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는 영혼 - 내면의 자유를 위한 놓아 보내기 연습
마이클 싱어 지음, 이균형 옮김, 성해영 감수 / 라이팅하우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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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62



언제나 아름다운 마음

― 상처받지 않는 영혼

 마이클 A. 싱어 글

 이균형 옮김

 라이팅하우스 펴냄, 2014.5.8.



  내 마음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내 마음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예요. 내 마음은 언제나 안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내 마음이 안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이 나를 바라보며 ‘너는 참 아름답네’ 하고 말해야 내가 아름답지 않습니다. 남이 나를 바라보며 ‘너는 참 안 아름답네’ 하고 말하더라도 내가 안 아름답지 않아요.


  내 모습은 내가 짓습니다. 내 삶은 내가 짓습니다. 내 길은 내가 짓습니다. 남이 짓는 내 모습이 아닙니다. 남이 짓는 내 삶이 아닙니다. 남이 짓는 내 길이 아닙니다. 스스로 지어서 누리는 모습이고 삶이며 길입니다.



.. 우리는 외부의 에너지를 연구하고 에너지 자원을 매우 중요시하면서 내부의 에너지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한평생 느끼고 행동하지만 무엇이 그런 활동이 일어나게 하는지 모르고 있다 … 당신은 내부에 아름다운 에너지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 열려 있을 때 당신은 그것을 느낀다. 닫혀 있을 때는 그것을 못 느낀다 … 선명하게 지켜보고 있기만 하면 당신은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  (75, 80, 131쪽)



  꽃한테 곱다고 자꾸 말을 걸면, 꽃은 한결 곱게 피어납니다. 내 동무와 이웃한테 ‘참 곱네요’ 하고 말을 걸면, 또 마음속으로 ‘참 고우시네요’ 하고 생각을 하면, 내 동무와 이웃은 차츰 고운 빛으로 거듭납니다. 이와 똑같습니다. 스스로 말을 걸면 돼요. 내가 나한테 ‘나는 참 곱구나’ 하고 말을 걸면, 또 마음속으로 ‘나는 얼마나 고운 사람인가’ 하고 생각을 하면, 나는 날마다 차츰 고운 빛으로 거듭납니다.


  지구별한테 말을 걸어 보셔요. 우리 지구별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 하고 말을 걸어 보셔요. 하늘을 보며 말을 걸어 보셔요. 별도 달도 해도 구름도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 하고 말을 걸어 보셔요.


  틀림없이 달라집니다. 내가 거는 말 한 마디가 조그마한 씨앗이 됩니다. 내가 들려주는 말마디가 자그마한 사랑이 됩니다. 내가 읊는 이야기가 작디작으나 어여쁘게 빛납니다.



.. 가슴은 창조의 걸작품 중 하나이다. 그것은 엄청난 악기이다. 그것은 피아노나 현악기나 플루트 등의 아름다운 소리를 훨씬 능가하는 진동과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 삶과 씨름하지 않고 삶이 주는 선물을 기꺼이 경험하면 당신은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건드려질 것이다 … 중심을 잡지 못하면 의식은 그저 무엇이든 주의를 끄는 것에 딸려 간다 ..  (88, 101, 112쪽)



  마이클 A. 싱어 님이 쓴 《상처받지 않는 영혼》(라이팅하우스,2014)을 읽습니다. ‘다치지 않는 넋’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아프지 않는 마음’을 노래하는 책입니다.


  내 넋이 다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내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나요? 아무렴. 그렇지요. 스스로 아름답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사랑하면 돼요. 스스로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품고 아름다움을 늘 떠올리면 돼요.


  아름다운 넋은 다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은 남을 다치게 하지 않으니, 스스로 다칠 일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은 아프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은 남을 아프게 하지 않기에, 스스로 아플 일이 없습니다.



..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으면 일상의 일들이 불가피하게 그것을 건드린다 … 삶은 당신을 가장자리로 밀어붙이는 상황들을 일으킨다. 그것은 모두가 당신 속에 걸려 있는 것들을 제거해 주기 위한 것이다 … 그 짓을 왜 하는지를 정말 알고 싶다면 그 짓을 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면 된다 … 철창은 꼭 철창처럼 생겨야만 하는 게 아니다. 불편에 대한 두려움으로도 철창을 만들 수 있다 ..  (127, 201, 206쪽)



  언뜻 보기에 바보스럽다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말이나 몸짓이나 생각이 바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왜 바보스러울까요. 처음부터 바보스럽게 태어났기 때문일까요. 둘레에서 자꾸 바보스럽다고 말하기 때문일까요. 스스로 바보스럽네 하고 되뇌기 때문일까요.


  아무래도 바보짓을 하면 바보스럽다는 말이 나옵니다. 바보짓을 할 적마다 따사롭게 타이르는 이웃이 없으니 바보짓에서 못 헤어날는지 모릅니다. 바보짓을 하더라도 둘레에서 너그러이 받아들이면서 다독이면 앞으로는 고운 짓을 할는지 몰라요.


  곰곰이 살펴보면 우스꽝스럽다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말도 몸짓도 생각도 우스꽝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왜 우스꽝스러울까요. 처음부터 우스꽝스럽게 태어났기 때문인가요. 옆에서 으레 우스꽝스럽다고 말하기 때문인가요. 스스로 우스꽝스럽네 하고 읊기 때문인가요.


  어쩌면 자꾸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니 우스꽝스럽다는 말이 나올 수 있어요.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더라도 포근하게 감싸는 이웃이 없으니 우스꽝스러움에서 못 벗어날는지 모릅니다. 우스꽝스럽더라도 둘레에서 가만가만 보듬으면 앞으로는 예쁜 짓으로 달라질는지 몰라요.



.. 당신이 가지고 있는 좋아함과 싫어함에 대한 고정관념에다 사람들을 끼워 맞추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인간관계가 아주 수월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 신은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어떨까? 신은 사랑이라면? 진정한 사랑은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사랑은 대상 속에서 오로지 아름다움밖에 보지 않는다 … 태양을 보라. 태양이 성자는 다른 사람보다 더 밝게 비춰 주는가? 성자는 숨 쉴 공기를 더 많이 받는가? 비가 이웃집 나무에 더 많이 내리는가 ..  (252, 289, 292쪽)



  잘할 수 있고 잘못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잘할 수 있고 한 번 잘못할 수 있습니다. 잘하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잘못하기에 엉터리이지 않습니다. 잘할 적에 차분하면서 즐겁게 웃으면 되고, 잘못할 적에 곰곰이 되새기면서 빙그레 웃으면 됩니다.


  물잔이나 밥그릇을 아이가 떨어뜨려 깰 수 있어요. 그래, 물잔을 깼구나. 밥그릇을 깼구나. 잘디잔 조각이 방바닥에 흩어졌으니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렴. 깨진 잔은 치우자. 깨진 밥그릇을 치워야겠네.


  아이들은 일부러 떨어뜨려서 깨지 않습니다. 아차 하는 사이에 미끄러집니다. 힘이 모자라 그만 놓칩니다. 게다가 어른도 미끄러뜨리면서 물잔이나 밥그릇을 깨곤 해요. 아이만 물잔이나 밥그릇을 깨지 않습니다.


  올해에 꽃이 많이 피고, 열매가 그득 달릴 수 있습니다. 올해에 드센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꽃이 많이 떨어지고, 열매도 안 익은 채 죄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해가 따사롭게 비추는 날이 있습니다. 해가 구름에 가리는 날이 있습니다. 바람이 보드라운 날이 있습니다. 바람이 거센 날이 있습니다.


  어떻게 바라보면 될까요. 내 삶을 어떻게 가꾸면 될까요. 어떻게 마음에 담으면 될까요. 내 길을 어떻게 걸으면 될까요. 어렵게 보면 어렵고, 즐겁게 보면 즐겁습니다. 넉넉하게 보면 넉넉하고, 기쁘게 보면 기쁩니다. 4347.5.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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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마실을 하며 읽는 책



  두 아이를 데리고 읍내마실을 한다. 마을 어귀로 아이들과 달린다. 11시 15분 버스인데 벌써 11시 20분이다. 설마 벌써 지나가지 않았겠지 하고 생각하며 숨을 돌리니, 언덕 너머로 버스 소리 부릉부릉 난다. 히유, 버스를 곧바로 타는구나. 읍내에 닿아 먼저 우체국에 들른다. 살림돈을 찾는다. 작은아이 손을 잡고 가게로 걸어간다. 큰아이는 더러 손을 잡다가 혼자 달리다가 한다. 가방에 먹을거리를 가득 담고 종이상자 하나를 얻어 끈으로 묶는다. 천가방을 쓰기보다는 종이상자를 얻어서 담으면 나르기에 한결 낫다. 아무래도 천가방은 길바닥 아무 데나 내려놓지 못하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한 시간 반 뒤에 있다. 집까지는 안 가지만 이웃마을 앞으로 지나가는 버스는 삼십 분 뒤에 있다. 이웃마을에서 내려 집으로 삼십 분쯤 걸어가자고 생각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읍내 편의점 앞에서 쉬기로 한다. 편의점 앞에는 앉을 자리가 있다. 과자 한 봉지를 뜯는다. 아이들이 얌전히 먹는다. 이동안 가방에서 이문구 님 동시집을 꺼내어 읽는다. 오늘은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다니자 생각하며 책을 챙겼다. 빠듯하게 움직이면 아이도 나도 힘들다.


  동시집을 ⅓ 읽고 덮는다. 이만큼 읽었으면 좋지. 아버지가 다리를 쉬며 책을 읽을 틈을 내주니 고맙고, 아이들이 기운을 새롭게 차리니 반갑다.


  읍내 버스역으로 간다. 버스표를 끊는다. 아이 둘을 나란히 앉히고 나도 옆에 엉덩이를 걸친다. 세 사람이 함께 앉는다. 버스가 움직인다.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읍내를 벗어나니 들바람이 싱그럽다. 큰아이가 먼저 스르르 잠들고, 작은아이가 뒤따라 잠든다. 고즈넉하다. 4347.5.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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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마음



  아이들과 함께 수없이 다시 보는 영화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푹 빠져들 만하기에 수없이 다시 보는 영화일 텐데, 문득 이 영화가 왜 이렇게 마음을 사로잡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영화를 감도는 줄거리뿐 아니라 노래가 참으로 좋기 때문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1960년대에 일본에서 〈우주소년 아톰〉을 만화영화로 처음 만든 데즈카 오사무 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은 〈아톰〉을 만화영화로 만들면서 이 만화영화에 흐르는 노래를 담으려고 오케스트라를 불렀다고 해요. 둘레에서는 다들 ‘미쳤다’고 말했대요. 오케스트라를 불러서 만화영화 주제노래나 배경노래를 담으면 돈이 많이 들어서 손해를 본다고 했대요. 그렇지만 데즈카 오사무 님은 끝까지 이녁 생각을 밀어붙여서 오케스트라가 그때그때 들려주는 노래를 사이사이에 담았다고 합니다.


  2000년대를 지나 2010년대에는 만화영화이든 영화이든 주제노래나 배경노래를 그야말로 마음을 많이 써서 담습니다. 참말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노래를 담습니다. 손꼽히는 노래꾼이 나와서 노래를 불러요. 줄거리 못지않게 노래와 소리를 알뜰살뜰 담아서 보여주려고 힘써요.


  시골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포뇨〉를 보고 〈아톰〉을 봅니다. 〈기타로〉를 보고 〈마루코짱〉을 봅니다. 〈하이디〉를 보고 〈삐삐〉를 봅니다. 아이들과 즐겁게 다시 보는 온갖 영화를 살피니 한국 만화영화나 영화는 얼마 없습니다. 〈하니〉를 곧잘 다시 보지만, 〈하니〉를 빼고는 한국 만화영화는 거의 안 보지 싶어요. 이런 영화와 저런 만화영화를 헤아리니, 영화에 흐르는 줄거리뿐 아니라 노래가 아름다운 작품을 함께 보는구나 싶습니다. 이야기를 읽고, 노래를 읽으면서, 삶을 만나고, 사랑을 느낍니다. 4347.5.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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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꽃이 피는 달


  삼월에는 삼월꽃이 핍니다. 사월에는 사월꽃이 핍니다. 오월에는 오월꽃이 피어요. 그리고 유월에는 유월꽃이 피어요. 그러면 칠월에도 꽃이 필까요? 그럼요, 칠월에도 꽃이 핍니다. 팔월에는 어떤 꽃이 필까요? 팔월에도 온갖 꽃이 피는데, 팔월꽃 가운데 가장 눈부신 꽃이라면 아무래도 벼꽃이지 싶어요. 한겨레가 아침저녁으로 먹는 쌀밥이 되어 주는 벼알에 돋는 벼꽃이 있어요.

  오월에 찔레꽃이 핍니다. 찔레꽃이 피는 옆으로 들딸기와 멧딸기가 익습니다. 하얀 꽃빛과 빨간 알빛이 사랑스레 어우러집니다. 딸기넝쿨에 돋은 가시에 긁히고 찔레나무에 돋은 가시에 찔리면서 딸기알을 톡톡 땁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찔레꽃이 피고 딸기알이 굵는 오월은 보릿고개입니다. 오월 들판을 바라보면 보리알이 굵지만 아직 익지는 않아요. 오월 끝무렵이나 유월이 되어야 비로소 보리를 거둘 테니, 찔레와 딸기는 배고픈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고마운 들밥이 되었으리라 느껴요.

  오월에 피는 여러 가지 꽃 가운데 감자꽃이 있습니다. 감자를 느즈막하게 심었으면 유월에 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뉴월에 피어나는 감자꽃이라고 할 만해요. 일찍 심으면 오월꽃으로 만나고, 늦게 심으면 유월꽃으로 마주합니다.

  동시집 《감자꽃》(창비,1995)을 읽어 봅니다.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감자꽃).” 하고 노래하는 이야기가 깃든 동시집입니다. 《감자꽃》이라는 동시집을 내놓은 분은 권태응 님이고, 1918년에 태어나 1951년에 숨을 거둡니다. 일제강점기에 독서회 일로 붙잡혀 한 해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고, 감옥에서 폐결핵에 걸려 옥살이를 마친 뒤에도 몸이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예 서른네 살 나이로 일찌감치 흙으로 돌아갑니다.

  권태응 님은 아픈 몸으로 동시를 썼어요. “키가 너무 높으면, / 아기들 올라가다 떨어질까 봐, / 키 작은 땅감나무 되었답니다(땅감나무).” 하는 노래를 아픈 몸으로 꾹꾹 눌러서 썼어요.

  어떤 마음일까요. 아픈 몸으로 쓰는 동시 한 줄은 어떤 마음이 깃든 노래일까요. 어떤 꿈일까요. 아픈 몸이지만 씩씩하게 쓰고 또 쓴 동시 한 줄은 어떤 꿈이 담긴 사랑일까요.

  “영남에 살아도 우리 동무. / 평안에 살아도 우리 동무(우리 동무).” 같은 노래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노래는 동시라는 이름이 붙으니 동시라고 할 테지만, 동시이기 앞서 시입니다. 동시나 (어른)시라고 하기 앞서 노래입니다. 노래라고 하기 앞서 삶이고 사랑입니다.

  해방 언저리와 한국전쟁 앞뒤로는 ‘영남과 평안’을 말할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그무렵 우리 겨레는 남녘과 북녘으로 갈린 채 다투어야 했거든요. 그러나, 남북으로 갈린 채 다툰 이는 시골사람이 아닙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던 사람은 서로 다투지 않아요.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이 다툽니다. 총을 든 군인이 다툽니다. 칼을 찬 경찰이 다툽니다. 머리띠를 두른 지식인이 다툽니다.

  왜 남녘과 북녘으로 갈라서 다투어야 할까요? 남녘과 북녘으로 갈라서 다투니, 남녘은 남녘대로 영남과 호남으로 또 갈라서 다투는 틀이 생기지 않을까요. 북녘에서도 평안과 함경으로 또 갈라서 다투는 틀이 생기지 않나요. 남녘과 북녘으로 갈라서 다툰다면, 한국과 중국과 일본으로 갈라서 다시금 다투어야 합니다. 지구별에 평화가 아닌 전쟁만 감돕니다.

  “북쪽 동무들아 / 어찌 지내니? / 겨울도 한 발 먼저 찾아왔겠지. // 먹고 입는 걱정들은 / 하지 않니? / 즐겁게 공부하고 / 잘들 노니(북쪽 동무들)?” 하고 부르는 노래를 생각합니다. 참말 이러한 이야기를 동시로뿐 아니라 노래로 부르면서 생각합니다. 겨울이 한 발 먼저 찾아오는 북쪽에서 살아가는 동무한테 마음을 씁니다. 봄이 한 발 먼저 찾아오는 남쪽에서 살아가는 동무한테 마음을 기울입니다. 서로 어깨동무할 삶에 마음을 둡니다.

  문학은 언제나 삶을 그립니다. 어른문학도 어린이문학도 언제나 삶을 그립니다. 서로 아름답게 살아갈 나날을 그리는 문학입니다. 함께 사랑하고 돌보며 어깨를 겯을 삶을 그리는 문학입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문학입니다. 오월에 오월꽃이 피어나듯, 오월에는 오월을 밝히는 숨결을 담는 문학입니다. 찔레꽃을 노래하고 감자꽃을 노래합니다. 고추꽃을 노래하고 오이꽃을 노래합니다. 감꽃을 노래하고 창포꽃이랑 붓꽃을 노래해요. 앙증맞도록 조그맣지만 올망졸망 돋는 돌나물 노란 꽃송이를 노래합니다.

  오월에는 장미꽃도 피어요. 소담스럽게 봉오리를 벌린 장미꽃을 노래하다가, 오월에 마지막으로 꽃송이 벌리면서 작은 꽃빛을 베푸는 봄까지꽃을 노래합니다. 봄까지꽃 옆에서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는 괭이밥꽃을 노래해요. 괭이밥꽃 곁에는 토끼풀꽃이 있습니다. 토끼풀꽃 둘레에는 또 무슨 꽃이 있을까요? 토끼풀꽃 둘레에서 피고 지는 들꽃을 얼마나 느끼거나 마주할 수 있는가요?

  동시집 《감자꽃》을 새롭게 읽습니다. 우리 집 일곱 살 아이는 곧잘 이 동시집을 펼쳐서 가락을 스스로 지어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사다리를 타고서 한층 두층 / 언니 따라 지붕에 올라갑니다. / 박덩이 뒹굴대는 한옆에다 / 빨강 고추 흰 박고지 널어 놓아요(가을 지붕).”와 같은 노래는 어떻게 부를 만할까 생각에 잠깁니다. 풀로 이은 지붕이기에 예부터 어느 시골마을에서나 박꽃을 보고 박알을 얻으며 박고지를 말립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 훑고 지나간 시골마을 어디에나 풀지붕은 없습니다. 아직도 많이 남은 새마을운동 슬레트지붕입니다. 새마을운동은 멈추었어도 새마을 깃발은 오늘날에도 펄럭여, 시골집마다 시멘트기와지붕이며 양철지붕입니다. 슬레트와 시멘트와 양철로 얹은 지붕에는 박넝쿨이 뻗지 못하고, 박꽃이 피지 못하며, 박알을 맺지 못해요.

  오월은 달력에 적힌 숫자로 ‘5’이 아닙니다. 사월도 ‘4’이 아니고, 유월도 ‘6’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도 달력에 적힌 몇 월 몇 일이라는 숫자가 아닙니다. 새롭게 뜨는 해와 함께 밝게 흐르는 하루입니다. 새롭게 부는 바람과 함께 맑게 흐르는 하루입니다. 마음에 먼저 꽃이 필 적에 들과 숲과 길에서 피는 꽃을 알아봅니다. 마음에 먼저 사랑이 자랄 적에 이웃과 동무한테 사랑스럽게 말을 건넵니다. 마음에 먼저 웃음이 솟을 적에 아침을 웃음노래로 열고 저녁을 웃음빛으로 닫습니다.

  꽃이 피는 달에 꽃을 생각합니다. 열매가 맺는 달에 열매를 생각합니다. 개구리가 노래하는 날에 개구리를 생각하고, 아이들이 웃고 뛰노는 날에 아이들과 함께 얼크러집니다. 4347.5.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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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이 두 아이를 사랑한다. 두 아이는 저마다 풀꽃 두 송이를 사랑한다. 풀꽃 두 송이는 열매를 여럿 맺는다. 열매는 이윽고 톡 떨어져 너른 터에서 새로운 풀꽃으로 자란다. 새롭게 자라는 풀꽃은 자꾸자꾸 퍼지고, 싱그러운 풀잎이나 풀줄기는 맛난 나물이 된다. 삶이 흐르고 이야기가 감돈다. 한 사람한테서 샘솟은 사랑은 차츰차츰 깊고 넓어지면서 골고루 퍼진다. 골고루 퍼진 사랑은 다시금 우리한테 돌아온다. 숫자란 무엇일까. 숫자는 얼마나 세야 할까. 백 해를 살아온 등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송이 갯수를 누가 셀 수 있을까. 오백 해를 살아온 느티나무에 맺는 꽃송이 갯수를 누가 셀 수 있을까. 사람들 가슴에서 자라는 사랑도 숫자로 셀 수 없다. 아름다운 웃음과 꿈도 숫자로 가눌 수 없다. 삶을 읽고 사랑을 누리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4347.5.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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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속 이야기
안노 마사이치로 글, 안노 미츠마사 그림, 박정선 옮김, 김성기 감수 / 비룡소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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