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잭 창작비화 3 - 테즈카 오사무의 작업실에서
요시모토 코지 지음, 미야자키 마사루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70



새내기 직원한테 “빨리 그만둬 주세요” 하고 외친 사람

― 블랙잭 창작 비화 3

 미야자키 마사루 글

 요시모토 코지 그림

 김시내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5.25. 1만 원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 님이 있습니다. 1989년에 숨을 거두었으니 이제는 없는 사람입니다. 1989년에 숨을 거둔 만큼 새로운 만화를 그릴 수 없어요. 그런데 이 땅에 없는 테즈카 오사무 님을 놓고 만화책이 새로 나오기도 해요. 이 가운데 하나가 《블랙잭 창작 비화》(학산문화사,2014)입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이 한창 만화를 그리던 무렵 곁에서 지켜보거나 일을 돕던 사람들이 이야기를 엮어요. 그때 그분이 그렇게 일을 했고, 그때 그분이 이렇게 일을 시켰다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어시스턴트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한 가지 일러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빨리 그만둬 주세요!!” “에엑?” “그리고 만화가가 되어 주세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입사하자마자 빨리 그만두라는 회사는 거기 말고는 없을 거예요. (17∼18쪽)


나는 22살에 상경해서, 테즈카 프로덕션의 수라장에 뛰어들었고, 어른들의 진검승부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테즈카 선생님을 동경하면서 동료들과 그림을 그렸어. 단지 그랬을 뿐인데, 그 모든 게 내게 양식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40∼41쪽)



  《블랙잭 창작 비화》는 모두 네 권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셋째 권에 오래도록 눈길이 갑니다. 테즈카 오사무라고 하는 만화가한테도 눈길이 가고, 이 만화책 네 권을 놓고도 눈길이 갑니다만, 《블랙잭 창작 비화》 셋째 권은 테즈카 오사무 님이 ‘일하려고 새로 들어온 도움이(어시스턴트)’를 처음 마주하는 자리에서 ‘새 직원 교육’을 할 적에 들려주었다고 하는 말에 눈길이 가요.


  테즈카 오사무 님은 새내기 도움이한테 한결같이 “빨리 그만둬 주세요!” 하고 바랐대요. 새내기 도움이가 된 이들은 처음에 부푼 꿈으로 설레었는데,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테즈카 오사무 님 곁에서 만화를 배우며 도울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득한 젊은이들은 “빨리 그만둬 주세요!”라는 말에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을까요! 그야말로 터무니없다 할 만하고, 참말로 뜬금없다고 할 만해요.


  그런데 테즈카 오사무 님은 이녁이 외친 말에 벙 쪄서 입을 못 다무는 젊은이들한테 한 마디를 덧붙였다지요. “그리고 만화가가 되어 주세요!”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장편을 그리기보다는 수없이 많은 단편을 완성해 주세요. 그게 실력이 향상하는 지름길입니다! 16페이지 안에 기승전결을 넣을 수 있으면, 장편도 그릴 수 있게 돼요! …… 자신이 그리려는 만화의 대상 독자 연령보다도 두세 살 어리게 잡고 그리면 전하고자 하는 뜻이 잘 전달됩니다!” (42∼43쪽)


언제부턴가, 선생님의 눈에 비치는 것을, 선생님이 보고 있는 것을, 나도 보고 싶다고 바라게 됐어! 테즈카 선생님을 쫓고 있으니, 선생님이 보고 있던 빛 자체는 선생님 등에 가려서 보이지 않아. 하지만 그 등에서 새어나오는 빛은, 지금도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48∼50쪽)



  테즈카 오사무 님이 한창 만화 연재를 많이 할 적에는 20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렸다고 합니다. 한 사람 머리에서 태어나는 끝없는 새 줄거리 새 이야기 새 만화 새 그림을 거드는 사람이 200이 넘었다는 뜻이에요. 이들은 모두 ‘빨리 그만두고 만화가가 되어 달라’는 말을 들었대요.


  어느 모로 본다면 터무니없지만, 어느 모로 보면 제대로 짚고 가르쳐 준 한 마디로구나 싶어요. 배경이나 먹이나 톤이나 여러 가지를 돕는 일을 하는 젊은이한테 이들이 스스로 더욱 새롭고 재미나며 알뜰한 이야기를 엮는 만화가로 ‘홀로서기’를 하기를 바라는 말을 들려준 셈이거든요.


  한국에 이런 회사가 있을까요? 한국에 이런 공공기관이 있을까요? 얼른 일을 제대로 찬찬히 알뜰히 훌륭히 빈틈없이 익혀서 스스로 설 줄 아는 일꾼으로 홀로 나아가라고 북돋우는 회사나 공공기관이 있을까요?



“확실히 디즈니는 굉장해요. 하지만 만화영화는 디즈니뿐만이 아니에요. 전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린 시절의 전, 디즈니를 보고 꿈을 갖게 됐고, 이 작품 〈철선공주〉에서는 뭐라고 해야 할까, 그렇지 용기를 얻었어요.” “용기요?” “‘아시아인어도 이렇게 굉장한 만화영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럼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요!” (116∼118쪽)


테즈카 오사무는 스스로 에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들었다. 이무렵의 에니메이션 제작비, 스태프들의 급료는, 전부 테즈카 오사무의 원고료로 충당했었다. (132쪽)



  이른바 ‘만화의 신’이라는 이름을 얻은 테즈카 오사무 님이에요. 만화를 어마어마하게 그렸기에 ‘만화 그린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받았구나 싶기도 하지만, 젊거나 어린 제자한테 만화를 온마음으로 사랑해서 온몸으로 가꾸어 주기를 바라는 숨결을 물려주었기에 ‘만화로 사랑을 이야기한 하느님’이라고 할 만하구나 싶기도 합니다.


  생각해 봐요. 테즈카 오사무 님은 만화를 그려서 번 일삯으로 만화영화를 만들었대요. 테즈카 오사무 님은 몇 날 며칠 잠을 안 자면서 만화를 그려 얻은 일삯을 모조리 ‘새로운 만화를 짓는 바탕’이 서도록 쏟아부었대요.


  이른바 ‘사회로 돌려주기’를 늘 한 셈입니다. 내 것으로 삼지 않고 늘 나누어 준 셈입니다. 내 권위나 권력을 세우려 하지 않고 어린 뒷사람한테 길을 틔우려고 온힘을 들인 삶이에요.



중국판 ‘우주소년 아톰’은 가로로 긴 특수한 판형. 때문에 세로로 긴 만화원고를 위아래로 나누어 편집했지만, 아무리 해도 판형에 맞출 수 없는 세로로 긴 컷은, 중국 측에서 멋대로 다시 그렸다. “서, 선생님. 그림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겠습니다. 엄중하게 항의하죠.” “고치겠습니다.” “네?” “제가 원고를 고치겠어요!” “네에? 서, 선생님이 원고를 손질?” “네! 제가 다시 그릴 겁니다. 그걸 책으로 내주세요!” “하, 하지만 선생님. 저작권이 없으니 무보수로 일하는 꼴이 될 텐데요.” “무슨 소립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이런 그림으로는 재밌지 않아요! 중국사람들도 제대로 된 그림으로 즐겨야죠!” (163∼166쪽)



  중국에서 ‘무단 해적판 아톰’이라든지 ‘무단 해적판 레오’가 나왔을 적에 테즈카 오사무 님은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았다고 합니다. 저작권을 침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엉터리로 만화책을 펴냈기 때문에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았대요. 그래서 테즈카 오사무 님은 일삯을 하나도 받을 수 없지만, 중국에서 이녁 만화책을 몰래 함부로 펴낸 출판사에 ‘제대로 똑똑히 그린 만화 원고’를 그냥 보내 주었다고 합니다. 돈이 아니라 ‘중국 어린이 독자’가 만화다운 만화를 제대로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일을 했대요.



“중학생 때, (중국) 완 선생님의 〈철선공주〉를 보고, 전 에니메이션을 만들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손오공’을 만들어 왔어요. 제가 완 선생님께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저는 ‘손오공’이 되었다고요.”(187∼190쪽)



  《블랙잭 창작 비화》는 테즈카 오사무 님한테서 만화를 배우며 만화가가 된 사람들이 ‘나는 어떻게 만화를 사랑하면서 만화를 그리는 사람으로 설 수 있었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모두 네 권에 걸쳐 수많은 만화가가 수많은 이야기를 다 다르면서 맛깔스럽게 들려줍니다. 이렇게 보면 괴짜 같고, 저렇게 보면 바보스럽고, 그렇게 보면 참말 욕심이 없는데, 도무지 언제 눈을 붙이고 쉬는지 알 길이 없도록 언제나 펜을 쥐고 종이에 새로운 이야기를 빚는 테즈카 오사무라는 사람이 일본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어린이한테 만화로 어떤 꿈을 북돋아 주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어요.


  우리가 함부로 다가설 수 없거나 섣불리 넘볼 수 없는 엄청난 일을 이룬 테즈카 오사무 님일 수 있습니다. 만화가 ‘문화’이며 ‘예술’일 뿐 아니라 ‘이야기’이고 ‘책’이라는 대목을 똑똑히 밝혀 준 테즈카 오사무 님일 수 있어요.


  여기에 하나 더 있습니다. 뒷사람한테 길을 열어 준 테즈카 오사무 님이에요. 누구나 만화가가 될 수 있다며 기운을 북돋아 주었어요. 누구나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며 손을 내밀어 주었어요. 테즈카 오사무 님은 몸져누워 숨을 거두는 날까지 손에서 펜과 종이를 놓지 않으면서 다음 작품을 마음속으로 지었대요. 싱글벙글 웃음 띤 낯으로 ‘만화를 그리는 기쁜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대요. 이리하여 이 모든 삶과 살림과 숨결을 젊은 뒷사람이 물려받아서 다 다른 수많은 만화가가 저마다 다르면서 재미나고 아름다운 만화를 그려요.


  곰곰이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선 자리에서 아름답게 일하고 기쁘게 꿈을 짓는 하루를 살자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솟는 해님을 바라보며 더욱 씩씩하게 아이들 손을 잡자고 다짐합니다. 2017.2.1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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