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나무가 자랄 틈 (2024.5.11.)

― 부산 〈책방 감〉



  나무가 없으면 새가 없습니다. 매캐하고 시끄러운 큰고장이어도 잿빛(시멘트)하고 까망(아스팔트)으로만 덮으면 모든 사람이 숨막힙니다. 아무리 들숲과 논밭을 밀어내어 잿더미(아파트)를 죽죽 올리더라도 시늉으로 나무를 심습니다. 새마을(신도시)이 열 해나 스무 해를 지나면, ‘시늉박이 나무’도 어느 만큼 줄기가 굵어요. 서른 해나 마흔 해를 넘기면, 바야흐로 ‘마을나무’로 거듭납니다.


  책집을 들르려고 ‘부산교대나루’로 곧잘 오갔으나, 이 둘레에 열린배움터가 있다고는 느끼지 않았어요. 오직 책집만 바라보았거든요. 〈책방 감〉을 찾아가면서 둘러보니 부산교대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책집 바로 건너가 부산교대로군요.


  배움터를 드나드는 사람은 책집이 곁에 있는 줄 알까요, 모를까요? 모든 책은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오고, 우리가 마시는 물도 멧숲에서 샘솟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도, 우리가 입는 옷도, 멧숲이 있기에 비로소 누립니다.


  종이꾸러미만 펼 적에는 배움길하고 멉니다. 종이를 마련하기까지 어떤 길을 거치는지 헤아리고 살피고 가눌 적에 배움길이지 싶습니다. 종이에 적힌 글씨만 읽거나 외운들 배움길하고 멀지요. 붓 한 자루를 묶기까지 어떤 살림을 짓는지 돌아보고 짚고 가꿀 적에 배움길이라고 느낍니다.


  수박 이야기를 그리고 싶으면, 가게 시렁에 놓인 수박만 쳐다보지 말고, 수박이 자라나면서 맞이하는 해바람비를 들판에서 함께 품을 노릇입니다. 어린이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어린배움터 둘레에서 그치지 말고, 어린이가 신나게 누리면서 일굴 아름누리와 들숲바다를 같이 품을 노릇입니다.


  늦봄 한낮을 〈책방 감〉에서 보냅니다. 다 다른 목소리가 다다를 곳이 가만가만 고즈넉이 숲빛이기를 바라면서 여러 책을 읽습니다. 이렁저렁 한 꾸러미를 살피고서 다시 부산교대로 들어갑니다. 커다란 나무 곁에 걸상이 있습니다. 걸상에 앉아서 눈을 감습니다. 돈(경제적 이익)보다는 마음(문화적 이익)을 헤아리고 싶기에, 품과 길삯(차비)을 들여서 마을책집으로 사뿐히 찾아가서 깃듭니다. 누구나 돈보다 살림을 그리면서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뜻이라면 살림책을 손에 쥐겠지요.


  배우는 사람은 나이가 안 듭니다. 배우기에 철이 듭니다. 안 배우기에 나이가 듭니다. 안 배우니 철이 안 듭니다. 나이듦이란 늙음이요, 늙음이란 죽음길이요, 죽음길이란 스스로 판 수렁입니다. 철듦이란 어짊이요, 어짊이란 어른길이요, 어른길이란 얼이 차오르면서 스스로 빛나는 사랑입니다.


  나무가 자랄 틈이 있어야 숲입니다. 아이가 자랄 틈을 열어야 마을입니다.


ㅅㄴㄹ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2016.1.18.)

《자연에 이름 붙이기》(캐럴 계속 윤/정지인 옮김, 윌북, 2023.10.11.첫/2023.11.20.3벌)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김도환, 책세상, 2012.3.25.첫/2013.6.30.))

《사랑을 찾기 위하여》(박주관, 학민사, 1989.8.30.)

《김종란의 시와 산문》(김종란, 드림, 2009.12.15.)

《익살꾼 성자 나스룻딘》(이드리스 샤아 엮음/이아무개 옮김, 드림, 2010.10.1.)

《북아뜨리에 20 알베르 까뮈》(쟝 그르니에/이재형 옮김, 고려원, 1987.12.15.)

《형자와 그 옆사람》(김채원, 창, 1993.12.17.)

《오늘도 핸드메이드! 2》(소영, 비아북, 2017.11.1.)

《天皇과 免罪符》(김문숙, 지평, 1994.11.20.)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이상업, 소명출판, 2016.11.20.)

《왕자와 거지》(마크 트웨인/이희재 옮김, 시공주니어, 2002.4.15.첫/2014.4.5.40벌)

《그 책은》(요시타케 신스케·마타요시 나오키/양지연 옮김, 김영사, 2023.6.2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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