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에서 책읽기


 혼자 움직인다면 전철에서고 버스에서고 홀가분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랑 함께 움직이자면 조금도 홀가분하지 않는데다 책을 읽을 수 없다. 어쩌면, 아이하고 다닐 때에는 책이 부질없을는지 모르지. 아니, 부질없다 할 만하지. 아이하고 눈 마주치고 부대끼는 일이 바로 책읽기 아닌가. (4343.8.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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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버스 타기


 집에서 시간표를 들여다본다.
 짐을 꾸린다.
 뛰노는 아이를 붙잡아 마당으로 나온다.
 시골길을 걷는다.
 푸른 물결 논을 바라본다.
 나비와 벌레한테 손을 흔든다.
 어느덧 시골버스역에 닿는다.
 기다린다.
 아이 어줌을 누인다.
 버스삯을 챙긴다.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드디어 버스가 보인다.
 손을 흔든다.
 아이를 안고 올라탄다.
 돈을 내고 창문 바람 쐬며 달린다.
 우리 식구한테는 택시 같은 시골버스이다.
 시외버스 타는 곳에 닿는다.
 버스표를 끊는다.
 언제쯤 서울 가는 버스가 들어오나 헤아리며 기다린다.
 시외버스역이자 구멍가게인 곳 아저씨가 우리를 부른다.
 표를 팔며 깜빡했는데 서울 가는 버스는
 우리가 오기 앞서 금세 지나갔단다.
 여느 때에는 10분이고 15분이고 늦게 오던 버스가
 오늘 따라 꼭 7분만 늦은 채 들어왔단다.
 1분 사이로 놓쳤다.
 표를 물리고 다른 표로 끊는다.
 성남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다리가 아프다. (4343.8.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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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6 : 빗소리를 못 담는 책

 꽤 잘나간다고 하는 사진쟁이 ㄱ님이 쓴 책 하나를 읽다가 속이 메스꺼웠습니다. 처음에는 속이 메스꺼웠으나, 이내 씁쓸했고, 곧이어 슬펐습니다. 이토록 모자라고 못난 생각과 삶으로 사진찍기를 돈벌이로 삼을 뿐 아니라, 당신 이름값을 드높이며 우쭐거리는 모습을 책으로 마주하자니, 더할 나위 없이 안쓰럽습니다. 꽤 잘나간다는 사진쟁이 ㄱ님은 가장 비싸다 하는 사진기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습니다. 사진을 이야기해야 할 책에서 당신이 갖춘 몇 천만 원 몇 억에 이르는 사진기 얘기를 불쑥불쑥 집어넣습니다. 부산을 사랑한다 하고 스스로 부산 토박이라 밝히지만, 정작 부산 옥상마을을 한 번조차 가 보지 않았으며 옥상마을 같은 데는 형편없이 지저분하리라는 생각을 품고 있기까지 합니다.

 사진쟁이 ㄱ님은 참 잘나갑니다. 사진쟁이 ㄱ님이 내놓은 책은 퍽 잘 팔립니다. 사진쟁이 ㄱ님이 찍은 사진은 꽤 멋들어진 작품이라고들 얘기합니다.

 사진쟁이 ㄱ님은 ‘세 박자 골고루 갖추어 누리’는 삶이니까 더없이 아름답거나 훌륭한 나날일까 궁금합니다. 사진쟁이 ㄱ님은 이름과 돈과 힘 세 박자를 신나게 누리는 요즈음 사진쟁이 보람을 마음껏 느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쟁이 ㄱ님 이야기를 꺼냈으나, 사진쟁이 ㄱ님만 이러하지 않습니다. 사진쟁이이든 글쟁이이든 그림쟁이든 ‘돈·이름·힘’이라는 세 박자에서 홀가분한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사랑·믿음·나눔’이라는 세 박자이든 ‘착함·참됨·고움’이라는 세 박자이든 스스럼없이 어루만지거나 얼싸안는 따스한 사람은 참 드뭅니다.

 큰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큰 비바람은 인천에 발을 디딘 다음 서울로 들어섰습니다. 큰 비바람은 인천 구석구석을 사납게 할퀴고 나서 서울을 모질게 할퀴었습니다. 텔레비전이 없는 제 살림살이인데, 모처럼 인천 어느 분 댁에 마실을 와서 큰 비바람 이야기를 함께 바라봅니다. 방송국에서는 ‘서울 소식 먼저 오래’ 보여준 다음 ‘서울보다 훨씬 크게 생채기가 났다는 인천 소식을 나중에 짤막히’ 보여줍니다. 그래요, 아직 인천에는 방송국 지사이든 지국이든 없습니다.

 비가 오며 빗소리를 냅니다. 바람이 불며 바람소리를 냅니다. 비가 오기 때문에 글쟁이는 글에 빗소리를 담습니다. 바람이 부니까 그림쟁이는 그림에 바람소리를 싣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기에 사진쟁이는 사진에 비바람을 찍어 넣습니다.

 다만, 한국땅 글쟁이와 그림쟁이와 사진쟁이 가운데 빗소리를 빗소리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껴안으며 글을 일구는 분은 몇 되지 않다고 느껴요. 그림쟁이나 사진쟁이 또한 어슷비슷합니다. 나라안에서 잘 팔린다는 책은 있으나, 세계명작으로 손꼽을 만한 작품은 잘 안 보입니다. 나라안에서 이름나고 돈벌이 잘하는 그림쟁이와 사진쟁이는 수두룩하지만, 세계명작으로 우러를 아름다운 그림이나 사진은 도무지 찾아보지 못합니다. 부디, 비오는 날에는 빗소리와 비내음와 비무늬와 비그림자와 비빛깔과 빗결을 글과 그림과 사진에 수수하고 투박하며 꾸밈없이 그려 낼 줄 아는 사진쟁이 ㄱ님으로 거듭나고 글쟁이 ㄱ님으로 태어나며 그림쟁이 ㄱ님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부처님 이름으로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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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
사토 와키코 글.그림, 이영준 옮김 / 한림출판사 / 199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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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빨래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 사토 와키코,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



.. 엄마는 힘차게 말했습니다. “좋아, 나에게 맡겨!” ..  (32쪽)


 도깨비를 빨든 두꺼비를 빨든 예부터 우리 나라를 비롯해 숱한 나라에서는 ‘어머니’와 ‘할머니’와 ‘언니(누나)’만이 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양말짝이든 손수건이든 ‘아버지’나 ‘할아버지’나 ‘형(오빠)’이 빨래를 하는 일이란 더없이 드뭅니다. 빨래를 해 주는 기계가 없던 지난날이든, 빨래를 해 주는 기계가 있는 오늘날이든, 빨래하기라든지 밥하기라든지 쓸고닦기라든지 아이보기라든지 온통 여자가 할 일로 여깁니다. 대학교를 다녀도 남녀가 함께 다니고, 일터에 다녀도 남녀가 함께 다닙니다. 그러나 혼인을 하고 난 뒤에 밥상을 차리고 집살림을 맡아 꾸리는 사람은 오로지 여자입니다. 남녀 둘 모두 바깥일에 바쁘다면 ‘여자인 아줌마’한테 돈을 주며 집살림을 맡깁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이든 이웃나라 일본이든, 할머니부터 언니까지 “좋아, 나한테 맡겨!” 하고 외치며 소매를 걷어부칩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이든 나어린 언니이든, 당신들한테 집살림을 맡긴다 해서 손사래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빨래이든 밥하기이든 애보기이든, 이런저런 집안일을 남자한테 시키면 어떠한 말이 돌아올까 궁금합니다. 이 나라 남자들도 여자들하고 마찬가지로 “좋아, 나한테 맡겨!” 하고 다부지게 외칠 수 있을는지요.

 일본 그림책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를 넘깁니다. ‘우리 엄마’는 아주 씩씩합니다. 고되고 고달플 집일일 텐데 아무렇지 않은 낯빛으로 당차게 해냅니다. 당차게 해낼 뿐 아니라 기운이 남아돌아 고양이이고 강아지이고 도깨비이고 모조리 빨아치웁니다.

 어쩜 이럴 수 있으랴 싶으면서, 어쩜 이럴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나이 일흔이 넘든 여든이 넘든, 할머니들은 당신 딸아들한테든 손자한테든 ‘밥을 차려 주려’ 애씁니다. 당신 딸아들이나 손자가 차려 주는 밥을 얌전히(?) 앉아서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기가 울면 당신이 먼저 일어나서 달래려 하고, 아기가 오줌이나 똥을 지르면 당신이 손수 치우려 합니다. 먼지를 보면 당신이 걸레를 빨아 훔치려 합니다. 노상 일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언제나 일을 익숙하게 해냅니다.

 집에서 하든 밖에서 하든 똑같이 일입니다. 집에서 하니 집안일이고 밖에서 하니 바깥일입니다. 집안일이 더 작다든지 더 크다든지 할 수 없습니다. 바깥일이 더 크다느니 작다느니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일을 합니다. 집안일과 집밖일을 하기 마련입니다. 집안에서는 살림을 꾸립니다. 집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 삶을 토닥이고 다스리며 어루만집니다. 집밖에서는 집안에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땀을 흘립니다. 텃밭에서든 논밭에서든 스스로 농사를 짓거나 어느 일터를 다니며 돈을 벌어 곡식을 사든, 집밖에서는 집밖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으레 ‘하루 여덟 시간 한 주 닷새 일하기’를 이야기합니다. 이런 일하기를 제대로 지키는 곳이란 공무원 일터 말고는 없지 않느냐 싶은데, 아무튼 집밖일이란 ‘하루 여덟 시간 한 주 닷새’를 넘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루 여덟 시간은 잠을 자야 몸이 튼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루에 세 끼니를 먹든 두 끼니를 먹든 한 끼니를 먹든, 밥먹는 겨를을 두어 시간 또는 서너 시간 마련합니다. 씻는 겨를을 마련하고, 쉬는 겨를을 마련합니다. 하루 씀씀이를 돌아본다면 우리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놀러 다니거나 할 겨를이란 얼마 안 됩니다. 이 땅에서 집살림을 꾸려 온 어머니들로서는 ‘하루 여덟 시간 잠자기’를 해서는 도무지 집안일을 맡을 수 없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이 땅 아버지들이 집밖에서 보내는 겨를이 길 뿐더러 집안으로 돌아와서는 손을 놓고 지내거든요. 게다가 지난날에는 연탄불을 갈든 아궁이불을 갈든 하는 몫을 어머니가 으레 했지, 아버지가 으레 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집안일이란 쉬는 날이 없습니다. 일요일이라고 밥을 안 먹을 수 있나요. 토요일이나 공휴일이라고 빨래를 쉬어도 되겠습니까. 하루에 딱 여덟 시간만 집일을 하면 되니까 설거지는 안 한다든지 아이는 안 보아도 될는지요.

 그림책 이야기일 뿐, 우리 삶에서는 얼마든지 다르지 않느냐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라는 책이 아닌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아버지’라는 책이 나오고, “아버지는 힘차게 말했습니다. ‘좋아, 나한테 맡겨!’” 하고 외칠 수 있으면 얼마나 흐뭇하면서 한결 재미나고 멋질까 하고 곱씹어 봅니다. 그림책 하나로 모든 삶과 꿈을 바랄 수 없을 테지만, 앤서니 브라운 님 그림책 《돼지책》 마무리와 같은 삶을 우리 스스로 일구지 않는다면, 도깨비를 빨아버리든 컴퓨터를 빨아버리든 고양이를 빨아버리든 시원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우리한테 스며들기란 어려운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 그림책 이야기는 참으로 시원하고 정갈합니다. 제아무리 이 땅 사내들이 더욱 아름다우며 알찬 길을 걷지 못할지라도, 이리하여 이 땅 어머니들이 갖은 집안일을 도맡느라 힘겨운 굴레를 뒤집어쓰고 있달지라도, 그림책 어머님처럼 “좋아, 나한테 맡겨!” 하면서 꿋꿋한 마음결과 너그러운 마음씨를 건사하시거든요. 바라기로는 《돼지책》과 같은 마무리이지만, 생각하기로는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는 오늘 우리 어머니들한테 바치는 고마운 인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 또한 언제나 일만 하는 우리 어머니를 둔 까닭에, 처음 제금날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빨래며 밥하기며 쓸고닦기며 제 손으로 합니다. 열예닐곱 해 동안 빨래기계란 한 번도 안 쓰고 오로지 손빨래를 합니다. 손수 밥하고 손수 쓸고닦으며 손수 아이를 봅니다. 종이기저귀 아닌 천기저귀를 씁니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나고 스물다섯 달째 살고 있는데, 이제까지 기저귀를 몇 만 장 빨았는지 셀 수 없습니다. 뭐, 빨래가 기저귀만 있지 않아요. 이불도 빨고 옷가지도 빨고 하니까요.

 머잖아 스무 해째 손빨래로 살아온 셈이 되는데, 손빨래를 하면 얼마나 마음닦기가 잘 되고 흐뭇하며 시원한지 모릅니다. 다만, 손빨래를 하면 힘이 들기는 꽤 들고 허리가 아프기는 꽤 아픕니다. 한 시간 남짓 손빨래를 하면 팔과 허리가 저립니다. 뒷목이 뻣뻣해집니다. 날마다 손빨래에 한두 시간이나 두어 시간을 써야 하면 손에 물이 마르지 않아요. 손빨래하는 살림살이는 손빨래로 그치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손빨래를 하고 손수 밥하고 아이를 보는 살림살이는 ‘들이는 품’에 걸맞게 두 손으로 사랑을 느끼고 온몸으로 믿음을 나눕니다. 기계나 돈한테 맡기는 집살림이 아니기에 더더욱 따사롭고 보드랍습니다. 저로서는 이토록 아름답고 즐겁다고 느끼는 손빨래를 기계한테 내어주고 싶지 않습니다. 기계를 써서 밭에 씨앗을 심으면 허리가 덜 아프겠으나, 저로서는 손으로 흙에 구멍을 내어 씨앗을 심을 때가 허리는 아프지만 굵은 땀방울과 함께 보람을 느낍니다. 물뿌리개로 약을 치면 풀을 금세 잡는다지만 호미를 들어 풀을 뽑고 캘 때 방울지는 땀과 함께 살아숨쉼을 느낍니다.

 그나저나, 일본 그림책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에 나오는 도깨비는 우리가 아는 도깨비가 아닙니다(한국 도깨비를 제대로 아는 사람부터 얼마 안 됩니다만). 일본에서 ‘오니’라고 하는 녀석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본책을 옮기며 일본 ‘오니’를 으레 ‘도깨비’로 적어 놓는데, 일본하고 한국하고 문화와 삶이 비슷한 데가 많아 이와 같이 적어야 더 낫지 않느냐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일본 오니는 오니입니다. 김치와 기무치가 다르고 된장과 낫토가 다르며 태권도와 가라데가 다릅니다. 더구나 한국 도깨비는 이 그림책에서 나오듯이 뿔 둘에 눈 둘에 팔다리 둘이 아니며, 이 그림책 도깨비처럼 가죽 반바지를 걸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아이들한테 읽히기 좋도록 ‘도깨비’라는 낱말을 쓰는 일은 얼핏 보기에 괜찮을는지 모릅니다만, 한국과 일본은 닮은 구석이 있는 삶이라 할 수 있어도 같지 않은 삶입니다. 서로 다르고 저마다 다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저마다 다른 가운데 모두모두 헤아리고 어깨동무하는 고운 마음바탕을 다스릴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책이름에 어쩔 수 없이라도 ‘도깨비’를 써야 했다면, 책 안쪽에는 참을 밝혀야 합니다. 이 책에서는 ‘도깨비’라고 적었으나, 이 책에 나오는 도깨비는 도깨비가 아닌 ‘일본 오니’이며, ‘한국 도깨비’하고 다른 한편, 한국 도깨비란 어떤 생김새와 모습인가를 아이와 어른 모두 알아보기 좋도록 적어 주어야겠습니다. (4343.8.30.달.ㅎㄲㅅㄱ)


―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 (사토 와키코 글·그림,이영준 옮김,한림출판사,1991.9.25./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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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버리는 바보, 서평단


 서평단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거저로 받아 느낌글을 띄우는 이들은 책을 버린다. 좋은 책이 더는 좋은 책답게 이어가지 못하도록 내팽개칠 뿐 아니라, 얄궂은 책이 마치 얄궂은 책이지 않은 듯 여기도록 껍데기를 씌운다.

 서평단 모임을 꾸리는 이들이나 서평단 가운데 하나가 되는 이들이나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책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책을 찢어발기는 싸움꾼이다. 이들 서평단이 거저로 받은 책을 날짜에 맞추어 느낌글을 마구마구 쏘아올리는 짓이란 미국과 러시아처럼 힘있는 나라가 무시무시한 무기를 만들어 마구마구 팔아치울 뿐 아니라 쏘아대는 꼴하고 무엇이 다른가. 이들 서평단 모임에서 쏟아내는 글이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 도시마다 철철 넘치는 쓰레기를 어마어마하게 쏟아내는 꼬락서니하고 무엇이 다를까.

 책 버리는 바보인 서평단은 참 많다. 출판사 가운데 서평단을 모아 당신들 책을 알리려는 곳이 꽤 많다. 서평단 바보들한테 휩쓸리지 않으면서 조용히 제 길을 걷는 출판사와 책을 마주하기에 만만하지 않은 나날로 바뀌고 있다. 사람들은 책을 책다이 아끼고 사랑하면서 내 삶을 아끼고 사랑하기가 그렇게도 싫을까. 아니, 사람들은 책이며 사람이며 터전이며 목숨이며 고이 돌보며 어루만지는 마음을 깡그리 잃어버린 채 돈에 홀린 바보가 되어도 좋단 말인가. (4343.8.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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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10-08-30 00:15   좋아요 0 | URL
하하하 난 쓰레기네요^^ 책거지.ㅋㅋ 게다가 책을 버리지도 않아요 슬쩍 꽃아두어 장식도 합니다. 나 같은 책,거저(지)는 책을 찢어 발기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는데 폼이랍시고 장식을 하지요. 나 책 많이 읽네, 하고요.

님 주장에 의한다면 난 거지인 샘인데 된장님 논리가 그럴듯 하여 그냥 인정하는게 속 편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심사가 뒤틀리는 건 나 보고 바보라 해서가 아니라(일견 맞습니다). 된장님 잘난척하는 모습 꼴 사나워서... 도대체 의식 있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왜 사람들을 바보만드는지 그게 궁금키도 하고 본인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것도 우숩고 말입니다. 혼자 똑똑하지요?

무례한 댓글이지만 그냥 달고 갑니다. 사과 원하시면 정중히 사과 드리겠습니다..

파란놀 2010-08-30 05:53   좋아요 0 | URL
무례한 줄 알면 됩니다. 아니, 무례한 줄 안다면, 스스로 아름다운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나는 몸소 책방으로 찾아가서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읽을 나한테 좋은 책을 산 다음 내 가방에 내가 산 책을 담아 집으로 와서 내가 손수 읽고 나 스스로 느낀 그대로 글을 씁니다.

님께서 손수 주머니를 털 뿐 아니라, 몸소 책방에서 몇 시간씩 둘러보고 살피며 책을 사서 읽어 보시면, 서평단 책읽기란 얼마나 나 스스로 내 책삶을 망가뜨리는지를 깨달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다면 언제까지나 서평단 바보가 되어 스스로 책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당신 삶까지 망가뜨리는 굴레에서 허덕일밖에 없습니다.

차좋아 2010-08-30 12:25   좋아요 0 | URL
된장님의 서평단 책읽기의 폐혜에 대한 견해는 동의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무릅쓰고 시비를 건 이유는 서평단을 모함(?)해서가 아니라 특정다수를 (너무나 자유롭게) 싸잡아 비난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였습니다.

손수 주머니를 털어서 몸소 책방을 살피고 책을 사서 읽어보면 무언가를 깨달을수 있다, 라고 조언을 해 주시니 답례로 저도 조언 한마디 하고 물러나고자 합니다.
저랑 누가 책 값 많이 지출되는지 한번 대 볼까요?(아 농담입니다ㅋ )

된장님. 글의 날카로움만큼이나 마음이 날카로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긍할 수 있는 논리임에도 거부감이 드는 건 함부러 휘두르는 된장님의 펜끝에 질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명확하신 것 같은데 기준이 중요합니까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합니까.

최근에 된장님 서재에 글을 보고는 날카로운 글 솜씨에 반했었지요. 그래서 객이라 생각안하고 서슴없이 댓글을 올린 것 같습니다. 마치 된장님을 아는 것 같이 느껴서요 ㅎㅎ

제가 무례한 건 알고 있는데,,,, 말하고픈 욕심에 ㅎ (재밌잖아요~ 이야기 하는 건)
더 길어지면 화 내실 듯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많이 화 나신거 아니면 종종 올게요^^

파란놀 2010-09-01 11:20   좋아요 0 | URL
제가 책값으로 얼마를 쓰는가 궁금하시면, 언제라도 얼마든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책값으로 1억이 넘는 돈을 썼습니다.

..

저는 '사람하고 맺는 관계'를 그다지 크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람하고 사이가 좋게 지내자면서 해야 할 말을 안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잘못을 한다면 잘못을 알려줄 노릇이고, 잘하고 있으면 잘한다고 북돋울 노릇입니다.

저는 글솜씨가 하나도 빼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느끼는 대로 살아가며 글을 쓰지만, 느끼는 대로란 '저 스스로 옳고 바르며 착하고 곱다고 여기며 걷는 길'입니다.

저한테는 '잣대(기준)'이든 '사람하고 맺는 관계'이든 하나도 클 수 없습니다. 크게 여길 대목이란, 나 스스로 내 삶 하루하루를 참되고 착하며 곱게 가다듬는 일이지, 다른 대목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내가 착하고 참되며 곱게 살아가면 사람하고 맺는 관계란 저절로 제대로 풀립니다. 괜히 올바르지 않은 사람하고 사귀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내놓은 책을 이명박 대통령이든 누구이든 '그리 올바로 살지 않는 사람'이 사서 읽고 널리 알려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지내는 출판사 사장님이나 편집자들 가운데에도 서평단을 운영하는 분이 많습니다만, 이분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제발 그런 짓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분들이 매출과 영업 때문에 할 수 없이 서평단을 꾸리는 현실은 알고 있습니다.

현실을 안다고 입을 다물 수 없습니다. 저는 책과 말과 헌책방과 자전거와 아이키우기 이야기로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할 말을 합니다.

제 이야기를 굳이 찾아서 읽어 주시니 고맙습니다.

saint236 2010-08-30 02:42   좋아요 0 | URL
책 버리는 바보라.. 저도 서평단을 꽤 오래했지만 책을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촉박한 시간에 맞추어 책을 읽다보면 어느 정도 부담감을 느끼고 그것이 책을 읽는 동기가 됩니다. 공짜로 받은 책이라고 해서 그저 좋게만 서평을 올리지 않습니다. 함께 활동했던 마립간님과도 가끔 댓글로 했던 이야기가 어떻게 이런 책이 출판되었을가 하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건지는 책이 있으면 저는 10권이든 20권이든 사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뿌립니다. 제 독서 편식을 서평단이 많이 치료해 줘서 감사했던 기억이.

위에 올린 차 좋아 님의 글이 왠지 마음에 와서 박힙니다.

파란놀 2010-08-30 05:55   좋아요 0 | URL
글을 제대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책은 거저로 얻어 거저로 뿌려서는 안 됩니다.

좋은 책이라면 마땅히 내 돈을 주고 사서 읽을 뿐 아니라,
내 돈을 들여 10권이든 20권이든 사서 둘레에 선물해야 합니다.

저는 제가 읽고 좋았던 책을 50권이든 100권이든
제 은행계좌를 털어 사들인 다음
둘레 고마운 분들한테 선물로 드립니다.

공짜로 얻어 공짜로 선물하는 책은,
내 품과 돈을 들여 산 다음 선물하는 책하고 같지 않습니다.

서평단 책읽기조차 '편식 책읽기'임을 부디 살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