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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보세, 전통가옥! 2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78
나무한테 말 걸며 집짓는 마음
― 지어 보세, 전통가옥! 2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수진 옮김
미우 펴냄, 2015.6.15. 8000원
《천재 유교수의 생활》로 널리 알려진 만화가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아버지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만화를 그렸어요. ‘천재 유교수’는 참말로 있던 사람, 그러니까 ‘만화가네 아버지’라 하지요.
매우 오랫동안 유교수 이야기가 만화책으로 나오는데, 야마시타 카즈미 님은 아주 새로운 만화를 하나 선보이기도 합니다. 바로 《지어 보세, 전통가옥!》(미우,2015)입니다. 이 만화책 첫째 권에서는 만화가 한 사람이 그동안 어떻게 살다가 손수 ‘일본 옛집’을 도쿄 한복판에 땅까지 장만해서 새로 지으려 하는가 하는 마음을 밝힙니다. 둘째 권에서는 ‘집을 짓는 살림’이란 스스로 얼마나 기쁜 마음이 되는 하루인가를 들려주어요.
《지어 보세, 전통가옥!》을 읽으면서 바로 이 대목에서 가슴이 찌르르 울립니다. 그래요, 우리가 우리 보금자리가 될 터전을 손수 찾고 살피고 마련해서 기둥을 하나하나 올리고 구들을 놓고 서까래를 늘이는 까닭은 따로 있어요. 그냥 누워서 잠만 자고 밥만 먹는 집이 아니에요. 살림을 짓고 삶을 짓듯이 집을 지어요. 밥을 짓고 옷을 짓듯이 집을 짓지요. 바로 사랑을 짓고 꿈을 지으려고 집을 짓는다고 할 만합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만화. 제일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는 것 …… 혼자일 땐 필요한 부분만 점등. 가급적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밝을 동안 일을 하고 일찌감치 잠자리. 물도 조금씩, 사용할 만큼만. (18∼19쪽)
만화가 한 사람은 스스로 밝히기를 아직 철이 없다고 합니다. 꽤 오랫동안 만화만 좋아해서 만화만 그리느라 다른 것은 거의 모른다고 해요. 만화 그리기 빼고는 달리 즐기는 놀이도 없이 딱히 하는 일도 없이 지낸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마흔 넘은 나이에 ‘내 집’이라는, 아니 ‘내 보금자리’라는 데에 눈을 뜬다지요. 시멘트와 쇠붙이로 척척 맞추는 집이 아닌, ‘이 집에 깃들 사람이 앞으로 어떤 살림을 꾸리면서 어떤 하루를 누리려 하는가’를 낱낱이 따져서 나무토막 하나도 알뜰히 건사해서 짓는 집에 마음을 활짝 열었다고 합니다.
지금 임시로 살고 있는 곳의 목욕탕은 너무 넓고 조명도 많아서 촛불만 켜 보았다. 그게 은근 근사해서 이런 것도 ‘스키샤’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그 김에 서툴지만 작은 베란다 텃밭도 가꿔 봤다. 풀들이 자라는 모습을 낙으로 삼는 나날.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있던 마사지샵에는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계속 다니는 중인지라, 절약과 운동을 위해 1시간 걸려 걸어서 가 봤다. 그러다 발견한 녹음. 그것은 개인 주택의 뒷마당이거나 실개울을 재현해 놓은 곳이거나,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20∼21쪽)
《지어 보세, 전통가옥!》를 읽는 동안 몇 번이고 멈추면서 숨을 골랐습니다. 우리는 돈으로만 집을 짓지 못해요.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즐거운 우리 집”을 짓지는 못합니다. 돈이 얼마 없기에 “남이 지은 집을 빌려서 살더”라도 얼마든지 오순도순 알콩달콩 아기자기하며 “즐거운 우리 집”을 누리곤 합니다.
내 부동산 소유인 집이 아니어도 “즐거운 우리 집”이 되어요. 그리고 부동산이 아닌 보금자리를 바라면서 푼푼이 그러모은 돈으로 집터를 고르고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수 있어요. 후다닥 올려세우는 집이 아니에요. 한 땀 두 땀 손길이 깃드는 집이에요.
오타루에서 카마쿠라로 이사를 가면서 짐을 싸게 된 초등학교 6학년 봄. 저녁햇살이 비추는 두 칸짜리 방에 우두커니 서 있자니, 장지문의 낙서, 피아노와 옷장 자국, 뜯겨진 다다미의 결. 왜일까. 그 광경은 저녁노을과 겹쳐서 그 뒤 수없이 내 꿈에 나타났다. (33∼34쪽)
스키야를 지을 결심을 한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건, 일본의 나무를 사용하기 때문. 그것이 일본의 숲을 지키는 길이란 걸 알았고 또한 일본의 땅에 녹아드는 길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의 전통 기술을 계승할 자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 (51∼52쪽)
오늘날 한국에 아주 많은 아파트는 백 해는커녕 쉰 해를 버티기 어렵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분도 다 알리라 생각해요. 아무리 번듯하게 높은 건물이어도 쉰 해를 튼튼히 버틸 만할까요? 백 해쯤 되면 허물고 다시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때에 옛 아파트나 건물에 쓴 시멘트는 어떻게 될까요? 시멘트와 석고보드와 쇠붙이와 유리로 빠르게 올려세운 아파트는 쉰 해쯤 뒤에는 어떤 쓰레기를 내놓으면서 무너질까요?
먼먼 옛날부터 나무랑 흙이랑 돌이랑 풀로 지은 집은 허물고 다시 짓더라도 쓰레기가 한 줌조차 안 나와요. 흙이랑 풀은 땅으로 가고, 돌은 되씁니다. 나무는 되쓸 수 있고, 되쓸 수 없다면 땔감으로 삼아요. 게다가 옛날에는 집을 허물고 다시 짓는 사이 ‘새로운 집을 지을 적에 기둥으로 삼을 나무’가 우람하게 자랍니다.
간추려 보자면, 옛집은 늘 되살림이 깨끗하면서 아름다이 이루어진 보금자리예요. 이러면서 오랜 나날 수많은 살붙이가 얼크러지고 어우러지면서 숱한 이야기꽃이 피어난 삶자리이고요.
하지만 어떤 형식이든, 받은 땅에 감사하는 행위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땅에는 고래로부터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이 깃들어 있으니까. (97쪽)
30∼40년에 걸쳐 곧게 곧게 자라다가 심긴 지 50년 정도 기다려서 드디어 우리 집에 오는 것이니, 소중히 사용해야지. 집이 다 되면 (나무한테) 또 말을 걸어 볼까. (122쪽)
철없던 만화가에서 철든 만화가로 거듭나려는 꿈을 키우는 만화가 한 사람은 일본 옛집을 짓겠노라는 마음이 되면서 처음으로 해 보는 일이 많습니다. 차를 마시는 모임에 나가 보고, 골목을 한참 걸어 봅니다. 햇볕을 한참 마주하기도 하고, 한갓진 숲정이에서 짙푸른 그늘이 얼마나 싱그러운가를 느껴 봅니다. 그리고 나무한테 말을 걸어 보아요. ‘내가 지을 집’에 쓸 나무를 만나서 이 나무가 살아온 나날을 헤아려 보았다고 해요.
나무의 생명에 감사하고 혼을 불어넣는다. 나무의 생명을 받아서 집을 짓는다. 나무와 함께 생활하는 인간의 나무를 향한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도 마찬가지. 우린 몇 천 년이나 나무와 함께 살아왔다. (168∼169쪽)
‘짓다’라는 오랜 한국말을 새삼스레 헤아려 봅니다. 요새는 이 ‘짓다’를 제대로 쓰는 사람이 매우 줄어요. 밥이나 옷이나 집뿐 아니라 글이나 살림이나 땅이나 삶이나 꿈이나 생각 모두 짓는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나타나도록 온힘을 기울이는 몸짓이나 마음씨를 예부터 ‘짓다’로 나타냈어요.
요즈막 흐름을 보면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낸다는 결이 담긴 ‘만들다’를 아무 자리에나 쓰고 말아요. 똑같은 모습에 똑같은 시멘트덩이인 아파트를 척척 만들어서 세우지요. 이러다 보니 집을 집다이 아끼거나 건사하는 마음이 옅어지지 싶어요. 오래도록 사랑할 집이면서, 아이들이 고이 물려받을 터전이라는 마음이 못 될 적에는 보금자리가 못 되고 말아요.
가만히 보면, 일본이든 한국이든 우리 어른들이 ‘아이가 기쁘게 물려받을 만한 보금자리’인 집을 짓는다면 참말 크게 달라지리라 봅니다. 아이가 기쁘게 물려받을 만한 보금자리라면 적어도 백 해나 이백 해는 거뜬해야 할 테고, 마당도 텃밭도 딸려야 할 테지요. 나무를 심을 만한 집이어야 할 테고, 이 집에서 새로운 아기가 태어나 이쁜 살림을 더욱 살가이 지을 만해야지 싶어요.
우리가 이백 해쯤 든든한 집을 지으려 한다면 ‘건축자재’도 아무것이나 쓸 수 없어요. 한 터에서 이백 해쯤 살 생각이라면 ‘마을을 살리는 길’을 처음부터 다시 살필 만해요. 《지어 보세, 전통가옥!》을 빚는 만화가도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얻기를 바라고, 우리들 누구나 우리한테 저마다 아름다울 보금자리를 손수 지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가 손수 집을 지어서 산다면 우리 마을과 나라는 저절로 푸르게 눈부실 만하겠지요. 2017.2.1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