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89 : 선생님이 읽는 책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어른을 두고 ‘스승’과 ‘교사’와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낳아 기른 어버이를 가리키는 한자말 ‘부모’ 뒤에 ‘-님’을 붙여 높이듯, 우리를 가르치는 분을 가리키는 한자말 ‘선생’ 뒤에도 ‘-님’을 붙여 높입니다. 가만히 보면, 토박이말 ‘스승’과 ‘어버이’ 뒤에는 ‘-님’을 안 붙입니다. ‘스승님’이라고 말하는 분이 있으나, 따로 ‘-님’을 붙이지 않아도, 이 낱말 그대로 높이고 받드는 느낌을 나타냅니다. 지난날 여느 사람을 내리누르던 힘이 대단했던 ‘임금’한테 ‘임금님!’ 하면서 고개를 숙였지만, 오늘날 ‘선생님’은 사뭇 다릅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자리가 높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한편, 어렵고 힘들고 걱정되는 일이기 때문에 이처럼 말하는구나 싶습니다.

 대입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아이들이 스스로 ‘책읽기 모임’을 꾸려 ‘느낌 나누기’를 했던 발자취를 그러모은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삼인,2009)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아이들은 깊은 뜻이나 생각이 없이, ‘대입시험에서 논술 잘 치르자’면서 책읽기 모임을 꾸렸고, 저마다 책을 읽은 느낌을 아낌없이 나누었습니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살피면 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무리에 듭니다. 아이들이 쓴 글을 읽으니 ‘공부 잘하고 책 좀 읽는 티’를 내겠다며 부러 어려운 말을 골라 쓴 대목이 곧잘 보입니다.

 제가 이 아이들 나이였을 때를 떠올립니다. 저라고 이 아이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저는 많이 모자라고 어줍잖다고 느끼지만, 그때에는 더 모자라고 어줍잖았으며, 제 둘레에 ‘책 좀 읽는’ 동무이든 어른이든 보이지 않았기에 우쭐거리거나 잘난 척해 보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은 ‘낡은’ 말인 듯 생각하면서, 익었으니 고개 빳빳해야 하는 양 꼴값을 떨었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시절 3년을 보내면서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다 안다 … 나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제대로 된 ‘생각하기’의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130, 141쪽)

 논술 준비를 한다지만, 학교 안쪽에서 선생들이 이끌어 배우는 책읽기 모임 느낌 나누기가 아닌, 아이들 스스로 모임을 꾸리고 저마다 읽을 책을 생각했다는 일은 퍽 놀랄 만합니다. 우리 나라로서는 혁명일 수 있습니다. 비록 접시물에서 이루려는 혁명이지만. 그런데, 아이들은 그렇다치고, 선생님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생각없는 바보로 자라도 괜찮을까요. 선생님들 스스로 아이들을 바보로 키우고 가르쳐도 되는가요. 아이들 스스로 ‘우린 생각할 까닭 없이 시험만 잘 쳐서 대학 가면 그만이야’ 하도록 내모는 당신들한테 ‘선생님’이라는 거룩한 이름이 알맞습니까. 달삯 잘 나오고 연금 넉넉하고 방학 길고 심심풀이로 손발운동(체벌) 하는 월급쟁이로만 있고자 하는 분들한테 ‘선생님’이라는 이름이, 그나마 ‘교사’라는 이름이 어울리나요. 교재가 아닌 ‘참다운 좋은 책’을 읽는 스승길을 걷는 분이 있기는 있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고등학생이 대학교에 가지는 않으며, 모두 다 대학교에 갈 까닭은 없음을 되새기면서, 아이들한테 생각힘을 북돋우고 당신 스스로도 생각날개를 펼치려는 ‘선생님 노릇’을 계급장 떼면서 해 보고자 소매 걷어붙이는 분은 몇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4342.6.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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