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성性일기 2
시모다 아사미 지음, 고현진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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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20


성교육을 학교한테만 맡기면 아이들은 모른다
― 중학性일기 2
 시모다 아시미 글·그림
 고현진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6.2.22. 7500원


‘같은 반 여자애들과는 전혀 다르다. 하루빨리 유이에게 어울리는 성인 남자가 되고 싶다.’ (10∼11쪽)

“정자는 어떻게 암컷의 몸속에 들어가?” “어머,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오늘 비둘기가 교미하는 걸 봤는데, 반 친국가 송사리와는 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그러니까 왜 그런 얘기를?” “하지만.” “그런 건 학교에서 가르쳐 줄 거야!” (45쪽)

“이, 인간의 교미가 이렇게 음란한 거였어?” “아, 아마 그럴 거야. 하지만 중요한 일잉란 말이야!” (61∼62쪽)

‘아, 말하고 싶어! 요네다를 좋아한다고 지금 당장 말하고 싶어! 안 되겠다, 말할 거야!’ (151쪽)


  학교는 여럿이 모여서 배우는 곳입니다. 학교는 또래를 비롯해서 여러 나이가 어우러지면서 배우는 곳입니다. 학교라는 곳이 이 같은 얼거리하고 동떨어진다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못 배울 뿐 아니라, 학교를 다니는 하루가 고단한 짐이 됩니다.

  학교가 배우는 곳이기는 하되, 학교에서만 배울 수 없습니다. 어버이라면 아이한테 삶을 가르치고 사랑을 알려주는 슬기로운 마음을 학교한테만 떠넘길 수 없어요. 그러나 적잖은 어버이는 아이를 가르치는 살림을 응레 학교한테만 떠넘기곤 합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한테만 떠넘기기도 하지요. 이러다가 나중에는 사회나 나라한테 몽땅 떠넘기기도 하지요.

  어린이집을 비롯해서 학교나 나라가 제구실을 마땅히 해야 합니다. 다만 집 바깥을 이루는 사회가 제구실을 마땅히 해야 한다고 외치기 앞서, 우리가 살아가는 집에서 우리 스스로 제구실을 할 수 있어야 해요.

  만화책 《중학性일기》를 보면, 비둘기가 짝짓기하는 모습을 본 아이가 어머니한테 궁금한 대목을 여쭐 적에, 어머니가 제대로 대꾸하지 않으면서 학교한테 떠넘깁니다. 이때 아이는 어떻게 할까요? 궁금한 대목을 감추어야 할까요? 학교에 가서 교사한테 여쭈어야 할까요? 또는 동무한테 여쭈어야 할까요?

  아이는 학교에서 생물 수업으로 ‘교미’라는 한자말을 배웠습니다. 아이는 학교에서 성교육도 받을 테지요. 그러나 아이는 학교에서 ‘사랑’을 미처 못 배우는구나 싶습니다. 만화책 《중학性일기》에서 불거지는 이야기는 어쩌면 일본 몇몇 학교에서 불거진 이야기일 수 있지만, 가만히 살피면 한국도 엇비슷하다고 느껴요.

  저부터 돌아본다면, 제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사랑·살림·삶’을 슬기롭게 배운 적이 하루도 없습니다. 슬기롭지 않더라도 수수하게 배운 적조차 없어요. 남녀가 살을 섞는 일을 놓고서 ‘성교육’은 한두 번 하고 끝낼 뿐, 남녀이든 남남이든 여여이든 서로 사랑하는 숨결로 만나서 새로운 삶을 짓는 길을 일러주거나 밝히지 않았엉요.

  만화책 《중학性일기》는 바른 길을 보여준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 만화책 한 가지는 아이들이 참말로 궁금해 한다는 대목을 잘 보여준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나름대로 궁금한 ‘사랑·성·성별·짝짓기·좋아하는 마음’을 맺고 풀면서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찾아가려고 하는 몸짓을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여느 집에서 수수한 어머니 아버지가 수수한 아이들한테 삶과 사랑과 살림을 먼저 슬기롭게 보여주고 가르칠 수 있어야지 싶어요. 학교도 입시공부나 교과진도를 좀 내려놓으면서 아이들하고 머리를 맞대어 슬기롭게 삶이며 사랑이며 살림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7.9.1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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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12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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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21



함께 삶을 짓는 어버이

― 은빛 숟가락 12

 오자와 마리 글·그림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7.7.31. 5000원



‘나중에 스구루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동성동명의 여자가 작년 겨울 교통사고로 혼사상태에 빠졌는데, 딱 1년 뒤인 3주쯤 전에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젊었을 때 남편을 잃어서 딸도 손녀도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분을 만나고 싶어서 속으로 몇 번이나 불렀지만 그분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32∼33쪽)


‘아직도 반에서 나와 미유는 따돌림당하고 있고, 노리카는 그 애 나름대로 친구가 있다. 나한테 학교는 전혀 마음 편한 곳이 아니지만 코타가 있으니까 괜찮아. 온 세상이 적이 된다 해도 코타가 옆에 있어 준다면.’ (48쪽)


‘이 사람(친어머니)과 이런 식으로 웃으며 얘기하는 날이 오다니.’ “시라베가 좋아해서 우리 집은 튀김을 꽤 하거든요.” “그럼 그때 불러 줘. 먹으러 갈게.” “하야카와 집안에?” “그래. 널 이렇게 훌륭하게 길러 준 감사인사를 아직 안 했잖아.” “응. 알겠어요.” (153∼154쪽)



  사귀는 사람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사귀기 때문에 이이를 꼭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이이하고 꼭 사귀지는 않습니다. 사귀는 마음에서 살을 섞을 수 있을 테지만, 이때에 사랑이 흐른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이와 다르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살을 섞지 않더라도 서로 아끼면서 넉넉히 품을 수 있는 마음이 됩니다.


  아이를 낳아 어버이라는 자리에 서려는 사람이라면, 어른인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에 머물 수 없습니다. 어버이라는 자리에서 아이를 돌보려는 마음이 흐른다면, 어른인 두 사람은 이제 사랑하는 숨결로 거듭나야 해요. 사랑일 적에 비로소 따스하면서 넉넉한 손길로 살림을 지어요. 사랑이기에 비로소 즐거이 노래하는 몸짓으로 삶을 가꿉니다.


  서로 사귀는 사이란, 서로 재미나게 어울리는 하루가 좋다고 여기는 마음이지 싶어요. 서로 사귈 적에는 한결 재미나게 놀거나 나들이를 다니는 하루를 누리려고 하는 마음이 될 테고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재미난 어울림을 넘어섭니다. 아침저녁으로 늘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합니다. 하루를 오롯이 기쁨이 흐르는 보금자리에서 어깨동무하며 살림을 매만지려고 합니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을 한다고 해서 모두 어버이가 되지 않습니다. 집안일만 해낸다고 해서 누구나 어버이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언제나 새롭게 꿈꾸면서 즐겁게 배울 수 있는 터전을 다스리기에 어버이가 됩니다. 아이가 곁에서 지켜보면서 배울 수 있을 만한 살림을 사랑으로 다스리기에 어버이가 돼요. 《은빛 숟가락》 열둘째 권을 읽으면서 어버이라는 자리, 어버이라는 마음, 어버이라는 사랑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2017.9.13.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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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22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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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10



무엇이 남하고 비슷한 수수함일까

― 백귀야행 22

 이마 이치코 글·그림

 한나리 옮김

 시공사 펴냄, 2014.4.15. 5000원



‘그보다 난 다시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다른 사람과 다른 게 보이는 걸까?’ (25쪽)


“다들 별 차이 없어. 이이지마 가문의 사람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으면서, 자기와 다른 걸 보는 사람이 무서운 거야. 다들 자기가 제일 약한 존재고, 제일 많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해.” (56쪽)


“당신은 아름다워요. 사람 목숨을 앗아가며 살아왔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죽은 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도리어 당신이 그 목숨을 살렸죠. 떠올려 봐요. 어서요!” (198∼199쪽)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못 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왜 이 두 갈래로 갈리는가를 잘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려니 지나치기도 했고, 못 알아보면 못 알아보는 사람한테 아쉬울 뿐이라고 여기기도 했어요.


  아이를 둘 낳아서 돌보는 살림을 짓는 동안 두 갈래로 서는 사람들을 찬찬히 돌아보곤 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인 제가 못 알아본 모습을 먼저 깊이 알아보고 나서 활짝 웃으며 알려주곤 합니다. 거꾸로 아이들이 못 알아보는 모습을 넌지시 알아보면서 가만히 알려주기도 해요.


  아이들은 어떻게 먼저 알아볼 수 있을까요? 이러면서 아이들은 왜 못 알아보기도 할까요? 어버이자 어른인 나는 왜 못 알아볼 때가 있고, 아주 낱낱이 잘 알아보기도 할까요?


  밤이 깊어 두 아이를 자리에 눕히고 사이에 누워서 몇 마디를 섞다가 저마다 곯아떨어져서 꿈나라로 가는 길목에서 늘 생각에 잠깁니다. 알아보는 사람도 나요, 못 알아보는 사람도 나예요. 알아보거나 못 알아보거나 모두 따사롭고 사랑스러운 이웃이나 아이입니다.


  곧 수수한 사람이 따로 없고, 남다른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마음을 기울이기에 마음으로 읽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기에 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읽어요. 그동안 얻은 지식에 비추어 살피기에 이 지식에 맞추어 읽어요. 누구는 두려움이 없고, 누구는 두려움덩이예요. 스스로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몸짓이 달라지고, 이 몸짓에 맞추어 삶이 바뀌더군요. 우리는 늘 수수한 사람이면서 남다른 사람입니다. 우리한테는 두 갈래 모습이 나란히 있어요. 이를 스스럼없이 바라보고 꾸밈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두려움도 무서움도 모두 말끔히 걷히면서 꿈길을 걸을 만하지 싶습니다. 2017.9.9.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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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24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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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03



좋아하니까 함께 있지

― 경계의 린네 24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7.3.25. 4500원



‘하지만 이걸로 분명해졌다. 이 영이 원하는 것은 무사히 회사 꽃놀이가 열리는 것.’ (73쪽)


“성불했구나.” “다행이야.” ‘하지만 무료봉사. 게다가 환야등 대여료까지 나갔으니 완전 적자로군. 허무하다.’ “저, 모처럼 좋은 자리를 알았으니, 내일 여기서 꽃놀이라도 할까?” “뭐?” “도시락은 내가 싸올게.” (75쪽)


“어머, 정석대로 영의 이야기를 들어주네.” “린네 님이 일하는 걸 보고 배웠나 봐요.” (108쪽)


‘잠시나마 마미야 사쿠라에게서 눈을 뗀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이 존경어린 눈빛. 그래, 이제 됐어. 5만 엔짜리 흑여우 같은 건, 이 흐뭇한 한때에 비하면. 물론 상금 5만 엔을 받으면, 편의점의 온갖 진수성찬을 실컷 먹고, 밀린 사신도구 외상값도 다 갚을 수 있어.’ (123∼124쪽)



  우리는 스스로 좋아하니까 이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니까 한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찾아서 새로운 곳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니까 손을 맞잡고 뚜벅뚜벅 새로운 길을 걷습니다.


  스스로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마무리짓지 못할 적에는 대단히 아쉬워요. 죽어서도 못 잊고 떠돌거나 맴돌 만하지요.


  어느 모로 본다면 스스로 좋아하는 일은 죽음을 무릅쓰고 할 만합니다. 서로 좋아하는 일이라면 죽은 뒤에도 저승에서 잇고 싶은 생각이 들 만해요. 스스로 좋아하기에 늘 활짝 웃으면서 할 수 있어요. 서로 좋아하기에 어렵거나 고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맞아들이면서 함께 할 만합니다.


  그런데 너무 좋아하는 데에만 매달리면 그만 옆을 못 볼 수 있어요. 지나치게 좋아하기만 하면 바로 코앞에 있는 것을 못 보거나 놓칠 수 있어요. 한 가지만 좋아하느라 고루 못 보기 마련이요, 그저 한 가지만 좋아하느라 다른 모든 것을 제대로 못 살피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얽매이듯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좋아하기에 때로는 살짝 떨어질 수 있어야지 싶어요.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서 그리는 마음으로 되어 보고, 이 마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이라는 마음이 된다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우리가 무엇을 좋아한다고 할 적에는 좋아하는 느낌에서 그치기보다는, 이 느낌을 살찌우거나 북돋아서 참된 사랑으로 가꾸려는 꿈이 있다고 할 만하지 싶어요. 사랑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이 되도록 짓고 싶은 꿈입니다. 2017.9.4.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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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타카코 씨 1
신큐 치에 지음, 조아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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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22



이불에 스며드는 볕처럼 포근한 소리를 듣는다
― 행복한 타카코 씨 1
 신큐 치에 글·그림
 조아라 옮김
 AK comics 펴냄, 2017.8.25. 8000원


타카코 씨는 남들보가 살짝 귀가 밝다. 하지만 그건 특수한 능력 같은 게 아니라 사소한 것이 남들보다 조금 더 잘 들리는 정도라서 전혀 자랑할 건 아니다. (3쪽)

‘친구의 숨소리가, ‘그곳에 누군가 있다’는 안도감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집중력을 높여 주었다.’ (27∼28쪽)

‘슬슬 이불을 걷을까. 부드러워진 이불의 냄새가 전해지는 듯한 소리.’ (68∼69쪽)

‘같은 말이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온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역시 난 이대로도 괜찮구나.’ (110쪽)


  낫으로 풀을 벨 적에는 풀포기가 낫날에 닿아 끊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풀포기마다 낫날에 끊어지는 소리는 다 다릅니다. 낫으로 풀을 베다 보면 풀벌레가 깜짝 놀라서 톡톡 뛰어오르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풀벌레한테는 우거진 숲이었을 텐데, 사람이 이 풀을 베면서 허둥지둥 달아나느라 부산합니다. 갓 깨어나 아주 조그마한 방아깨비나 메뚜기나 사마귀를 보면서 미안하다고 속삭입니다.

  요새는 풀베기를 낫으로 하는 분이 매우 드물고, 거의 모두 기름을 태워서 움직이는 기계를 써요. 풀을 베는 기계는 퍽 수월하게 풀을 벤다고도 하지만, 몹시 시끄럽습니다. 먼 곳까지 시끄러운 소리가 퍼질 뿐 아니라, 옆에서는 아무 말을 나눌 수 없습니다. 기계로 윙윙 풀을 벨 적에는 풀벌레가 깜짝 놀라서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기도 어려울 테고, 풀벌레를 만나지도 못할 테니, 풀벌레하고 속삭일 일도 없으리라 느낍니다.

  시골에서는 아침저녁으로 흔히 듣는 소리가 있어요. 바로 경운기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경운기가 지나가면 참으로 먼 데에서도 소리로 알아챌 수 있어요. 대단히 큰 소리를 내며 탈탈탈 달리지요. 경운기 소리도 몹시 크기에, 할배가 몰고 할매가 짐칸에 앉더라도 두 분은 이야기를 못 나눕니다. 외치는 소리를 알아듣기도 어렵거든요.

  경운기가 고샅길을 지나갈라치면 다른 소리는 모두 사라지는 듯합니다. 이러다가 경운기가 멀어지면 다시 다른 소리가 하나둘 깨어나요. 가을을 앞둔 시골 들이나 풀섶에서 퍼지는 풀벌레 노래잔치 소리입니다. 그야말로 수많은 풀벌레가 갖가지 노랫소리로 잔치를 벌여요.

  저는 시골에서 살며 시골소리를 듣습니다. 여름에는 여름에 걸맞는 시골소리를 듣고, 겨울에는 겨울에 걸맞는 시골소리를 들어요. 그리고 새마다 다 다르게 들려주는 노랫가락이로구나 하고 느끼지요. 더욱이 나무도 나무 나름대로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가 다르네 하고 느껴요.

  신큐 치에 님이 빚은 만화책 《행복한 타카코 씨》(AK comics,2017) 첫째 권을 읽으면서 즐거운 마음을 북돋우는 소리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 만화책을 선보이는 분은 《와카코와 술》이라는 만화도 꾸준히 그려요. 《와카코와 술》은 하루 일을 마치고 혼자서 조용히 술 한 잔을 즐기는 아가씨 이야기입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둘레 시끌벅적한 모든 소리를 잊고 오직 ‘내 마음속 이야기’만 떠올리는 혼술살림을 다루는데요, 《행복한 타카코 씨》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거나 쉬는 사이에 수많은 소리가 ‘내 마음속으로 들락날락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쩌면 ‘혼소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혼자 듣는 소리입니다. 혼자 누리는 소리입니다. 혼자 즐기는 소리입니다. 혼자 받아들이는 소리입니다.

  도시에서 만난 반가운 벗님하고 함께 밤새워서 일을 하다가 벗님이 먼저 곯아떨어지는데, 벗님이 새근새근 잠들면서 내는 나즈막한 숨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포근해진다고 해요. 이웃집 아주머니가 아이를 나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낮 동안 볕을 머금은 이불이 베푸는 따끈따끈한 소리’를 함께 맞아들이시며 너그러워지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고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둘레에는 언제나 소리가 있어요. 시골에서는 시골 나름대로 살갑거나 구수하거나 따사로운 소리가 있어요. 서울에서는 서울 나름대로 넉넉하거나 재미나거나 포근한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어떤 소리가 반가이 스며들 만할까요? 우리는 이웃이나 동무한테 어떤 소리를 반가이 들려줄 만할까요? 그리고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소리에 어떤 사랑을 담아서 고이 나누어 줄 만할까요? 2017.9.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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