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그리고 죽어 8 - 초판 한정 : 띠지 + 일러스트 엽서 1종
토요다 미노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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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6.10.23.

책으로 삶읽기 1201


《이거 그리고 죽어 8》

 토요다 미노루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6.8.31.



《이거 그리고 죽어 8》(토요다 미노루/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6)을 돌아본다. 그림님이 ‘가시내’만 그리려고 했다는 말을 듣고 난 뒤로, 이 그림꽃이 왜 뒤틀렸는지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림순이(여성만화가)’만 그려서 나쁠 일은 없다. 그림돌이는 하나도 안 그려도 된다. 그러나 그림꽃은 이기거나 지려고 그릴 수 없다. 높거나 낮은 그림꽃도 없다. 그런데 어느 그림꽃이 높거나 낮다고 여기려는 티끌이 조금씩 스며들면, 이미 이런 뜻으로 붓을 쥔 그림꽃은 길을 잃고서 뒤틀리게 마련이다.


《이거 그리고 죽어》를 처음부터 다시 들추니 더 또렷이 보인다. 이 그림꽃은 처음부터 “붓을 쥐며 즐겁게 삶을 노래하는 길”이 아니라 “도쿄로 ‘올라가’서 이름과 돈과 힘을 거머쥐는 그림순이 되기”를 노리는 “먹고 먹히는 어지러운 싸움판”을 줄거리로 삼았더라. 워낙 온나라가 싸움판이라서 싸움판을 그리려고 할 수는 있으나, ‘왜?’가 빠진 채 치달을 적에는 부스러기를 붙잡으면서 대단한 돌(우상)이라 섬기고야 만다.


《이거 그리고 죽어》는 첫자락에 ‘오타 줄리아’를 얼핏 다루는 듯 슬쩍 내비치기는 했으나, 여기서 끝이다. ‘오타 줄리아’는 왜 ‘그림순이 아이들’이 지내는 조그마한 섬마을에서 죽어야 했을까? 일본만 싸움박질을 일으키지 않았다. 숱한 나라가 싸움박질을 일으켰다. 그리고 일본은 옆나라를 숱하게 쳐들어갔고, 한참 총칼로 억누르면서 목숨을 빼앗을 뿐 아니라, 장난감이나 노리개로 휘두르기도 했다. 나중에는 돈으로 장난치면서 옆나라를 주물럭거리기까지 했다.


온누리가 싸움판이라고 부아를 내면서 붓을 휘두르기에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먼저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지 좀 들여다보면서 창피한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뿌리를 들여다보지 않고서 어떻게 나무를 품겠는가? 뿌리가 없는 채 어떻게 줄기를 올리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겠는가?


사내만 우글우글 그리는 붓끝도 멍청하지만, 가시내만 와글와글 그리는 붓길도 엉터리이다. 온누리는 너나없이 어울리면서 함께 살림을 짓는 사랑이 있을 적에 비로소 이야기가 싹튼다. 《이거 그리고 죽어》 여덟걸음을 보면 ‘만화 고시엔’ 같은 줄거리를 다루는데, 그림감부터 삶과 동떨어진다. 허울은 있되 삶이 없다. 붓솜씨는 뽐내는데, 손수 해보는 살림이 하나도 안 드러난다.


그림꾼이라고 해서 밥을 안 먹거나 옷을 안 입지 않는다. 그림꾼이라고 해서 집에서 안 살지 않는다. 누가 밥을 짓고 옷을 건사하고 집을 돌보는가? 섬에서 살지만 바다가 왜 바다인지 아무도 안 궁금해하고, 바다와 뭍이 어떻게 얽히는지 아무도 안 쳐다본다면, 이렇게 ‘서울바라기(도쿄바라기)’인 얼거리로 뭘 그리겠는가?


그림꽃을 그저 싸움박질(전쟁놀이)로 삼으려는 붓끝이라면 그만 꺾어도 되지 않을까? 그림꽃을 오롯이 사랑이라는 노래로 풀어내는 ‘오자와 마리’나 ‘코노 후미요’라는 아줌마가 남긴 꾸러미를 읽어 보기를 빈다. 테즈카 오사무나 타카하시 루미코를 시샘해서야 무슨 붓나래를 펴겠는가? 많이 그리고 많이 팔아서 많이 벌어들인 다른 그림꾼을 섬기거나 모신들 무슨 붓날개를 펴려나?


오늘 이곳에 있는 나를 고요히 돌아볼 적에 비로소 붓끝이 살아난다. 오늘 이곳에서 삶을 짓는 나를 차분히 헤아릴 적에 비로소 “그림으로 담을 이야기”에 눈을 뜬다. 일본사람은 아직도 고래고기를 허벌나게 잡숫는데, 일본에서 돌고래를 어떻게 마구잡이로 작살질을 하며 바다를 피비린내로 더럽히는지 알아보기를 빈다. ‘돌고래고기’를 ‘고래고기’로 슬쩍 바꿔치기하면서 팔아온 나날이 무척 긴 일본이다. 섬과 바다를 바탕으로 붓끝을 펴면서도 이런 줄거리를 모르거나 못 보았거나 못 다룬다면, 참으로 딱할 뿐이다.


ㅍㄹㄴ


“어제도 말했지만 만화 가지고 경쟁하는 거에 별 감흥이 없어. 난 만화에 승패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55쪽


“내가 그 작품을 고른 건 모든 작품 중에 제일 싫어서였다! 그림 테크닉도 미숙하고, 감정에 휩쓸려 마구잡이로 그린 그림을 영혼이라고 착각하고 있어. 자기중심적인 정의감, 촌스러운 동료의식, 위선덩어리, 유치 그 자체지. 확실히 말하면 너희들의 작품은 볼품없어. 그래서 골랐을 뿐이지. 싫어도 마음이 제일 움직인 건 사실이야.” 100쪽


‘프로가 된다는 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린다는 말이야? 하지만 인기에만 신경 쓰면서 그런 4컷 만화는 점점 재미없어졌어.’ 129쪽


‘잘 있어라, 상냥하고 평화롭고 방긋방긋 웃는 세계여. 너희 다 죽여버리겠어!!!’ 184쪽


#これ描いて死ね #とよ田みのる


+


어머나∼ 낙선하신 여러분, 가엾어라∼

→ 어머나! 고꾸라진 여러분, 가엾어라!

→ 어머나! 미끄러진 여러분, 가엾어라!

→ 어머나! 나뒹군 여러분, 가엾어라!

40쪽


제일 재미있는 건 행간이라고 생각해요

→ 밑뜻이 가장 재미있다고 여겨요

→ 갈피가 가장 재미있다고 봐요

→ 사이가 가장 재미있어요

14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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