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6.8.22.

숨은책 301


《原本 小學集註 下》

 홍순필 엮어 옮김

 朝鮮圖書株式會社

 1921(大正 10).11.15.



  서울에서 살며 헌책집을 날마다 두서너 곳씩 다니던 무렵 서울 용산에 있는 〈뿌리서점〉에서 책손끼리 실랑이를 벌이던 2000년 첫봄 열하룻날을 돌아봅니다. 어느 분이 “저 여기 단골인데 책값 좀 싸게 주셔요.” 하고 말하니, 책집지기 아저씨는 허허 웃기만 합니다. 옆에서 어느 할배가 “자네 ‘단골’이란 말을 언제 쓰는 줄 아는가? 자네는 이 책방에 얼마나 자주 오나?” 하고 묻습니다. “저 여기 한 달에 한 번은 와요.” “이보게, 단골이라 하면 날마다 올 수 있어야 하고, 진정한 단골이라면 이 헌책방에 20년 동안 다니며 3000권 이상은 사야 ‘단골’이란 이름을 쓸 수 있어.” 책집지기 아저씨는 ‘한 달 하루’ 온다고 앞세우는 분한테 책값을 더 에누리해 줍니다. 이분이 나간 뒤에 다른 책손끼리 말이 오갑니다. “저 젊은이는 한 달 뒤에 또 올까요?” “한 달 뒤? 아마 한 해 지나도 안 올 텐데?” “그렇지요? 참말로 단골인 사람은 스스로 단골이라고 하지 않지요.” “스스로 단골이라고 앞세우는 사람 가운데 단골은 없어.”


  책값 실랑이가 지나가고서 한참 있다가 책값을 셈합니다. 저도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저는 이곳을 이제 열 해밖에 못 다녔으니, 이곳에서 산 책이 오천 자락을 넘었어도 단골이 되려면 멀었네요. 앞으로 열 해를 더 채워야 하는군요.” 하고 여쭙니다. 책집지기 아저씨는 “아니, 최 선생이라면 단골이지. 뭘 이십 년씩이나 채워야 하나. 그런데 이십 년 정도 다니신 분들은 식구보다도 가깝지. 요새 얼굴 안 보이시는 분들이 계신데 몸은 안 아프시려나…….”


  이날 《原本 小學集註 下》를 골랐습니다. 책집지기 아저씨가 겉싸개를 따로 해놓은 묵은책입니다. 알맹이보다는 겉(책집지기 손글씨가 깃든 비닐)을 품고 싶습니다. 책집지기 아저씨는 “그래, 젊은 사람도 소학 대학을 읽어야 공부를 한달 수 있지. 좋은 책이지.” 하고 말씀합니다. 저는 “이 비닐싸개와 〈뿌리서점〉 사장님 붓글씨가 있기에 빛나는 책이라고 느껴요. 책손이란 누구인지 가르쳐 주는 손길을 배우려고요.”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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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8-22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가보니 뿌리서점 사장님은 나이가 많으셔서 그런지 더 이상 나오지 않으시고 아드님이 운영하고 계신것 같더군요.

파란놀 2026-08-22 14:22   좋아요 0 | URL
큰사장님은 이제 일을 못 하십니다.
맏아드님이 책집을 맡아 주시는데,
책살림이 만만하지 않아서 곁일(부업)을 하시면서
뿌리서점을 지켜주셔요.
작은손길로 여기까지 걸어오신 숨빛을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