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24 흰머리 노랑머리
책벌레수다 : 조지 오웰 님이 글을 쓴 곳
나는 어릴적부터 머리숱이 안 많다. 어쩐지 잔털도 거의 안 나고 머리카락이 매우 더디 자란다. 싸움터(군대)에서 봄여름에 풀죽임물(고엽제)을 맨손으로 신나게 뿌리던 어느 날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랐고, 거의 한 해를 두드러기에 시달린 뒤부터 종아리에 잔털이 조금 돋았다. 싸움터에서는 내 몸에 돋은 두드러기를 그냥(마취제 없이) 날마다 도려내 주기만 했다. 맨살을 날마다 칼로 숱하게 도려내야 할 적마다 피울음이 났지만 꿋꿋이 견뎠다. 아무튼 그때 종아리에 잔털이 조금 나기는 했되, 쉰 살이 넘도록 흰머리 하나 돋지 않더라. 그래도 쉰 해를 넘겨서야 처음으로 흰머리가 하나 돋을 적에 “와, 재미있다.” 싶어서 반갑네.
사람마다 다 다른 삶과 몸과 길이라서, 머리카락이건 몸이건 마음이건 눈길이건 그야말로 다르게 마련이다. 이 다른 빛을 눈여겨보는 이웃이 있다면 즐겁다. 눈여겨보지 않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면 꽤 고단하게 마련이지만, 이러한 삶도 또 그저 우리 삶이다. 즐거워도 삶이며 고단해도 삶이다. 모든 하루를 늘 느긋이 맞아들여서 짓는 하루를 누리면 된다.
누구를 이기려 할 까닭이 없다. 누구보다 나아야 할 일이 없다. 내내 까만머리여야 하지 않고, 열 살이나 스무 살부터 흰머리여도 된다. 파란눈이건 푸른눈이건 대수롭지 않다. 서울말을 쓰건 강원말을 쓰건 전라말을 쓰건 부산말을 쓰건 인천말을 쓰건 대단하지 않다. 그저 이 살림살이를 즐겁게 이고 지고 들고 나르면서 살아가면 느긋하다.
나라가 바뀌기를 바랄 까닭이 없다. 나를 가꾸면 넉넉하다. 나라꼴을 탓한들 안 즐겁다. 언제나 우리 스스로 나를 가꾸는 하루를 살아가면 된다. 내가 가꾸는 씨앗이 천천히 깃들어서 온누리와 온나라를 푸르게 덮을 뿐이다. 내가 나를 가꾸는 씨앗을 안 심으니 나라꼴은 언제 들여다보아도 얄궂을 만하다. 너도 나도 한결같이 말씨랑 글씨랑 마음씨랑 생각씨랑 노래씨랑 살림씨랑 꿈씨를 심는 날을 맞이하면서 지낸다.
조지 오웰 님이 글을 쓴 길을 돌아본다. 이녁은 ‘쓰고 싶은 글’이 있기에 ‘글로 옮기는 말’이란 무엇인지 먼저 배우려 했다. ‘말로 싣는 마음이요, 마음으로 담는 삶’이라는 대목부터 읽고서, ‘삶과 마음과 말’로 ‘이웃할 사람’과 함께 일하고 같이 이야기하고 나란히 먹고자는 길을 오래 걸었지. 이렇게 걸어간 나날을 차분히 글로 옮겼고.
여태껏 조지 오웰 님을 글로 읽는 사람은 많되, 막상 “조지 오웰이 말글과 마음과 삶과 살림과 사람과 사이와 사랑과 숲을 배우려고 온몸으로 뛰어든 하루”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드물다고 느낀다. “말로 담는 삶”부터 배우지 않고서야 어떻게 글을 쓰겠는가. “말로 그리는 마음을 이루는 삶”부터 하루하루 짓고 그리고 가꾸면서 나누지 않고서야 무슨 글을 펴겠는가.
언제나 글에 앞서 말을 가다듬으면 된다. 말을 가다듬고자 마음을 갈닦으면 된다. 마음을 갈닦으려고 삶을 일구면 된다. 삶을 일구려고 살림을 그리면서 지으면 된다. 살림을 그리면서 지으려고 늘 생각이라는 빛씨를 심는 걸음걸이를 이으면 된다. 그저 쉽고 수수하기에 숲을 품는 나날이자 길이다.
빗대는 말로 하자면 ‘걸음걸이’일 텐데, 몸소 걷는 사람이 집과 마을과 둘레와 별을 본다. 몸소 걷는 사람이 손수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살림살이를 일군다. 몸소 걷는 사람이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마음을 살핀다. 몸소 걷고 어깨동무하는 나날이기에, 이 별에서 이루는 삶을 어느새 사르르 풀고 녹여서 글로 그려낸다. 몸소 이 하루를 사랑하려고 하니, 늘 아이곁을 돌보는 어진 어른으로 다가설 수 있다.
이따금 영어로 조지 오웰 님 책을 들추면, 참 쉽게 ‘말하는 대로’ 쓴 글이라고 느낀다. 이와 달리, 조지 오웰 님 글을 한글로 옮긴 거의 모든 책은 ‘중국한자말·일본한자말·일본말씨·옮김말씨’로 가득하다. 처음 글을 지은 분은 온삶과 온땀과 온사랑으로 편 이야기인데, 막상 한글로 옮길 적에는 ‘번역가’ 자리에 앉아서 글만 짚고 바꾸게 마련이다.
한글판으로 나온 숱한 책은 글님이 흘린 눈물과 땀방울을 못 느끼는구나 싶다. 그렇다고 굳이 밑바닥으로 ‘내려가야’ 할 까닭이 없다. 내려가지 말자. 또한, 올라가지도 말자. 높낮이를 두지 말자. 어디에서나 이곳을 바라보는 오늘을 살아내자. 밑도 구름도 없이 오직 삶이라는 자리에서 스스로 가다듬고 풀어내는 말글이라면 넉넉하다. 글쓰기이든 옮기기이든 말하기이든 삶짓기이든 살림하기이든 늘 마찬가지이다.
흰머리는 흰빛 머리카락이다. 검은머리는 검은빛 머리카락이다. 숱이 많으면 머리카락을 땋으면서 놀면 된다. 숱이 적으면 머리를 감을 적마다 이내 마르니까 자주 머리를 감으면서 더 시원하게 놀면 된다. 숱많은 또래는 내가 날마다 머리를 감을 뿐 아니라, 한여름에는 서너 벌씩 머리를 감는 모습을 부러워하더라. 숱많은 머리로는 날마다 머리를 못 감는다더라. 머리를 감으면 말리기까지 큰일이요 고되다고 하네.
어느 쪽이 낫거나 나쁘지 않다. 이쪽은 이렇게 겪고 보며 배우는 삶이다. 저쪽은 저렇게 치르고 느끼며 배우는 삶길이다. 그쪽은 그렇게 마주하고 헤아리며 배우는 삶노래이다. 우리는 다 다른 몸을 받아서 태어난 뜻이 있으니, 어버이한테서 받은 몸에 무슨 뜻이 흐르는지 읽으면서 살아가면 된다.
나를 둘러싼 숱한 이웃은 “나랑 다르게 어떠한 뜻으로 저렇게 나랑 다른 몸을 받고서 태어나서 살아가는”지 지켜보면서 손잡으면 된다. 다르기에 만난다. 다르기에 어울린다. 다르니까 말을 섞는다. 다른 만큼 어떤 마음인지 알려고 다가선다. 다르니까 등돌리거나 손가락질하는 멍청한 짓이 아닌, 다르니까 함께 배우고 가꾸는 하루를 노래하는 길을 걷는다. 흰머리도 노랑머리도 까만머리도 빨간머리도 파란머리도 다 곱다.
ㅍㄹㄴ
+
내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갓 서른을 넘긴 나는 직업도 애인도 오피스텔도 없었다. 천하제일 백수인 내가 가진 거라곤 천천히 흐르는 시간, 그게 전부였다.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26쪽
나는 정말이지 오로지 아픈 게 싫다. 냄새나 울림 같은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2인조》 13쪽
어떻게 트위터는 페미들 본진으로 등극하게 된 것일까? … 트위터에서 우리는 보고 싶은 주제에 맞춰 팔로잉 목록을 구성하고, 나날이 새로운 소식들을 물어 오는 나와 비슷한 관심사의 트친들을 사귀고, 관심이 없는(어쩌면 없애버리고 싶은) 주제는 뮤트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블록(차단)하고, 그 사람과 친구인 사람들까지 줄줄이 체인블록을 돌려서 추방한다. 《판을 까는 여자들》 36, 37쪽
더우기 놀라운 것은 그가 내게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늘 그 세계에 접하게 된다. 학문 탐구는 단지 책이나 학교를 통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로부터 새들로부터 대지로부터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류로부터 많은 발견을 하는 것이라는 걸 그는 몸소 실천하고 있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 9》 140쪽
‘무엇보다 이 자세가 힘들어. 움직이고 싶다. 자세 바꾸고 싶어. 하하하. 어린애처럼 떨고 있네. 좋았어. 치에가 움직였다. 나도 비켜 줘야지. 그나저나 지금 무슨 시간이지? 난 뭘 기다리는 거야? 좋아한다고 말한 당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생각을 안 해봤다.’ 《손바닥 창세기 4》 145쪽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이주윤, 드렁큰에디터, 2020.6.20
.)
《2인조》(이석원, 달, 2020.12.2.)
《판을 까는 여자들》(신민주·노서영·로라, 한겨레출판, 2022.2.25.)
《천재 유교수의 생활 9》(야마시타 카즈미/신현숙 옮김, 학산문화사, 1997.8.25.)
#山下和美 #天才柳??授の生活
《손바닥 창세기 4》(오가와 마이코/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2.9.30.)
#てのひら創世記 #小川麻衣子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