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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기 위하여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177
김연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4월
평점 :
품절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노래책시렁 428
《詩를 쓰기 위하여》
김연신
문학과지성사
1996.4.25.
우리가 서로 들려주고 듣는 모든 말은 노래이고 가락입니다. ‘말’이란 마음을 담아낸 소리인데, 다 다른 마음을 다 다르게 느끼거나 알도록 다 다른 결로 가다듬은 터라, 높고낮은 소리에 밀고당기는 소리는 모두 새롭게 노래요 가락이에요. 나한테 들려주는 말을 가만히 들을 수 있다면, “나는 늘 노래를 듣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내가 들려주는 말을 곰곰이 새길 수 있다면, “나는 언제나 노랫가락을 펴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詩를 쓰기 위하여》를 읽으며 꽤 싱거웠습니다. 1996년이 어떤 해였나 하고 돌아봅니다. 아직 차갑고 메마른 나라였고, 배움터에서는 길잡이가 대놓고 아이들을 두들겨패던 무렵이었어요. 쇠(토큰)나 종이(표)를 내고서 버스를 타던 무렵이요, 웬만하면 누구나 걸어다니던 즈음입니다. 요즈음도 집안일을 안 하는 사내가 꽤 있는데, 지난날에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는 사내가 흔했습니다. 붓만 쥘 적에는 글을 쥐어짜게 마련입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아기를 돌보고 집살림을 건사한다면, 이 삶에서 늘 새롭게 글이 쏟아집니다. 억지로 ‘詩’를 쓰려 하니, 노래나 가락하고 멀어요. 예나 이제나 글바치는 그닥 집안일을 안 하는 듯싶습니다. 삶이 바로 말이면서 노래인 줄 배운 적이 없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연필을 깎는다. / 詩를 쓰기 위하여 / 연필이 뾰족하게 깎인다. / 연필은 뾰족한 끝으로 내 배를 지그시 찌른다. / 연필만 갂아서 詩가 써지느냐고. / 손가락을 깎으면 詩가 써지느냐고 내가 묻는다. (詩를 쓰기 위하여-연필/11쪽)
연필 끝에 분홍 실을 매어보기로 했어 / 연필은 다른 연필이 갖지 못한 장식으로 기뻐할 것 같아서 / 시인의 연필 말고 또 무엇이 자기 목에 그런 좋은 표지를 가지고 있을 수 있겠어 (詩를 쓰기 위하여-연필 2/16쪽)
詩를 써보기 위하여 저녁나절 들길을 걸어나갔지. / 바람이 지나가면서 상쾌한 마음이 차올라왔었지 / 지나간 날들이 다시 한번 뒷걸음치면서 멀어지고 (詩를 쓰기 위하여-산책/3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