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소리 14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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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98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었니

― 순백의 소리 14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6.10.25. 4800원



  달팽이가 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달팽이가 기는 소리’를 살며시 헤아릴 수 있습니다. 참새나 박새가 날갯짓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작은 새가 날갯짓하는 소리’를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습니다.


  우리 곁에는 늘 수많은 소리가 있습니다. 도마질을 하는 소리, 설거지를 하는 소리, 마루를 걷는 소리, 고양이가 쥐를 잡는 소리, 사마귀가 작은 풀벌레를 낚아채는 소리가 있어요. 거미가 줄을 치는 소리에, 거미줄에 날벌레가 잡힌 소리가 있지요.



‘아아. 저 노래꾼이, 진짜 기분 좋아 보여.’ (45쪽)


‘씽씽 바람소리. 아오모리는, 와 이래 춥노? 바람에 지지 않을 만큼 켜지 않으면 안 들린다.’ (80쪽)



  만화책 《순백의 소리》는 악기를 켜는 사람들이 소리를 어떻게 악기 하나에 담아내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악기를 켜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떻게 어디에서 살아왔느냐에 따라서 악기에 담는 소리가 다릅니다. 고단하게 살아온 사람은 고단한 나날이 악기에 실려요. 바람을 마시며 살아온 사람은 바람결이 악기에 실려요.


  도시에서 버스하고 전철을 늘 타던 사람은 버스하고 전철이 도시를 가로지르며 내는 소리에다가, 버스하고 전철을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소리를 마음에 담다가 악기로 옮길 테지요. 눈이 펑펑 쏟아지는 고장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악기에 ‘눈이 내리는 소리’를 담아낼 테지요. 무더운 여름에 땡볕을 맞으며 밭에서 땀을 흘리는 길을 걸어온 사람이라면 땡볕 소리를, 여름 소리를, 땀이 볼을 타고 흐르는 소리를, 볕에 살갗이 타는 소리를 악기에 담을 테고요.



‘그렇게 여러 사람의 관심을 받고, 그럼에도 진심으로 임하지 않는 것이 화가 난다. 처음 들은 그 마구잡이 소리에서 미래를 느낀 것도 부아가 치밀어. 나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112쪽)


“강하다. 하하, 하긴 가난 속에서 태어났으니까. 나한테는, 미움이 담긴 소리로 들려.” (121쪽)



  더 높은 소리가 없고, 더 낮은 소리가 없습니다. 더 센 소리가 없고, 더 여린 소리가 없습니다. 모든 소리에는 삶이 깃듭니다. 모든 소리에는 이 삶마다 다른 이야기가 흐릅니다. 모든 소리에는 한 사람이 살아온 생채기도 아픔도, 웃음도 기쁨도 실려요. 악기를 켜는 사람 앞에 서서 노래를 듣는 사람은 ‘악기를 켜는 사람’이 지은 삶하고 ‘악기에 담긴 노래를 듣는 바로 우리’가 이제껏 살아온 길을 되새기면서 찡하고 뭉클합니다. 2017.5.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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