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2024.6.13.


헐린 제비집 : 이제 이 나라로 돌아오는 제비가 확 줄었다. 제비가 사라지면 날벌레가 어마어마하게 춤출 수밖에 없다. 제비하고 참새는 마을 곁에서 사람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파리모기에 날벌레를 엄청나게 잡으면서 이바지하는데, 갈수록 ‘서울 참새’나 ‘부산 참새’를 보기 어렵다. 예전에는 큰고장에서도 참새를 어렵잖이 만났지만, 이제는 큰고장 참새는 씨가 마른다. 시골도 참새는 씨가 마른다. 서울과 큰고장은 쇳덩이(자동차)에 잿집(아파트) 탓에 참새가 삶터를 빼앗기고서 죽어간다면, 시골에서는 풀죽임물(농약)하고 비닐 탓에 참새가 살림터를 잃고서 죽어간다. 지난날 박정희는 ‘새마을바람’이라는 허울을 앞세우면서 온나라 제비집을 마구잡이로 헐라고 부추겼다. 사람 곁에서 날벌레잡이로 이바지하던 제비가 1960∼80년대에 어마어마하게 죽어나갔다. 그리고 1980∼2000년 사이에는 쇳덩이가 무시무시하게 늘고, 오직 쇳덩이만 씽씽 달리는 까만길(아스팔트 포장도로)을 허벌나게 늘리면서 쇳덩이한테 치여죽는 새가 숱하게 늘었다. 새가 죽고 사라지면 사람도 나란히 죽고 사라지는 줄 모른다면, 종잇조각(대학교 졸업장이나 대학원 졸업장)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꾀꼬리나 할미새나 동박새나 왜가리 노랫소리를 모른다고 바보는 아니겠으나, 참새하고 제비 노랫소리를 모르거나 손수 그림으로 담을 줄 모른다면 바보라고 느낀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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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엄마 - S코믹스 S코믹스
이케베 아오이 지음, 박소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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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6.12.

만화책시렁 655


《있잖아, 엄마》

 이케베 아오이

 박소현 옮김

 소미미디어

 2023.7.5.



  아이를 낳는 마음에 사랑이 없다면, 엄마도 아빠도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아이를 돌보는 손길에 사랑이 없다면, 아빠도 엄마도 얼마나 가엾을까요. 아이를 등지거나 괴롭히는 어버이부터 안쓰럽습니다. 아이를 잊거나 안 바라보는 어른부터 딱합니다. 몸뚱이는 크고 나이는 들었어도 철이 들지 않고 얼이 서지 않았으면, 어버이도 어른도 아닌 철없개(철부지)입니다. 누구나 엄마아빠 숨결을 받아서 태어납니다. 누구나 엄마가 품에 안은 나날을 누렸기에 이 땅으로 옵니다. 나를 낳은 엄마도 아빠도 나를 팽개쳤기에, 나까지 아이를 팽개쳐야 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그분들입니다. 나는 나요, 너는 너예요.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 하루를 짓고, 오늘을 그리고, 사랑을 속삭이려 할 적에 차근차근 깨어나는 살림살이입니다. 살림자락 하나는 씨앗으로 퍼져서 생각으로 깨어납니다. 생각은 마음에서 자라나면서 꿈으로 피어납니다. 《있잖아, 엄마》는 엄마가 엄마로 잇고는 새롭게 엄마로 이으면서 천천히 둘레를 꽃뜰로 바꾸어 가는 길을 들려줍니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을 탓할 일이란 없습니다. 너랑 내가 사랑하면 넉넉합니다. 사랑을 밟으려는 놈을 미워할 까닭은 없습니다. 나하고 네가 사랑으로 보금자리를 일구면 아름답습니다.


ㅅㄴㄹ


“아이를 낳는 건 정말 힘든 일이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대. 그런 힘든 일을 극복했는데 버리긴 왜 버려?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도저히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사정 때문일 거야.” “아이를 낳는 게 그렇게 힘들구나.” “응. 난 엄마가 되고 싶어서 알아봤어.” “수녀도 엄마가 될 수 있나?” (49쪽)


“꼬마야. 가는 거니? 내가 자란 곳이야. 걱정할 필요 없어. 너에게 선물을 줄게.” “받아도 돼요? 마녀의 소중한 목걸이인데.” (96쪽)


“읽어도 모르겠어. 다른 애들처럼 술술 읽을 수도 없고. 유전일까? 엄마도 글자는 못 썼었으니까.” (106쪽)


#ねぇママ ##AoiIkebe #池?葵 


+


《있잖아, 엄마》(이케베 아오이/박소현 옮김, 소미미디어, 2023)


생활 태도도 수업 태도도 아주 양호해요

→ 살림결도 배움결도 아주 반반해요

→ 삶결도 배움새도 아주 반듯해요

21쪽


매년 수도원에 들어오는 아이가 감소하고 있군요

→ 해마다 비나리집에 들어오는 아이가 주는군요

39쪽


더 안타까운 거지. 우리 같은 독거노인들은 저런 순진한 아이를 보면

→ 더 안타깝지. 우리 같은 혼할배는 저런 곱살한 아이를 보면

→ 더 안타까워. 우리 같은 홀어른은 저런 꾸밈없는 아이를 보면

80쪽


유전일까? 엄마도 글자는 못 썼었으니까

→ 내림일까? 엄마도 글씨는 못 쓰니까

→ 물림일까? 엄마도 글씨는 못 쓰니까

106쪽


우리에겐 혈연 같은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 우리한텐 살붙이는 아무 뜻이 없습니다

→ 우리한텐 핏줄이 아무 뜻이 없습니다

115쪽


굉장하다, 폐활량이 엄청나네

→ 대단하다, 숨통이 엄청나네

→ 와, 허파가 엄청나네

117쪽


이 근처도 많이 퇴화했네

→ 이 둘레도 많이 기울었네

→ 이 마을도 많이 낡았네

137쪽


평소엔 거의 말을 안 해서 크기 조절을 잘 못 하거든요

→ 늘 거의 말을 안 해서 크기를 잘 못 맞추거든요

16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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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기 위하여 문학과지성 시인선 177
김연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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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노래책시렁 428


《詩를 쓰기 위하여》

 김연신

 문학과지성사

 1996.4.25.



  우리가 서로 들려주고 듣는 모든 말은 노래이고 가락입니다. ‘말’이란 마음을 담아낸 소리인데, 다 다른 마음을 다 다르게 느끼거나 알도록 다 다른 결로 가다듬은 터라, 높고낮은 소리에 밀고당기는 소리는 모두 새롭게 노래요 가락이에요. 나한테 들려주는 말을 가만히 들을 수 있다면, “나는 늘 노래를 듣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내가 들려주는 말을 곰곰이 새길 수 있다면, “나는 언제나 노랫가락을 펴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詩를 쓰기 위하여》를 읽으며 꽤 싱거웠습니다. 1996년이 어떤 해였나 하고 돌아봅니다. 아직 차갑고 메마른 나라였고, 배움터에서는 길잡이가 대놓고 아이들을 두들겨패던 무렵이었어요. 쇠(토큰)나 종이(표)를 내고서 버스를 타던 무렵이요, 웬만하면 누구나 걸어다니던 즈음입니다. 요즈음도 집안일을 안 하는 사내가 꽤 있는데, 지난날에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는 사내가 흔했습니다. 붓만 쥘 적에는 글을 쥐어짜게 마련입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아기를 돌보고 집살림을 건사한다면, 이 삶에서 늘 새롭게 글이 쏟아집니다. 억지로 ‘詩’를 쓰려 하니, 노래나 가락하고 멀어요. 예나 이제나 글바치는 그닥 집안일을 안 하는 듯싶습니다. 삶이 바로 말이면서 노래인 줄 배운 적이 없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연필을 깎는다. / 詩를 쓰기 위하여 / 연필이 뾰족하게 깎인다. / 연필은 뾰족한 끝으로 내 배를 지그시 찌른다. / 연필만 갂아서 詩가 써지느냐고. / 손가락을 깎으면 詩가 써지느냐고 내가 묻는다. (詩를 쓰기 위하여-연필/11쪽)


연필 끝에 분홍 실을 매어보기로 했어 / 연필은 다른 연필이 갖지 못한 장식으로 기뻐할 것 같아서 / 시인의 연필 말고 또 무엇이 자기 목에 그런 좋은 표지를 가지고 있을 수 있겠어 (詩를 쓰기 위하여-연필 2/16쪽)


詩를 써보기 위하여 저녁나절 들길을 걸어나갔지. / 바람이 지나가면서 상쾌한 마음이 차올라왔었지 / 지나간 날들이 다시 한번 뒷걸음치면서 멀어지고 (詩를 쓰기 위하여-산책/3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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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눈물은 눈물로 (2024.5.11.)

― 부산 〈카프카의 밤〉



  지난달에 이은 ‘이응모임, 이오덕 읽기 모임’ 두걸음을 폅니다.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이오덕을 읽는 눈으로 우리 마음과 살림을 읽자’는 줄거리를 들려주고 나누다가 쪽글을 슥 씁니다. 무슨 글을 써야 할는지 지난달에도 이달에도 모르겠다는 이웃님 말씀을 가만히 듣다가, “눈물이 나올 듯하다 / 오늘은 / 여기까지만 적어 본다.” 이렇게 석 줄을 그대로 옮겨도 글이자 노래(시)이고, “뭘 써야 할는지 몰라서 / ‘뭘 써야 할는지 모르겠다’ 하고 / 적었다”처럼 우리 오늘 이곳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도 넉넉히 글이자 노래라고 보탭니다.


  글은 잘 써야 하지 않고, 말은 잘 해야 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말더듬이로 살지만, 둘레에 나누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헤아려서 소리를 옮기는 말을 폅니다. 제가 쓰는 글이 얼마나 읽히는지 알 턱이 없지만, 이웃하고 나누려는 생각을 곰곰이 가다듬어서 그림으로 담는 글을 여밉니다.


  살림을 잘 해야 하지 않습니다. 살림을 하면 됩니다. 사랑을 잘 해야 하거나, 첫사랑을 이루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알아보고 맞아들이고 품어서 씨앗으로 돌보면 됩니다. 좋은 살림과 나쁜 살림이 없고, 좋은 말과 나쁜 말이 없습니다. 좋은 사랑과 나쁜 사랑이 없고, 좋은 글과 나쁜 글이 없습니다.


  살림과 사랑도, 말과 글도, 좋거나 나쁘다고 가르지 않아요. 살림을 하기에 살림이고, 사랑을 하기에 사랑입니다. 말을 하기에 말이고, 글을 쓰기에 글입니다.


  떠난 어른 이오덕 님은 우리한테 바로 이 대목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같은 말을 남기면서, “어른도 아이로 태어나서 어린이로 자랐으니, 어린이하고 똑같이 시인이다” 같은 말씀을 남겼다고 느껴요.


  눈물이 나는 말은 눈물을 그대로 옮기니 노래입니다. 아이하고 함께 읽을 책을 먼저 즐겁게 읽는다면, 아이는 저절로 어버이랑 함께 즐겁게 책을 폅니다. 아이하고 함께 지을 살림을 즐겁게 가꾸면, 아이는 언제나 스스럼없이 어버이 곁에 나란히 살림짓는 손길을 펴면서 사랑으로 빛납니다.


  우리가 어른이나 어버이라고는 하더라도, 막상 스스로 먼저 이슬받이라는 길을 안 간다면, 아이들이 책을 싫어하거나 살림하고 등져요. 들에서는 들풀이고, 숲에서는 숲풀이에요. 우리 보금자리에서는 보금빛이요 보금사랑이면서 보금글과 보금책입니다. 꾸미지 않으려 하면, 꾸리고 가꾸고 일굽니다.


  어미새는 새끼새한테 사랑·살림。숲을 삶으로 물려주려고 온마음을 기울입니다. 낳은 아이랑 이웃집 아이를 모두 사랑으로 마주한다면, 누구나 늘 아름답습니다.


ㅅㄴㄹ


《노랑의 미로》(이문영, 오월의봄, 2020.5.18.)

《실험이 땡긴다》(이나무, 그린유니버시티, 2024.3.15.)

《산복도로 골목을 품다》(수정4동 르네상스 주민협의회, 갤러리수정, 2018.11.15.)

《연산동 300-17》(은성군, 은성군, 2023.11.)

《안녕 주정뱅이》(권여선, 창비, 2016.5.16.)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이오덕 엮음, 양철북, 2018.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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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나무가 자랄 틈 (2024.5.11.)

― 부산 〈책방 감〉



  나무가 없으면 새가 없습니다. 매캐하고 시끄러운 큰고장이어도 잿빛(시멘트)하고 까망(아스팔트)으로만 덮으면 모든 사람이 숨막힙니다. 아무리 들숲과 논밭을 밀어내어 잿더미(아파트)를 죽죽 올리더라도 시늉으로 나무를 심습니다. 새마을(신도시)이 열 해나 스무 해를 지나면, ‘시늉박이 나무’도 어느 만큼 줄기가 굵어요. 서른 해나 마흔 해를 넘기면, 바야흐로 ‘마을나무’로 거듭납니다.


  책집을 들르려고 ‘부산교대나루’로 곧잘 오갔으나, 이 둘레에 열린배움터가 있다고는 느끼지 않았어요. 오직 책집만 바라보았거든요. 〈책방 감〉을 찾아가면서 둘러보니 부산교대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책집 바로 건너가 부산교대로군요.


  배움터를 드나드는 사람은 책집이 곁에 있는 줄 알까요, 모를까요? 모든 책은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오고, 우리가 마시는 물도 멧숲에서 샘솟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도, 우리가 입는 옷도, 멧숲이 있기에 비로소 누립니다.


  종이꾸러미만 펼 적에는 배움길하고 멉니다. 종이를 마련하기까지 어떤 길을 거치는지 헤아리고 살피고 가눌 적에 배움길이지 싶습니다. 종이에 적힌 글씨만 읽거나 외운들 배움길하고 멀지요. 붓 한 자루를 묶기까지 어떤 살림을 짓는지 돌아보고 짚고 가꿀 적에 배움길이라고 느낍니다.


  수박 이야기를 그리고 싶으면, 가게 시렁에 놓인 수박만 쳐다보지 말고, 수박이 자라나면서 맞이하는 해바람비를 들판에서 함께 품을 노릇입니다. 어린이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어린배움터 둘레에서 그치지 말고, 어린이가 신나게 누리면서 일굴 아름누리와 들숲바다를 같이 품을 노릇입니다.


  늦봄 한낮을 〈책방 감〉에서 보냅니다. 다 다른 목소리가 다다를 곳이 가만가만 고즈넉이 숲빛이기를 바라면서 여러 책을 읽습니다. 이렁저렁 한 꾸러미를 살피고서 다시 부산교대로 들어갑니다. 커다란 나무 곁에 걸상이 있습니다. 걸상에 앉아서 눈을 감습니다. 돈(경제적 이익)보다는 마음(문화적 이익)을 헤아리고 싶기에, 품과 길삯(차비)을 들여서 마을책집으로 사뿐히 찾아가서 깃듭니다. 누구나 돈보다 살림을 그리면서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뜻이라면 살림책을 손에 쥐겠지요.


  배우는 사람은 나이가 안 듭니다. 배우기에 철이 듭니다. 안 배우기에 나이가 듭니다. 안 배우니 철이 안 듭니다. 나이듦이란 늙음이요, 늙음이란 죽음길이요, 죽음길이란 스스로 판 수렁입니다. 철듦이란 어짊이요, 어짊이란 어른길이요, 어른길이란 얼이 차오르면서 스스로 빛나는 사랑입니다.


  나무가 자랄 틈이 있어야 숲입니다. 아이가 자랄 틈을 열어야 마을입니다.


ㅅㄴㄹ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2016.1.18.)

《자연에 이름 붙이기》(캐럴 계속 윤/정지인 옮김, 윌북, 2023.10.11.첫/2023.11.20.3벌)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김도환, 책세상, 2012.3.25.첫/2013.6.30.))

《사랑을 찾기 위하여》(박주관, 학민사, 1989.8.30.)

《김종란의 시와 산문》(김종란, 드림, 2009.12.15.)

《익살꾼 성자 나스룻딘》(이드리스 샤아 엮음/이아무개 옮김, 드림, 2010.10.1.)

《북아뜨리에 20 알베르 까뮈》(쟝 그르니에/이재형 옮김, 고려원, 1987.12.15.)

《형자와 그 옆사람》(김채원, 창, 1993.12.17.)

《오늘도 핸드메이드! 2》(소영, 비아북, 2017.11.1.)

《天皇과 免罪符》(김문숙, 지평, 1994.11.20.)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이상업, 소명출판, 2016.11.20.)

《왕자와 거지》(마크 트웨인/이희재 옮김, 시공주니어, 2002.4.15.첫/2014.4.5.40벌)

《그 책은》(요시타케 신스케·마타요시 나오키/양지연 옮김, 김영사, 2023.6.2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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