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의 여행자
다니구치 지로 지음, 홍구희 옮김 / 샘터사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79



혼자여도 외롭지 않게 떠난 만화가

― 동토의 여행자

 다니구치 지로 글·그림

 홍구희 옮김

 샘터 펴냄, 2008.12.31. 8500원



  1947년 여름에 태어난 만화가 한 사람이 2017년 2월 11일 겨울 끝자락에 숨을 거둡니다. 이이는 프랑스에서 문화예술공로훈장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을 넘어 프랑스에서까지 사랑받은 이이는 한국에서도 꽤 사랑받는 만화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이 발자국을 헤아리면 1998년에 ‘제2회 데즈카 오사무 만화대상’을 받기도 했어요. 《고독한 미식가》나 《개를 기르다》나 《신들의 봉우리》 같은 작품을 그리기도 했고, 《아버지》나 《열네 살》이나 《도련님의 시대》나 《산책》을 그리기도 했어요. 한국말로 나온 작품으로 2016년에 《하늘의 매》나 《지구빙해사기》가 있기도 합니다.



‘춥다. 눈보라는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우린 여기서 죽고 마는 것일까.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다. 난 죽으려고 이런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땅까지 찾아오지 않았다.’ (14쪽)


“백인들 금광 찾으러 곧잘 여길 온다. 너희들 같은 패인가?” (18쪽)



  여든아홉 해 삶을 마감하고 흙이 된, 또는 바다로 간, 또는 멧봉우리로 간, 또는 섬으로 간, 또는 골목길로 간, 또는 맛집으로 간, 또는 몽골이나 북미 인디언 품으로 간, 또는 지구문명이 저물고 찾아온다고 하는 빙하시대로 간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 님이 선보인 만화 가운데 짤막한 이야기를 그러모은 《동토의 여행자》(샘터 펴냄)를 읽어 봅니다.


  ‘동토’는 ‘언 땅’으로 고쳐써야 한다는 일본 한자말입니다. 이런 이름쯤은 출판사에서 잘 손질해서 알맞게 붙여 주면 좋으련만, 가만히 살피면 한국말로 나온 다니구치 지로 님 만화책 가운데 《우연한 산보》도 있어요. ‘산책·산보’ 모두 한자말입니다만, ‘산보’는 일본 한자말이에요. 적어도 ‘산책’으로 손질하거나 ‘마실·나들이’로 바로잡을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만화책 《동토의 여행자》, 그러니까 “언 땅을 여행한 사람” 또는 “겨울 땅을 거닌 사람”을 보면, 잭 런던이 남긴 글을 바탕으로 풀어놓은 ‘하얀 말코손바닥사슴’ 이야기부터 잔잔히 흐릅니다. 금을 좇다가 이 금좇기가 부질없는 줄 깨닫고서 삶과 땅을 처음으로 마주했다는 잭 런던처럼 다니구치 지로 님도 삶과 땅을 새롭게 바라보며 배우는 기쁨을 만화로 풀어놓습니다.



“그 녀석(곰)은 내가 쏘아야만 해.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돼.” (118쪽)


“어, 어째서. (개) 시로마저 나한테서 앗아가시는지? 모르겠어. 어째서 언제나 나만 살아남는 건지. 아아, 산신령 님, 어째서 나 같은 늙은이를 살려 두시는 게요? …… 오오! 아, 아니, 강아지 한 마리. 아아, 장하다, 시로! 기뻐해라! 좋은 강아지를 얻게 되었구나!” (138∼139쪽)



  다니구치 지로 님이 만화 한길을 걸어가며 내놓은 작품을 찬찬히 살피면 ‘여행·사냥’이 가만히 맞물립니다. 낯익은 곳을 떠나서 낯선 곳으로 찾아가며 사냥을 하는 숨결이 고즈넉히 흐르곤 합니다. 《고독한 미식가》나 《우연한 산보》는 여행이나 사냥하고는 동떨어진 듯 보일 수 있지만, 큰 테두리에서 살피면 낯선 길을 찾는 마음이 드러나면서 무엇인가 마음에 붙잡으려고 하는 숨결이 흘러요. 이러한 숨결은 북중미 토박이를 끔찍하게 죽인 흰둥이 이야기를 다룬 《하늘의 매》에서도 여러모로 엿볼 수 있습니다.



“부끄럽지 않냐, 시게루? 약한 애를 괴롭히다니. 모두들 사이좋게 놀지 않으면, 내가 용서치 않아!” (150쪽)


“아직은 멀었어요. 만화가가 될지도 아직은 모르는데요.” “아니지. 의지만 있다면 뭐든 될 수 있거든. 참 좋다아, 젊은이는 꿈이 있어서. 나도 말야, 젊은 시절에는 연극을 좋아해서 떠돌이 딴따라 일을 했다네. 돈벌이도 좋지만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그게 제일이거든, 안 그런가?” (178쪽)



  여린 이나 겨레나 나라를 괴롭히는 몸짓을 달가워하지 않는 마음이 만화마다 찬찬히 흐르는 다니구치 지로 님 작품이라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일본하고 조선 사이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요. 서양이라는 힘센 문명이 일본으로 쳐들어오던 무렵 일본은 이웃에 있는 여린 나라로 쳐들어가서 꽤 오래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이뿐 아니라 류큐와 아이누를 짓밟은 일본입니다.


  “모두들 사이좋게 놀지 않으면 내가 용서치 않아!” 같은 말을 일본에서 일본 사람들한테 만화가 스스로 낼 수 있을까요?


  모든 만화가가 이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모든 만화가가 이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하지도 않을 테고요. 다만 다니구치 지로 님은 《도련님의 시대》 같은 만화를 그리면서 이 대목을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습니다. 살그머니 비껴 갔다고 할까요.



“네, 저도 믿어요. 틀림없이 (고래) 딕은 당신에게만 가르쳐 주었어요. 가만히 놓아둔다, 알겠지요.” 고래들의 신비로운 문화. 잠들면서 죽음을 맞이하고, 꿈꾸면서 재생을 기다린다. 북극의 해저 깊이 그 ‘성스러운 심연’은 존재한다. (241쪽)



  다니구치 지로 님이 만화로 새롭게 담은 ‘어니스트 톰슨 시튼’ 이야기를 보면, 시튼이라는 분이 남긴 이야기에는 ‘숲·숲짐승하고 하나가 되는 숨결’이 너르게 흐르는데, 다니구치 지로 님 만화책에는 이보다 ‘사냥’이나 ‘총을 드는’ 이야기가 자주 흐릅니다. 이제 흙으로 돌아간 다니구치 지로 님인 터라 새로운 작품을 더 선보일 수 없으니, 이녁이 남긴 작품에 흐르는 ‘사냥·총’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단편집 《동토의 여행자》를 이루는 마지막 이야기인 ‘고래가 죽음을 앞두고 찾아간다는 북극 깊은 바다’를 곰곰이 되읽어 봅니다. 총도 작살도 내려놓은 맨몸으로 오랫동안 고래 곁으로 다가가서 동무가 되고서야 비로소 고래하고 말을 섞으며 고래무덤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는 만화 주인공 이야기를 고즈넉히 돌아봅니다.


  고래는 고래 앞에서 총이나 작살을 든 이한테 말을 걸지 않습니다. 이리나 여우나 늑대나 곰도 저희 앞에서 총이나 화살을 든 이한테 말을 걸지 않아요. 하얀 말코손바닥사슴도 제 앞에서 총이나 화살을 든 이한테 말을 안 걸어요. 모두 내려놓고 천천히 다가서려고 할 적에, 따스한 마음이 되어 오래도록 찾아와서 손을 맞잡으려고 할 적에 비로소 말을 걸어요.



“난 덫을 보러 간다. 거기까지 바래다주겠다. 여길 봐. 토끼가 지나갔다. 그리고 여기, 토끼가 멈춰 서서 귀를 쫑긋 세웠다. 뭔가에 떨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토끼가 되돌아섰다. 발자국 간격이 넓다. 빠른 속도로 달렸다. 여기, 더 큰 발자국. 이건 스라소니 발자국. 토끼가 바짝 쫓겼다. 이 깊은 발톱 자국, 여기서, 스라소니가 크게 뛰었다. 여기서 일격. 이 앞으로는 토끼의 발자국이 없다. 알겠는가? 너희들, 총은 쏠 수 있어도 짐승의 발자국 쫓는 일, 할 수 없다. 여기서 살아가는 일, 아주 어렵다.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 곧장 이 산에서 내려가야 한다.” “우리한테 사냥하는 방법을 가르쳐 줘요.” “아니, 해 줄 수 없다. 곧바로 여기서 떠나야 한다. 난 해야 할 일이 있다.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지.” (28∼30쪽)



  숲에서, 또는 바다애서, 또는 멧봉우리에서, 또는 섬에서, 또는 골목길에서, 또는 맛집에서, 또는 몽골이나 북미 인디언 곁에서, 또는 지구문명이 저물고 찾아온다고 하는 빙하시대에서, 우리가 이야기 한 자락을 어떻게 끌어내어 생각을 새롭게 지필 만한가 하고 되새깁니다. 때로는 살짝 아쉬운 대목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멀고 먼 길을 구비구비 돌고 돌면서 ‘작은 삶에 깃든 작은 살림에서 작은 사랑이 피어나는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이를 만화로 담은 다니구치 지로 님 발자국이 담긴 만화책을 읽은 젊은이가 앞으로 한결 새로우면서 아름답게 피어날 이웃사랑과 숲사랑과 마을사랑을 새 만화로 그릴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다니구치 지로 님은 하늘나라에서 하늘숨을 마시며 온누리를 훨훨 날아다닐 하늘마음 같은 바람이 되었을 테지요. 혼자여도 외롭지 않게 하늘길로 가셨을 테고요. 숱한 이야기를 품은 만화책을 그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이 쉬셔요. 2017.2.20.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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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잭 창작비화 3 - 테즈카 오사무의 작업실에서
요시모토 코지 지음, 미야자키 마사루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70



새내기 직원한테 “빨리 그만둬 주세요” 하고 외친 사람

― 블랙잭 창작 비화 3

 미야자키 마사루 글

 요시모토 코지 그림

 김시내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5.25. 1만 원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 님이 있습니다. 1989년에 숨을 거두었으니 이제는 없는 사람입니다. 1989년에 숨을 거둔 만큼 새로운 만화를 그릴 수 없어요. 그런데 이 땅에 없는 테즈카 오사무 님을 놓고 만화책이 새로 나오기도 해요. 이 가운데 하나가 《블랙잭 창작 비화》(학산문화사,2014)입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이 한창 만화를 그리던 무렵 곁에서 지켜보거나 일을 돕던 사람들이 이야기를 엮어요. 그때 그분이 그렇게 일을 했고, 그때 그분이 이렇게 일을 시켰다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어시스턴트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한 가지 일러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빨리 그만둬 주세요!!” “에엑?” “그리고 만화가가 되어 주세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입사하자마자 빨리 그만두라는 회사는 거기 말고는 없을 거예요. (17∼18쪽)


나는 22살에 상경해서, 테즈카 프로덕션의 수라장에 뛰어들었고, 어른들의 진검승부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테즈카 선생님을 동경하면서 동료들과 그림을 그렸어. 단지 그랬을 뿐인데, 그 모든 게 내게 양식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40∼41쪽)



  《블랙잭 창작 비화》는 모두 네 권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셋째 권에 오래도록 눈길이 갑니다. 테즈카 오사무라고 하는 만화가한테도 눈길이 가고, 이 만화책 네 권을 놓고도 눈길이 갑니다만, 《블랙잭 창작 비화》 셋째 권은 테즈카 오사무 님이 ‘일하려고 새로 들어온 도움이(어시스턴트)’를 처음 마주하는 자리에서 ‘새 직원 교육’을 할 적에 들려주었다고 하는 말에 눈길이 가요.


  테즈카 오사무 님은 새내기 도움이한테 한결같이 “빨리 그만둬 주세요!” 하고 바랐대요. 새내기 도움이가 된 이들은 처음에 부푼 꿈으로 설레었는데,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테즈카 오사무 님 곁에서 만화를 배우며 도울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득한 젊은이들은 “빨리 그만둬 주세요!”라는 말에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을까요! 그야말로 터무니없다 할 만하고, 참말로 뜬금없다고 할 만해요.


  그런데 테즈카 오사무 님은 이녁이 외친 말에 벙 쪄서 입을 못 다무는 젊은이들한테 한 마디를 덧붙였다지요. “그리고 만화가가 되어 주세요!”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장편을 그리기보다는 수없이 많은 단편을 완성해 주세요. 그게 실력이 향상하는 지름길입니다! 16페이지 안에 기승전결을 넣을 수 있으면, 장편도 그릴 수 있게 돼요! …… 자신이 그리려는 만화의 대상 독자 연령보다도 두세 살 어리게 잡고 그리면 전하고자 하는 뜻이 잘 전달됩니다!” (42∼43쪽)


언제부턴가, 선생님의 눈에 비치는 것을, 선생님이 보고 있는 것을, 나도 보고 싶다고 바라게 됐어! 테즈카 선생님을 쫓고 있으니, 선생님이 보고 있던 빛 자체는 선생님 등에 가려서 보이지 않아. 하지만 그 등에서 새어나오는 빛은, 지금도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48∼50쪽)



  테즈카 오사무 님이 한창 만화 연재를 많이 할 적에는 20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렸다고 합니다. 한 사람 머리에서 태어나는 끝없는 새 줄거리 새 이야기 새 만화 새 그림을 거드는 사람이 200이 넘었다는 뜻이에요. 이들은 모두 ‘빨리 그만두고 만화가가 되어 달라’는 말을 들었대요.


  어느 모로 본다면 터무니없지만, 어느 모로 보면 제대로 짚고 가르쳐 준 한 마디로구나 싶어요. 배경이나 먹이나 톤이나 여러 가지를 돕는 일을 하는 젊은이한테 이들이 스스로 더욱 새롭고 재미나며 알뜰한 이야기를 엮는 만화가로 ‘홀로서기’를 하기를 바라는 말을 들려준 셈이거든요.


  한국에 이런 회사가 있을까요? 한국에 이런 공공기관이 있을까요? 얼른 일을 제대로 찬찬히 알뜰히 훌륭히 빈틈없이 익혀서 스스로 설 줄 아는 일꾼으로 홀로 나아가라고 북돋우는 회사나 공공기관이 있을까요?



“확실히 디즈니는 굉장해요. 하지만 만화영화는 디즈니뿐만이 아니에요. 전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린 시절의 전, 디즈니를 보고 꿈을 갖게 됐고, 이 작품 〈철선공주〉에서는 뭐라고 해야 할까, 그렇지 용기를 얻었어요.” “용기요?” “‘아시아인어도 이렇게 굉장한 만화영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럼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요!” (116∼118쪽)


테즈카 오사무는 스스로 에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들었다. 이무렵의 에니메이션 제작비, 스태프들의 급료는, 전부 테즈카 오사무의 원고료로 충당했었다. (132쪽)



  이른바 ‘만화의 신’이라는 이름을 얻은 테즈카 오사무 님이에요. 만화를 어마어마하게 그렸기에 ‘만화 그린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받았구나 싶기도 하지만, 젊거나 어린 제자한테 만화를 온마음으로 사랑해서 온몸으로 가꾸어 주기를 바라는 숨결을 물려주었기에 ‘만화로 사랑을 이야기한 하느님’이라고 할 만하구나 싶기도 합니다.


  생각해 봐요. 테즈카 오사무 님은 만화를 그려서 번 일삯으로 만화영화를 만들었대요. 테즈카 오사무 님은 몇 날 며칠 잠을 안 자면서 만화를 그려 얻은 일삯을 모조리 ‘새로운 만화를 짓는 바탕’이 서도록 쏟아부었대요.


  이른바 ‘사회로 돌려주기’를 늘 한 셈입니다. 내 것으로 삼지 않고 늘 나누어 준 셈입니다. 내 권위나 권력을 세우려 하지 않고 어린 뒷사람한테 길을 틔우려고 온힘을 들인 삶이에요.



중국판 ‘우주소년 아톰’은 가로로 긴 특수한 판형. 때문에 세로로 긴 만화원고를 위아래로 나누어 편집했지만, 아무리 해도 판형에 맞출 수 없는 세로로 긴 컷은, 중국 측에서 멋대로 다시 그렸다. “서, 선생님. 그림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겠습니다. 엄중하게 항의하죠.” “고치겠습니다.” “네?” “제가 원고를 고치겠어요!” “네에? 서, 선생님이 원고를 손질?” “네! 제가 다시 그릴 겁니다. 그걸 책으로 내주세요!” “하, 하지만 선생님. 저작권이 없으니 무보수로 일하는 꼴이 될 텐데요.” “무슨 소립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이런 그림으로는 재밌지 않아요! 중국사람들도 제대로 된 그림으로 즐겨야죠!” (163∼166쪽)



  중국에서 ‘무단 해적판 아톰’이라든지 ‘무단 해적판 레오’가 나왔을 적에 테즈카 오사무 님은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았다고 합니다. 저작권을 침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엉터리로 만화책을 펴냈기 때문에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았대요. 그래서 테즈카 오사무 님은 일삯을 하나도 받을 수 없지만, 중국에서 이녁 만화책을 몰래 함부로 펴낸 출판사에 ‘제대로 똑똑히 그린 만화 원고’를 그냥 보내 주었다고 합니다. 돈이 아니라 ‘중국 어린이 독자’가 만화다운 만화를 제대로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일을 했대요.



“중학생 때, (중국) 완 선생님의 〈철선공주〉를 보고, 전 에니메이션을 만들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손오공’을 만들어 왔어요. 제가 완 선생님께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저는 ‘손오공’이 되었다고요.”(187∼190쪽)



  《블랙잭 창작 비화》는 테즈카 오사무 님한테서 만화를 배우며 만화가가 된 사람들이 ‘나는 어떻게 만화를 사랑하면서 만화를 그리는 사람으로 설 수 있었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모두 네 권에 걸쳐 수많은 만화가가 수많은 이야기를 다 다르면서 맛깔스럽게 들려줍니다. 이렇게 보면 괴짜 같고, 저렇게 보면 바보스럽고, 그렇게 보면 참말 욕심이 없는데, 도무지 언제 눈을 붙이고 쉬는지 알 길이 없도록 언제나 펜을 쥐고 종이에 새로운 이야기를 빚는 테즈카 오사무라는 사람이 일본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어린이한테 만화로 어떤 꿈을 북돋아 주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어요.


  우리가 함부로 다가설 수 없거나 섣불리 넘볼 수 없는 엄청난 일을 이룬 테즈카 오사무 님일 수 있습니다. 만화가 ‘문화’이며 ‘예술’일 뿐 아니라 ‘이야기’이고 ‘책’이라는 대목을 똑똑히 밝혀 준 테즈카 오사무 님일 수 있어요.


  여기에 하나 더 있습니다. 뒷사람한테 길을 열어 준 테즈카 오사무 님이에요. 누구나 만화가가 될 수 있다며 기운을 북돋아 주었어요. 누구나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며 손을 내밀어 주었어요. 테즈카 오사무 님은 몸져누워 숨을 거두는 날까지 손에서 펜과 종이를 놓지 않으면서 다음 작품을 마음속으로 지었대요. 싱글벙글 웃음 띤 낯으로 ‘만화를 그리는 기쁜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대요. 이리하여 이 모든 삶과 살림과 숨결을 젊은 뒷사람이 물려받아서 다 다른 수많은 만화가가 저마다 다르면서 재미나고 아름다운 만화를 그려요.


  곰곰이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선 자리에서 아름답게 일하고 기쁘게 꿈을 짓는 하루를 살자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솟는 해님을 바라보며 더욱 씩씩하게 아이들 손을 잡자고 다짐합니다. 2017.2.1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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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보세, 전통가옥! 2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78



나무한테 말 걸며 집짓는 마음

― 지어 보세, 전통가옥! 2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수진 옮김

 미우 펴냄, 2015.6.15. 8000원



  《천재 유교수의 생활》로 널리 알려진 만화가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아버지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만화를 그렸어요. ‘천재 유교수’는 참말로 있던 사람, 그러니까 ‘만화가네 아버지’라 하지요.


  매우 오랫동안 유교수 이야기가 만화책으로 나오는데, 야마시타 카즈미 님은 아주 새로운 만화를 하나 선보이기도 합니다. 바로 《지어 보세, 전통가옥!》(미우,2015)입니다. 이 만화책 첫째 권에서는 만화가 한 사람이 그동안 어떻게 살다가 손수 ‘일본 옛집’을 도쿄 한복판에 땅까지 장만해서 새로 지으려 하는가 하는 마음을 밝힙니다. 둘째 권에서는 ‘집을 짓는 살림’이란 스스로 얼마나 기쁜 마음이 되는 하루인가를 들려주어요.


  《지어 보세, 전통가옥!》을 읽으면서 바로 이 대목에서 가슴이 찌르르 울립니다. 그래요, 우리가 우리 보금자리가 될 터전을 손수 찾고 살피고 마련해서 기둥을 하나하나 올리고 구들을 놓고 서까래를 늘이는 까닭은 따로 있어요. 그냥 누워서 잠만 자고 밥만 먹는 집이 아니에요. 살림을 짓고 삶을 짓듯이 집을 지어요. 밥을 짓고 옷을 짓듯이 집을 짓지요. 바로 사랑을 짓고 꿈을 지으려고 집을 짓는다고 할 만합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만화. 제일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는 것 …… 혼자일 땐 필요한 부분만 점등. 가급적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밝을 동안 일을 하고 일찌감치 잠자리. 물도 조금씩, 사용할 만큼만. (18∼19쪽)



  만화가 한 사람은 스스로 밝히기를 아직 철이 없다고 합니다. 꽤 오랫동안 만화만 좋아해서 만화만 그리느라 다른 것은 거의 모른다고 해요. 만화 그리기 빼고는 달리 즐기는 놀이도 없이 딱히 하는 일도 없이 지낸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마흔 넘은 나이에 ‘내 집’이라는, 아니 ‘내 보금자리’라는 데에 눈을 뜬다지요. 시멘트와 쇠붙이로 척척 맞추는 집이 아닌, ‘이 집에 깃들 사람이 앞으로 어떤 살림을 꾸리면서 어떤 하루를 누리려 하는가’를 낱낱이 따져서 나무토막 하나도 알뜰히 건사해서 짓는 집에 마음을 활짝 열었다고 합니다.



지금 임시로 살고 있는 곳의 목욕탕은 너무 넓고 조명도 많아서 촛불만 켜 보았다. 그게 은근 근사해서 이런 것도 ‘스키샤’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그 김에 서툴지만 작은 베란다 텃밭도 가꿔 봤다. 풀들이 자라는 모습을 낙으로 삼는 나날.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있던 마사지샵에는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계속 다니는 중인지라, 절약과 운동을 위해 1시간 걸려 걸어서 가 봤다. 그러다 발견한 녹음. 그것은 개인 주택의 뒷마당이거나 실개울을 재현해 놓은 곳이거나,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20∼21쪽)



  《지어 보세, 전통가옥!》를 읽는 동안 몇 번이고 멈추면서 숨을 골랐습니다. 우리는 돈으로만 집을 짓지 못해요.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즐거운 우리 집”을 짓지는 못합니다. 돈이 얼마 없기에 “남이 지은 집을 빌려서 살더”라도 얼마든지 오순도순 알콩달콩 아기자기하며 “즐거운 우리 집”을 누리곤 합니다.


  내 부동산 소유인 집이 아니어도 “즐거운 우리 집”이 되어요. 그리고 부동산이 아닌 보금자리를 바라면서 푼푼이 그러모은 돈으로 집터를 고르고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수 있어요. 후다닥 올려세우는 집이 아니에요. 한 땀 두 땀 손길이 깃드는 집이에요.



오타루에서 카마쿠라로 이사를 가면서 짐을 싸게 된 초등학교 6학년 봄. 저녁햇살이 비추는 두 칸짜리 방에 우두커니 서 있자니, 장지문의 낙서, 피아노와 옷장 자국, 뜯겨진 다다미의 결. 왜일까. 그 광경은 저녁노을과 겹쳐서 그 뒤 수없이 내 꿈에 나타났다. (33∼34쪽)


스키야를 지을 결심을 한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건, 일본의 나무를 사용하기 때문. 그것이 일본의 숲을 지키는 길이란 걸 알았고 또한 일본의 땅에 녹아드는 길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의 전통 기술을 계승할 자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 (51∼52쪽)



  오늘날 한국에 아주 많은 아파트는 백 해는커녕 쉰 해를 버티기 어렵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분도 다 알리라 생각해요. 아무리 번듯하게 높은 건물이어도 쉰 해를 튼튼히 버틸 만할까요? 백 해쯤 되면 허물고 다시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때에 옛 아파트나 건물에 쓴 시멘트는 어떻게 될까요? 시멘트와 석고보드와 쇠붙이와 유리로 빠르게 올려세운 아파트는 쉰 해쯤 뒤에는 어떤 쓰레기를 내놓으면서 무너질까요?


  먼먼 옛날부터 나무랑 흙이랑 돌이랑 풀로 지은 집은 허물고 다시 짓더라도 쓰레기가 한 줌조차 안 나와요. 흙이랑 풀은 땅으로 가고, 돌은 되씁니다. 나무는 되쓸 수 있고, 되쓸 수 없다면 땔감으로 삼아요. 게다가 옛날에는 집을 허물고 다시 짓는 사이 ‘새로운 집을 지을 적에 기둥으로 삼을 나무’가 우람하게 자랍니다.


  간추려 보자면, 옛집은 늘 되살림이 깨끗하면서 아름다이 이루어진 보금자리예요. 이러면서 오랜 나날 수많은 살붙이가 얼크러지고 어우러지면서 숱한 이야기꽃이 피어난 삶자리이고요.



하지만 어떤 형식이든, 받은 땅에 감사하는 행위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땅에는 고래로부터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이 깃들어 있으니까. (97쪽)


30∼40년에 걸쳐 곧게 곧게 자라다가 심긴 지 50년 정도 기다려서 드디어 우리 집에 오는 것이니, 소중히 사용해야지. 집이 다 되면 (나무한테) 또 말을 걸어 볼까. (122쪽)



  철없던 만화가에서 철든 만화가로 거듭나려는 꿈을 키우는 만화가 한 사람은 일본 옛집을 짓겠노라는 마음이 되면서 처음으로 해 보는 일이 많습니다. 차를 마시는 모임에 나가 보고, 골목을 한참 걸어 봅니다. 햇볕을 한참 마주하기도 하고, 한갓진 숲정이에서 짙푸른 그늘이 얼마나 싱그러운가를 느껴 봅니다. 그리고 나무한테 말을 걸어 보아요. ‘내가 지을 집’에 쓸 나무를 만나서 이 나무가 살아온 나날을 헤아려 보았다고 해요.



나무의 생명에 감사하고 혼을 불어넣는다. 나무의 생명을 받아서 집을 짓는다. 나무와 함께 생활하는 인간의 나무를 향한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도 마찬가지. 우린 몇 천 년이나 나무와 함께 살아왔다. (168∼169쪽)



  ‘짓다’라는 오랜 한국말을 새삼스레 헤아려 봅니다. 요새는 이 ‘짓다’를 제대로 쓰는 사람이 매우 줄어요. 밥이나 옷이나 집뿐 아니라 글이나 살림이나 땅이나 삶이나 꿈이나 생각 모두 짓는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나타나도록 온힘을 기울이는 몸짓이나 마음씨를 예부터 ‘짓다’로 나타냈어요.


  요즈막 흐름을 보면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낸다는 결이 담긴 ‘만들다’를 아무 자리에나 쓰고 말아요. 똑같은 모습에 똑같은 시멘트덩이인 아파트를 척척 만들어서 세우지요. 이러다 보니 집을 집다이 아끼거나 건사하는 마음이 옅어지지 싶어요. 오래도록 사랑할 집이면서, 아이들이 고이 물려받을 터전이라는 마음이 못 될 적에는 보금자리가 못 되고 말아요.


  가만히 보면, 일본이든 한국이든 우리 어른들이 ‘아이가 기쁘게 물려받을 만한 보금자리’인 집을 짓는다면 참말 크게 달라지리라 봅니다. 아이가 기쁘게 물려받을 만한 보금자리라면 적어도 백 해나 이백 해는 거뜬해야 할 테고, 마당도 텃밭도 딸려야 할 테지요. 나무를 심을 만한 집이어야 할 테고, 이 집에서 새로운 아기가 태어나 이쁜 살림을 더욱 살가이 지을 만해야지 싶어요.


  우리가 이백 해쯤 든든한 집을 지으려 한다면 ‘건축자재’도 아무것이나 쓸 수 없어요. 한 터에서 이백 해쯤 살 생각이라면 ‘마을을 살리는 길’을 처음부터 다시 살필 만해요. 《지어 보세, 전통가옥!》을 빚는 만화가도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얻기를 바라고, 우리들 누구나 우리한테 저마다 아름다울 보금자리를 손수 지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가 손수 집을 지어서 산다면 우리 마을과 나라는 저절로 푸르게 눈부실 만하겠지요. 2017.2.1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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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보세, 전통가옥! 1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77



빌리는 집이 아닌 짓는 집을

― 지어 보세, 전통가옥! 1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수진 옮김

 미우 펴냄, 2015.5.15. 8000원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지어 보세, 전통가옥!》(미우,2015)을 읽었습니다. 이런 만화도 그리는가 하고 갸우뚱하면서 즐거이 장만해서 읽었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야마시타 카즈미 님은 일본 옛집 이야기를 그릴 만하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런데 막상 만화책을 집어들어 펼치니,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보낸 어린 나날은 일본 옛집하고 동떨어집니다. 이분 다른 만화책에 나오듯이 이녁 아버님은 대학 교수였습니다. 일본 옛 문화보다는 새로운 서양 문화가 집안에 감도는 어린 나날을 보냈고, 야마시타 카즈미 님은 만화가 길로 접어든 뒤로는 도쿄 한복판에서 만화만 그리고 살았다고 해요.



마음만이라도 그 세계로 날아가 본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작 그걸 그리는 당사자는 도쿄 중심가의 빌딩에 둘러싸여 크리스마스도 설도 없이 오로지 일만 할 뿐. 설날 아침에 일을 안 한 적이 없었다. (8쪽)


지금 생각하면 모든 건 서로가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 일. 처음의 아주 사소한 일들이 만사를 좀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의 ‘모르는’ 대상은 옛날과는 다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33쪽)



  일본사람이면서 막상 일본 옛 문화를 잘 모르는 만화가였다고 합니다. 일본 옛 문화뿐 아니라 오랜 일본 집조차 거의 몰랐다고 해요. 이를 뒤늦게 깨달으면서 늦깎이로 ‘일본 문화를 처음부터 배우는 일본사람’으로서 바쁜 틈을 쪼개었다고 합니다. 이러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갔다지요. 바로 집짓기입니다.


  여태 ‘남이 지은 집에 얹혀 지내는’ 살림이었다면, 이제부터 ‘손수 짓는 집에서 꿈을 길어올리는’ 살림이 되자고 생각을 품었다고 해요.



(어릴 적에) 눈보라가 치는 날엔 집안에서만 지내도 나름 즐거웠다. 난로와 벽 사이의 좁은 틈이 나만의 성역. 거기서 고구마를 먹으며 재밌는 상상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46쪽)


“현대로 비유하자면, 도심 속에서도 산속에 있는 듯한 조용함을 느끼고 싶다, 는 마음을 세련되게 다듬은 것이 ‘스키야’라고 생각해요. 야마시타 씨도 야마시타 씨 자신의 스키야를 발견하면 좋겠네요.” (57쪽)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만화가 한 사람은 참말로 손수 일본 옛집을 도쿄 한복판에 지어서 꿈 같은 나날을 누리며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요? 그저 어디에서든 만화만 그릴 수 있으면 좋은 삶이 아니라, 아름답게 누리는 아늑한 집에서 그토록 사랑하는 만화를 그릴 수 있다면, 참말 만화도 남다르게 태어날 만하겠지요.


  만화 하나마다 ‘남이 빚은 작품을 흉내내는’ 길이 아니듯이, 살림집도 ‘내 손길이 깃든’ 터전이 될 수 있으면 참으로 달라지리라 생각해요. 스스로 빚어서 스스로 그리는 만화이듯이, 집도 집살림도 모두 손수 가꿀 수 있다면 아주 아름다이 거듭나는 하루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2017.2.1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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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두사람 4
요시다 사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75



‘일 안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 일하지 않는 두 사람 4

 요시다 사토루 글·그림

 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6.3.31. 5000원



  만화책 《일하지 않는 두 사람》(대원씨아이,2016)에는 틀림없이 ‘일하지 않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만화책을 보면서 참말 두 사람이 ‘일을 안 하는가?’ 하고 헤아려 보면서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이 두 사람은 틀림없이 ‘일’을 합니다. 사회에서 보기에 ‘노동생산성’이 없다고 여길 수 있거나, 경제로 보기에 ‘경제성장률’에 이바지하지 않는다고 여길 수 있을 뿐이에요.


  문득 두 사람하고 ‘기본소득’을 나란히 놓아 봅니다. 집 바깥으로 좀처럼 안 나가면서 돈벌이를 안 하는 이들한테 ‘기본소득’이란 무엇이 될까요? 생산성하고 성장률에 이바지를 못하는 이들한테는 기본소득이 없어도 될까요? 이들처럼 집에서만 맴돌 적에 기본소득을 주면 더 ‘사회에서 돈을 버는 일을 안 하려’ 든다고 여길 만할까요??



“만두라. 딱 하나에만 고추냉이 넣어서 러시안 룰렛 만두를 만들까?” “그게 뭐야. 재미있을 것 같아. 아빠가 먹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14쪽)


“단번에 당첨이라니. 아빤 정말 굉장해. 으호우아! 고추냉이는 한 개에만 넣는다고 했잖아?” (26쪽)



  만화책 《일하지 않는 두 사람》에는 두 가지 덫이 나옵니다. 두 사람은 틀림없이 생산성이나 성장률하고는 동떨어지게 살지만 둘레 여러 사람한테 이바지를 해요. 먼저 두 사람 아버지한테 이바지를 합니다. 두 사람 아버지는 이녁 딸아들이 집에서 ‘즐겁게 서로 아끼며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느긋하게 회사에서 일을 합니다. 두 사람 아버지한테는 따로 걱정이 없어요.


  두 사람하고 이웃인 분한테도 이바지를 해요. 혼자 살면서 한 주 내내 거의 회사일에 얽매인 이웃집 아가씨는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 짜증이 쌓입니다. 이러던 어느 날 이웃집 두 사람을 보고는 ‘어쩜 저리 바보스러운 남매일까?’ 하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저 바보스러운 남매가 저렇게 밝게 웃으며 노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고 해요. 그때부터 잠을 무척 잘 자고, 회사에서도 일을 더 잘할 뿐 아니라, 이웃집 두 남매한테 다가가서 ‘아끼고 싶은 두 동생’하고 같이 어울려 놀기도 합니다. 그때까지 이웃집 아가씨는 일요일에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쉬거나 놀아야 하는가’를 몰랐으나, 이웃집 남매한테서 ‘느긋하게 노는 삶’을 배워요.



“재미있는 영화보다 쓰레기 같은 영화를 봐야 나중에 할 얘깃거리가 더 많아지잖아? 그러니까 이거 빌려.” “뭐? 그냥 평범하게 재미있는 걸 보고 싶다고.” (37쪽)


“잠을 편히 자게 해 준다는 상품도 써 봤지만 전부 별로 효과가 없더라고요.” “그러면 오히려 꼭 자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잖아.” “앗.” “나도 잠을 잘 못 자는 편이거든. 그 기분 아주 잘 알아.” (43쪽)



  그렇지만 ‘일하지 않는 두 사람’을 안 좋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두 사람 어머니입니다. 늘 츄리닝만 입는 두 사람을 노려보지요. 누구보다 딸아이를 째려봅니다. 딸아이가 어떻게 시집을 가려나 늘 걱정해요.


  어느 모로는 걱정스러울 테지요. 날마다 나이는 먹지, 따로 일자리를 찾지는 않지, 그렇다고 무엇을 새로 배우려고는 않으니, 걱정할 만합니다. 이러면서 두 아이 어머니는 아이들한테 늘 ‘부아가 난 모습’으로 마주합니다.


  가만히 살피면 우리 사회에서도 ‘일하지 않는 사람’을 이처럼 ‘부아가 난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어요. 왜 너는 뼈빠지게 일을 안 하느냐고 말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일하지 않는 사람’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 모든 사람이 똑같이 회사에 나가서 똑같은 돈을 벌어야 하는가?’ 하고 말이에요.



“토요일에는 회사에 나가는 날이 많고, 쉬는 날에도 집에서 미처 하지 못한 회사 일을 하거나 해. 그리고 청소나 빨래를 하면 하루가 끝나 버리는, 그런 느낌?” “와아, 힘드시겠네요.” ‘윽. 놀라고 있어.’ “그런 날은 쉬는 날이라고 안 해요. 일을 하는데 청소랑 빨래까지 해야 하다니.” (67쪽)



  기본소득은 이 대목을 건드린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쳇바퀴처럼 돌아가지 않는 사회를 이루는 바탕인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해요.


  아니, ‘일하지 않는 사람한테 왜 기본소득을 줘야 해?’ 하고 여길 수 있지만, 만화책에 나오는 두 사람은 ‘또 다른 일’을 합니다. 돈을 안 벌지만 ‘아주 다른 일’을 해요.


  어떤 일을 하느냐 하면, 남매 가운데 오빠는 늘 ‘아버지 도시락’을 싸 줍니다. 오빠는 밥짓는 솜씨가 좋아서 으레 밥살림을 맡습니다. 만두도 잘 빚지요. 더욱이 동생이 이 일 저 일 안 하려 할 적에 어떻게 달래거나 다독여서 함께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잘 알아요. 억지로 동생을 이끌지 않아요. 부드러우면서 재미난 놀이를 떠올려서 함께 만두를 빚고 함께 청소를 하며 함께 살림을 돕습니다.


  이 두 남매한테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두 남매는 또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두 남매는 텃밭짓기를 할 수 있어요. 기본소득으로 상자텃밭을 마련하고 씨앗을 장만하겠지요. 이러면서 푸성귀쯤 집에서 손수 지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상자텃밭을 지어 푸성귀를 얻는 일은 ‘생산성·성장률’하고는 잇닿지 않을 테지만 몇 가지로 보람이 있어요. 먼저 두 사람은 즐겁게 ‘일’을 하지요. 두 사람 집안에서는 더 좋은 밥을 먹을 수 있지요. 이러면서 두 사람은 살림돈을 한결 아낄 태고, 살림돈을 아낄 뿐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더 오붓하게 밥을 지어 먹을 만해요.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화가 났죠. 왜냐하면 나는 이렇게 외롭고 엄마는 매일 늦게까지 일하는데, 두 사람은 항상 집에 있으면서 즐거운 듯 실실 웃고 있었으니까요. 아마 부러웠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106쪽)



  모든 사람이 공무원이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모든 사람이 공무원 공부를 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며 나설 수 없어요. 그렇지요?


  누군가 버스를 몰아야 하고, 누군가 흙을 지어야 합니다. 누군가 밥을 지어야 하고, 누군가 옷을 지어야 해요. 누군가 청소를 해야 하고, 누군가 아이를 낳아 돌보아야 하며, 누군가 책도 쓰고 신문도 내야 하겠지요.


  여기에 하나를 더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어린이나 푸름이는 학교에서 입시공부만 하면 될까요? 어린이나 푸름이는 안 놀고 공부만 하면 될까요? 어른으로서도 생각해 보아야지요. 어른은 그냥 돈만 버는 일로 온삶을 바치면 될까요? 집에서 식구들하고 오붓하고 어우러지면서 ‘노는 즐거움’은 안 누려도 될까요?


  기본소득이란 ‘일을 더 즐겁고 재미나게 하도록’ 이끄는 작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한결 느긋하게 일하고, 삶에서 더 보람을 찾도록 이끄는 작은 제도이겠지요. 돈으로 사다가 먹거나 쓰는 얼거리를 줄이고, 손수 집에서 짓고 가꾸는 기쁨과 아름다움을 찾도록 이끄는 작은 제도가 되기도 할 테고요.



“왜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지고 그러니?” “왜냐면 엄마가 좋은 거라고 말하는 것 중에 진짜로 좋은 물건은 하나도 없었거든.” (119쪽)



  만화책 《일하지 않는 두 사람》에는 정치도 사회도 경제도 흐르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과 살림, 여기에 기본소득과 복지나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돕는 자그마한 눈길이 흐르기도 합니다. ‘일하지 않는다’하고 ‘일한다’가 서로 어떻게 맞물리는가를 슬기롭게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이 나라에서 정작 ‘일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나라에서 ‘일해야 하는 자리’에 섰으나, 막상 ‘일을 안 하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힌 사람은 누구일까요? 탄핵심판을 기다리는 분한테 여쭙고 싶습니다. 새로 대통령 자리에 서고 싶으신 분들한테도 여쭙고 싶습니다. 2017.2.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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