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쇄를 찍자 1
마츠다 나오코 지음, 주원일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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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89



책이란 ‘작품 + 상품 + 마음’일 뿐일까?

― 중쇄를 찍자! 1

 마츠다 나오코 글·그림

 주원일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5.8.19. 8500원



  책은 수많은 사람 손을 거쳐서 태어납니다. 책뿐이 아닙니다. 연필 한 자루도 수많은 사람 손을 거쳐서 태어나요. 종이 한 장이나 젓가락 한 벌도 수많은 사람 손을 거쳐서 태어납니다.


  우리가 적은 돈을 들여서 장만할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 손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 모두는 바로 숲에서 태어나요.


  이러한 얼거리를 알 적하고 모를 적에는 책을 읽는 매무새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얼거리를 헤아릴 적하고 헤아리지 않을 적에는 살림을 가꾸는 몸짓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전 담당 편집자이면서도 선생님께 아무런 상담도 요청받지 못했습니다. 편집자 실격입니다.” “미안하지만, 자네들이랑 상의하려는 생각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어. 편집자한테 의지하다가 사라져 간 작가를 질리도록 봐 왔으니까.” (71쪽)


‘그저 글씨가 늘어서 있을 뿐인데, 어째서 나는 우는 걸까. 어째서 가슴속에 스며드는 걸까.’ (97쪽)



  마츠다 나오코 님이 빚은 만화책 《중쇄를 찍자!》(애니북스,2015)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에는 만화책이나 만화잡지를 내는 출판사에 갓 들어간 젊은이가 나옵니다. 이 젊은이는 만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책이 어떠한 얼거리로 태어나서 우리 손에 쥘 수 있는가를 아직 모릅니다. 그저 씩씩하게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히면 되리라 생각해요.


  《중쇄를 찍자!》는 아직 책마을을 모르는 젊은이가 책마을을 하나씩 알아 가면서 배우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책마을을 이루는 수많은 사람을 처음으로 마주하면서 나와 너 사이를 잇는 책 한 권을 어떻게 짓고 엮고 마무르고 나누고 팔고 읽을 적에 즐거울까 하는 이야기를 다루지요.



“쿠로사와, 너도 앞으로 새 연재를 맡게 될 테니 말해 두겠는데, 팔리는 책을 만들어라! 만든 다음에는 죽을 힘을 다해서 팔아!” (123쪽)


“저쪽 철도 코너에도 비치할 수는 없을까요? 평소에 만화를 안 읽으시는 분도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음, 어려울 거예요. 철도 매대에서 만화가 팔리더라도 매출은 만화로 잡혀서요. 저쪽 담당자한테는 아무런 이득이 없거든요.” “제가 교섭해 볼게요!” (158쪽)



  다만 어디에 있든 우리는 저마다 먹고살아야 하고, 책마을에서도 책을 팔아서 먹고살아야 하는 만큼, 이 만화책 《중쇄를 찍자!》를 보면 곳곳에서 ‘팔릴 만한 책’이나 ‘돈이 될 만한 책’ 이야기가 튀어나옵니다. 만화잡지에 작품을 싣는 만화가를 마주하며 작품을 받아 잡지를 잇는 얼거리가 이 만화책에서 큰 줄거리를 이루기에, ‘널리 사랑받을 만한 작품’이라는 테두리도 도드라지게 다루곤 해요.


  이는 함부로 보아넘길 대목이 아닙니다. 팔리지 않을 만한 책을 찍어서 팔 수야 없어요. 그러나 이 대목은 좀 곰곰이 짚을 노릇이지 싶어요. 《중쇄를 찍자!》는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틀에 맞추어 돌아가는 줄거리에 맞추다 보니, 책이라고 하는 종이꾸러미가 깃든 숨결을 바라보는 눈썰미가 살짝 얕습니다. 아무래도 책이라고 하는 숨결을 더 깊거나 넓게 헤아리는 손길은 살짝 얕아요.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어요. 제가 손에 쥐는 단행본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도착한다는 걸요. ‘작품’이자 ‘상품’이고 ‘마음’이라는 사실을요. 정말로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205쪽)



  만화책 하나가, 또는 책 하나가, 모든 갈래나 모든 줄거리를 다루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줄거리나 갈래를 짚을 수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하나는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책이란 무엇일까요? 《중쇄를 찍자!》 1권 끝자락에 이르러 비로소 책이란 ‘작품 + 상품 + 마음’이라고 적는데, 이 생각은 틀리지 않을 테지만, 무엇인가 빠지지 않았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봅니다. 이 세 가지로 그칠 만할까요, 아니면 더 깊거나 너른 이야기가 있을까요.


  책을 말할 적에 ‘작품’이 맨 먼저이고, 다음이 ‘상품’일까요? 이 대목도 생각해 볼 만하지요.


  재미나게 그리고 많이 팔리되 가슴을 적실 수 있으면 만화책이나 만화잡지로 넉넉할는지, 또 인문책도 이만 한 대목에서 ‘멈추면’ 좋을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책마을 이야기를 다룬다는 테두리에서 《중쇄를 찍자!》는 뜻있다고 할 만한데, 그림결이 너무 많이 엉성하기도 하고, 줄거리나 짜임새도 꽤 많이 엉성해서 아쉽습니다. 2017.3.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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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샤 4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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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87



가장 여린 사람이 가장 세요

― 이누야샤 4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2.3.25. 4500원



  만화책 《이누야샤》 넷째 권에서는 ‘삿포’라고 하는 귀여운 요괴가 새로 나옵니다. 다른 요괴나 사람이 보기에 싯포는 ‘귀여운’ 요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싯포로 본다면 싯포는 ‘죽은 아버지(여우 요괴)’ 앙갚음을 하고 싶은 아픔에 몸부림을 치는 아이예요. 아직 힘(요력)이 너무 여려서 아버지 앙갚음도 못 하고 제구실을 못하는 때도 잦지만, 이 모두를 넘어서고 싶은 아이랍니다.



‘카고메. 나를 구해 줬는데, 나는 버리고 도망쳤어. 제, 제기랄.’ (12쪽)


“뭐, 구해 줄 수도 있지만. 그래, 엎드려 빌어. 그럼 지금까지 한 짓은 물에 흘려보내 주지.” (16쪽)



  《이누야샤》에 나오는 여럿 가운데 힘이 가장 여리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사람인 카고메’입니다. 카고메는 요괴는커녕 벌레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잡을 만한 가장 여린 아이예요. 그러나 이 카고메는 힘이 가장 여리다고 할 수 있지만, 기운이 드셀 적에는 어느 누구도 이겨내지 못할 만해요. 왜 그러한가 하면, 가장 여린 카고메가 ‘온마음으로 아파하면서’ 도와주고 싶은 뜻이 일어날 적에는 참말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 가장 여린 카고메는 가장 고빗사위가 될 만할 적에 어느 누구도 이겨내지 못할 만한 어마어마한 힘을 낼 수 있을까요? 게다가 카고메는 그 여린 힘인 주제에 어떻게 요괴 싯포를 도와서 살려 주고 제가 잡혀 가고야 말까요. 더구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고빗사위에서조차 기운을 잃지 않고 생각을 지어 수를 낼까요?



“그보다 카고메가 걱정입니다.” “응? 그 여자는 괜찮을 거야. 묘하게 질긴 데가 있어서.” “그러면 좋겠지만, 워낙 그 뇌수 형제가, 예쁜 여자를 잡으면 바로 잡아먹어 버린다는데요.” (30쪽)


‘그 이전에 나, 고등학교에 갈 수나 있을까? 이누야샤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 못하고.’ (116∼117쪽)



  나는 이 만화책을 읽다가 한동안 덮고서 밥을 짓습니다. 아침을 짓고 저녁을 짓습니다. 나는 만화책만 느긋하게 볼 수 있는 몸이 아니거든요. 이 만화책이 처음 한국말로 나올 무렵이던 2002년에는 아이가 없이 홀가분한 몸이었으니 그저 줄거리만 좇았어요. 이제 이 만화책을 나중에 ‘아이한테 물려주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아주 깨끗한 책으로 새롭게 장만해서 우리 서재도서관 책꽂이에 꽂아 놓습니다. 열 몇 해 만에 새롭게 읽고 줄거리와 속뜻을 헤아려 보는데, 곳곳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슴이 아픕니다.


  가장 여린 사람이 가장 세다는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여요. 이토록 여린 카고메가 숱한 이웃이나 동무를 아끼면서 돕는 대목에서 가슴이 아프지요. 와, 이렇게 여린 카고메가 오히려 이웃을 돕는구나! 힘있는 사람은 이웃을 못 돕는데, 외려 여린 카고메야말로 이웃을 돕네!



“그만둬, 카고메. 유령은 요괴와 달라서, 때려잡아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냐. 섣불리 건드렸다간 다치는 정도로 안 끝나.” “그냥 둘 순 없어.” (145쪽)


“마유, 돌아가자. 이대로는 안 돼! 돌아가서 맨 먼저 엄마랑 화해해야지?” “안 났어?” “응?” “엄마, 화 안 났어?” (179쪽)



  지옥에 끌려갈 어린 넋을 본 카고메는 지나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요괴들은 그저 지나치려 하지만 카고메만큼은 지나치지 못합니다. 카고메는 이 어린 넋이랑 함께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지만, 이런 대목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오직 이 어린 넋한테 말을 걹고 이야기를 나누려 하며, 마음을 달래 주려 해요.


  이리하여 어린 넋은 지옥에 안 떨어집니다. 카고메가 온몸과 온마음을 기울여서 따스한 사랑을 나누어 주었기에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새로운 하늘나라로 갈 수 있어요. 카고메는 이렇게 이웃이나 동무를 도우면서 ‘여린 힘’은 여린 힘대로 고스란히 있으면서 다른 테두리에서 ‘더 깊고 너른 사랑’으로 자랍니다.


  우리는 무엇을 붙잡으면 좋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거머쥐어서 살면 좋을까요? 우리는 무엇이 되면 좋을까요? 《이누야샤》는 만화책 이름이 ‘이누야샤’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카고메’라고 해도 될 만한, 아니 ‘카고메’한테서 비롯한 이야기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2017.3.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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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빙해사기 - 하
다니구치 지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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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84



미처 마무리짓지 못한 ‘거신 문명 판타지’

― 지구빙해사기 하

 타니구치 지로 글·그림

 미우 펴냄, 2016.8.31. 14000원



  1988, 1989, 1990년 세 해에 걸쳐 드문드문 짧게 그려서 마무리를 지은 만화책 《지구빙해사기》 상·하권은 2016년에 한국말로 나옵니다. 타니구치 지로 님이 요즈막에 선보인 만화책을 돌아보면 《지구빙해사기》는 사뭇 다른 결로 이야기를 끌어내려 한다고 느낄 만합니다. 이 만화책은 지구가 대빙하를 맞이해서 무너지고 난 뒤에 꽤 오랜 나날이 흐른 어느 날을 바탕으로 삼아요.


  어쩌면 오백 해, 어쩌면 즈믄 해, 어쩌면 만 해쯤일는지 모릅니다. 지구에 대빙하가 찾아와서 모조리 꽁꽁 얼어붙은 먼 뒷날은 말이지요. 눈부시던 문명도 얼음 밑에 갇힌다지요. 온갖 전쟁무기도 얼음 밑에 갇힌다 하고요. 바다가 모조리 얼어붙는다면 잠수함이고 구축함이고 항공모함이고 모두 부질없어요. 꽁꽁 얼어붙는 땅뙈기에서는 석유를 뽑아내지도 못할 테니 석유로 움직이는 기계는 몽땅 멈출 테고요.



“이 데이터는 지구 전체 규모로 계속되고 있던 빙하기의 끝을 경고하고 있는 거야!” (27쪽)


“이제껏 본 적도 없는 생물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성장하고 있지.” “푸하하하하. 재미있잖아. 이렇듯 이 대지가 새롭게 거듭나려 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살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면 우린 굉장히 행복한 거야. 넌 이 지구라는 존재에 좀더 감사해야 해.” (86쪽)



  만화책 《지구빙해사기》를 보면 지구문명이 스러지고 어렵사리 다시 깨어난 새 문명에서도 사람들은 술과 놀음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때에도 전쟁무기는 아직 있습니다. 만화책에 흐르는 이야기입니다만 사람들은 기계에 더욱 기대어 살아가요. 아무래도 ‘기계로 지은 기지(집이 아닌 기지입니다)’ 바깥은 너무 춥기 때문에 아예 바깥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낼 테지요. 게다가 바깥은 꽁꽁 얼어붙었으니 제대로 된 먹읅거리가 있다고 하기도 어려울 테고요.


  그런데 이런 곳에서도 사람들은 ‘술’을 똑같이 마십니다. 먹을거리는 없어도 술은 있어야 하나 봐요.

  어리석다고 해야 할는지, 바보스럽거나 멍청하다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지구에 문명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고, 사람도 다 사라지지 않은 모습을 그렸으니 한 줄기 빛이라도 있는 셈일까요. 그렇지만 온통 얼어붙은 지구에 살아남아서 ‘석유 아닌 다른 지하자원’을 찾아 헤매며 ‘집 아닌 기지’에 갇힌 몸으로 풀도 꽃도 나무도 바람도 볕도 흙도 모르는 채 산다면, 이러한 삶도 삶이라 할 만한지 아리송합니다.



“먼지에서 태어나, 먼지로 돌아간다. 우리는 돌아왔다. 또다시 대지의 먼지로부터 태어났다. 난, 이미 늙어버린 노목이다. 난 길고 긴, 영원처럼 여겨질 만큼 엄청나게 긴 기억을 갖고 있다. 과연, 네 눈에는 보일까?” (122∼123쪽)


“보인 것이냐, 타케루? 잊지 마라. 네게도 그 힘이 있다는 걸.” (130쪽)



  《지구빙해사기》 이야기는 상권을 지나 하권에 이르면 ‘기나긴 대빙하기’가 끝나서 ‘얼음이 녹는 때’를 맞이합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늘 얼음만 보고 살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녹는 땅’을 보고는 놀랍니다. 더구나 ‘녹는 땅’에서 아주 무시무시하도록 빠르게 퍼지는 풀과 나무를 보면서 더욱 놀라요.



“굉장히 훌륭한 도시인데?” “얼마나 오래된 걸까?”“빙하 밑에 쭉 파묻혀 있었겠지.” (159쪽)



  얼어붙은 땅이 녹으면서 오랫동안 얼음 밑에 갇혔던 옛날(그렇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나날) 문명이 고개를 내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명이 곳곳에서 살몃살몃 드러나는 빠르기보다 풀과 나무가 훨씬 빠르게 자라지요. 왜 그러한가 하면, 풀과 나무는 그동안 ‘사람 문명한테 짓밟히면서 괴롭던 나날’을 온몸에 아로새겼거든요. 그래서 기나긴 대빙하가 끝날 즈음 풀과 나무는 ‘사람한테 앙갚음’을 할 뜻입니다. 아니 앙갚음이라기보다는 ‘지구를 지키고 풀과 나무 스스로도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에요.


  나무는 뿌리부터 우듬지까지 ‘사람이 저지른 핵전쟁 때문에 생겨난 방사능과 잿더미로 그동안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는지’ 세포 하나하나가 되새깁니다. 아주 기운차게 자라고 뻗는 풀과 나무는 ‘사람을 볼 때’마다 모두 우걱우걱 잡아먹으려 해요.



“지금 네 의식은 움직이는 숲의 뇌 조직에 들어가 있다. 숲의 신경중추로 내려가고 있어. 넌 지금 숲의 내(內) 우주를 지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하려 들지 말고 느껴라. 너라면 할 수 있다.” (209쪽)


“그렇다. (핵전쟁으로 일어난 핵폭발) 이것이 긴 빙하기의 시작이었다. 알겠느냐? 타케루. 숲들의 분노와 고뇌를. 지금 숲들에게 있어 인류는 들불처럼 무서운 존재란다. 재생한 지구 식물이 거친 과정은 혹독했다.” (214쪽)



  누구 잘못일까요? 누구 탓일까요? 대빙하기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지난날(그러니까 오늘날) 핵전쟁을 일으켜 지구를 송두리째 무너뜨린 그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구를 무너뜨린 전쟁 미치광이가 남긴 씨앗’이지요. 대빙하기가 끝나고 뻗어나는 풀과 나무는 바로 ‘사람이라는 씨앗’이 앞으로도 또 전쟁무기이며 핵무기이며 자꾸 만들어서 서로 다투고 싸우고 윽박지르리라 여깁니다. 그러니 ‘사람이라는 씨앗’을 모조리 죽여 없애야 한다고 여겨요.



제8기 무르톡 빙기의 지구 수도 어비스 메갈로폴리스는 불에 타버렸다. 지구는 지금 간빙기의 시작점에 서 있었다. 지각은 크게 변동되고 온갖 생물들이 진화하고 변모하는 새 시대에 인류의 진화도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타케루의 내면에서 깨어난 의식은 대자연과 대화하며 공생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이었다. ‘지구 빙해사기’, 그것은 신인류의 역사다. (310쪽)



  타니구치 지로 님이 만화가 길을 걸어가는 첫무렵에 ‘미완성처럼 완성한’ 작품인 《지구빙해사기》입니다. 타니구치 지로 님이 새내기 만화가이던 무렵 이 작품을 서둘러 어영부영 마무리짓지 않고 더 이야기를 끌어내 보았다면 어떠했으랴 싶어요. 대빙하기가 끝난 뒤부터 사람들이 똑같이 어리석은 짓으로 나아가려 했는지, 대빙하기가 끝난 뒤부터 사람들이 어떤 살림을 지으려 했는지, 그리고 대빙하기라고 하는 때에 사람들이 저마다 어떤 문명으로 살아남으려 했는지, 앞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지을 삶은 ‘문명과 살림’ 사이에서 어느 길이 슬기롭거나 아름다울는지를 조금 더 차분히 천천히 그려 보았다면 어떠했으랴 싶어요.


  이밖에 이 만화책에서는 ‘거신’을 다뤄요. 겉그림에 나오는 사람은 ‘지구사람’이 아닌 ‘우주에서 지구로 찾아온 거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화 연작을 너무 서둘러 마치는 바람에 ‘여러 거신’을 다루지 못하고 딱 한 거신만 살짝 보여주고 말아요. 거신 문명이나 문화나 역사와 얽힌 수수께끼를 조금 더 깊이 다루어 봄직한데, 이 대목에서도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이제 더 꺼내기 어렵습니다. 타니구치 지로 님은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서 풀뿌리하고 나무뿌리 사이에서 새로운 흙이 되어 지구별 한 조각이 되었거든요.


  부디 고이 쉬시기를 바랍니다. 타니구치 지로 님이 남긴 어여쁜 만화책은 고운 씨앗이 되어 우리 마음속에서 자라리라 생각해요. 비록 이 지구에서 수많은 나라가 전쟁무기를 손에서 못 놓고, 핵무기마저 손에서 못 놓으며, 핵발전소까지 손에서 못 놓지만, 앞으로 새로 태어나서 자랄 아이들은 모든 무기를 내려놓고서 서로 어깨동무하는 슬기로운 길로 나아가리라 생각해요. 아름다운 지구가 되고, 사랑스러운 나라가 되며, 즐거운 마을이 되기를 바라며 지은 작은 만화책은 두고두고 싱그러운 씨앗 노릇을 하리라 봅니다. 2017.3.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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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9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0 0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3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4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혼자를 기르는 법 1
김정연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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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83



안동 아가씨 ‘이시다’가 서울에서 홀로서기

― 혼자를 기르는 법 1

 김정연 글·그림

 창비 펴냄, 2017.2.7. 16000원



  경상북도 안동 아가씨는 고향집을 떠나기로 합니다. 서울로 갈 꿈을 품습니다. 그렇지만 돈이 딱히 있지 않고, 대단한 재주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았지만 고시원 한 칸을 겨우 얻습니다.


  그야말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인 서울에서 고시원은 창문조차 없는 성냥갑 같습니다. 이곳에서 돈을 더 치르고서라도 창문 있는 자리를 찾아봅니다. 그런데 막상 고시원에서 창문 있는 자리를 찾아보니, 창문을 열면 바로 옆 건물 벽만 보인대요.



저는 작은 규모의 인테리어 회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근만큼은 남다른 규모를 자랑합니다. 철야가 계속될수록 사무실은 극단적인 상상들로 가득 찹니다. 절대 실현되지는 않지만, 상상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음침한 생각들 말입니다. 물론 저도 저만의 불순한 상상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일을 못하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는 겁니다. (18쪽)


요즘은 출퇴근을 하는 것만으로도 여독이 쌓이는 기분입니다. 물리적으로 먼 길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고 그만둘 수는 없겠죠? 적어도 시한부쯤의 이유는 들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24쪽)



  《혼자를 기르는 법》(창비,2017)이라는 만화책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을 내놓은 김정연 님은 먼저 웹툰을 선보였습니다(webtoon.daum.net/webtoon/view/selfgrow). 시골 아가씨 한 사람이 서울에 터를 얻어 으레 밤샘일에 시달리면서 홀로서기란 얼마나 고단한가 하는 이야기를 만화로 보여줍니다. 툭하면 밤 늦게까지 일을 시키는 일터는 어느 날 빈 방에 침대를 들여놓더랍니다. 일터 한쪽 빈 방에 놓인 침대는 ‘대놓고 밤샘일을 시키겠다’는 뜻일 테지요.


  침대가 있는 일터는 복지를 몸소 보여주는 셈일까요. 아니면 복지하고 동떨어진 셈일까요.


  그러고 보면 창문 있는 고시원도 이와 비슷한 얼거리이지 싶어요. 창문이 있기는 있는데 창문을 열면 바로 맞닿은 옆 건물 벽만 보인다니, 이는 창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창문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요.


  더 따지고 보면 거님길도 이야기할 만합니다. 서울이든 시골이든 모두 매한가지인데요, 사람이 다니라고 하는 거님길에 버젓이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서곤 합니다. 사람길이 아닌 ‘자동차 서는 자리’가 되고 마는 거님길은 참말 거님길일까요. 아니면 그냥 ‘주차장에 사람도 다닐 수 있다’뿐일까요.



인류는 어쩌면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69쪽)


무리지어 살게 되면 좋은 점도 있지만, 흐릿해지는 가치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를테면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아끼지 않거나 막 쓰게 되는, 욕실 안의 공공재 같은 것들 말이죠. 혼자 살게 되면 가장 해 보고 싶었던 것은, 만 원이 훌쩍 넘는 백화점 비누를 하나 사서, 개봉해서부터 쌀 한 톨 크기가 될 때까지 온전히 혼자서 다 써 보는 것이었습니다. (75∼76쪽)



  시골 아가씨는 서울 아가씨로 살려고 용을 써야 합니다. 입밖으로 쉬 내뱉지는 않지만 거친 말이 튀어나올 만한 일을 으레 겪어냅니다. 거친 말이 아주 쉽게 튀어나올 수 있을 만큼 거친 사회이고 메마른 도시입니다. 어느덧 웃음도 눈물도 무디어진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럴 즈음 시골 아가씨는 마음을 기댈 수 있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벗님을 만납니다. 집에서 수많은 물고기와 여러 짐승을 기르는 언니입니다. 작은 집에서 작은 목숨붙이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나누어 봅니다. 사람도 작은 짐승도 물고기도 작은 곳에서 비로소 쉽니다.


  작은 단칸방에서, 작은 사육장에서, 작은 어항에서, 저마다 조그마한 살림을 꾸립니다. 작은 단칸방에 깃들면서 벽을 꾸민다든지 집을 가꾼다든지 할 수 없습니다. 달삯을 내면서 얼마쯤 그곳에 머물 수 있을 뿐이에요. 작은 사육장이나 어항에서 사는 작은 짐승이나 물고기도 그저 그곳에 머물 수 있을 뿐입니다.



고작 제 껍질의 텍스처나 신경 쓰고 있자니, 불현듯 좋지 못한 기억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어두운 술집에서 나 예쁘다고 뽀뽀해 놓고, 밝은 카페에서 헤어지자고 한 어떤 새끼가요. (137쪽)


고시원 시절, 창문 있는 방이 더 비쌌지만 굳이 욕심을 냈던 이유는, 제게는 그게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창문이란 한 폭의 밖을 담은 그림과도 같습니다. (160쪽)



  너무 좁은 서울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는 바람에, 아주 작은 곳에 아주 많은 사람이 복닥입니다. 어디를 가든 돈을 쓰는 곳이 되고, 마음을 놓으면서 턱 주저앉을 만한 걸상이나 빈터를 찾기 어렵습니다.


  이리하여 《혼자를 기르는 법》에 나오는 ‘이시다’라는 아가씨는 아버지한테서 “‘이시다’이시다”라는 멋진 이름을 물려받았으나 정작 ‘이시다(높임말)’라는 자리보다는 ‘이 시다(이 した, 이 잡일꾼)’라는 자리에 서곤 합니다. 만화에서도 ‘아랫자리’에서 맴도는 이야기가 으레 흘러요.



어렸을 땐 그냥 노는 대로 놀아졌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디에 갈지를 정하는 것이, 제 놀이의 전부가 되어버렸습니다. (238쪽)


제가 살던 곳의 미끄럼틀에는, 동네의 최강자만이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비비탄들을 주워서 갖다 주면, 총에 맞지 않고도 놀이터를 이용할 수 있었죠. 하지만 모든 약속들이 반드시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고, 아버지의 화난 지갑은 제게도 수단이란 것을 안겨 주었습니다. (337쪽)



  서울이 더 넓어지면 그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넉넉하게 바뀔 만할까 궁금합니다. 서울이 좀 작아지면 오히려 그 많은 사람들이 서울 바깥으로 흩어지면서 조금이나마 넉넉하게 달라질 만할까 궁금해요.


  아니면 이 서울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씩씩하게 홀로서는 길을 찾을 만할까요. 또는 굳이 이 서울이 아니어도 씩씩하며 즐거이 홀로서는 길을 새롭게 열 만할까요.



카트에 청경채를 담고, 고등어를 담고, 콜라를 담고, 방향제를 담고, 휴지도 담고, 락스도 담으면서, 그 중간 어디쯤에선 물고기도 테이크아웃해 올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29쪽)


제 꿈은 폴리 포켓 디자이너가 되어, 제가 살고 싶은 집들을 마음껏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건축 모형용 미니어처 인간들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나곤 하죠. 전 아직도 나름의 동심을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449쪽)



  ‘먹는 물고기’가 아닌 ‘기르는 물고기’를 요새는 ‘마트’에서도 판다고 해요. 플라스틱 컵에 담은 ‘기르는 물고기’가 우리 가운데 누가 골라 주기를 기다린다고 해요.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날까지 ‘기르는 물고기’라면 으레 도랑이나 냇물에서 낚거나 잡곤 했습니다. 1990년대 첫무렵까지 인천에서 살던 저는 바닷가나 갯가로 낚시를 가서 ‘기르는 물고기’를 낚았고, 작은 늪이나 못에서 미꾸라지를 잡기도 했어요. 곰곰이 생각하니 우리가 마을 언저리에서 ‘기르는 물고기’를 손수 잡던 삶하고 멀어질 즈음 민물고기나 바닷물고기 모두 제 삶자리에서 빠르게 밀려났지 싶습니다. 물고기뿐 아니라 개구리도 새도 숲짐승도 차츰 보금자리를 빼앗기고요.


  4대강 사업이 벌어지면서 민물고기는 더더욱 설 자리를 잃었는데, 어쩌면 ‘도시화·서울화’는 우리가 스스로 서는 씩씩한 길을 자꾸 갉아먹는지 모를 노릇이에요. 이런 틈바구니에서 《혼자를 기르는 법》에 나오는 ‘이시다’ 아가씨는 홀로서기를 이루어 낼 수 있을까요? 혼자서도 씩씩하고, 혼자서도 즐거우며, 혼자서도 아름다운 살림을 끝끝내 찾아내어 활짝 웃음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부디 쓰러지지 말기를, 부디 이시다 아가씨 같은 이웃을 보듬을 수 있기를, 부디 서울에서도 살림꽃을 피울 수 있기를, 무엇보다 따사로운 마음을 서울에 씨앗으로 심어서 많디많은 사람들이 바삐바쁜 삶에서 살그마니 시름을 덜면서 흐뭇하게 어깨동무하는 길로 나아가는 징검돌을 이룰 수 있기를 빕니다. 2017.3.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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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신화편 - 상 신과 함께 시리즈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82



빈손으로 활을 당겨 해를 떨군 한겨레 옛이야기

― 신과 함께, 신화편 상

 주호민 글·그림

 애니북스 펴냄, 2012.11.16. 11000원



  젊은 만화가 주호민 님은 우리 신화에 만화라는 옷을 입혀서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신과 함께》라는 이름으로 2010년에 ‘저승편’을, 2011년에 ‘이승편’을, 2012년에 ‘신화편’을 마무리지어요


  우리한테도 ‘하느님 이야기(신화)’가 있느냐고 아리송해 할 분이 있을 텐데, 우리한테뿐 아니라 모든 겨레에는 ‘하느님 이야기’가 있어요. 중국에도 일본에도, 태국에도 라오스에도, 브라질에도 멕시코에도 저마다 다른 ‘하느님 이야기’가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그리스나 로마 하느님 이야기만 있지 않습니다. 북유럽이나 아일랜드 하느님 이야기만 있지도 않고요.


  다만 한국에서는 ‘한겨레 하느님 이야기’가 어느 때부터 뚝 끊어졌을 뿐입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쥔 쪽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싹 끊어버렸을 뿐이에요. 우리 스스로 이 땅에서 사람이 살아온 뿌리를 잊거나 놓거나 잃은 셈이라고도 할 만해요.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땅과 하늘도 없고 처음과 끝도 없고 선과 악도 없는 혼돈. 어느 날 그 혼돈의 작은 틈을 찢고 거신들이 나타났다. 거신의 돌로 찢은 혼돈은 하늘과 땅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거신이 땅에서 솟아났다. 두 번째 거신은 네 개의 눈에서 불같이 뜨거운 빛과 얼음같이 차가운 빛을 뿜어냈다. 격렬한 싸움 끝에 첫 번째 거신이 두 번째 거신을 제압하고, 그의 눈을 뽑아 하늘에 던지니,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이 되었다. 두 번째 거신은 흩어지고 세상에는 오색구름이 피어나 산과 강과 들이 생겨났다. 훗날 사람들은 첫 번째 거신을 가리켜 하늘 문을 지키는 산 ‘도수문장’ 또는 ‘미륵’이라 불렀다. (9∼13쪽)



  《신과 함께》 신화편 상권은 ‘대별소별전’하고 ‘차사전’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룹니다. ‘대별소별전’은 ‘천지왕본풀이(제주도 신화)’에서 따와 새롭게 빚었다고 밝힙니다. 신화편 중권에서는 ‘할락궁이전’하고 ‘성주전’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룹니다. 중권 ‘할락궁이전’은 ‘이공본풀이(제주도 신화)’에서 따와 새롭게 빚었다고 밝혀요.


  만화 이야기 끝에 어느 옛이야기에서 따왔는가 하고 밝히는 대목을 살피노라면, 이 땅에서도 제주도나 함경도나 평안도나 전라도나 강원도나 충청도마다 다 다른 옛이야기가 오랫동안 흘렀지 하고 느낄 만합니다. 이제는 텔레비전과 영화에 밀려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만, 고장마다 오랜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면서 나누었어요. 아스라히 먼 옛날 옛적에 지구가 어떻게 태어나고 사람이 어떻게 생겼으며 들이며 숲이며 바다이며 어떻게 나타났는가 하는 대목을 한국에서도 한겨레 하느님 이야기로 엿볼 만합니다.



“아버님께선 제압하라고 하셨지 죽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장난해? 내 이마 안 보여? 날 죽이려 했다고!” “우린 이자에게 배울 것이 많아.” (43쪽)


“그렇게 많은 활은 없을 뿐더러 인간들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활은 필요없어. 내가 수명장자를 쐈을 때처럼 쏘는 시늉만 하면 돼.” (99쪽)



  대별왕하고 소별왕 이야기를 보면, 이승 나라에서 임금이 되고픈 동생 소별왕은 형 대별왕을 여러모로 속입니다. 이를 다른 이들 누구나 뻔히 알지만 소별왕 속임수대로 소별왕은 이승 나라 임금이 되어요. 형 대별왕은 으레 동생한테 속아넘어가 줍니다 이럴 뿐 아니라 동생을 돕지요.


  더욱이 대별왕은 동생만 돕지 않습니다. 이승이라는 곳에 사는 여느 사람들을 함께 도와요. 마치 종처럼 큰 권력자한테 눌리거나 부려지는 사람들을 넌지시 일깨웁니다. 두 손에 엄청난 무기가 있어야 하지 않은 줄 깨닫게 해요.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해요. 대별왕 소별왕 둘이서 저승하고 이승을 나누어 맡는 임금 노릇을 할 무렵, 이승에는 해랑 달이 둘씩 있었대요. 사람들은 둘씩 있는 해랑 달 때문에 낮이고 밤이고 너무 살기 어려웠대요. 소별왕은 이를 어찌 풀어내지 못하지만 대별왕이 슬기로운 마음을 써서 이를 풀어내지요.


  대별왕은 혼자서 이 일을 풀어내지 않아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끌어내어 이 일을 풀어내요. 어떻게 하느냐 하면, 빈손으로 시늉만 할 뿐이지만, 사람들이 다 함께 해랑 달을 바라보면서 ‘빈손 활쏘기’를 하도록 시켜요. ‘마음으로 쏘는 활’로 ‘두 헤와 두 달’ 가운데 하나씩 떨어뜨리도록 하지요. 아주 커다란 활이나 아주 듬직한 활이 아닌 ‘마음으로 쏘는 활’입니다. 겉보기로는 그저 빈손일 뿐이지만, 이 빈손인 채로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면 ‘빈손에 가없이 큰 힘을 내는 활’이 생겨난다고 알려주어요. 이리하여 대별왕은 하늘에 ‘한 해와 한 달’이 있도록 이끌어요.



“이로써 사람들은 자존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의 힘으로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는.” (105쪽)


“도와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느냐?” “이승도 속임수로 차지하고, 폐하와의 약속도 저버리고 수명장자를 죽이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그게 그렇게 궁금하더냐?” ‘가끔은 바보 같단 말입니다.’ “소별을 도운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도운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느냐.” (113쪽)



  대별왕이 사람들을 일깨운 대목을 보며 생각해 봅니다. 온갖 말썽거리를 일으킨 대통령하고 대통령을 둘러싼 권력자를 ‘맨손인 수수한 사람들’이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힘이 오늘날 우리한테 있습니다. 우리는 총칼을 손에 쥐면서 말썽쟁이 대통령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맨손으로 말썽쟁이 대통령을 끌어내립니다. 다만 맨손에 촛불을 하나씩 쥐었을 뿐이에요. 촛불을 굳이 손에 쥐지 않더라도 서로 한마음이 되어 외치기에, 다 같이 한마음이 되어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훌륭한 나라를 바라기에, 이 마음이 너울치면서 가없이 커다란 힘으로 거듭나요.


  민주도 평화도 평등도 이렇게 마음으로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뛰어난 사람이 하나 나타나서 대통령이 되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수수한 우리가 집과 마을에서 먼저 따사로운 마음으로 민주와 평화와 평등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집과 마을에서 다 같이 따사롭게 민주와 평화와 평등을 이루어 내면, 이 힘이 하나하나 모여서 너울치는 아주 가없이 커다란 힘으로 거듭나리라 생각해요.



“근데요, 여기서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살았는데, 우리 땅이 아니에요?” “아니야.” “왜 아니에요?” “나라에서 정했으니까.” “그런 건 누가 정해요?” (170쪽)


“국경을 지키라고 보내 놨더니 오랑캐하고 붙어먹어? 그러고도 네놈이 녹봉을 받아먹는 무관이냐!” “말씀대로 국경을 지키러 왔지, 아이들을 죽이러 오지 않았소.” (210쪽)



  ‘차사전’ 이야기에서는 ‘국경수비’를 맡은 ‘하얀 삵’이 살다가 죽는 모습을 그립니다. 처음에는 차갑게 사람들을 죽이는 군인이던 하얀 삵은 어느 날 북방 국경수비대 일을 하다가 아이들을 만난다고 해요. 이 아이들이 하얀 삵한테 문득 물어요. 왜 이 아이들은 꽤 오랜 옛날부터 그곳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 아버지 모두 칼에 맞아 죽어야 하고, 저희들은 쉴 자리 없이 떠돌면서 목숨만 겨우 지키느냐고. 어른인 하얀 삯은 ‘나랏님이 국경을 그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대꾸할 뿐, 더 할 말이 없어요.


  이러면서 비로소 스스로 생각을 해 보아요. 왜 나랏님이 시키는 대로 ‘군인이 되어 오랑캐라고 하는 이웃나라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짓을 해야 했을까’ 하고요. 국경이란 무엇인지, 나라를 넓힌다고 하는(국토 확장) 일이란 무엇인지, 군인으로서 나랏님이 시키는 대로 이웃나라 사람들을 그저 오랑캐로만 여기며 죽여도 되는가를 참말로 뒤늦게 생각해 보았다고 해요.


  아스라하기에 도무지 언제 지은 옛이야기인지 종잡을 수는 없습니다. 삼천 해도 오천 해도 아닌, 삼만 해도 오만 해도 아닌 옛이야기이지 싶어요. 삼십만 해나 삼배만 해가 되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오래된 옛이야기가 지구별 모든 겨레마다 있어요.


  지구가 태어나고, 사람이 태어나고, 들과 숲이 태어나고, 마을이 태어나고, 바람과 해와 별이 태어나고, 사람들이 서로 아끼며 보살피다가 그만 권력과 전쟁이 태어나는 숱한 살림살이가 옛이야기 한 자락으로 흘러요.


  이 옛이야기는, 또 만화라는 옷을 새로 입은 《신과 함께》에 깃든 ‘오늘이야기’에는 틀림없이 우리가 서로 배울 만한 슬기가 흐른다고 봅니다. 어제를 되새기며 오늘을 돌아볼 적에 모레를 새롭게 맞이할 슬기를 옛이야기에서 얻을 만하지 싶어요. 빈손으로 활을 당겨 해랑 달을 하나씩 떨어뜨리며 온 하늘을 별나라로 바꾸었다는 먼먼 옛사람 자취를 더듬으며 오늘 이곳에서 지을 새로운 이야기를 그립니다. 2017.3.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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