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89 : 선생님이 읽는 책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어른을 두고 ‘스승’과 ‘교사’와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낳아 기른 어버이를 가리키는 한자말 ‘부모’ 뒤에 ‘-님’을 붙여 높이듯, 우리를 가르치는 분을 가리키는 한자말 ‘선생’ 뒤에도 ‘-님’을 붙여 높입니다. 가만히 보면, 토박이말 ‘스승’과 ‘어버이’ 뒤에는 ‘-님’을 안 붙입니다. ‘스승님’이라고 말하는 분이 있으나, 따로 ‘-님’을 붙이지 않아도, 이 낱말 그대로 높이고 받드는 느낌을 나타냅니다. 지난날 여느 사람을 내리누르던 힘이 대단했던 ‘임금’한테 ‘임금님!’ 하면서 고개를 숙였지만, 오늘날 ‘선생님’은 사뭇 다릅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자리가 높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한편, 어렵고 힘들고 걱정되는 일이기 때문에 이처럼 말하는구나 싶습니다.

 대입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아이들이 스스로 ‘책읽기 모임’을 꾸려 ‘느낌 나누기’를 했던 발자취를 그러모은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삼인,2009)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아이들은 깊은 뜻이나 생각이 없이, ‘대입시험에서 논술 잘 치르자’면서 책읽기 모임을 꾸렸고, 저마다 책을 읽은 느낌을 아낌없이 나누었습니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살피면 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무리에 듭니다. 아이들이 쓴 글을 읽으니 ‘공부 잘하고 책 좀 읽는 티’를 내겠다며 부러 어려운 말을 골라 쓴 대목이 곧잘 보입니다.

 제가 이 아이들 나이였을 때를 떠올립니다. 저라고 이 아이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저는 많이 모자라고 어줍잖다고 느끼지만, 그때에는 더 모자라고 어줍잖았으며, 제 둘레에 ‘책 좀 읽는’ 동무이든 어른이든 보이지 않았기에 우쭐거리거나 잘난 척해 보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은 ‘낡은’ 말인 듯 생각하면서, 익었으니 고개 빳빳해야 하는 양 꼴값을 떨었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시절 3년을 보내면서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다 안다 … 나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제대로 된 ‘생각하기’의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130, 141쪽)

 논술 준비를 한다지만, 학교 안쪽에서 선생들이 이끌어 배우는 책읽기 모임 느낌 나누기가 아닌, 아이들 스스로 모임을 꾸리고 저마다 읽을 책을 생각했다는 일은 퍽 놀랄 만합니다. 우리 나라로서는 혁명일 수 있습니다. 비록 접시물에서 이루려는 혁명이지만. 그런데, 아이들은 그렇다치고, 선생님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생각없는 바보로 자라도 괜찮을까요. 선생님들 스스로 아이들을 바보로 키우고 가르쳐도 되는가요. 아이들 스스로 ‘우린 생각할 까닭 없이 시험만 잘 쳐서 대학 가면 그만이야’ 하도록 내모는 당신들한테 ‘선생님’이라는 거룩한 이름이 알맞습니까. 달삯 잘 나오고 연금 넉넉하고 방학 길고 심심풀이로 손발운동(체벌) 하는 월급쟁이로만 있고자 하는 분들한테 ‘선생님’이라는 이름이, 그나마 ‘교사’라는 이름이 어울리나요. 교재가 아닌 ‘참다운 좋은 책’을 읽는 스승길을 걷는 분이 있기는 있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고등학생이 대학교에 가지는 않으며, 모두 다 대학교에 갈 까닭은 없음을 되새기면서, 아이들한테 생각힘을 북돋우고 당신 스스로도 생각날개를 펼치려는 ‘선생님 노릇’을 계급장 떼면서 해 보고자 소매 걷어붙이는 분은 몇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4342.6.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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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90 : 낡은 책과 낡아가는 책

 1980년대 첫무렵, ‘부림출판사’에서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님 책을 손바닥책 열다섯 권으로 펴냅니다. 이곳에서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을 내기 앞서 수많은 다른 출판사에서도 띄엄띄엄 이분 책을 냈고, 이때 뒤로도 갖가지 출판사에서 드문드문 이분 책을 내놓았습니다. 《길은 있었네》, 《이 질그릇에도》, 《빛이 있는 동안에》, 《살며 생각하며》, 《빙점》 같은 책은 여러 곳에서 다 다른 판으로 옮겨졌는데, 저작권계약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던 지난날 《창가의 토토》를 이곳저곳에서 슬그머니 펴낸 일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다만, 《창가의 토토》는 2000년에 ‘프로메테우스출판사’에서 새로 펴내며 더욱 널리 사랑받고 있는데,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은 ‘한물 간 낡은 이야기’라고들 여기며 손사래를 치곤 합니다.

 헌책방에서 《여인의 사연들》(1984,박기동 옮김)이라는 자그마한 책을 찾아내어 읽습니다. 처음부터 제가 읽으려고 산 책은 아닙니다. 개신교 모임에서 필리핀으로 어학연수 비슷하게 보내주는 데에 따라가며 한 해 동안 봉사를 한다는 처제가 성경을 읽는다고 하기에 문득 떠올라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이랑 안소니 드 멜로 님 책이랑 채규철 님 책이랑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선사하는데, 이 책은 제가 아직 읽어 보지 않아서 저 먼저 찬찬히 훑고 주려고 빼놓습니다.

 “하지만요, A꼬 씨, 당신이 결혼한 상대방은 하나님이 아니라구요. 완전하진 못하다구요. 말하자면 평범한 한 사람의 인간인 거예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는 인간인 거예요(16쪽).”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쓸쓸한 ‘여인’들이 미우라 아야코 님한테 편지를 꽤나 자주 써서 보낸답니다. 이런 편지에 하나하나 답장을 보내 주다가 몹시 많이 쌓이는 편지를 다 삭여내지 못해 잡지에 ‘공개 답장’을 적었답니다. 루이제 린저 님도 ‘마음이 아파 힘들다는’ 줄거리로 편지를 써 보내는 사람이 많아, 처음에는 하나하나 답장을 하다가 너무 벅차 ‘공개 답장’을 아예 낱권책으로 여러 차례 펴낸 적 있습니다. 모두들,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삶에서 겪는 마음앓이를 당신 일처럼 곰삭이며 풀어낸 셈입니다.

 “우리들이 아름답게 되는 길은 화장하는 길밖에 없는 것일까요? 나는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때,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내면에서 풍요로움이 풍겨나오는 그 표정에서 느껴요(54쪽).”라는 말처럼 겉삶이 아닌 속삶으로 우리 모두 기쁘게 어깨동무하자는 뜻을 나누려 했구나 싶습니다.

 지난주부터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이매진,2008,이유진 씀)라는 이야기책하고 《엄마의 밥상》(얘기구름,2008,박연 그림)이라는 만화책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보름쯤 앞서 인문사회과학책방과 만화전문책방에서 장만했는데, 이와 같은 책이 지난해에 나온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김에 언론 소개글이 있었나 뒤적이니 한두 차례 아주 조그맣게 실린 적이 있고, 꼭 한 번씩 소개글을 써 준 사람이 있으나, 널리 읽힐 만한 자리에 실리지 못했습니다.

 혜화동 인문예술책방 〈이음아트〉 큰일꾼은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며 책을 갖추어 놓는다’고 했는데, 이런 책은 작은 책방에든 큰 책방에든 꽂히기 힘들고 우리 눈에 뜨이기도 너무 어려운 나머지, 한 해 두 해 더께만 쌓이다 그예 낡아 버리고 말겠구나 싶습니다. (4342.6.1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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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91 : 새로운 책과 새로워지는 책

 엊그제 새 자전거를 한 대 장만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타고다닌 자전거는 모두 닳고 망가졌기에 더 손질할 수조차 없었거든요. 자전거를 장만하면서 자전거집 일꾼한테서 ‘자전거 사용설명서’를 여러 권 얻습니다. ‘자전거를 새로 장만하는 사람치고 이러한 설명서를 챙기는’ 사람은 거의 없기에 잔뜩 쌓여 있다고 합니다. 설명서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찬찬히 훑으니, 이 설명서만 꼼꼼히 읽고 스스로 해 보아도 ‘웬만한 자전거 손질은 스스로 해낼’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이달에 《자전거 홀릭》이라는 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모임을 이끄는 분들 가운데 한 분이 쓴 책으로, 자전거를 처음 가까이하거나 이제 막 좋아하려는 사람한테 길잡이가 될 만하구나 싶습니다. 돈으로 사는 자전거가 아닌, 마음으로 껴안는 자전거가 얼마나 좋은 길벗인가를 보여줍니다.

 지난달에 《두 발 자전거 배우기》라는 그림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아이들한테 네발자전거에서 두발자전거로 넘어가는 흐름을 보여주는 그림책인데, ‘자전거를 좋아하며 늘 타는’ 제 눈으로 보기에 자전거를 옳게 못 그리기도 했으며, 자전거가 마치 ‘남보다 빨리 달리려고’ 있다는 듯한 이야기를 슬며시 심어 주기에 반갑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이들한테 왜 자전거를 사 주고 타도록 하고 가르치는가요? 아이들은 왜 자전거를 선물받고 타야 하는가요? 책에 담긴 그림은 예쁘장하지만 그예 예쁘다고만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네발에서 두발로 갈아타는 일이란 ‘홀로서기’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만,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은 없이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는 기쁨’을 엉뚱한 쪽에서 받아들이도록 한다면, 청계천에 전기로 수도물 끌어들어 흐르게 하면서 시원하다 말하는 모습하고, 또한 서울과 부산에 물길을 내고 나라안 물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하고 매한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지지난달에는 《고물자전거 날쌘돌이》라는 그림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버려진 자전거, 아니, 아이들이 처음에는 엄마 아빠한테 졸라서 ‘번쩍번쩍’하는  새 자전거를 비싼 값에 장만하고 난 뒤 마구잡이로 싱싱 달리다가 함부로 내던지고 내팽개치고 비오는 날에도 바깥에 두는 바람에 찌그러지고 다치고 구멍나고 빛바래고 슬어 버린 자전거가 되살아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저 스스로도 어린 날 겪어 보았지만, 짐자전거이든 세발자전거이든, 한 주에 한 번은 말끔히 닦아 주어야 오래도록 즐겁게 탄 다음 동생한테든 동무한테든 아이들한테든 물려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아이들은 자전거를 닦을 줄 모르고 내처 달릴 뿐입니다. 자전거 사 주는 어버이 또한 자전거 닦기와 손질을 함께할 줄 모르며, 돈으로 값만 치를 뿐입니다.

 나날이 쏟아지는 새 물건이 많으니, 자전거 또한 새롭고 더 나아 보이는 녀석으로 갈아타기만 하면 되는지 모릅니다. 날마다 수없이 많은 책이 쏟아지니, 겉보기에 그럴싸한 책을 쥐어들며 자꾸자꾸 새책만 찾으면 되는지 모릅니다. 가짓수는 꾸준히 늘고 새 이야기는 늘 넘치는데, 고이 스며들며 가슴으로 묻어나는 책은 어째 가물에 콩 나는 듯합니다. 새로운 책으로 새로워지는 마음결과 삶터는 찾아보기 어렵고, 새로운 책으로 새로운 돈만 벌겠다는 마음보와 세상물결은 어렵지 않게 찾아봅니다. (4342.6.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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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 때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39
레이먼드 브릭스 글, 그림 | 김경미 옮김 / 시공주니어 / 199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차피 모두 타죽이게 할 전쟁이니까
 [그림책이 좋다 67] 레이먼드 브릭스, 《바람이 불 때에》



- 책이름 : 바람이 불 때에
- 글ㆍ그림 : 레이먼드 브릭스
- 옮긴이 : 김경미
- 펴낸곳 : 시공사 (1995.11.7.)
- 책값 : 7000원


 (1) 남녘나라에서 군대라는 곳


 군대에 갔다 온, 또는 군대에 갔다 오지 않은 어른들은 젊은이한테 이야기합니다. “군대에 갔다 오면 사람 된다.”

 어릴 적부터 익히 들은 이 말마디는 어린 제 생각과 삶을 온통 뒤흔들었고, 군대에 끌려갈 날을 앞둔 젊은이가 된 제 생각과 삶 또한 온통 뒤흔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무렵, 저 같은 아이들 또는 젊은이들한테 이런 말마디를 읊은 어른들이 ‘모두 군대에 갔다 왔는지’는 여쭙지 못했고, 여쭐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어른들이 군대에 갔다 오신 다음에 “사람이 되셨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예,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며, 내가 국가대표 운동선수가 되어 금메달을 목에 걸거나 돈이 아주 많거나 나라밖으로 떠나거나 하지 않으면 군대에 끌려가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 “다녀왔소.” “다녀오셨어요? 오늘 아침은 좋았어요?” “응, 좋았어. 별 일은 없었지. 사는 게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어.” “퇴직했으니까 그렇죠, 제임스. 당신 좀 우울해 보이는데?” “응, 아침 내내 공립도서관에서 신문만 봐서 그렇지.” “흥, 그까짓 쓰레기 같은 것들! 난 절대로 신문은 안 봐요. 〈스타〉지만 빼고요.” “여보, 당신도 국제 정세를 좀 알아야 해. 결국엔 우리도 강대국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을걸.” “신문엔 정치니 스포츠니 하는 것들만 잔뜩 실려 있잖아요.” ..  (1쪽)


 군대에 갔다 오고 나서도 어른들은 말합니다. “남자는 군대에 갔다 오지 않으면 사람이 안 된다.”

 군대에 갔다 온 저는 어른들한테 여쭙니다. “네, 저 군대에 갔다 왔습니다.” “그래? 어디 있었는데?”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에 있었습니다.” “…….” 때때로 해병대 나온 분들이 있어 좀더 꼬치꼬치 물으실 때에는, “강원도 양구 도솔산에 있었습니다. 도솔산부대 들머리에 ‘해병대 전적비’ 있는 줄 아시지요? 해병대 나오셨으면 ‘도솔산의 노래’라는 노래 아시지요?” “…….”

 우리 아버지는 당신 아들한테 “너는 군대에 가서 사회를 알아야 해.” 하고 틈틈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들은 군대에 갔다 왔습니다. 아버지도 강원도 양구에 있었다고 합니다. 딱 한 번, 아버지와 어머니는 인천에서 양구까지 면회를 왔습니다. 일고여덟 시간도 넘게 걸려 겨우 부대 밑자락 검문소에 닿으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대 들머리까지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무렵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어떠한 차도 우리 부대 앞까지 올라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안마을(펀치볼)로 넘어가는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도솔부대는 한 해에 꼭 닷새쯤 해를 볼 수 있는 기막힌(?) 곳이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군인들이 행군을 해서 한 시간 반 남짓 걸어내려와야 하는 산 밑자락에서 아들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때 눈밭을 헤치고 겨우겨우 걸어내려가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뵈니 아버지는, “에이,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어? 어떻게 이런 데에서 사람이 살아?” 아버지 말씀마따나 그곳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 마을 분들은 군부대 옆에 깃들며 살림을 꾸리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대가 모시는 대대에는 해마다 10월 끝무렵이면 장갑차 한 대가 떨어져서, 눈이 오는 날이면 장갑차가 슥슥 밀어 주고, 다음으로는 제철차가 슥슥 민 다음, 우리들 땅개가 줄줄이 늘어서서 싸리비와 눈삽으로 눈을 치워내곤 했습니다. 눈이 오면 으레 m 단위로 왔으니까요. 아무튼,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면회를 오신 다음부터 아버지 입에서 “너는 군대에 갔다 와야 해.” 하는 말은 가뭇없이 사라졌습니다.


.. “여보, 아무래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소. 그래, 곧 전쟁이 터질 거라네.” “글쎄요, 그래도 당신은 징집되지 않을 거예요, 제임스. 당신은 너무 늙었잖아요.” “고맙구려. 그래도 난 당신보다 두 살이나 적어.” “어쨌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승리의 그날까지 다시 소매를 걷어붙이고 허리띠를 동여매고 철모를 써야겠죠.” “이번엔 그럴 것 같지 않고. 이번 전쟁은 빅뱅이론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 그건 모드 똑똑한 과학자들이 생각해 낸 거요.” ..  (1∼2쪽)


 군대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올 무렵, 행보관은 전역하는 우리를 앞에 두고 “너희들 주제에 사회에 나간다고 뾰족한 벌이도 없을 테니 공사판에 나갈 텐데, 공사판에 나갈 때면 우리 부대 야상을 꼭 입고 가라. 그러면 오천 원은 더 준다.”고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거짓말이 아닌 소리였는데(1998년도), 우리들이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에 있는 동안 배운 일이라면 삽질과 곡괭이질과 마대질과 산타기 따위였습니다. 이른바 막일은 실컷 배운 셈이었습니다. 아니, 한 달 일삯 8000∼1만 얼마에 실컷 막일을 해 온 셈이었습니다. 그무렵 사회에서는 막일을 하면 하루에 3만 원을 받았는데, 우리는 군인이기 때문에 군대 막일을 하루 일삯 300원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죽어라 해 온 셈이더군요.

 이리하여,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재주’를 배운다는 군부대에서, 우리 부대원들은 하나같이 ‘배운 것 없는 사람이 먹고사는 재주’만 신나게 배운 셈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 동네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 부대를 나오면서 제 앞가림은 막일터에 나가면서 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 “이번엔 방공호도 없다니 왠지 이상해요. 그땐 우리 집 정원에 앤더슨 방공호가 있었어요. 지금도 기억나요. 우린 방공호 주위에 한련을 잔뜩 심고 입구를 초록색으로 칠했어요. 정말 예뻤는데, 옆집에서는 방공호 위에다가 양배추를 심었죠.” “맞아. 우리 집에선 모리슨 방공호를 설치했어. 난 그 안에서 잤어. 그 안에다 여자들 사진을 잔뜩 붙였지. 베티 그래블, 앤 셸턴, 패트리샤 록. 잠자리에서 촛불을 켜고 책을 읽다가 천장을 까맣게 그을렸지.” “그래요. 2차대전 때에는 정말 좋았어요. 방공호, 등화 관제, 경보 해제 사이렌, 홍차, 공습 경보대, 피난민들. 런던의 아이들은 그때에 처음으로 소를 보았고, 라디오에선 처칠의 목소리. 아홉 시 뉴스, 베라 린의 노래, 노동자 큰잔치 프로그램을 방송했고. 옥수수밭 너머 푸른 하늘에선 스피트파이어와 허리케인이 몰려왔고, 도버 해협의 하얀 절벽으론 독일군이 밤바다 쳐들어왔죠. 그땐 좋았어요.” ..  (7쪽) 






 스무 살 젊은 나이에 군대에 들어가 스물셋을 앞두고 사회로 돌아왔습니다. 한창 펄펄 끓는 나이에 군대에 있는 동안, 제 얼굴과 몸과 말결과 마음밭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군대에 가기 앞서 책을 즐겨읽기는 했어도 아주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스물여섯 달 있으면서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했습니다. 신문 한 장 읽은 적이 없습니다. 사회에 나오고 보니, 2005년 가을부터 2007년 겨울까지 세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바보가 되었습니다.

 아, 부대에 딱 두 가지 신문이 들어왔는데, 하나는 ‘스포츠○○’이었고, 하나는 ‘ㅈ일보’였습니다. 이 신문은 소대장과 중대장이 보았는데, 어쩌다가 슬쩍슬쩍 넘겨본다든지 철지난 신문을 차곡차곡 모아 태워 위장크림으로 만든다고 할 때에 살펴보기는 했으나, 이런 신문으로는 세상을 하나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위에서는 고참이, 옆에서는 동기가, 아래에서는 후임이 읊조리는 온갖 상소리와 욕지꺼리를 듣고 따라하고 익숙해지면서 사회에서 제 말투는 ‘못난 건달깡패나 외는 말투’로 받아들여졌고, 여러 해 동안 반 벙어리처럼 되어 사람들 앞에서 말문을 열기 어려웠습니다. 툭하면 욕이 튀어나와 “너 왜 그렇게 바뀌었니?”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느덧 예비군이 끝나고 민방위가 되었으나 군대 적 말투와 몸짓을 모두 털어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 짧은 스물여섯 달, 아니 짧지 않은 스물여섯 달에 걸쳐 젊은 넋한테 아로새겨진 숱한 삶자락은 제가 눈을 감는 날까지 길디길게 이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한창 푸르고 젊고 싱싱하던 때에 겪고 부대낀 이야기들이 오래도록 또아리를 틀 테니까요.


.. “지금 페인트칠을 하려는 건 아니죠, 제임스?” “유리창을 하얗게 칠해야 해.” “왜요?” “방사능 때문인 것 같아. 햇빛을 막으려고 온실을 하얗게 칠하는 것처럼 말이지. 지침서에 나와 있어.” “정말 그렇게 더울까요?” “글쎄, 잘 모르겠지만 히로시마에서는 해가 천 개나 떠 있는 것처럼 더웠대. 그러니 꽤 더울 거야. 게다가 지금 강대국들은 훨씬 더 성능이 좋은 걸 만들고 있어.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했으니까.” “페인트가 커튼에 묻지 않게 조심해요! 먼저 커튼부터 떼냈어야죠. 정말 생각이 없군요.” ..  (8∼9쪽)


 대한민국에서 군대에 가지 않으면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셈이라는 이야기를 곧잘 듣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분들치고 ‘땅개로 밑바닥에서 굴렀던 분’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하사관이든 장교이든 간부로 있던 분들, 또는 여느 보병이었으나 후방에 있던 분들, 또는 전방에 있었어도 행정병으로 있던 분들이 으레 이러한 이야기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여느 땅개로 군대에서 젊은 나날을 보내야 했던 분들은 우리 사회에서 ‘말할 힘’이 거의 없는 밑바닥 일터에서 조용히 일만 하고 있는 개미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거나 길바닥에서 장사를 하거나 할 뿐, 신문이든 잡지이든 방송이든 책이든 인터넷이든, 이런저런 데에 당신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낼 만한 자리에 있어 본 적이 없는 이들이라고 느낍니다.

 수십 킬로그램에 이르는 완전군장을 메고 소총을 메고 탄약상자를 들고, 또는 박격포를 셋으로 나누어 지고, 또는 무반동총을 홀로 낑낑거리며 군장 위에 얹고, 또는 부대 깃발과 무전기를 목아지에 얹고 하루 동안 쉼없이 걸어야 했던, 이러는 가운데 소대장이나 중대장이나 하사관 물통까지 덤으로 군장에 끼워들고 걸어야 했던 땅개 가운데에서는 “대한민국 남자는 군대에 가서 나라사랑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섣불리 안 한다고 느낍니다. 고엽제 상자를 둘이 나누어 들고 군사분계선으로 날라 ‘시계청소’를 한다며 헬멧으로 퍼서 뿌리던 땅개들은, 진지구축을 한다며 시멘트와 돌과 모래와 물을 한 짐씩 이고는 네 시간 남짓 산길을 타고 올라 내려놓고 낮밥을 먹은 뒤 다시 네 시간 남짓을 걸어내려오며 하루 일을 마치던 땅개들은, 겨울철 보급로 눈길을 치울 싸리비를 만들어야 한다며 밤을 새워 몇날 며칠 수천 개에 이르는 싸리비를 만드느라 잠 못 자고 눈이 퉁퉁 붓던 땅개들은, 장마철에 보급로 무너지면 안 된다며 밤새워 삽자루 들고 온몸이 비에 흥건히 젖은 채 물골작업을 하던 땅개들은, 어설피 “남자인데 군대에 안 가?” 하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제가 상병일 때 병장이던 고참이 “종규야, 우리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하자!” 하면서 웃던 얼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삼백 삽쯤 뜨고 허리를 펴려고 하니, “어, 아직 천 삽 되려면 멀었는데?” 하면서 삽자루로 후려패려고 높이 쳐들고 웃음 띠던 얼굴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2) 대포동미사일이 걱정된다면


 북녘에서는 대포동미사일을 만든다고 합니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미사일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수천 킬로미터뿐 아니라 수만 킬로미터를 날아갈 만한 미사일을 갖추고 있습니다. 러시아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으며, 프랑스와 영국과 독일도 갖추고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일본에는 이런 미사일이 없겠지만, 미사일보다 무시무시한 이지스함이 있고, 남녘나라이든 북녘나라이든 꿈꿀 수 없는 엄청난 군무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남녘땅에 있던 핵미사일을 미국이 도로 가져갔는지 모릅니다만, 미국이 남녘땅 핵미사일을 미국땅으로 가져갔거나 일본 류우큐우(오키나와)로 가져갔든, 이 핵미사일은 언제든지 북녘땅쯤 송두리째 날릴 수 있습니다. 단추 하나만 누르면.


.. “화장실은요?” “요강 같은 걸 들여놔야지.” “제임스 블록스 씨, 미리 말해 두지만, 난 품위 있게 위층으로 갈 거예요.” “하지만 여보, 돌아다녀선 안 돼. 국가적 비상 사태 열나흘 동안은 안 된다고.” “그럼, 좋아요! 요강은 어떻게 비울 거죠?” “저, 그냥 화장실에 버려야 할 것 같은데.” “방금 화장실에 가서는 안 된다고 했잖아요!” ..  (9쪽)


 일본은 한국과 대만과 중국과 태평양 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고, 유럽은 지구에 그려진 모든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으며, 미국은 일본이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가운데 쿠바와 중남미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베트남을 프랑스에 이어 식민지로 삼으려다가 쓴맛을 보았고, 쿠바라는 물좋은 식민지는 카스트로와 체게바라 일당(?)한테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쿠바를 빼앗긴 좋은(?) 쓴맛을 발판 삼아 칠레 아옌데 정부가 들어설 때 숱한 미사일과 헬리콥터와 탱크로 대통령궁을 박살내고 민주인사 목아지를 베어 죽이면서 식민지 넓히기를 힘차게 이어나갔습니다.


.. “세상에! 그럼 이젠 누가 지휘를 하지?” “꼼푸터겠죠.” “‘국민연금증서와 의료보험카드와 출생증명서를 상자에 보관할 것.’” “여기 쓸 만한 게 있어요, 여보. 속을 비울게요.” “고맙소. 상자는 안전한 곳에 둬야겠소. 그런데, 안전한 곳이 어디지?” ..  (13쪽)


 우리 나라는 우리보다 힘여린 나라를 식민지로 거느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돈없는 나라에 공장을 세우고 있으며, 우리보다 돈적은 나라에서 싼 물건을 사들여 나라안 일꾼과 가게가 무너지도록 하고 있습니다. 싼 물건을 사서 쓰는 우리들은, 제값 받고 팔아야 할 물건을 만드는 우리 이웃이 굶어죽도록 내몹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기 앞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이웃이 만든 ‘옳은 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하지 않으면서, 이웃나라에서 ‘싸게 내다 파는 달콤한 맛’에 홀려 머저리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총칼 들고 밀어닥친 군부대 식민지는 아니지만, 뒤에서 돈다발 들고 킥킥거리는 부자들 놀음놀이 식민지라고 느낍니다.


.. (잠시 방송을 중단하겠습니다.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겠습니다. 적의 미사일이 우리 나라를 향해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3분 뒤에 폭발합니다.) “맙소사! 여보! 3분밖에 안 남았어!” “어머, 얼른 세탁물 좀 들여놓을게요.” “이리 돌아와, 이 바보야, 대피소로 들어가!” (대피하십시오!) “어떻게 나한테 그 따위 말을 할 수 있어요!” “입닥치고 들어가란 말이야!” “전시라고 해서 품위까지 팽개쳐야 하나요?” (집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입닥쳐! 방송을 듣고 있잖아!” (집 안에 계십시오!) “이날 이때껏 그런 소린 못 들어 봤어요.” (절대로 집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제발 입 좀 닥쳐!” (엎드리세요!) “아, 여보! 오븐을 켜 놨어요.” (들어가! 들어가! 들어가라니까!” ..  (17쪽)


 그나저나 북녘은 대포동미사일을 뭐하러 만들까요. 핵무기를 뭐하러 만들려고 할까요. 남이든 북이든 먼저 치고 들어가면 먼저 맞은편을 쑥대밭이 되도록 무너뜨릴 수 있다고 하는데, 왜 서로서로 먼저 쳐들어가고 있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를 쳐들어간다면 누가 땅개가 되어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고, 누가 지도자나 사령관이 되어 가슴팍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게 될까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끝난 자리에는 무엇이 새로 들어서게 되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서로서로 무엇을 더 얻어려고 벌이는 주먹다짐 칼부림 총질이 될까요.
 





 (3) 그림책 《바람이 불 때에》가 말하는 이야기


 그림책 《바람이 불 때에》는 힘센 나라들이 서로 악다구니처럼 싸움을 벌인 끝에 서로서로 핵무기를 쏘아대면서 모든 사람들이 가루가 되어 죽어 버린 일을 그림이야기로 담아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늙은 가시버시는 옛날 생각(제2차세계대전 때)을 하면서 ‘이번에도 어찌어찌 견디면 전쟁이란 바람은 지나가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이번 바람은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 목숨을 죽음으로 실어나르는 바람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늙은 가시버시는 핵무기가 퍼뜨리는 병에 걸려서, 또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물과 밥이 다 떨어져 굶어죽었을 테지만, 조그마한 집 조그마한 대피소에 나란히 누워 아주 조용히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970년에 영국 그림쟁이가 담아낸 《바람이 불 때에》인데, 1970년 그무렵에도 ‘핵전쟁’을 걱정해야 할 만큼 사람들은, 아니 숱한 나라 정부들은, 아니 유럽과 미국에다가 러시아 정부들은 서로 누구 힘이 더 센가를 겨루면서 제 밥그릇을 좀더 크게 차지하려는 데에 온힘을 쏟았습니다.

 자, 그러면, 1970년부터 마흔 해 가까이 지난 2009년 오늘날 우리 세상은 어떠할까요. 유럽 나라는, 미국은, 러시아는, 일본은, 또 중국은 어떠하지요? 힘있는 뭇나라들은 힘여린 뭇나라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요. 티벳은 왜 중국한테 짓밟히면서 죽어나야 하는가요. 태평양 섬나라는 어이하여 다국적기업 관광지로 개발되어야 하는가요.


.. “너무 조용하지, 안 그래?” “그래요, 이상하네요. 기차도 안 지나가네. 자동차도 없어요.” “폭발 때문에 모두들 파업했나 봐요.” “탄내가 아주 지독해요.” “맞아. 하긴, 당연한 일이지.” “고기 굽는 냄새 같아요.” “그래, 고기파티를 하나 봐. 사람들이 이번 주엔 일요일이 되기도 전에 만찬을 하나 보군.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럴 거야.” “길이 아주 이상해졌어요. 좀 녹은 것” 같아요.” “그래서 우유배달부가 늦나 보군. 길바닥 어디에 붙어 버렸나 봐. 전쟁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걸까? 누가 이기고 있을까?” “걱정 말아요, 여보. 신문에 다 나올 거예요.” “생각해 보니까, 신문도 늦는 것 같아.” “어제도 우리 집은 빠뜨리고 갔어요.” ..  (30∼31쪽) 






 그림책은 아이들이 보라고 그린다고 하지만, 《바람이 불 때에》는 아이들이 보기에 썩 알맞지 않은 그림책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가 끔찍해서? 아닙니다. 이야기는 끔찍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어려워서? 아닙니다. 이야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아이들 삶하고 동떨어져서? 아닙니다. 이야기는 아이들 삶하고 가까이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면 왜?

 아무래도 《바람이 불 때에》는 철이 없는 어른이 먼저 보도록 그려내지 않았느냐 싶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겪어 보았다고 하거나 전쟁을 안다고 하거나 나라사랑을 하자고 하거나 남북녘이 서로 맞서고 있다고 하거나 세계평화를 걱정한다고 하는 어른들이 바로 이 그림책을 찬찬히 받아들이거나 새기지 않는다면, 이 그림책이 아이들한테 제대로 읽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먼 앞날 세상을 바꿀 테지만, 어른들은 바로 아이들이 자라나는 오늘날 이 세상을 흔들고 있거든요. 오늘날 이 세상을 흔드는 어른들이 우리 삶터를 어떻게 다스리거나 이끄느냐에 따라 아이들 삶과 삶터가 뒤바뀔밖에 없거든요.


.. ‘그럴 필요도 없지. 어차피 케이크는 모두 탈 테니까.’ ..  (17쪽)


 모두를 타죽이게 하는 싸움입니다. 핵무기를 앞세운 싸움이든, 재래식 무기를 앞세운 싸움이든, 모두를 타죽이게 하는 싸움입니다. 어린이도 타죽이고 어른도 타죽입니다. 푸름이도 타죽이고 늙은이도 타죽입니다. 고양이도 타죽이고 강아지도 타죽이며, 염소와 송아지와 돼지와 닭을 가리지 않습니다. 진달래와 개나리와 장미와 튤립을 따지지 않으며, 소나무와 잣나무와 방울나무와 감나루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싸움이라고 하는 바람’이 한 번 불 때에는 이제 모두들 끝이라고 해야 합니다. 큰 싸움이든 작은 싸움이든, 모든 사람을 타죽이게 하는 불바람입니다. 이리하여, 그림책 《바람이 불 때에》는 아이들한테 읽히기 앞서 어른들이 먼저 찬찬히 읽고 새기고 받아들이며 어른들 삶을 스스로 고쳐야 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이 그림책을 아이들한테 쥐어 주어야 아이들 또한 속속들이 살뜰히 받아먹습니다.

 그저 지식이나 정보로만 이 책을 쥐어 준다면, 그예 ‘세계 명작 그림책이니 아이들 인성발달에 좋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쥐어 준다면, 우리 어른들은 또다른 뜻에서 ‘싸움에 한발 담그는 셈’입니다. 아이들한테 ‘싸움 솜씨’만을 물려주는 셈입니다. 우리 집 아이와 이웃집 아이한테 싸움을 붙이는 꼴입니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를 밟고 올라서도록 내모는 짓이 되고 맙니다. (4342.7.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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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행 엑서더스 - 그들은 왜 '북송선'을 타야만 했는가?
테사 모리스-스즈키 지음, 한철호 옮김 / 책과함께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한국과 일본은 역사를 함께 일구어 왔다
 [잠깐 읽기 43] 테사 모리스-스즈키, 《북한행 엑서더스》



- 책이름 : 북한행 엑서더스
- 글 : 테사 모리스-스즈키
- 옮긴이 : 한철호
- 펴낸곳 : 책과함께 (2008.12.15.)
- 책값 : 18000원



 (1) 일본땅 한겨레붙이 삶과 책과


 1959년부터 재일조선인이 북녘으로 배를 타고 옮겨갔습니다. 재일조선인은 1945년 해방을 맞이한 다음부터 일본땅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로, 일제강점기 때에 징용으로 끌려왔거나 한국땅에서 먹고살 길이 없어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1945년에 해방을 맞이한 다음 고향나라로 돌아간 이들이 많지만, 고향나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도 많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온 이들도 있습니다. 잃었던 나라를 찾았다 할지라도 먹고살 길마저 함께 찾을 수 있지 않았을 뿐더러, 해방을 맞이하면서 남녘과 북녘으로 쪼개어졌고 이내 전쟁까지 터지는 바람에 그예 눌러앉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눌러앉은 사람은 일제강점기 때에도 온갖 푸대접과 따돌림과 업신여김에 고달파야 했고, 일제강점기에서 풀려난 다음에도 ‘천황을 모시는 신민’이 아닌 ‘해방된 나라 사람’이 되었어도 ‘일본 정부가 보듬어 주고 싶지 않은 외국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일자리 얻기도 힘들고 학교를 다니기도 힘들며 조선말 배우기도 힘들었습니다.


.. 한반도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냉전이 끝난 지도 벌써 몇 년이나 지났다. 그러나 냉전은 한반도에서는 살아남았으며, 21세기 소위 ‘테러와의 전쟁’ 속에서 기괴하고 무서운 긴장의 집합점으로 바뀌어 버렸다 … 점령군 병사들은 전쟁의 와중에서 일본에 도착했을 때, 일본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조선인에 대한 쓸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병사는 더욱 적었다. 점령군은 조선인을 ‘해방 국민’으로 대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안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 장명수의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취지는 단순하고도 극단적인 것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귀국운동은 인도주의의 기수인 일본적십자사가 인종차별주의적인 일본 권력기구를 대신해서 실행한 ‘민족 정화’ 행위였다. 나의 입장과 장명수의 주장은 일치하지는 않지만, 일본적십자사 간부의 행동에 대한 장명수의 가설은 내가 제네바에서 본 정보와 몇 가지 부합되는 것 같다 … 이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견해는 단순 명쾌했다. 제국이 사라진 지금, 조선과 대만의 전 식민지 신민은 일본 국민으로 남아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 (30∼31, 43∼44, 56, 97쪽)


 재일조선인 삶을 다룬 책은 곧잘 나왔습니다. 남녘사람이 쓴 책도 있고, 재일조선인 스스로 쓴 책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책들은 하나같이 잘 안 팔리고 안 읽히면서 잊혀집니다. 우리한테 쓰라린 발자취이기에 돌아보고 싶지 않은지 모릅니다만, 돌아보고 싶지 않은 지난날이라 하여도 어김없는 우리 발자취요 삶이며 사람입니다. 예나 이제나 ‘한겨레붙이’로서 따스한 품에 안겨 본 적이 없는 우리 이웃이요 동무요 한식구입니다. 많이 팔리고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기보다, 우리 스스로 한겨레붙이라고 느끼거나 생각한다면 마땅히 찾아서 삭이고 헤아리고 보듬을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한겨레붙이를 따돌렸습니다. 그러면서 1965년 한일협정으로 뒷돈을 챙길 뿐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시달리고 괴로웠던 사람들 아픔을 달래고 생채기를 보듬는 데에 그 돈이나마 쓰지 않았고, 일본에 남고 러시아에 남고 중국에 남고 중앙아시아에 남은 한겨레붙이를 널리 품어 안지 않았습니다.

 두 나라가 아닌 한 나라를 사랑하고 싶던 재일조선인은 남녘은 남녘대로 씁쓸하게 바라보고 북녘은 북녘대로 쓸쓸하게 바라볼 뿐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몇 만에 이르는 재일조선인이 1959년부터 ‘북녘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 1952년 4월 28일자로 재일조선인은 공영 주택 입주권을 포함해 주요 사회 복지를 향유할 권리를 잃었다. 전후 수십 년에 걸쳐 일본의 복지 제도가 발달해 가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배제 규정은 더욱 강화되었고, 그 때문에 더욱 엄격해졌다 … 안보조약 개정을 이루어낸 기시 내각은 국민연금제도도 만들었는데, 거기에서 외국인은 배제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그때부터 고도성장기로 돌입했다. 그때까지 존재했던 식민지의 ‘망령’은 안보조약 개정에 의해 일소되고, ‘단일 민족국가’로서의 새로운 복지제도도 만들어졌다. 도시 내 재일조선인 커뮤니티의 인구가 줄어들고 도시 재개발이 진행된 것도 이 시기였다 ..  (100, 323쪽)


 《재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한국ㆍ일본 이야기》(2005)라는 만화책을 보면, 남녘사람들이 재일조선인을 바라보는 엇갈린 눈길 때문에 재일조선인이 얼마나 마음앓이를 하는가를 살며시 부드럽게 다루어 줍니다.

 《재일조선인의 가슴속》(2003)이라는 책을 보면, 일본사람이나 한국사람이나 매한가지로 재일조선인을 어떻게 따돌려 왔고 얼마나 가슴앓이가 컸는가를 날카롭게 낱낱이 다루어 줍니다.

 《해협》(2003)이라는 책을 보면, 일본에서 학문을 파고드는 한 사람이 얼마나 거칠고 고단한 길을 걸어야 했으며, 이 거칠고 고단한 길은 당신한테뿐 아니라 당신 아이들한테까지 길디길게 이어지는가를 곰곰이 되새기도록 해 줍니다.

 《산다는 것의 의미》(2007) 같은 청소년책을 보면, 배울 수 없던 사람과 밑바닥에서 헤매야 한 사람은 무엇을 겪고 보고 듣고 돌아보아야 했는지를 눈물겹게 생각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일본사람 카지무라 히데키 님은 《재일조선인운동》(1994) 같은 책을 쓰며(썼다기보다 강연한 이야기를 글로 옮겨적었습니다만), 일본 사회에서 일본 지식인 스스로 ‘재일조선인’을 너무 모르거나 등돌리고 있음을 환하게 밝혀 줍니다.

 오다 나라찌라는 일본 목사는 일제 강점기 때에 맨몸으로 한국땅으로 건너와 하느님 목소리를 나누려 하면서, 일본에서 신학을 배울 때에는 조금도 알지 못했던 ‘식민지 푸대접과 따돌림과 괴롭힘’이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삭이며 깨달았고, 해방이 된 뒤에도 죽는 날까지 한국땅에서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당신이라도 뉘우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지게꾼》(1980)이라는 책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 북한이 대량 귀국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게 된 것은 결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이기적으로 따져 본 결과였다. 김일성 정권이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것, 세계가 주목할 만한 경제 발전을 이룬다는 장대한 꿈, 일본ㆍ한국ㆍ미국의 삼자 관계에 훼방을 놓고픈 욕구, 그리고 전 세계적 차원의 무대에서 프로파간다의 승리에 대한 동경, 그러한 모든 것에서 귀국이 득책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한국의 이승만 정권은 귀국사업을 방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을 성공시키지 못한 이유는, 이 정권 자체가 정치범을 부당하게 다루고 있었고, 재일조선인의 남쪽 귀국을 지원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재일조선인을 일본과의 외교적 침체 상태를 타개할 협상의 재료로 이용하는 쪽에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  (308∼309쪽)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재일 한국인 지문 거부 운동》(1987)이라는 책하고 《지문날인 거부자가 재판하는 일본》(1990)이라는 책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두 가지 책은 처음 나왔을 때에도 그리 눈길을 끌지 못했을 뿐더러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판이 끊어지고 난 다음에도 헌책방에서 그리 손길을 타지 못하는 한편 두루 읽히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책은 ‘나라안에서 내로라하는 인문사회과학 출판사’ 가운데 어느 곳에서도 펴내지 않았습니다. ‘돈이 될 만하지 않아’ 안 냈는지, ‘처음부터 재일조선인 문제는 생각하지 않아’ 안 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재일조선인이 일본에서 받는 창피와 업신여김이 얼마나 큰가를 알아보려는 한국 지식인 사회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옳다고 느낍니다.

 그나마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2005) 같은 책은 우리 말로 나온 적이 있으나, 1995년에 《조선인의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올 때에는 다른 재일조선인 이야기책하고 마찬가지로 금세 파묻히고 사라졌습니다.

 강재언 님이 쓴 《한국근대사》(1990)라든지 《근대한국 사상사 연구》(1983)라든지 《조선의 서학사》(1995)라든지 《한국의 개화사상》(1989)이라든지 《한국근대 사회와 사상》(1989)이라든지 《한국 근대사 연구》(1986)라든지 《일제하 40년사》(1984) 같은 책이 수두룩하게 옮겨진 일은 퍽 놀랄 만합니다. 그렇지만 한국 역사와 문학에 눈길을 두는 대학생이나 지식인 가운데 ‘강재언’ 같은 이름을, ‘이진희’ 같은 이름을, ‘강덕상’ 같은 이름을, ‘김달수’ 같은 이름을, ‘김석범’ 같은 이름을 찬찬히 훑거나 꿰거나 살피기라도 한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없지는 않을 테고 드물지는 않을 테지만,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이 아니랴 싶습니다.

 《김석범 ‘화산도’ 읽기》(2001) 같은 책이 우리 말로 옮겨지기는 했어도, 정작 《화산도》라고 하는 책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김석범 님 다른 작품 《까마귀의 죽음》(1988)이 한 번 옮겨진 적이 있으나, 거의 팔리지도 읽히지도 않은 채 먼지처럼 사라지기만 했습니다.


.. 21세기의 북한 난민은 1950∼1960년대의 귀국자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 차원의 정치라는 체스판에서 참으로 편리한 ‘말’이어서 큰 전략에 필요하면 사용되고 필요성이 없어지면 언제든 잊혀진다. 국제 정치의 이해관계 속에서, 이들의 작지만 각기 다른 인간적인 필요성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북한 정부에게 이들은 배신자이자 반역자다. 투옥시키고 때에 따라서는 고문을 가하거나 처형하기도 한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들은 밀입국한 불법 노동자로, 김정일 정권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인도해 주어야만 한다. 한편 미국의 정치적인 입장은 이들 전부를 일괄적으로 미국적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정치 망명자로 규정한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인권 정책은 난민을 잠재적으로 유익한 ‘체제 변혁’분자로 보고 국경을 넘는 대규모 탈출을 권장하고 있다. 이는 가뜩이나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공포의 위험성에 노출시키는 행위다. 또한 중국 국경에서는 위기에 처한 난민들 속에서 영혼을 구할 가능성을 엿본 많은 기독교 단체가 열의와 금전을 퍼붓고 있다 ..  (397∼398쪽)


 따지고 보면, 우리들은 재일조선인 삶에 등돌리는 사람들만은 아닙니다. 남녘땅 이웃 삶에도 등돌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재일조선인 이야기책에 등돌리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남녘땅 낮은자리 사람들 이야기책에도 등돌리고 있어요.

 내 이웃 삶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는가요? 내 동무들 삶자락이 어떠한가를 가슴 깊이 헤아려 보려고 하는가요? 내가 발디딘 동네에서는 어떠한 일이 얼마나 어찌어찌 벌어지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보기는 하는가요?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에서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하고 가까운 이웃 또한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이러한 몸짓이 재일조선인을 바라보는 자리에서도 똑같이 이어간다고 느낍니다.


 (2) 《북한행 엑서더스》라고 하는 책


 《북한행 엑서더스》라고 하는 책을 읽습니다. 다른 수많은 ‘일제강점기 역사’와 ‘재일조선인 역사’를 다룬 책들이 으레 ‘일본사람 손으로 나오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재일조선인이 북녘으로 배 타고 간 일을 다루는 책 또한 일본사람이 쓰는 일은 하나도 얄딱구리하지 않습니다. 대단히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남녘나라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자취’를 돌아보는 역사학자 숫자도 몇 없지만, 머나먼 옛날이 아닌 ‘아직 얼마 안 된 요즈음 우리 발자취’를 돌아보는 역사학자 숫자도 그리 안 많다고 느낍니다.


.. 일본 측은 재일조선인의 대부분이 징용노동자로서 일본에 강제 연행되었다는 ‘일반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일에 특히 열성적이었다. 일본 정부는 7월 11일, 이 문제에 관해 특별한 신문 보도자료를 내놓았고, 그 사본을 당연히 제네바에도 보냈다. 이 발표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종결시 일본에 있던 200만 명의 조선인 중 본인의 의사에 반해 징용된 노동자는 ‘작은 비율’에 지나지 않았고, “말할 것도 없이 이들에게도 표준 임금이 지불되었다.” 게다가 그 대부분이 종전시에 귀국했다 … 재일조선인 역시 본질적으로 ‘메구미’ 양과 다를 바 없을 텐데,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거나 배려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  (299, 413쪽)


 책을 넘기면서 마음 한 자리가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사람이 쓴 책이라 하여 나쁠 까닭이 없고, 일본사람이 쓴 책이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자료를 만질 수 있다 할 수 있으며, 한결 차분하게 우리 발자취를 더듬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더욱이, 마음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일본 지식인은 우리가 제대로 몰라서 그렇지, 꽤 많습니다.


.. 으르렁거리며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발코니에 나가 보니, 눈 아래에는 아주 먼 청록색의 언덕까지 도시가 뻗어 있다.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 탓일 것이다. 평양의 공기는 이제까지 방문한 어느 나라 수도보다 맑았다. 평양 하면 곧 생각나는 버드나무가 양쪽 강가에 늘어서 있고, 깊은 청록색 물이 천천히 도시 중심부를 뚫고 흐른다 ..  (258쪽)


 그런데 2008년 12월에 나온 책을 2009년 7월이 되어서야 다 읽고 덮습니다. 틀림없이 제 눈길을 끄는 책이요, 1959년에 일본과 북녘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를 좀더 깊이 알도록 도와줄 만한 책이라고 느꼈습니다만, 어인 까닭인지 책장이 잘 안 넘어갑니다.

 글쓴이 ‘테사 모리스-스즈키’ 님이 학술논문이 아닌 가벼운 수필처럼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간 탓은 아니요, 역사를 바라보는 눈길이 비뚤어져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1959년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떠했을까를 차근차근 헤아리며 그때 그 길을 곰곰이 밟아 나가는 흐름은 더없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자꾸 흐려집니다. 일본과 북녘과 미국과 남녘 정부가 저마다 어떤 셈속과 꿍꿍이로 ‘일제 강점기 때에 고달팠던 사람들 아픔’을 더 고달프게 하고 아프게 했는가를 밝히는 이야기가 자꾸자꾸 흐려집니다. 기득권을 움켜쥔 이들이 벌이는 머리싸움과 힘싸움 때문에 누구 새우등이 터지고 있는지 하는 이야기가 흐려지고, 이러한 역사를 밝히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가 흐려지며, 이와 같은 발자취는 지난 한때로 그치지 않고 있음을 사람들이 안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가 흐려집니다.


.. (국제적십자위원회 파리 대표) 윌리엄 미셸은 상당히 놀라면서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드디어 분명해졌다고 적어 놓았다. 1. 일본에서 조선인 문제에는 전체적으로 봐서 인도적 배려는 없다. 2. 일본 정부는 생활이 곤궁하며 공산주의적인 데가 있는 조선인 수만 명을 배제함으로써, 안전 보장 문제와 (현재 빈궁한 조선인에게 거액의 돈이 지출되고 있다는 이유로) 예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싶어 하고 있다. 3. 이노우에 씨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필요하다면 북한에 가고 싶어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요구를 부채질해서라도 귀국사업을 실시할 결의를 갖고 있다 ..  (178쪽)


 책을 다 읽고 처음부터 다시 헤아리다 보니 178쪽에 나온 이야기가 이 책에서 글쓴이가 하고픈 말마디, 아니 ‘1959년부터 재일조선인 북송은 왜 이루어졌는가’를 밝히는 말마디 모두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그래, 이 말마디를 1쪽부터 447쪽까지 되풀이 말하거나 거듭 되뇌었구나 싶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똑같이 꾸리고 있는 역사 한 자락을, 일본은 일본 정부 나름대로 제 배속만 차리려 한다는 정책이지만, 한국 또한 한국 정부 나름대로 제 배속만 채우려 한다는 정책일 뿐임을, 조금은 지루하게 살짝살짝 에돌며 이야기하고 있구나 싶어요. (4342.7.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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