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야샤 5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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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08



서로 도우며 걷는 길

― 이누야샤 5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2.4.25. 4500원



“도망, 가.” “싫어!” “바보. 말 들어.” “그래, 바보다! 혼자 도망가는 건, 죽어도 못해!” (59쪽)


“미안. 나 때문에 깼어?” “아니. 생각하고 있었어. 왜, 나 때문에 울었어?” “그러니까, 네가 죽어 버리나 해서.” “…….” “무릎, 무릎 빌려줄래?”

 (71쪽)


“어때? 좀 편해졌어?” “응. 너, 좋은 냄새가 나.” “뭐? 뭐, 뭐야? 내, 냄새가 마음에 안 드느니 할 땐 언제고?” “그거, 거짓말이야.” (72쪽)



  혼자서 길을 갈 수 있어요. 혼자서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어요. 씩씩하게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외롭다고 느낄 겨를이 없겠지요. 혼자 모든 일을 짊어지느라 바쁘니 외롭다느니 쓸쓸하다느니 생각하지 않아요. 언제나 홀가분하게 생각을 짓고, 길을 닦아요.


  혼자서 길을 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다고 둘레에서 딱히 돕거나 이끌지는 않아요. 그동안 여러 사람들 품에 고이 묻혀서 지냈을 뿐이에요. 따로 꿈을 짓거나 세워 보지 않았을 뿐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스스로 걸어갈 만한가 하는 대목도 그다지 헤아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길을 어떻게 걸어갈 적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우리 길을 누구하고 걸어갈 적에 기쁠까요?


  《이누야샤》 다섯째 권에서는 어느 길을 함께 걷는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넌지시 짚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냥 이 길을 함께 걷는 사이가 아닌 줄 이야기합니다. 오랜 마음이 비로소 만나면서 새롭게 길을 찾아서 걷는 사이인 줄 이야기해요.


  옆에 있기에 도울 수 있어요. 마음으로 아끼기에 먼발치에서 도울 수 있어요. 옆에 있지만 안 도울 수 있어요. 마음으로 안 아끼니 어디에 있든 도울 뜻이 없어요.


  삶은 사랑으로 피어나고, 하루는 꿈으로 자라납니다. 서로 아낄 줄 아는 마음이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이 길을 걷는 곁님이 문득 마음벗인 줄 깨닫고는 빙그레 웃음을 짓습니다. 2017.7.2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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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후회망상 아가씨 4 -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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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85



누구한테 잘못했다고 말해야 할까

― 도쿄 후회망상 아가씨 4

 히가시무라 아키코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7.2.25. 4500원



  만화책 《도쿄 후회망상 아가씨》(학산문화사,2017) 넷째 권은 짝꿍을 제대로 사귈 줄 모르면서 서른이라는 나이를 지나 마흔으로 달려가는 길목에 선 아가씨들 모습을 찬찬히 그립니다. 굳이 짝꿍을 사귀어야 하지는 않을 텐데, 이 만화책에 나오는 세 아가씨는 짝꿍이 꼭 있어야 할 듯이 여겨요. 이러면서 처음에는 사로잡히다가 차츰 어딘가 아쉽거나 모자라거나 안 맞는구나 싶은 모습을 느껴요.



“영화 얘기 외에 뭐 싫은 거 있어?” “없어. 상냥하고, 밥도 해 주고, 집도 깨끗하고.” “그럼 참아. 그까짓 거.” (29쪽)


‘그런데 생각났다. 남자와 사귄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지. 상대에게 맞춰 얘기하고, 마음쓰고, 더럽게 따분한 이야기라도 응, 응, 재미있다는 듯 들어주고.’ (35쪽)


“가령 둘이서 휴일에 시간을 내 느긋하게 얘길 나누고 그러면서 마음이 맞아 즐거우면 그날 하루는 행복한 거잖아? 느낌이 오지 않는 남자와 결혼해서 느낌이 오지 않는 대화를 몇 년이고, 몇 십 년이고 이어가는 건 행복한 게 아니잖아.” (55∼56쪽)



  즐거움을 헤아려 본다면, 세 아가씨는 서로 아끼는 동무로 지낼 만합니다. 서로서로 즐거운 동무로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어요. 꼭 남자를 짝꿍으로 곁에 두고서 한집살이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혼자 살아도 되고, 동무들이 함께 살아도 됩니다. 꼭 혼인이라는 틀을 갖추어야 하지 않아요. 사람이 살아갈 적에는 졸업장이 굳이 없어도 될 뿐 아니라, 더 많은 돈을 갖춰야 하지 않거든요. 꿈을 이루는 길에는 혼인이나 졸업장이나 돈이 대수롭지 않아요.



‘우린 대체 누구에게 사과하면 될까. 미래의 나 자신에게 사과하면 되는 건가?’ (71∼72쪽)


‘아아, 난 틀려먹었어. 이 할아버지들보다 더 생각이 낡아빠졌어. 완전히 졌어. …… 이런 작은 기획은 무시하고, 깔보고, 소중한 것을 잊어버린, 천하의 바보야.’ (102, 103쪽)


‘일하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 사람들 말처럼, 지금 시대는 거기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 이런 시골 마을의 노인들조차 그런 비전을 갖고 있는데, 난 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108쪽)



  어떤 일을 잘못했구나 하고 느낀다면 그날 그곳에서 이렇게 느끼면서 되새기면 됩니다. 잘못해 보는 일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치르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잘했다고 할 적에도 우리 삶에서 겪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잘못했느냐 잘했느냐를 따지려는 삶이 아닌, 날마다 치르거나 겪는 수많은 일이 우리한테 어떤 뜻이나 이야기가 되는가를 돌아보아야지 싶어요. 주눅이 들거나 풀이 죽지 말고, 우리 꿈을 늘 새롭게 되새겨야지 싶어요.



“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당신 이상해. 정상이 아니야. 평범한 젊은 남자가 아니야. 왜 그렇게 자꾸 나한테 상처 주려는 거야?” (148∼149쪽)


“그럼 당신이 직접 전화해. 당신들은 늘 그런 식이야. 나이는 먹을 만큼 먹어서 여자들끼리 몰려다니고, 떠들고. 있는 일 없는 일 온갖 망상을 하고, 흥분하고, 그걸 바탕으로 별 생각도 없이 행동하지. 그래서 나도 경계하는 거야. 이봐. 대체 뭘 위해 나이를 먹은 거야, 당신들. 당신들을 보고 있자면 짜증이 나. 그런 여자와는 연애할 수 없어.” (152∼153쪽)



  수수한 사람도 수수하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남다른 사람도 남다르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수수하면서 수수하지 않기 마련이고, 남다르면서 남다르지 않기 마련이에요. 우리가 서로 똑같다면 어떠할까요? 우리가 서로 비슷하거나 같은 대목이 없다면 어떠할까요?


  남이 나한테 생채기를 주는 일이란 없는 줄 알 수 있다면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늘 내가 나한테 생채기를 주는 줄 알아차린다면 스스로 사랑을 슬기롭게 찾아서 즐겁게 누릴 만하지 싶습니다.


  나이를 왜 먹는가,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을 어떻게 마주하려는가, 삶과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여러 가지를 아직 철없는 아가씨들이 아직 철없는 사내들한테 둘러싸인 채 알아내려고 합니다. 2017.7.1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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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에 Historie 10
이와키 히토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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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06



싸움님 이야기와 울타리 자유 이야기

― 히스토리에 10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7.5.30. 5000원



  하느님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느님은 우리 마음속에 있을까요? 임금님 마음속뿐 아니라 시골지기 마음속에도 하느님은 있을까요? 갓 낳은 아기를 따스히 보듬는 어머니 품에서뿐 아니라, 총칼이 춤추는 싸움터에도 하느님이 있을까요?



‘예전부터 아바마마는 곧잘 ‘신들이 없는 전쟁터에서’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난 그리 생각지 않아. 이곳에도 필시 신들은 계셔!’ (52쪽)


“즉, 병사 하나하나의 개성을 묵살하고, 통일 규격에 육체를 맞추는 훈련을 하는 거잖습니까? 그것도 나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하지만 그와 반대로 육체의 특성에 맞춘 부대 편제를 고려해 보는 건 어떨까 해서요. 즉, 오른손잡이 부대 아홉에 왼손잡이 부대 하나!” (148∼149쪽)



  《히스토리에》(서울문화사,2017) 열째 권에서는 드디어 알렉산드로스 왕자가 싸움터에 나가서 처음으로 적군을 맞닥뜨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알렉산드로스 왕자는 겉보기로는 차분하고 조용하거나 얌전하거나 여린 듯 여길 수 있으나, 막상 싸움터에서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해요. 아무런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이 칼을 휘두르면서 싸움님(전쟁신)이 된다고 할까요.



당시 알렉산드로서의 ‘무차별 참격 질주’는 어디까지나 적의 대열을 어지럽히기 위한 것일 뿐, 살육이 목적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아테네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기 때문인지 혹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겁을 먹은 것인지, 누구 한 사람 덤벼들거나 칼을 휘두르는 이가 없었다.’ (102쪽)



  싸움터에 있기에 싸움님을 부릅니다. 평화로운 보금자리에 있다면 따스하고 아늑한 사랑님을 부르겠지요. 숲에 깃들면 숲님을 부를 테고, 밥상맡에서는 밥님을 부를 테고요.


  마음속에서 고이 잠자던 숨은 님을 우리 스스로 깨웁니다. 마음속에서 조용히 기다리던 숨은 님을 우리 스스로 일으켜세워요. 마음속에 있던 님을 깨운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 대단한 힘을 끌어내요. 이 대단한 힘은 아주 가볍게 둘레를 잠재우지요.


  고작 한 사람이 말을 타고 달릴 뿐이지만 아무도 창을 휘두르지 못해요. 기껏 한 사람이 걸어다닐 뿐이지만 여럿이 이 한 사람을 둘러싸며 칼을 찌르지 못해요.



“누구나 다 동경하는 ‘자유’란 결국 울타리에 둘러싸인 ‘정원’이 아닐까? 넓고 좁다는 차이는 있더라도 지평선까지 쭉 이어지는 ‘자유’ 따윈 있을 수 없어.” “울타리라 다음번에 좀 먼 곳으로 여행 가지 않을래요? 정말로 울타리가 있는지 한번 보러 가 보죠. 어쩌면 지평선 저 너머까지 울타리 따윈 없을지도 모르잖아요.” (170∼171쪽)



  《히스토리에》 열째 권은 앞쪽에서 왕자 이야기를 다룬다면 뒤쪽에서 서기관 이야기를 다룹니다. 서기관은 자유를 찾아 이제껏 그 숱한 싸움과 죽음을 가로지르며 살아왔는데, 새삼스레 새로운 울타리를 맞닥뜨려요. 울타리에 갇힌 꽃밭 같은 자유를 맞닥뜨리고, 이 갇힌 자유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털어놓아요.


  서기관은 다시 울타리 자유를 내려놓고서 먼 여행길을 나설 수 있을까요. 울타리 자유가 아닌 들판 자유를 품을 수 있을까요. 서기관을 따라서 울타리 자유를 함께 벗어나서 들판 자유로 나아갈 벗님은 나타날 수 있을까요. 2017.7.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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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그대에게 1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김동욱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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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04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난다면?

― 불멸의 그대에게 1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7.5.31. 5500원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태어났을까요? 우리는 태어나서 사는 동안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아기였을 적이나 무척 어린 아이였을 적에는 이 대목을 딱히 궁금해 하지 않으리라 느껴요. 아기나 무척 어린 아이일 적에는 그저 무럭무럭 자라면서 신나게 뛰노는 데에 온마음을 기울이지 싶습니다.


  이러다가 차츰 철이 들고 생각이 깊어지면서 이 대목, ‘어떻게 태어나’고 ‘왜 태어났’는지를 궁금해 하지 싶어요.



처음에 그것은 구체였다. 단순한 구체가 아니라, 온갖 것들의 모습을 본뜨고 변화할 수 있는 구체. 나는 ‘그것’을 이 땅에 던져놓고 관찰하기로 했다. (7쪽)



  오이마 요시토키 님이 새 만화책 《불멸의 그대에게》(대원씨아이,2017)를 내놓습니다. 이녁은 앞선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서 목소리에 담는 마음이라는 이야기를 다루었어요. 우리 목소리는 입으로만 나오지 않고, 마음에서 먼저 샘솟는다고 하는 대목을 여러모로 짚었지요.


  《불멸의 그대에게》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서 왜 이곳에서 살아가는가 하는 수수께끼를 만화라는 얼거리로 풀어내 보려는 뜻을 차근차근 풀어냅니다. 삶과 죽음을 파헤쳐 보려 하고, 사랑과 꿈을 헤아려 보려 합니다. 너와 나를 생각해 보려 하고, 이웃과 동무를 돌아보려고 해요.



“나 여길 떠날까 생각 중이야. 여러 사람과 만나고 여러 가지를 느끼고 싶어. 분명 좋은 일만 있진 않겠지만 그래도 난 세상을 알고 싶어.” (33쪽)


“안 돌아가. 난. 그렇게 폼 안 나는 짓을 어떻게 해? 식량이 다 떨어진 것도 아닌데. 내일도 걸어갈 거야. 모레도, 글피도.” (47쪽)



  맨 처음에는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였다고 하는 데에서 이야기를 엽니다. 어느 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일 수 있는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해요.


  지구라는 별이, 지구가 깃든 별누리가, 또 지구가 깃든 별누리를 품은 더욱 커다란 별누리가, 참으로 어떻게 태어났을까 하는 수수께끼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 하나부터 이야기를 짚어 보자고 이끌어요.


  이 조그마한 동그라미 하나는 처음에는 동그라미였지만, 돌도 되어 보고 이끼도 되어 봅니다. 이것저것 되어 보다가 늑대가 되어 보기도 해요. 그리고 늑대를 곁에 두고 아끼던 어느 어린 사내 모습이 되어 보지요. 그러니까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사람이 되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모습을 획득했다. 획득에는 조건이 있다. 바로 ‘자극’이다. 그것은 새로운 자극을 찾아서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여러 사람과 만나고 여러 가지를 느낄 것이다. 소년이 그리 하고 싶어 했듯이. (80∼81쪽)



  돌이나 이끼가 되어 보았을 적에는 딱히 어려운 일도 없고 말썽도 없습니다. 그러나 늑대가 되어 볼 적에는 늑대처럼 네 다리를 써서 걸어야 하고, 때때로 무언가 먹기도 해야 합니다. 굶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때로는 갈갈이 찢겨서 죽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서 또 죽기도 하고 굶기도 하고 먹기도 하다가, 사람이라고 하는 새로운 목숨을 만나서 ‘사람이 하는 말’을 듣기도 해요.


  자, 그러면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이제 ‘사람이 하는 말’을 배워서 쓸 수도 있을까요?


  아마 그러할 테지요. 아직은 겉모습만 사람으로 보일 뿐이지만, 말을 익히고 몸짓을 배우며, 살림살이를 건사하는 길까지 지켜본다면,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제 나름대로 거듭나기를 하리라 느껴요. 이른바 진화를 하겠지요.



“관습 따위 지킬 필요 없어. 스스로 어른이 되길 선택하면 되는 거야!” (174∼175쪽)



  만화책 한 권이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만화책 한 권에서 ‘태어나고 죽고 살아가는 뜻’이 무엇인가를 모두 살피거나 배우거나 알아낼 수 있으리라고도 느끼지 않아요. 그러나 이 만화책 한 권을 읽는 동안 가만히 되새겨 봅니다. 우리가 스스로 짓는 꿈은 무엇이고, 우리가 스스로 나누려는 사랑은 무엇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관습 따위 지킬 필요 없어” 하고 외치면서, 뜻없는 죽음은 손사래치겠다고 일어서는 몸짓은, 낡은 모습은 끊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첫걸음이 됩니다. 어린 가시내를 어느 님(신)한테 바치는 낡은 관습은 지키지 않겠다고 외치는 목소리는, 앞으로 새로운 살림(문명)이 태어나도록 이끄는 첫 발자국이라 할 만해요.


  처음에는 멋모르고 따른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생각을 해 보면서 바꾸거나 고치는 길이에요. 처음에는 그저 뒤따르기만 하더라도, 차근차근 스스로 생각을 지피면서 가다듬거나 갈고닦는 길이에요.



“조안, 나 너한테 부탁이 있는데. 날 쭉 기억해 줘.” (69∼70쪽)



  죽었으나 다시 살아나는 조그마한 동그라미입니다. 죽었으나 다시 살아나니, 곰곰이 따진다면 꼭 죽었다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에요. 그렇기에 ‘불멸’이라 할 테고, 이 만화책 이름이 《불멸의 그대에게》가 되는구나 싶어요.


  죽은 뒤에 늘 다시 살아날 뿐 아니라, 스스로 바라는 대로 새로운 모습이 되는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어린 사내가 남긴 말 한 마디를 마음에 새겨요. “기억해 줘”라는 말을 새기지요. 그래서 이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사람 모습으로 살아가기로 하는데요, 우리가 이 땅 이 별에서 살아가는 뜻도 어쩌면 되새기거나 떠올리고(기억) 싶은 마음 때문일 수 있으리라 느껴요. 잊지 않고 싶어서, 다시 생각하고 싶어서, 다시 살아내면서 이제는 무언가 이루어 보고 싶어서, 자꾸자꾸 새로 태어나서 살아가려고 하지 싶어요.


  만화책을 덮고서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백 살 언저리에 삶을 다해서 죽음으로 가는데, 이 죽음 뒤에 새롭게 태어나는 삶이 있다면 우리는 이 삶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이 삶을 한 번 마치고 새로 맞이할 적에는 어떤 길을 가면 좋을까요? 굳이 죽음 뒤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오늘 이곳에서 누리는 삶은 우리한테 어떤 뜻이라고 생각해 볼 만할까요? 가볍게 읽고 덮을 수도 있는 만화책이지만, 이 만화책 한 권을 되읽으면서 우리 삶을 조용히 되짚어 봅니다. 2017.6.2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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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슈퍼 1 - 제6우주의 전사들
토리야마 아키라 지음, 토요타로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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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01


우주에서 하느님을 만난 손오공
― 드래곤볼 슈퍼 1
 토요타로 그림
 토리야마 아키라 글
 유유리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6.11.25. 5000원


  만화책 《드래곤볼》이 있습니다. 이 만화책은 제가 중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끝무렵에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무렵부터 꽤 오랫동안 《드래곤볼》은 ‘청소년 유해도서’ 딱지를 받았습니다. 사람을 너무 쉽게 죽이고 죽는 대목이 나오고, 가시내를 놀리는 성희롱이나 성추행 모습이 곳곳에 나온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폭력’이나 ‘성범죄’ 같은 대목은 한국문학이나 한국영화에 꽤 흔히 나옵니다. 그렇다고 이런 한국문학이나 한국영화를 가리켜 ‘청소년유해문학’이나 ‘청소년유해영화’라고 묶지 않아요. 그저 ‘청소년은 아직 볼 수 없다’는 금만 긋지요.

  만화책 《드래곤볼》은 어떤 작품일까요? 이 만화책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툭하면 싸움박질을 하고, 툭하면 누가 누구를 죽이기만 하는 줄거리를 다루는 작품일까요? 그냥 ‘청소년유해도서’라는 사슬만 묶으면 될 만한 작품일까요?


“실은 계왕님이 계신 곳에 가서 수련하고 싶지만, 치치가 제대로 일해 돈을 벌라며 잔소리하니까.”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강할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우마왕 외할아버지네도 이젠 돈이 다 떨어졌대. 하지만 엄마가 아빠라면 더 잔뜩 벌 수 있는 일이 있댔어. 미스터 사탄처럼.” “난 이렇게 땡땡이치며 수련하는 게 좋아.” (14쪽)

“아빠, 그냥 받지 그래? 돈이 있으면 일도 할 필요 없고 엄마도 분명 계왕님네 가는 걸 허락해 줄걸?” “그런가? 그래도.” “오공 씨, 오천 군도 저렇게 말하는데.” “으, 으으음. 응, 알았어! 받을게!” (20쪽)


  《드래곤볼》을 보면, 주인공 ‘손오공’은 다른 별에서 지구로 보내진 ‘지구 파괴 임무를 받은 외계인 아기 전사’였어요. 이런 손오공은 지구에 아기로 떨어진 뒤에 훌륭하고 슬기로운 스승을 만나서 ‘나쁜 마음’을 말끔히 씻어내고 ‘착하며 고운 마음’을 새롭게 심어서 키워요. 외계인 아기 전사였던 손오공이지만, 훌륭하고 슬기로울 뿐 아니라 착하며 고운 스승을 만난 뒤로 스승한테서 이러한 마음을 고스란히 물려받지요.

  손오공은 ‘전사라는 피’를 물려받은 몸인 탓에 겨루기를 매우 즐깁니다. 다만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고 배우려는 무술 겨루기’를 할 뿐입니다. 손오공은 무술 자랑을 하지 않아요. 손오공은 폭력을 쓰지 않아요. 손오공은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하지 않아요. 언제나 착하면서 아름다운 길을 걸어요.

  이와 달리 손오공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나 외계인은 ‘안 착한’ 데다가 ‘짓궂은 욕심’이 크고 작게 있어요. 손오공은 그야말로 티끌 하나조차 없는 맑은 마음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려는 꿈’을 키우고, 이러한 마음을 마주한 다른 사람들이나 외계인은 그만 ‘손오공 마음씨’에 흠뻑 빠져들지요. 처음에는 손오공을 깔본 ‘베지터 왕자’조차 손오공한테서 끝끝내 ‘착한 마음씨’를 배워서 ‘나쁜 짓’에서 말끔히 손을 씻고 ‘뜻없는 파괴와 폭력’을 안 하는 멋진 전사로 거듭나기까지 하지요.


“자, 빨리 되게나. 초사이어인 갓인가 뭔가로.” “초사이어인 갓? 그게 뭐야?” “못 된단 말이야?” “이게 내 최종 형태야. 이걸 뛰어넘는 변신은 없어.” “이런.” “칫, 기대가 어긋났군.” (35쪽)

“아버지의 기가 느껴지지 않아.” “신이 된 증거다. 우리로서는 신이 내뿜는 기를 느낄 수 없으니까.” …… “어떻지? 갓이 된 소감은?” “깜짝 놀랐어.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57∼58쪽)


  저는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책이나 만화영화에 폭력스럽거나 성추행 대목이 좀 지나치게 나온다고 느끼면서도 이 줄거리가 아닌 다른 줄거리를 엿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는 아직 이 만화책을 볼 만하지 않습니다만, 스무 살을 넘은 어른이라면, 이 만화책에서 흐르는 새로운 고갱이를 짚으면서 생각을 새로 가꾸는 길잡이책으로 읽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맑은 마음을 다스리면서, 이 맑은 마음에 즐겁고 새로운 꿈을 심고, 이 즐겁고 새로운 꿈을 꾸준하게 가꾸면서, 스스로 날개돋이를 하는 몸짓을 손오공이라고 하는 ‘착한 전사’한테서 들여다본다고 할 만합니다.

  손오공은 지구를 살렸어도 영웅 자리에 안 서요. 손오공은 지구를 지켜내었어도 돈 한 푼조차 안 바랍니다. 손오공은 이녁 아이를 낳고 나서 ‘착하며 씩씩한 마음’을 키워야 한다고 늘 이야기해요. 손자한테도 이 마음을 고스란히 물려주고요. 그리고 손오공 스스로 말뿐 아니라 몸으로 이를 모두 해내기에 손오공네 아이나 손오공네 이웃은 이 마음을 살뜰히 아끼거나 섬겨요.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 님은 《드래곤볼》을 《드래곤볼 Z》로도 이었으나 더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만화로 손오공 이야기를 더 그리지는 않으나, 이야기를 새로 지으며, 이 새로운 이야기에 후배 만화가 토요타로 님이 그림을 그립니다. 《드래곤볼 슈퍼》(서울문화사,2016)라는 새로운 손오공 이야기가 태어나요.


“미안, 비루스 님. 초사이어인 갓의 힘이 내게 말하고 있어. 위로, 더 위로 갈 수 있다고!” (67쪽)

“그때까지 더 실력을 쌓아놓게나. 그렇지, 마지막으로 좋은 걸 가르쳐 주마. 이 세계는 제7우주다. 난 제7우주의 파괴신이지. 우주는 전부 12개 존재해. 훨씬 굉장한 놈도 있을 거라는 생각 안 드나?” “!” “참고로 여기 위스는 내 수행원이기도 하지만 스승이기도 하다. 물론 나보다 강하지.” (70쪽)


  《드래곤볼 슈퍼》에서는 앞선 《드래곤볼》에서 ‘초사이어인’이 되고 나서 ‘초사이어인 2’하고 ‘초사이어인 3’까지 된 손오공이, 이 ‘사이어인을 넘어선 초사이어인’을 셋째 자리에서 머무르지 않고 ‘초사이어인 갓’이 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초인 1·2·3’을 한 걸음씩 내딛은 뒤에 ‘사람 하느님’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으로서 갈 수 있는 모든 벽을 뛰어넘었다는 뜻이에요. 스스로 ‘하느님·신·God’이 되지요.

  그런데요, ‘하느님’이 된 손오공은 처음에는 ‘하느님 빨강(초사이어인 갓 레드)’이 되다가, 다음에는 ‘하느님 파랑(초사이어인 갓 블루)’이 되어요. 하느님이 되었는데에도 ‘이 하느님이 된 자리’에 머물지 않아요. 틀림없이 또다른 자리가 있으리라 여기면서 한 걸음 거듭나려고 힘써요. 새롭게 넘어서는 길로 꾸준하게, 즐겁게, 씩씩하게 거듭나요.


“골든 프리저에게 이겼다고 우쭐해져 있진 않나요?” 실은 얼마 전, 한때 우주를 뒤흔들었던 공포의 제왕 프리저가 부활해 지구를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오공과 베지터는 비루스와의 만남 이후 위스의 밑에서 수련을 쌓아 ‘갓’마저도 뛰어넘는 ‘초사이어인 블루’로까지 진화해 있었다. (83쪽)

“참고로 전 위스와 남매 사이랍니다. 저희는 제 실력이 조금 더 위일까요?” “와아, 어떡하지? 우리보다 강한 녀석이 잔뜩 있나 봐!” “왜 기뻐하는 거야?” (87쪽)


  얼핏 보자면 터무니없는 만화입니다. 사람이 무슨 하느님이 되느냐고 따질 만합니다. 만화이니까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그린다고도 여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손오공은 스스로 ‘벽’을 세우지 않아요. 저보다 힘이 센 누가 틀림없이 있으리라 여기면서 몸을 갈고닦아요. 마음도 함께 갈고닦지요.

  손오공은 텔레포트를 하는 외계인을 만난 뒤에는 텔레포트도 배워요. 손오공한테는 가장 힘이 센 사람(전사)이 되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어디까지 거듭나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 볼 수 있을까’ 하는 뜻이 있어요. 멈추려 하지 않아요. 고이려 하지 않아요. 늘 새로 배우려 해요.

  다른 사람이나 외계인은 ‘우리가 어떻게 하늘을 날아?’ 하고 여기지만, ‘와! 하늘을 나니 멋지네! 네가 하늘을 날면 나도 하늘을 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부딪히고 또 부딪히면서 끝내 ‘하늘 날기’를 해내요. 장풍이라고도 할 만한 ‘에네르기파’를 쏟아내는 솜씨도 누가 이런 솜씨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나서 ‘와! 훌륭하네! 나도 배워서 저 솜씨를 써 보고 싶어!’ 하는 티없는 꿈으로 훈련과 훈련과 훈련을 자꾸자꾸 거듭해서 ‘내 것’으로 삼지요.

  초사이어인이 될 적에도, 초사이어인 3이 될 적에도, 초사이어인 갓이 될 적에도, 그리고 초사이어인 갓 블루가 될 적에도 늘 이 마음이에요. 이렇게 스스로 벽이 없이 거듭날 수 있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또 새로운 자리는 어떤 모습이 될까 하고 부푼 마음이 되어요. 부푼 마음으로 부푼 길을 걷고, 부푼 길을 걷다가 어느새 신나는 하느님이 되지요.


“샴파 님은 제6우주에서 오셨답니다. 이 제6우주와 제7우주는 매우 흡사한 쌍둥이 같은 관계죠. 세상 만물에는 대개 곁면과 이면, 다시 말해 한 쌍을 맺는 존재가 있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제1우주와는 제12우주, 제2우주와는 제11우주, 서로 더해 13을 이루는 숫자의 우주끼리 한 쌍을 맺고 있어요.” “모, 몰랐어.” (91쪽)

“샴파 님, 찾았습니다. 저희 제6우주에도 지구가 있네요.” “뭐? 정말 그곳에도 지구가 있단 말이야?” “하지만 우리 쪽 지구는 안타깝게도 과거에 어리석은 분쟁을 일으켜 인류가 멸망해 버린 듯하네요.” “뭣이!” “하하핫, 안됐구나, 샴파! 그쪽엔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지구인이 이제 없군!” “가능한 이야기야. 우리 쪽 지구도 몇 번이나 위기에 몰렸으니까! 베지터도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고.” (91∼92쪽)


  저는 만화책 《드래곤볼 슈퍼》라는 작품을 이런 테두리에서 이웃님한테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벽을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제자리에 고이거나 멈추지 않고서 우리 뜻이나 꿈을 모두 이룰 만하리라 느껴요. 우리가 스스로 새롭게 태어나려는 꿈을 마음에 품는다면, 반드시 언젠가 이 꿈을 아름다이 이룰 만하리라 느낍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해 봅니다. 해 보자는 마음으로 하고 또 하며 거듭거듭 합니다. 거듭거듭 하고 보니 어느새 ‘되어’요. 해 보니 됩니다. 해 보니까 참말로 되어요.

  꿈을 꾸기에 꿈을 이루는 손오공이라고 할까요. 뜻을 품으니 뜻대로 이루는 손오공이라고 할 만할까요.

  만화책 《드래곤볼 슈퍼》는 지구를 넘어 우주와 은하를 아우르는 더 너른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제 우주에서 더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는 엄청난 ‘하느님(신)’을 ‘잔뜩’ 만나서 신나게 한판 붙으며 ‘시간이라는 틀’까지 훌쩍 뛰어넘는 더 씩씩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멈추지 않는 꿈, 새롭게 짓는 꿈, 하나하나 스스로 짓는 꿈, 이러한 꿈이 가득한 만화책 한 권을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2017.5.2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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