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그대에게 2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김동욱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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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15



내 앞길은 내가 고른다

― 불멸의 그대에게 2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7.6.30. 5500원



“하지만 죽을 수 없다니, 불행하겠네. 인간에게는 목숨의 용처(用處)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한히 살 수 있다면 이 녀석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데에 어떤 의미를 느낄까?” (18쪽)


“남들은 몰라도 마치는 알고 있어. 넌 인간의 고기를 좋아하는 그냥 평범한 곰돌이야. 모두 널 보고 펄쩍 뛰고 화살을 쏴대고 무서워하고, 그러다 보니까 진짜 오니구마 님처럼 되어버린 거지? 이 상처만 나으면 넌 그냥 평범한 곰돌이야. 분명 변할 수 있을 거야.” (60쪽)


“가자. 마을 사람들은 내가 설득할게. 잘 풀릴 것 같지는 않지만, 난 해낼 거야. 목숨을 쓰지 않고서도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할 거야.” (91쪽)



  “어떻게 살아야 즐거울까요?” 하고 묻는 분이 있다면 언제나 한 마디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답게 살면 즐겁습니다. 내가 나답게 살지 않는다면 언제나 안 즐겁다고 느껴요. 나 스스로 하고픈 일을 하지 않는다면 참말로 안 즐겁고, 나 스스로 하려는 놀이를 하지 않을 적에도 그야말로 안 즐거워요.


  누가 시켜서 빨래를 하거나 비질을 하면 안 즐겁습니다. 스스로 나서서 빨래를 하거나 비질을 하면 즐거워요. 그리고 누가 시키더라도 내 마음을 바꾸어서 ‘그래 깜빡 잊었네. 얼른 즐겁게 하자’ 같은 혼잣말을 하면서 움직이면 여러모로 즐겁습니다.


  만화책 《불멸의 그대에게》 둘째 권에서는 이 대목을 가만가만 건드립니다. 삶을 스스로 고르고, 죽음도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목숨을 문득 이야기하다가, ‘사람 잡아먹는 곰(오니구마)’한테 ‘넌 바뀔 수 있어’ 하고 속삭이는 아이를 이야기해요. 그리고 ‘난 해내겠어’ 하고 다짐하는 씩씩한 어른 한 사람 걸음걸이를 이야기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다면 스스로 안 하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하는 일이라면 어려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렵기에 더 즐겁게 할 만’하지 싶어요. 스스로 하는 일이라면 참으로 어려워서 벽에 부딪힐 적에 기꺼이 두 손 들고 그만둘 수 있지요. 스스로 길을 찾으려 하기에 스스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2017.8.12.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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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이야기 9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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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13



새살림 이루고 싶은 마음

― 신부 이야기 9

 모리 카오루 글·그림

 김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7.7.15. 8000원



“빵 줘 보세요. 이건 제가 만들었어요. 매 발톱 무늬예요. 매의 발톱은 재앙을 막아 주죠. 우마르랑 아무르의 가족들, 친척 여러분이 건강하기를 빌었어요.” “고마워.” “이건 민들레예요. 민들레 솜털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죠. 우마르의 집에 좋은 소식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이건 밧줄 무늬예요. 끈의 매듭이란 건, 인연을 나타내니까요. 그러니까 오랫동안 좋은 인연이 맺어지게 해 주십사 하고.” (28∼29쪽)


“활을 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시집을 온 후로는 전혀 건드리지 않게 됐으니.” “할머님이요?” “그래. 여기선 사냥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이곳에 얼른 적응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지금 생각해 보면.” (105쪽)



  어버이한테서 여러 가지를 물려받습니다. 훌륭하거나 멋진 모습을 물려받고, 때로는 아쉽거나 모자란 모습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물려받는 모습에다가 스스로 갈고닦는 모습이 함께 있습니다. 어버이한테는 없으나 아이 나름대로 새롭게 나아가려는 길에 맞추어 차근차근 거듭나지요.


  때로는 어버이 일이나 살림을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때로는 어버이하고는 아주 딴판이다 싶은 곳으로 떠나서 아주 새로운 일이나 살림을 짓습니다. 어버이라면 아이가 어느 길을 가든 모두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북돋아 주리라 생각해요.


  만화책 《신부 이야기》에 나오는 수많은 ‘신부’는 저마다 다른 넋이요 숨결입니다. 저마다 다를 뿐 아니라 저마다 새로운 기운과 꿈이 있는 사랑입니다. 이들 신부를 맞아들여서 새살림을 이루고 싶은 사내도 여느 사내하고 다른 넋이자 숨결일 뿐 아니라, 여느 사내하고 다른 기운하고 꿈이 있는 사랑이지요.


  남달리 빵을 잘 굽지만 바느질만큼은 매우 어설픈 ‘예비 신부’가 있습니다. 예비 신부는 모든 혼수를 스스로 바느질을 해서 마련해야 한답니다. 앞길이 까마득해서 늘 한숨이 나오지만, 새살림을 이루고 싶은 꿈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큽니다.


  언제나 새롭게 빵을 구울 적마다 스스로 꿈을 키웁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새로운 길을 그립니다. 앞으로는 좀 다르면서 즐거운 길을 걸어 보고 싶습니다. 남 눈치를 보지 않고서 스스로 마음을 곱게 바라보고 펼치면서 날갯짓을 하는 길로 나아가고 싶어요. 2017.8.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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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슈퍼 3 - 인간 제로 계획
토리야마 아키라 지음, 토요타로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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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11



평행세계로 넘어온 드래곤볼

― 드래곤볼 슈퍼 3

 토요타로 그림

 토리야마 아키라 글

 유유리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7.8.5. 5000원



“안녕, 작은 나. 많이 컸구나! 벌써 초사이어인이 될 수 있니?” “으, 응.” “그렇구나. 든든해. 친구들을 소중히 하렴.” “네, 네.” (25쪽)


“이 틈에 청소하는 게 어떻습니까?” “청소…라 함은?” “물론 퇴치하는 겁니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게냐! 자마스, 조금 전에도 배우지 않았느냐. 그건 파괴신의 일이야.” “계왕신님,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설마 저런 야만스러운 놈들을 설득해서 얌전하게 만들라고 하시는 건 아니겠죠?” “지켜보는 거다. 한 천 년쯤 지켜보는 게 어떨까 싶구나.” (44쪽)


“크크큭. 넘쳐흐르는 이 힘. 드디어 손에 넣었구나. 너희가 다른 세계의 인간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인간이 살아남는 미래는 어떤 평행세계에도 없으니까. 인간 제로 계획은 모든 평행세계에서 실행한다!” (195쪽)



  우리는 앞날을 내다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난날을 돌아보거나 바꿀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언제나 오늘을 살아갈 뿐일까요?


  앞날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가난하거나 힘겹다면 앞날에도 가난하거나 힘겨울 뿐이라고 여기곤 합니다. 앞날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가난하거나 힘겹지만 앞으로는 이 모습이나 살림을 송두리째 바꾸어 낼 수 있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오늘 너무 아픈 나머지 코앞을 내다볼 겨를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너무 슬프거나 괴로운 나머지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기쁘거나 넉넉하던 삶을 깡그리 잊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모습이 우리 참모습일까요? 어느 길이 우리 참길일까요? 우리는 날마다 꾸준히 스스로 갈고닦아서 시나브로 새롭게 일어서는 모습이 될 수 있을까요? 어제까지 갇힌 굴레에 허덕이느라 고단해서, 오늘부터 새롭게 스스로 갈고닦자는 마음을 조금도 못 품는 나날은 아닌가요?


  《드래곤볼 슈퍼》 셋째 권은 어느덧 평행세계 이야기로 스며듭니다. 바보스러운 싸움놀이에 허덕이면서 스스로 바보스러운 줄 모르는 ‘사람’을 지켜보는 ‘하느님(신)’ 가운데 바보스럽고 끔찍한 사람을 대단히 미워하는 이가 하나 있다고 해요. 사람을 대단히 미워하는 하느님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앞날을 다녀올 수 있는 연장’에다가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초능력’을 바탕으로 우주질서를 흔든다고 합니다. 시간을 넘나들면서 모든 평행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모조리 죽여서 없애는 놀이에 사로잡힌대요.


  가위바위보 권법처럼 앙증맞은 무술을 처음 보여주던 손오공은 어느새 스스로 벽을 뛰어넘어 ‘초사이어인 갓’이 되었고, 이마저도 뛰어넘어 ‘초사이어인 갓 블루’로 거듭났는데, 사람을 끔찍히 싫어하는 하느님 하나는 다른 하느님까지 모조리 죽이면서 ‘초사이어인 갓 핑크’라는 몸을 입는다고 합니다.


  싸움으로는 싸움을 끝낼 수 없는 줄 하느님마저 잊은 셈인데, 손오공은 이런 바보스러운 하느님을 다스려 낼 수 있을까요? 하느님을 넘어선 하느님을 넘어서는 손오공이 되어 주먹힘이 아닌 사랑힘으로 지구와 우주와 평행세계를 보살피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2017.8.5.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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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 - 2018년 행복한아침독서 선정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10
파비앵 그롤로 & 제레미 루아예 지음, 이희정 옮김, 박병권 감수 / 푸른지식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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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09


매가 그림을 뚫고 나오려 하다
― 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
 파비앵 그롤로·제레미 루아예 글·그림
 이희정 옮김
 푸른지식 펴냄, 2017.7.3. 16000원


  전남 고흥 도화면 시골에서 지난 칠월 십일 무렵부터 제비를 한 마리도 못 봅니다. 읍내에서도 제비를 거의 못 봅니다. 고흥에서 다른 마을을 군내버스로 지나가거나 이웃님 자동차를 얻어타고 지나갈 적에도 제비를 좀처럼 못 봐요. 보름 넘게 제비 한 마리조차 구경하지 못합니다.

  이 얘기를 고흥 사는 이웃님 여럿한테 했더니 다들 한목소리로 “그래, 요즘 제비가 안 보이데.” 하고 말을 받습니다. 늘 익숙하게 곁에 있던 새 한 가지가 자취를 감추어 버리니 어딘가 허전한데 미처 어느 새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왜 자취를 감추었는지는 모르셨나 봐요.

  제비는 팔월이 저물 즈음부터 구월 첫무렵에 태평양을 가로질러서 따뜻한 나라로 날아갑니다. 칠월 한복판부터 제비가 사라져야 할 일이란 없어요. 그러나 그 많던 제비가 하루아침에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그날 밤, 나는 관찰하려고 백 개체 정도를 채집했다. 한편으로 경험을 되새겨 단순하게 계산해서 양버즘나무의 너비를 가늠해 보았다. 다른 한편으로 내부에 표본의 밀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계산하여, 약 11만 마리의 제비가 둥지를 틀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 ‘9월 말에 둥지가 비었다. 2월, 여전히 둥지는 텅 비어 있다. 어떤 희한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제비가 완전히 이 고장을 떠난 것 같다. 그리고 봄이 왔다. 봄바람은 하늘의 바랑객들을 다시 불러들인다. 늙은 양버즘나무는 몇 주 만에 손님들로 다시 북적인다. 얼마나 놀라운 신비인가.’ (28∼29쪽)


  논을 짓는 시골에서는 칠월 한복판은 논마다 농약을 뿌리는 철이곤 합니다. 요즈음은 시골 할매하고 할배는 손수 농약을 잘 못 칩니다. 작은 밭뙈기는 손수 농약을 치지만 논은 엄두를 못 내시지요.

  할매랑 할배가 나이가 들어 논에 농약을 치기 어려운 이즈음, 농협에서는 헬리콥터하고 드론으로 농약을 뿌려 주는 일을 도맡습니다. 시골 할매랑 할배는 농협에 돈을 주고서 농약치기를 맡겨요.

  농협 일꾼은 헬리콥터나 드론을 한꺼번에 여러 대 띄웁니다. 때로는 열 대가 넘는 헬리콥터나 드론이 온 들판을 뒤덮습니다. 아무래도 한꺼번에 떠서 한꺼번에 뿌려야 보람이 있다고 여기는 듯해요.

  흔히 새벽부터 저녁까지 농약을 여러 날 뿌리는데, 이동안 나비나 잠자리는 거의 몽땅 죽습니다. 가을에는 나락을 쫀다지만 가을까지는 언제나 벌레잡이를 하는 참새마저 농약바람이 불면 깡그리 자취를 감추어요. 이때에 제비도 거의 모조리 자취를 감추지요.


“작은 딱새 말이야! 당신 내 작업실 옆에 둥지를 틀었던 그 딱새 기억하지?” “장 자크.” “그 새한테 당신 이름을 붙여 줬잖아. 알지? 그 새가 아직도 와. 적어도 일곱 살은 된 것 같아.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43쪽)


  파비앵 그롤로·제레미 루아예 두 분이 빚은 《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푸른지식,2017)를 읽으면서 시골마을 제비를 떠올립니다. 이 책 첫머리에 제비 이야기가 나와요. 오듀본이 늙은 양버즘나무 속을 파고 들어가서 그곳에 둥지를 튼 제비를 살핀 적이 있다는데, 찬찬히 어림하니 자그마치 11만 마리에 이르는 제비가 있구나 싶었다지요.

  제비 11만 마리가 늙은 양버즘나무 속에 둥지를 튼다? 어쩌면 이 모습을 본 적이 없고서는 못 믿을 만하지 싶어요. 오늘날에는 더더구나 못 믿을 만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1980년대 무렵까지만 해도 어느 시골에서든 제비가 대단히 흔했어요. 서울까지 제비가 찾아왔어요. 1980년대 무렵에 시골에는 전깃줄이 새까맣도록 제비가 앉기 일쑤였습니다. 작은 마을에도 제비 천 마리쯤 우습지 않은 숫자였고, 이 제비는 ‘시골사람이 농약을 치지 않아’도 바지런히 벌레를 잡아 주는 몫을 톡톡히 하고는 가을을 앞두고 서둘러 이 땅을 떠났어요.


“이건 자연주의자가 아니라 예술가의 시각으로 그린 거죠. 한껏 솟은 이 깃털, 매의 부리에 맺힌 피에 무슨 의미가 있죠?” “생명이죠. 알렉산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게 그거예요.” “나는 보이는 대상에 감정을 품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 이 그림은 완전히 반대잖아요. 새가 그림을 뚫고 나오려는 것 같아요. 너무 낭만적이에요.” “이런, 윌슨! 새는 생물이에요. 죽은 정물이 아니라고요. 그래요. 나는, 우짖으며 아직 따뜻한 오리 사체를 뒤적이는 매를 그렸어요. 오리고기를 삼키느라 부리에 피가 묻었고요. 그래요, 그래요, 그래요!” (69쪽)


  《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를 읽다 보면, 오듀본이 어느 철에 숲에서 수억 마리에 이르는 나그네비둘기떼가 하늘을 새까맣게 덮은 모습을 본 일이 나옵니다. 수억 마리에 이르는 나그네비둘기떼도 몸소 지켜보지 않고서야 믿지 못할 노릇이리라 생각해요. 더구나 이제는 나그네비둘기는 미국에서 자취를 감추었어요. 그 많던 새가 깨끗이 사라졌어요.

  수억 마리씩 무리를 지어 하늘을 덮던 새가 사라진 곳에 사람들이 도시를 짓고 찻길을 닦습니다. 문명과 물질이 넘치기도 하지만, 군대와 전쟁무기가 넘치기도 합니다. 새벽에 새가 노래로 우리를 깨우고, 낮에 새가 노래로 우리를 달래며, 밤에 새가 노래로 우리를 재우던 터전이 사라져요. 새벽이든 낮이든 밤이든 우리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나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소리에 길든 하루를 보내요. 또는 텔레비전이나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를 듣지요.


“오늘 아침에 나는 기적을 믿게 됐어. 해가 막 떠올랐을 때였지. 당신한테는 너무나 익숙하나 새소리가 들렸어. 숲지빠귀가 우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당신이 내게 자주 얘기했잖아. 모험하는 동안 가장 힘든 순간마다 늘 어디선가 숲지빠귀의 즐거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고. 그 노랫소리가 고사리를 엮어 만든 잠자리에서 당신을 일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그 노랫소리를 들으면 어김없이 우울한 기분은 사라지고 벅찬 기쁨이 찾아온다고. 물론 나는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새의 습성은 잘 몰라. 하지만 이런 계절에 지빠귀는 더 따뜻한 지방에 가 있다는 건 알아. 지빠귀 한 쌍이 이른 봄을 알리려고 미리 돌아온 걸까? 이번만큼은 숲지빠귀의 노래가 당신을 침대에서 일으키지 못하리란 것도 알아. 그래도 한겨울에 찾아온 이 노래 선물에 나는 깊은 감사를 느껴. 마치 당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듯. 이제 편안히 쉬어, 나의 라포레.” (176∼177쪽)


  오듀본은 과학자이면서 사냥꾼이었고 그림쟁이였다고 해요. 그리고 이녁은 집에서 새를 살뜰히 키우는 돌봄이 노릇도 했겠지요. 수억 마리나 수만 마리에 이르는 새를 늘 두 눈으로 지켜보고서 두 손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혼자만 바라보며 사랑할 새가 아니라, 지구에 사는 이웃들 누구나 이 아름다운 새를 바라보면서 이 땅을 어떻게 가꾸는 사람이 되면 좋겠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한때 서녘이나 남녘 갯벌에 수만이나 수십만에 이르는 철새가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공항이 된 인천 앞바다 영종·용유섬 갯벌에도 대단히 많은 철새가 찾아왔지요. 그렇지만 공항이 된 갯벌에는 철새가 찾아오지 못해요. 아니, 철새는 공항이 서건 말건 늘 찾아오지만 그만 보금자리도 먹이도 없이 날갯힘이 빠진 채 죽어 버리고 말아요.

  오늘날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오늘날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서 새를 마주할까요. 참새가 나락을 쪼는 일이란 고작 가을 한철이요, 그동안 참새가 잡는 애벌레가 대단히 많은데, 참새를 너무 미워하는 살림은 아닌가요. 제비가 무리지어 태평양을 건너오는데, 막상 우리가 제비를 맞이하면서 내주는 선물이란 헬리콥터·드론 농약바람은 아닌가요. 철새가 쉴 갯벌이란 사람이 사는 터전도 곱게 가꾸어 주는데, 우리는 갯벌을 너무 쉽게 메꾸면서 막개발을 일삼지 않나요.

  새를 사랑하고, 숲을 사랑하며, 잠자리를 사랑할 수 있기를 빌어요. 풍뎅이를 사랑하고, 바다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를 빕니다. 2017.7.3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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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23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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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10



내가 쳐다보는 곳에 있는 두려움

― 백귀야행 23

 이마 이치코 글·그림

 한나리 옮김

 시공사 펴냄, 2015.2.25. 5000원



‘미소 너머로 도움을 구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알아채지 못한 우리 역시 같은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츠키는 어린 여동생을 구해 주었다. 그러면서 미츠키 본인도 구원 받았을 거라 믿고 싶다.’ (50쪽)


‘사람은 공포에서 달아나긱 위해 기억을 바꾸지만, 진실이 어떻든 모르는 것보다 아는 편이 공포는 줄어든다. 그래서 난 탐정이 되고 싶다. 누군가를 괴로운 비밀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해서.’ (166쪽)


“만지면 안 됩니다. 그쪽은 함정이에요. 여자라면 저도 모르게 열어 보고 싶어지죠.” “아까 왔던 인형사가 놓고 간 건가요?” “아뇨.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성질을 가졌습니다. 실체가 없으니 무시하면 사라질 겁니다. 뭐, 그 무시한다는 게 꽤나 어렵지만 말이죠.” (199쪽)



  스스로 겪어 보지 않고서 모르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 적이 없는 사람은 무릎이 까진 사람이 왜 절뚝거리는지 모르기 일쑤예요. 무릎이 까진 사람이 걸음이 늦는 까닭을 모르지요. 농약 냄새가 어질어질한 적이 없는 사람도, 농약 바람이 불 적에 새나 벌나비가 떨어져서 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농약을 마시고 죽는 시골 이웃을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농약이 참말 무엇인가를 모르기 마련이에요.


  《백귀야행》 스물셋째 권에서는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길하고 두려움을 끝내 붙잡는 길이 무엇인가를 넌지시 짚습니다. 두려워서 이웃한테 도와 달라고 눈빛으로 말하지만 이웃은 이를 못 느끼곤 해요. 두려워서 입으로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눈빛으로만 바라는 사람을 겪거나 만난 적이 없다면, 스스로 이러한 두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면, 참말 우리는 이웃 눈빛을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모든 두려움은 스스로 떨쳐야 하고, 스스로 이겨야 합니다. 이웃이 도와주더라도 스스로 일어서려는 마음이 없고서야 도움을 못 받아요.


  그러니까 두려움을 떨치거나 벗기는 맨 첫째 일이라면, 스스로 일어서기입니다. 두려워할 만한 곳을 바라보지 않고서 사랑할 만한 곳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두려움이 가득한 곳을 자꾸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사랑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하기가 어려우니 두려울 수 있겠지요. 네, 그래요. 다들 이렇게 못하니 두렵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 보려고 한 걸음씩 씩씩하게 내딛을 적에 두려움이 조금씩 걷힙니다. 어려워서 못한다는 말을 치울 줄 알기란, 두려움을 털어내는 작은 걸음이에요. 어려워도 조금씩 해 보겠다는 마음이 두려움을 벗고서 사랑으로 가는 걸음마입니다. 2017.7.3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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