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도편추방



 도편추방의 의미가 변질되면서 → 토막글씨라는 뜻이 빛바래면서

 도편추방제의 희생이 되었다 → 조각쫓기 먹잇감이 되었다


도편추방(陶片追放) : [역사] 고대 도시 국가 아테네에서, 시민 투표를 통하여 장차 참주(僭主)가 되려는 야심가를 가려내어 나라 밖으로 추방하던 제도. 도자기 파편에 그 이름을 적어 내도록 한 비밀 투표로, 육천 표가 넘는 자는 십 일 이내에 아테네를 떠나 십 년간 외지에서 지내야 했으나 그 사람의 재산권은 유지되었다 = 도편추방제

도편추방제(陶片追放制) : [역사] 고대 도시 국가 아테네에서, 시민 투표를 통하여 장차 참주(僭主)가 되려는 야심가를 가려내어 나라 밖으로 추방하던 제도. 도자기 파편에 그 이름을 적어 내도록 한 비밀 투표로, 육천 표가 넘는 자는 십 일 이내에 아테네를 떠나 십 년간 외지에서 지내야 했으나 그 사람의 재산권은 유지되었다 ≒ 도편추방·오스트라시즘·오스트라키스모스



  ‘도편추방·도편추방제’처럼 옮겨서 쓰는 먼나라 이야기인데, 우리는 여러 낱말을 헤아리면서 ‘사금파리쫓기·사금파리내침·사금파리벼랑’이나 ‘조각쫓기·조각내침·조각벼랑’이나 ‘비늘쫓기·비늘내침·비늘벼랑’처럼 나타낼 만합니다. 또는 ‘사금파리글·사금파리글씨·사금파리적기’나 ‘조각글·조각글씨·조각적기’라 할 수 있습니다. ‘비늘글·비늘글씨·비늘적기’나 ‘도막글·도막글씨·도막노래·도막얘기’라 해도 됩니다. ‘토막글·토막글씨·토막노래·토막얘기’라 할 만하지요. ‘잎글·잎글씨·잎쪽·잎쪽글·잎쪽글씨’나 ‘잎새글·잎새글씨·잎새쪽·잎새쪽글·잎새쪽글씨’로 나타내어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독재자가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도편 추방제라는 제도를 시행했어요

→ 망나니를 막으려고 조각쫓기를 했어요

→ 만무방을 막고자 사금파리글을 썼어요

→ 사납이를 막으려고 도막글씨를 썼어요

→ 칼잡이를 막고자 잎글씨를 적었어요

→ 호로놈을 막으려고 비늘쫓기를 폈어요

《정치 문해력 : 투표하지 않는 것도 정치 참여일까?》(김명정, 철수와영희, 202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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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그리고 죽어 8 - 초판 한정 : 띠지 + 일러스트 엽서 1종
토요다 미노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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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6.10.23.

책으로 삶읽기 1201


《이거 그리고 죽어 8》

 토요다 미노루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6.8.31.



《이거 그리고 죽어 8》(토요다 미노루/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6)을 돌아본다. 그림님이 ‘가시내’만 그리려고 했다는 말을 듣고 난 뒤로, 이 그림꽃이 왜 뒤틀렸는지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림순이(여성만화가)’만 그려서 나쁠 일은 없다. 그림돌이는 하나도 안 그려도 된다. 그러나 그림꽃은 이기거나 지려고 그릴 수 없다. 높거나 낮은 그림꽃도 없다. 그런데 어느 그림꽃이 높거나 낮다고 여기려는 티끌이 조금씩 스며들면, 이미 이런 뜻으로 붓을 쥔 그림꽃은 길을 잃고서 뒤틀리게 마련이다.


《이거 그리고 죽어》를 처음부터 다시 들추니 더 또렷이 보인다. 이 그림꽃은 처음부터 “붓을 쥐며 즐겁게 삶을 노래하는 길”이 아니라 “도쿄로 ‘올라가’서 이름과 돈과 힘을 거머쥐는 그림순이 되기”를 노리는 “먹고 먹히는 어지러운 싸움판”을 줄거리로 삼았더라. 워낙 온나라가 싸움판이라서 싸움판을 그리려고 할 수는 있으나, ‘왜?’가 빠진 채 치달을 적에는 부스러기를 붙잡으면서 대단한 돌(우상)이라 섬기고야 만다.


《이거 그리고 죽어》는 첫자락에 ‘오타 줄리아’를 얼핏 다루는 듯 슬쩍 내비치기는 했으나, 여기서 끝이다. ‘오타 줄리아’는 왜 ‘그림순이 아이들’이 지내는 조그마한 섬마을에서 죽어야 했을까? 일본만 싸움박질을 일으키지 않았다. 숱한 나라가 싸움박질을 일으켰다. 그리고 일본은 옆나라를 숱하게 쳐들어갔고, 한참 총칼로 억누르면서 목숨을 빼앗을 뿐 아니라, 장난감이나 노리개로 휘두르기도 했다. 나중에는 돈으로 장난치면서 옆나라를 주물럭거리기까지 했다.


온누리가 싸움판이라고 부아를 내면서 붓을 휘두르기에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먼저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지 좀 들여다보면서 창피한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뿌리를 들여다보지 않고서 어떻게 나무를 품겠는가? 뿌리가 없는 채 어떻게 줄기를 올리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겠는가?


사내만 우글우글 그리는 붓끝도 멍청하지만, 가시내만 와글와글 그리는 붓길도 엉터리이다. 온누리는 너나없이 어울리면서 함께 살림을 짓는 사랑이 있을 적에 비로소 이야기가 싹튼다. 《이거 그리고 죽어》 여덟걸음을 보면 ‘만화 고시엔’ 같은 줄거리를 다루는데, 그림감부터 삶과 동떨어진다. 허울은 있되 삶이 없다. 붓솜씨는 뽐내는데, 손수 해보는 살림이 하나도 안 드러난다.


그림꾼이라고 해서 밥을 안 먹거나 옷을 안 입지 않는다. 그림꾼이라고 해서 집에서 안 살지 않는다. 누가 밥을 짓고 옷을 건사하고 집을 돌보는가? 섬에서 살지만 바다가 왜 바다인지 아무도 안 궁금해하고, 바다와 뭍이 어떻게 얽히는지 아무도 안 쳐다본다면, 이렇게 ‘서울바라기(도쿄바라기)’인 얼거리로 뭘 그리겠는가?


그림꽃을 그저 싸움박질(전쟁놀이)로 삼으려는 붓끝이라면 그만 꺾어도 되지 않을까? 그림꽃을 오롯이 사랑이라는 노래로 풀어내는 ‘오자와 마리’나 ‘코노 후미요’라는 아줌마가 남긴 꾸러미를 읽어 보기를 빈다. 테즈카 오사무나 타카하시 루미코를 시샘해서야 무슨 붓나래를 펴겠는가? 많이 그리고 많이 팔아서 많이 벌어들인 다른 그림꾼을 섬기거나 모신들 무슨 붓날개를 펴려나?


오늘 이곳에 있는 나를 고요히 돌아볼 적에 비로소 붓끝이 살아난다. 오늘 이곳에서 삶을 짓는 나를 차분히 헤아릴 적에 비로소 “그림으로 담을 이야기”에 눈을 뜬다. 일본사람은 아직도 고래고기를 허벌나게 잡숫는데, 일본에서 돌고래를 어떻게 마구잡이로 작살질을 하며 바다를 피비린내로 더럽히는지 알아보기를 빈다. ‘돌고래고기’를 ‘고래고기’로 슬쩍 바꿔치기하면서 팔아온 나날이 무척 긴 일본이다. 섬과 바다를 바탕으로 붓끝을 펴면서도 이런 줄거리를 모르거나 못 보았거나 못 다룬다면, 참으로 딱할 뿐이다.


ㅍㄹㄴ


“어제도 말했지만 만화 가지고 경쟁하는 거에 별 감흥이 없어. 난 만화에 승패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55쪽


“내가 그 작품을 고른 건 모든 작품 중에 제일 싫어서였다! 그림 테크닉도 미숙하고, 감정에 휩쓸려 마구잡이로 그린 그림을 영혼이라고 착각하고 있어. 자기중심적인 정의감, 촌스러운 동료의식, 위선덩어리, 유치 그 자체지. 확실히 말하면 너희들의 작품은 볼품없어. 그래서 골랐을 뿐이지. 싫어도 마음이 제일 움직인 건 사실이야.” 100쪽


‘프로가 된다는 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린다는 말이야? 하지만 인기에만 신경 쓰면서 그런 4컷 만화는 점점 재미없어졌어.’ 129쪽


‘잘 있어라, 상냥하고 평화롭고 방긋방긋 웃는 세계여. 너희 다 죽여버리겠어!!!’ 184쪽


#これ描いて死ね #とよ田みのる


+


어머나∼ 낙선하신 여러분, 가엾어라∼

→ 어머나! 고꾸라진 여러분, 가엾어라!

→ 어머나! 미끄러진 여러분, 가엾어라!

→ 어머나! 나뒹군 여러분, 가엾어라!

40쪽


제일 재미있는 건 행간이라고 생각해요

→ 밑뜻이 가장 재미있다고 여겨요

→ 갈피가 가장 재미있다고 봐요

→ 사이가 가장 재미있어요

14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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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은 알고 있다 2
간기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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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6.10.22.

책으로 삶읽기 1199


《여동생은 알고 있다 2》

 간기 마리

 신민섭 옮김

 학산문화사

 2026.10.25.



《여동생은 알고 있다 2》(간기 마리/신민섭 옮김, 학산문화사, 2026)을 읽었다. 책이름 그대로 동생은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즐겁고 반갑다.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이들은 겉모습만으로 등지거나 따돌리거나 괴롭히기도 한다. 그러나 오빠는 누가 무슨 짓을 하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스스로 그리는 하루를 바라보고, 스스로 뜻하는 하루를 걸어간다. 이러는 사이에 오빠를 눈여겨보는 사람이 하나둘 늘고, 이들은 “사람은 얼굴이나 말씨나 몸매나 나이나 쌈지가 아닌, 마음이며 숨결이며 꿈이며 생각이며 빛”으로 바라볼 노릇인 줄 알아간다. 알아보려는 눈을 떠야 하나씩 배우면서 알아차린다. 알아보려는 뜻부터 없으니 마음을 못 열 뿐 아니라, 배우지 않고 가꾸지 않느라 그만 갇혀버린다. 오늘 우리 삶터는 어떤가? 스스로 가두리를 세우는 판이지 않나? 서울이라는 커다란 가두리에 스스로 옭아매면서 마음마저 캄캄하게 타들어가지 않나?


ㅍㄹㄴ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오빠랑 있으면 애인이 없어도 충분히 즐겁다는 뜻이야. 오빠는 뭐든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니까. 하긴 그러네. 내가 결혼하면, 이렇게 편하게 같이 영화도 못 보게 되겠구나.” 14쪽


“그러게요, 처음 보는 미키 씨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그것보단, 나, 상대 봐 가면서 노골적으로 태도 바꾸는 녀석은 싫거든.” 85쪽


“집에서 재현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구나.” “아니. 분명 너도 좋아할 맛이라고 생각해서.” “그거야.” 122쪽


#妹は知っている # MyLittleSisterKnows #雁木万里


+


이건 품의 올려도 돼

→ 이쪽은 올려도 돼

→ 여기는 여쭤도 돼

22쪽


하나 제안드려도 될까요

→ 하나 얘기해도 될까요

→ 하나 여쭈어도 될까요

→ 하나 말씀해도 될까요

29쪽


회사 사람을 업무 외적으로 만나니까 좀 신기해서요

→ 일터 사람을 일 아니고도 만나니까 좀 놀라서요

→ 일터 사람을 일 밖으로 만나니까 좀 새로워서요

31쪽


투샷은 투샷이지

→ 둘찍은 둘찍이지

→ 함찍은 함찍이지

42쪽


연이은 과로로 체력 게이지 제로

→ 내내 고되어 힘눈금 바닥

→ 잇달아 힘겨워 몸눈금 꽝

→ 내도록 고달파 힘이 없어

49쪽


연공서열 같은 건 기업에서도 점점 없애는 추세라고

→ 줄도 일터에서는 조금씩 없앤다고

→ 자리값도 일터에서는 이제 없앤다고

→ 길눈도 일터에서는 차츰 없앤다고

8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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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사람들



스마트폰이 있으니 만지지

연필이 있으니 쥐지

자전거가 있으니 달리지

공이 있으니 차고 던지고 치지

과자가 있으니 먹고 빈자루는 버리지

버스가 오니 타고서 내리지

심심하니 딴짓을 하고 싶고

재미나니 자꾸자꾸 하고 싶고


무엇이든 오늘 이곳에서 해본다

좋으니까 그대로 좇아가고

싫으니까 그냥 안 쳐다보고


나는

이 사이에 서서

저녁하늘 보다가

집으로 걸어간다


2026.10.22.나무.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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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24 흰머리 노랑머리

책벌레수다 : 조지 오웰 님이 글을 쓴 곳



  나는 어릴적부터 머리숱이 안 많다. 어쩐지 잔털도 거의 안 나고 머리카락이 매우 더디 자란다. 싸움터(군대)에서 봄여름에 풀죽임물(고엽제)을 맨손으로 신나게 뿌리던 어느 날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랐고, 거의 한 해를 두드러기에 시달린 뒤부터 종아리에 잔털이 조금 돋았다. 싸움터에서는 내 몸에 돋은 두드러기를 그냥(마취제 없이) 날마다 도려내 주기만 했다. 맨살을 날마다 칼로 숱하게 도려내야 할 적마다 피울음이 났지만 꿋꿋이 견뎠다. 아무튼 그때 종아리에 잔털이 조금 나기는 했되, 쉰 살이 넘도록 흰머리 하나 돋지 않더라. 그래도 쉰 해를 넘겨서야 처음으로 흰머리가 하나 돋을 적에 “와, 재미있다.” 싶어서 반갑네.


  사람마다 다 다른 삶과 몸과 길이라서, 머리카락이건 몸이건 마음이건 눈길이건 그야말로 다르게 마련이다. 이 다른 빛을 눈여겨보는 이웃이 있다면 즐겁다. 눈여겨보지 않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면 꽤 고단하게 마련이지만, 이러한 삶도 또 그저 우리 삶이다. 즐거워도 삶이며 고단해도 삶이다. 모든 하루를 늘 느긋이 맞아들여서 짓는 하루를 누리면 된다.


  누구를 이기려 할 까닭이 없다. 누구보다 나아야 할 일이 없다. 내내 까만머리여야 하지 않고, 열 살이나 스무 살부터 흰머리여도 된다. 파란눈이건 푸른눈이건 대수롭지 않다. 서울말을 쓰건 강원말을 쓰건 전라말을 쓰건 부산말을 쓰건 인천말을 쓰건 대단하지 않다. 그저 이 살림살이를 즐겁게 이고 지고 들고 나르면서 살아가면 느긋하다.


  나라가 바뀌기를 바랄 까닭이 없다. 나를 가꾸면 넉넉하다. 나라꼴을 탓한들 안 즐겁다. 언제나 우리 스스로 나를 가꾸는 하루를 살아가면 된다. 내가 가꾸는 씨앗이 천천히 깃들어서 온누리와 온나라를 푸르게 덮을 뿐이다. 내가 나를 가꾸는 씨앗을 안 심으니 나라꼴은 언제 들여다보아도 얄궂을 만하다. 너도 나도 한결같이 말씨랑 글씨랑 마음씨랑 생각씨랑 노래씨랑 살림씨랑 꿈씨를 심는 날을 맞이하면서 지낸다.


  조지 오웰 님이 글을 쓴 길을 돌아본다. 이녁은 ‘쓰고 싶은 글’이 있기에 ‘글로 옮기는 말’이란 무엇인지 먼저 배우려 했다. ‘말로 싣는 마음이요, 마음으로 담는 삶’이라는 대목부터 읽고서, ‘삶과 마음과 말’로 ‘이웃할 사람’과 함께 일하고 같이 이야기하고 나란히 먹고자는 길을 오래 걸었지. 이렇게 걸어간 나날을 차분히 글로 옮겼고.


  여태껏 조지 오웰 님을 글로 읽는 사람은 많되, 막상 “조지 오웰이 말글과 마음과 삶과 살림과 사람과 사이와 사랑과 숲을 배우려고 온몸으로 뛰어든 하루”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드물다고 느낀다. “말로 담는 삶”부터 배우지 않고서야 어떻게 글을 쓰겠는가. “말로 그리는 마음을 이루는 삶”부터 하루하루 짓고 그리고 가꾸면서 나누지 않고서야 무슨 글을 펴겠는가.


  언제나 글에 앞서 말을 가다듬으면 된다. 말을 가다듬고자 마음을 갈닦으면 된다. 마음을 갈닦으려고 삶을 일구면 된다. 삶을 일구려고 살림을 그리면서 지으면 된다. 살림을 그리면서 지으려고 늘 생각이라는 빛씨를 심는 걸음걸이를 이으면 된다. 그저 쉽고 수수하기에 숲을 품는 나날이자 길이다.


  빗대는 말로 하자면 ‘걸음걸이’일 텐데, 몸소 걷는 사람이 집과 마을과 둘레와 별을 본다. 몸소 걷는 사람이 손수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살림살이를 일군다. 몸소 걷는 사람이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마음을 살핀다. 몸소 걷고 어깨동무하는 나날이기에, 이 별에서 이루는 삶을 어느새 사르르 풀고 녹여서 글로 그려낸다. 몸소 이 하루를 사랑하려고 하니, 늘 아이곁을 돌보는 어진 어른으로 다가설 수 있다.


  이따금 영어로 조지 오웰 님 책을 들추면, 참 쉽게 ‘말하는 대로’ 쓴 글이라고 느낀다. 이와 달리, 조지 오웰 님 글을 한글로 옮긴 거의 모든 책은 ‘중국한자말·일본한자말·일본말씨·옮김말씨’로 가득하다. 처음 글을 지은 분은 온삶과 온땀과 온사랑으로 편 이야기인데, 막상 한글로 옮길 적에는 ‘번역가’ 자리에 앉아서 글만 짚고 바꾸게 마련이다.


  한글판으로 나온 숱한 책은 글님이 흘린 눈물과 땀방울을 못 느끼는구나 싶다. 그렇다고 굳이 밑바닥으로 ‘내려가야’ 할 까닭이 없다. 내려가지 말자. 또한, 올라가지도 말자. 높낮이를 두지 말자. 어디에서나 이곳을 바라보는 오늘을 살아내자. 밑도 구름도 없이 오직 삶이라는 자리에서 스스로 가다듬고 풀어내는 말글이라면 넉넉하다. 글쓰기이든 옮기기이든 말하기이든 삶짓기이든 살림하기이든 늘 마찬가지이다.


  흰머리는 흰빛 머리카락이다. 검은머리는 검은빛 머리카락이다. 숱이 많으면 머리카락을 땋으면서 놀면 된다. 숱이 적으면 머리를 감을 적마다 이내 마르니까 자주 머리를 감으면서 더 시원하게 놀면 된다. 숱많은 또래는 내가 날마다 머리를 감을 뿐 아니라, 한여름에는 서너 벌씩 머리를 감는 모습을 부러워하더라. 숱많은 머리로는 날마다 머리를 못 감는다더라. 머리를 감으면 말리기까지 큰일이요 고되다고 하네.


  어느 쪽이 낫거나 나쁘지 않다. 이쪽은 이렇게 겪고 보며 배우는 삶이다. 저쪽은 저렇게 치르고 느끼며 배우는 삶길이다. 그쪽은 그렇게 마주하고 헤아리며 배우는 삶노래이다. 우리는 다 다른 몸을 받아서 태어난 뜻이 있으니, 어버이한테서 받은 몸에 무슨 뜻이 흐르는지 읽으면서 살아가면 된다.


  나를 둘러싼 숱한 이웃은 “나랑 다르게 어떠한 뜻으로 저렇게 나랑 다른 몸을 받고서 태어나서 살아가는”지 지켜보면서 손잡으면 된다. 다르기에 만난다. 다르기에 어울린다. 다르니까 말을 섞는다. 다른 만큼 어떤 마음인지 알려고 다가선다. 다르니까 등돌리거나 손가락질하는 멍청한 짓이 아닌, 다르니까 함께 배우고 가꾸는 하루를 노래하는 길을 걷는다. 흰머리도 노랑머리도 까만머리도 빨간머리도 파란머리도 다 곱다.


ㅍㄹㄴ


+


내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갓 서른을 넘긴 나는 직업도 애인도 오피스텔도 없었다. 천하제일 백수인 내가 가진 거라곤 천천히 흐르는 시간, 그게 전부였다.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26쪽


나는 정말이지 오로지 아픈 게 싫다. 냄새나 울림 같은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2인조》 13쪽


어떻게 트위터는 페미들 본진으로 등극하게 된 것일까? … 트위터에서 우리는 보고 싶은 주제에 맞춰 팔로잉 목록을 구성하고, 나날이 새로운 소식들을 물어 오는 나와 비슷한 관심사의 트친들을 사귀고, 관심이 없는(어쩌면 없애버리고 싶은) 주제는 뮤트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블록(차단)하고, 그 사람과 친구인 사람들까지 줄줄이 체인블록을 돌려서 추방한다. 《판을 까는 여자들》 36, 37쪽


더우기 놀라운 것은 그가 내게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늘 그 세계에 접하게 된다. 학문 탐구는 단지 책이나 학교를 통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로부터 새들로부터 대지로부터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류로부터 많은 발견을 하는 것이라는 걸 그는 몸소 실천하고 있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 9》 140쪽


‘무엇보다 이 자세가 힘들어. 움직이고 싶다. 자세 바꾸고 싶어. 하하하. 어린애처럼 떨고 있네. 좋았어. 치에가 움직였다. 나도 비켜 줘야지. 그나저나 지금 무슨 시간이지? 난 뭘 기다리는 거야? 좋아한다고 말한 당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생각을 안 해봤다.’ 《손바닥 창세기 4》 145쪽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이주윤, 드렁큰에디터, 2020.6.20

.)

《2인조》(이석원, 달, 2020.12.2.)

《판을 까는 여자들》(신민주·노서영·로라, 한겨레출판, 2022.2.25.)

《천재 유교수의 생활 9》(야마시타 카즈미/신현숙 옮김, 학산문화사, 1997.8.25.)

#山下和美 #天才柳??授の生活

《손바닥 창세기 4》(오가와 마이코/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2.9.30.)

#てのひら創世記 #小川麻衣子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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