. 그만큼 피아노를 쳐 왔던 손은, 손가락은, 무대에 오르고 싶어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129쪽)



  만화책 《피아노의 숲》은 ‘즐거운 끝(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느 모로 보면 ‘즐거운 끝’이지만, 곰곰이 돌아보면 좀 다른 말을 해야지 싶어요. 즐거움은 언제나 있었거든요. 카이가 숲 가장자리 마을에서 살며 학교나 사회에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았을 적에도 카이는 늘 ‘버려진 피아노를 치면서 즐거움을 스스로 지었’어요. 그러니까 카이로서는 늘 ‘즐거운 삶’이에요. 이런 카이한테 아지노는 ‘새로운 삶’을 선물했고, 카이도 스스로 ‘새로운 삶’을 더 힘차게 가꾸었습니다.


  이 흐름에서 아지노만큼은 스스로 ‘즐거운 삶’도 ‘새로운 삶’도 북돋우거나 가꿀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피아노의 숲》 스물여섯째 권 이야기에서 카이가 아지노를 일깨워서 ‘낡은 틀’을 버리고 ‘아지노 선생님 스스로 마음 깊이 하고 싶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자꾸자꾸 건드립니다. 선생님한테서 “바보구나!” 하는 소리를 듣더라도 ‘쇼팽 콩쿠르 우승자’로서 엄청난 돈과 이름값을 거머쥘 수 있는 자리까지 가볍게 내려놓으면서 ‘아지노 선생님이 한손을 되살리는 길을 걷도록’ 곁에서 새로운 길동무가 되어 줍니다.



“내 일 따위는 어찌되든 좋아! 너는 너 스스로의 일만 생각하면 돼!” “어찌되든 좋지 않아요! 나는 말이죠, 아지노랑 연습하는 게 100배는 더 중요하다구요!” “바보구나!” (254쪽)



  이리하여 《피아노의 숲》은 스물다섯째 권에서 ‘카이가 아름답게 우승하는 모습’으로 한 번 끝을 맺었지만, 스물여섯째 권에서 ‘카이와 아지노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다시금 끝을 맺습니다. 우리도 누구나 무엇이든 스스로 마음에 품는 대로 하거나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들려주며 새롭게 끝을 맺습니다.


  피아노를 빼어나게 쳐야 하는 삶이 아니라, 어떤 일을 뛰어나게 해야 하는 살림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늘 즐거움과 기쁨으로 사랑을 가꾸는 꿈을 마음에 품을 적에 날마다 새롭구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 《피아노의 숲》이리라 생각합니다. 2016.6.2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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