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행 엑서더스 - 그들은 왜 '북송선'을 타야만 했는가?
테사 모리스-스즈키 지음, 한철호 옮김 / 책과함께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한국과 일본은 역사를 함께 일구어 왔다
 [잠깐 읽기 43] 테사 모리스-스즈키, 《북한행 엑서더스》



- 책이름 : 북한행 엑서더스
- 글 : 테사 모리스-스즈키
- 옮긴이 : 한철호
- 펴낸곳 : 책과함께 (2008.12.15.)
- 책값 : 18000원



 (1) 일본땅 한겨레붙이 삶과 책과


 1959년부터 재일조선인이 북녘으로 배를 타고 옮겨갔습니다. 재일조선인은 1945년 해방을 맞이한 다음부터 일본땅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로, 일제강점기 때에 징용으로 끌려왔거나 한국땅에서 먹고살 길이 없어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1945년에 해방을 맞이한 다음 고향나라로 돌아간 이들이 많지만, 고향나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도 많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온 이들도 있습니다. 잃었던 나라를 찾았다 할지라도 먹고살 길마저 함께 찾을 수 있지 않았을 뿐더러, 해방을 맞이하면서 남녘과 북녘으로 쪼개어졌고 이내 전쟁까지 터지는 바람에 그예 눌러앉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눌러앉은 사람은 일제강점기 때에도 온갖 푸대접과 따돌림과 업신여김에 고달파야 했고, 일제강점기에서 풀려난 다음에도 ‘천황을 모시는 신민’이 아닌 ‘해방된 나라 사람’이 되었어도 ‘일본 정부가 보듬어 주고 싶지 않은 외국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일자리 얻기도 힘들고 학교를 다니기도 힘들며 조선말 배우기도 힘들었습니다.


.. 한반도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냉전이 끝난 지도 벌써 몇 년이나 지났다. 그러나 냉전은 한반도에서는 살아남았으며, 21세기 소위 ‘테러와의 전쟁’ 속에서 기괴하고 무서운 긴장의 집합점으로 바뀌어 버렸다 … 점령군 병사들은 전쟁의 와중에서 일본에 도착했을 때, 일본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조선인에 대한 쓸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병사는 더욱 적었다. 점령군은 조선인을 ‘해방 국민’으로 대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안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 장명수의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취지는 단순하고도 극단적인 것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귀국운동은 인도주의의 기수인 일본적십자사가 인종차별주의적인 일본 권력기구를 대신해서 실행한 ‘민족 정화’ 행위였다. 나의 입장과 장명수의 주장은 일치하지는 않지만, 일본적십자사 간부의 행동에 대한 장명수의 가설은 내가 제네바에서 본 정보와 몇 가지 부합되는 것 같다 … 이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견해는 단순 명쾌했다. 제국이 사라진 지금, 조선과 대만의 전 식민지 신민은 일본 국민으로 남아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 (30∼31, 43∼44, 56, 97쪽)


 재일조선인 삶을 다룬 책은 곧잘 나왔습니다. 남녘사람이 쓴 책도 있고, 재일조선인 스스로 쓴 책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책들은 하나같이 잘 안 팔리고 안 읽히면서 잊혀집니다. 우리한테 쓰라린 발자취이기에 돌아보고 싶지 않은지 모릅니다만, 돌아보고 싶지 않은 지난날이라 하여도 어김없는 우리 발자취요 삶이며 사람입니다. 예나 이제나 ‘한겨레붙이’로서 따스한 품에 안겨 본 적이 없는 우리 이웃이요 동무요 한식구입니다. 많이 팔리고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기보다, 우리 스스로 한겨레붙이라고 느끼거나 생각한다면 마땅히 찾아서 삭이고 헤아리고 보듬을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한겨레붙이를 따돌렸습니다. 그러면서 1965년 한일협정으로 뒷돈을 챙길 뿐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시달리고 괴로웠던 사람들 아픔을 달래고 생채기를 보듬는 데에 그 돈이나마 쓰지 않았고, 일본에 남고 러시아에 남고 중국에 남고 중앙아시아에 남은 한겨레붙이를 널리 품어 안지 않았습니다.

 두 나라가 아닌 한 나라를 사랑하고 싶던 재일조선인은 남녘은 남녘대로 씁쓸하게 바라보고 북녘은 북녘대로 쓸쓸하게 바라볼 뿐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몇 만에 이르는 재일조선인이 1959년부터 ‘북녘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 1952년 4월 28일자로 재일조선인은 공영 주택 입주권을 포함해 주요 사회 복지를 향유할 권리를 잃었다. 전후 수십 년에 걸쳐 일본의 복지 제도가 발달해 가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배제 규정은 더욱 강화되었고, 그 때문에 더욱 엄격해졌다 … 안보조약 개정을 이루어낸 기시 내각은 국민연금제도도 만들었는데, 거기에서 외국인은 배제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그때부터 고도성장기로 돌입했다. 그때까지 존재했던 식민지의 ‘망령’은 안보조약 개정에 의해 일소되고, ‘단일 민족국가’로서의 새로운 복지제도도 만들어졌다. 도시 내 재일조선인 커뮤니티의 인구가 줄어들고 도시 재개발이 진행된 것도 이 시기였다 ..  (100, 323쪽)


 《재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한국ㆍ일본 이야기》(2005)라는 만화책을 보면, 남녘사람들이 재일조선인을 바라보는 엇갈린 눈길 때문에 재일조선인이 얼마나 마음앓이를 하는가를 살며시 부드럽게 다루어 줍니다.

 《재일조선인의 가슴속》(2003)이라는 책을 보면, 일본사람이나 한국사람이나 매한가지로 재일조선인을 어떻게 따돌려 왔고 얼마나 가슴앓이가 컸는가를 날카롭게 낱낱이 다루어 줍니다.

 《해협》(2003)이라는 책을 보면, 일본에서 학문을 파고드는 한 사람이 얼마나 거칠고 고단한 길을 걸어야 했으며, 이 거칠고 고단한 길은 당신한테뿐 아니라 당신 아이들한테까지 길디길게 이어지는가를 곰곰이 되새기도록 해 줍니다.

 《산다는 것의 의미》(2007) 같은 청소년책을 보면, 배울 수 없던 사람과 밑바닥에서 헤매야 한 사람은 무엇을 겪고 보고 듣고 돌아보아야 했는지를 눈물겹게 생각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일본사람 카지무라 히데키 님은 《재일조선인운동》(1994) 같은 책을 쓰며(썼다기보다 강연한 이야기를 글로 옮겨적었습니다만), 일본 사회에서 일본 지식인 스스로 ‘재일조선인’을 너무 모르거나 등돌리고 있음을 환하게 밝혀 줍니다.

 오다 나라찌라는 일본 목사는 일제 강점기 때에 맨몸으로 한국땅으로 건너와 하느님 목소리를 나누려 하면서, 일본에서 신학을 배울 때에는 조금도 알지 못했던 ‘식민지 푸대접과 따돌림과 괴롭힘’이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삭이며 깨달았고, 해방이 된 뒤에도 죽는 날까지 한국땅에서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당신이라도 뉘우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지게꾼》(1980)이라는 책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 북한이 대량 귀국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게 된 것은 결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이기적으로 따져 본 결과였다. 김일성 정권이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것, 세계가 주목할 만한 경제 발전을 이룬다는 장대한 꿈, 일본ㆍ한국ㆍ미국의 삼자 관계에 훼방을 놓고픈 욕구, 그리고 전 세계적 차원의 무대에서 프로파간다의 승리에 대한 동경, 그러한 모든 것에서 귀국이 득책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한국의 이승만 정권은 귀국사업을 방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을 성공시키지 못한 이유는, 이 정권 자체가 정치범을 부당하게 다루고 있었고, 재일조선인의 남쪽 귀국을 지원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재일조선인을 일본과의 외교적 침체 상태를 타개할 협상의 재료로 이용하는 쪽에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  (308∼309쪽)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재일 한국인 지문 거부 운동》(1987)이라는 책하고 《지문날인 거부자가 재판하는 일본》(1990)이라는 책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두 가지 책은 처음 나왔을 때에도 그리 눈길을 끌지 못했을 뿐더러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판이 끊어지고 난 다음에도 헌책방에서 그리 손길을 타지 못하는 한편 두루 읽히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책은 ‘나라안에서 내로라하는 인문사회과학 출판사’ 가운데 어느 곳에서도 펴내지 않았습니다. ‘돈이 될 만하지 않아’ 안 냈는지, ‘처음부터 재일조선인 문제는 생각하지 않아’ 안 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재일조선인이 일본에서 받는 창피와 업신여김이 얼마나 큰가를 알아보려는 한국 지식인 사회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옳다고 느낍니다.

 그나마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2005) 같은 책은 우리 말로 나온 적이 있으나, 1995년에 《조선인의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올 때에는 다른 재일조선인 이야기책하고 마찬가지로 금세 파묻히고 사라졌습니다.

 강재언 님이 쓴 《한국근대사》(1990)라든지 《근대한국 사상사 연구》(1983)라든지 《조선의 서학사》(1995)라든지 《한국의 개화사상》(1989)이라든지 《한국근대 사회와 사상》(1989)이라든지 《한국 근대사 연구》(1986)라든지 《일제하 40년사》(1984) 같은 책이 수두룩하게 옮겨진 일은 퍽 놀랄 만합니다. 그렇지만 한국 역사와 문학에 눈길을 두는 대학생이나 지식인 가운데 ‘강재언’ 같은 이름을, ‘이진희’ 같은 이름을, ‘강덕상’ 같은 이름을, ‘김달수’ 같은 이름을, ‘김석범’ 같은 이름을 찬찬히 훑거나 꿰거나 살피기라도 한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없지는 않을 테고 드물지는 않을 테지만,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이 아니랴 싶습니다.

 《김석범 ‘화산도’ 읽기》(2001) 같은 책이 우리 말로 옮겨지기는 했어도, 정작 《화산도》라고 하는 책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김석범 님 다른 작품 《까마귀의 죽음》(1988)이 한 번 옮겨진 적이 있으나, 거의 팔리지도 읽히지도 않은 채 먼지처럼 사라지기만 했습니다.


.. 21세기의 북한 난민은 1950∼1960년대의 귀국자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 차원의 정치라는 체스판에서 참으로 편리한 ‘말’이어서 큰 전략에 필요하면 사용되고 필요성이 없어지면 언제든 잊혀진다. 국제 정치의 이해관계 속에서, 이들의 작지만 각기 다른 인간적인 필요성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북한 정부에게 이들은 배신자이자 반역자다. 투옥시키고 때에 따라서는 고문을 가하거나 처형하기도 한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들은 밀입국한 불법 노동자로, 김정일 정권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인도해 주어야만 한다. 한편 미국의 정치적인 입장은 이들 전부를 일괄적으로 미국적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정치 망명자로 규정한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인권 정책은 난민을 잠재적으로 유익한 ‘체제 변혁’분자로 보고 국경을 넘는 대규모 탈출을 권장하고 있다. 이는 가뜩이나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공포의 위험성에 노출시키는 행위다. 또한 중국 국경에서는 위기에 처한 난민들 속에서 영혼을 구할 가능성을 엿본 많은 기독교 단체가 열의와 금전을 퍼붓고 있다 ..  (397∼398쪽)


 따지고 보면, 우리들은 재일조선인 삶에 등돌리는 사람들만은 아닙니다. 남녘땅 이웃 삶에도 등돌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재일조선인 이야기책에 등돌리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남녘땅 낮은자리 사람들 이야기책에도 등돌리고 있어요.

 내 이웃 삶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는가요? 내 동무들 삶자락이 어떠한가를 가슴 깊이 헤아려 보려고 하는가요? 내가 발디딘 동네에서는 어떠한 일이 얼마나 어찌어찌 벌어지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보기는 하는가요?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에서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하고 가까운 이웃 또한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이러한 몸짓이 재일조선인을 바라보는 자리에서도 똑같이 이어간다고 느낍니다.


 (2) 《북한행 엑서더스》라고 하는 책


 《북한행 엑서더스》라고 하는 책을 읽습니다. 다른 수많은 ‘일제강점기 역사’와 ‘재일조선인 역사’를 다룬 책들이 으레 ‘일본사람 손으로 나오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재일조선인이 북녘으로 배 타고 간 일을 다루는 책 또한 일본사람이 쓰는 일은 하나도 얄딱구리하지 않습니다. 대단히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남녘나라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자취’를 돌아보는 역사학자 숫자도 몇 없지만, 머나먼 옛날이 아닌 ‘아직 얼마 안 된 요즈음 우리 발자취’를 돌아보는 역사학자 숫자도 그리 안 많다고 느낍니다.


.. 일본 측은 재일조선인의 대부분이 징용노동자로서 일본에 강제 연행되었다는 ‘일반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일에 특히 열성적이었다. 일본 정부는 7월 11일, 이 문제에 관해 특별한 신문 보도자료를 내놓았고, 그 사본을 당연히 제네바에도 보냈다. 이 발표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종결시 일본에 있던 200만 명의 조선인 중 본인의 의사에 반해 징용된 노동자는 ‘작은 비율’에 지나지 않았고, “말할 것도 없이 이들에게도 표준 임금이 지불되었다.” 게다가 그 대부분이 종전시에 귀국했다 … 재일조선인 역시 본질적으로 ‘메구미’ 양과 다를 바 없을 텐데,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거나 배려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  (299, 413쪽)


 책을 넘기면서 마음 한 자리가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사람이 쓴 책이라 하여 나쁠 까닭이 없고, 일본사람이 쓴 책이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자료를 만질 수 있다 할 수 있으며, 한결 차분하게 우리 발자취를 더듬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더욱이, 마음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일본 지식인은 우리가 제대로 몰라서 그렇지, 꽤 많습니다.


.. 으르렁거리며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발코니에 나가 보니, 눈 아래에는 아주 먼 청록색의 언덕까지 도시가 뻗어 있다.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 탓일 것이다. 평양의 공기는 이제까지 방문한 어느 나라 수도보다 맑았다. 평양 하면 곧 생각나는 버드나무가 양쪽 강가에 늘어서 있고, 깊은 청록색 물이 천천히 도시 중심부를 뚫고 흐른다 ..  (258쪽)


 그런데 2008년 12월에 나온 책을 2009년 7월이 되어서야 다 읽고 덮습니다. 틀림없이 제 눈길을 끄는 책이요, 1959년에 일본과 북녘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를 좀더 깊이 알도록 도와줄 만한 책이라고 느꼈습니다만, 어인 까닭인지 책장이 잘 안 넘어갑니다.

 글쓴이 ‘테사 모리스-스즈키’ 님이 학술논문이 아닌 가벼운 수필처럼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간 탓은 아니요, 역사를 바라보는 눈길이 비뚤어져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1959년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떠했을까를 차근차근 헤아리며 그때 그 길을 곰곰이 밟아 나가는 흐름은 더없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자꾸 흐려집니다. 일본과 북녘과 미국과 남녘 정부가 저마다 어떤 셈속과 꿍꿍이로 ‘일제 강점기 때에 고달팠던 사람들 아픔’을 더 고달프게 하고 아프게 했는가를 밝히는 이야기가 자꾸자꾸 흐려집니다. 기득권을 움켜쥔 이들이 벌이는 머리싸움과 힘싸움 때문에 누구 새우등이 터지고 있는지 하는 이야기가 흐려지고, 이러한 역사를 밝히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가 흐려지며, 이와 같은 발자취는 지난 한때로 그치지 않고 있음을 사람들이 안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가 흐려집니다.


.. (국제적십자위원회 파리 대표) 윌리엄 미셸은 상당히 놀라면서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드디어 분명해졌다고 적어 놓았다. 1. 일본에서 조선인 문제에는 전체적으로 봐서 인도적 배려는 없다. 2. 일본 정부는 생활이 곤궁하며 공산주의적인 데가 있는 조선인 수만 명을 배제함으로써, 안전 보장 문제와 (현재 빈궁한 조선인에게 거액의 돈이 지출되고 있다는 이유로) 예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싶어 하고 있다. 3. 이노우에 씨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필요하다면 북한에 가고 싶어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요구를 부채질해서라도 귀국사업을 실시할 결의를 갖고 있다 ..  (178쪽)


 책을 다 읽고 처음부터 다시 헤아리다 보니 178쪽에 나온 이야기가 이 책에서 글쓴이가 하고픈 말마디, 아니 ‘1959년부터 재일조선인 북송은 왜 이루어졌는가’를 밝히는 말마디 모두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그래, 이 말마디를 1쪽부터 447쪽까지 되풀이 말하거나 거듭 되뇌었구나 싶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똑같이 꾸리고 있는 역사 한 자락을, 일본은 일본 정부 나름대로 제 배속만 차리려 한다는 정책이지만, 한국 또한 한국 정부 나름대로 제 배속만 채우려 한다는 정책일 뿐임을, 조금은 지루하게 살짝살짝 에돌며 이야기하고 있구나 싶어요. (4342.7.2.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