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0.12.2.
 : 버스 타고 가요?



- 아빠랑 엄마 모두 집에 콕 박힌 채 바깥으로 좀처럼 나다니지 못하다 보니 아이는 좀이 쑤시겠구나 싶다. 산에 올라 이오덕자유학교 언니 오빠들이랑 놀도록 하면 가장 나을 텐데, 학교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때에 맞추어 산에 가지 못한다면 읍내 마실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한다. 시골버스 때에 맞추어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아이를 안고 헐레벌떡 버스 타는 데로 나가려는 때, 옆지기가 문득 묻는다. “버스 타고 가요?” 응? 뭔 소리인가, 그럼 버스 타고 가야지. 버스 탈 때에 놓칠까 걱정스러워 땀 뻘뻘 흘리면서 달린다. 아이는 내려서 함께 걷고 싶단다. 버스 놓칠까 봐 “안 돼, 이렇게 가자.” 하고 말하지만 내리고 싶다며 자꾸 말하기에 내린다. 아이도 아빠랑 함께 달린다. 막 웃으면서 달린다. 그래, 너도 이렇게 신나게 달음박질을 해 보고 싶었구나. 그러나 이내 지쳤는지, 또는 졸린지 안아 달라 한다. 아이 눈을 살핀다. 눈가가 바알갛다. 졸립구나. 졸린데 읍내 마실이 괜찮을까? 아무렴, 자도 돼. 아니, 자 주면 더 좋지. 네가 요새 거의 낮잠을 안 잤잖니. 버스 타는 데에 닿는다. 버스는 아직 안 왔다. 히유, 한숨을 돌린다. 사 분쯤 있자니 버스가 온다. 버스를 타고 표를 낸다. 자리에 앉는다. 아이는 신이 나서 방방 뛴다. 이제 비로소 느긋하게 생각을 가다듬는다. 버스 탈 때를 놓치면 그냥 시골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와도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굳이 읍내를 다녀와야 할 일은 없다. 오늘이 음성읍 장날이기는 하지만, 장날이라 해서 딱히 무언가를 더 사지는 않는다. 다만, 오늘은 쥐끈끈이를 더 사야 하기는 했지. 그런데 나한테는 자전거가 있고 아이를 태울 수레가 있다. 음성읍 갈 때보다 고단한 길인 금왕읍으로 가는 길도 아이를 태우고 신나게 오갔는데, 음성읍이야 거뜬한 길 아닌가? 집을 나설 때 옆지기가 문득 물은 말이 떠오른다. 그래, 버스 아닌 자전거를 타도 되었지. 아니, 진작에 자전거로 올 생각이었으면 한결 느긋하게 집에서 길을 나서지 않았을까. 애써 바쁜 걸음을 하기보다 찬찬히 너그러운 마음과 몸으로 가붓하게 마실을 나올 때에 나도 좋고 엄마도 좋고 아이도 좋을 텐데, 참말 늘 잊는다. 어쩌면 늘 생각을 안 하며 산달지 모르겠다. 입으로는 느긋하게 살자 외면서, 정작 몸과 마음은 느긋하게 못 사는 바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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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금과 글쓰기


 하루 내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칭얼거리는 아이한테 주려고 능금 두 알 껍질을 깎아 작은 접시에 담는다. 부디 차분해지기를 바라면서 아이한테 들고 가 보니, 아이는 어느새 엄마 무릎에 누워 잠이 들었다. 칭얼거릴 때에는 그토록 끔찍히 얄밉더니, 잠들고 나서는 참으로 아늑하며 고요하구나.

 생각해 보면, 아이는 제 어버이가 저랑 제대로 놀아 주지 않으니 칭얼거린다. 아비 된 몸으로서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아이가 칭얼거린다 할 때에는 아비가 아비 노릇을 못했으니 칭얼거리지 않겠는가. 아비는 아이가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푹 숙이다가도 살며시 웃는데, 아이는 제 아비를 바라보며 어느 때에 방그레 하고 웃을까.

 어깻죽지를 꾹 잡고는 얍 하고 들어올릴 때? 온몸으로 꼬옥 껴안아 줄 때? 맛난 밥을 차려 줄 때?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을 때? 팔베개를 해 주며 함께 잠들 때? 자전거 수레에 태워 함께 마실을 다닐 때? 엄마랑 아빠랑 함께 손을 한쪽씩 잡고 멧길을 거닐 때? 얼음과자나 사탕을 사 줄 때? 씻는방에서 함께 씻을 때? 텃밭에서 맨발로 함께 뒹굴며 흙을 만질 때? (4343.1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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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사진책과 함께 놀기
 ― 내 삶인 사진을 새롭게 빚어내기



 누군가는 프랑스라는 나라를 수월히 오가면서 프랑스 문화와 삶과 사진을 온몸으로 맛봅니다. 누군가는 프랑스는커녕 이웃한 일본이나 중국조차 거의 드나들지 못할 뿐더러, 아예 드나들 틈을 못 내는 가운에 이 나라에서 살아갑니다. 프랑스를 맛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는 프랑스를 맛보지 못하는 사람하고 견주어 프랑스를 한결 잘 알거나 한껏 가슴으로 껴안는다 여길 만합니다. 이와 함께 한국땅에 뿌리박은 채 나라밖 마실은 못하는 사람으로서는 한국땅 삶터와 삶자락과 사진을 조금 더 헤아린다 할 만할까요.

 가난한 사진쟁이인 저는 프랑스라는 나라를 밟아 보지 못했고, 이 나라를 밟을 만한 살림돈은 없지만,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프랑스 사진잡지 《PHOTO》를 곧잘 장만합니다. 그나마 새책으로도 못 보고 헌책으로 보지만, 이 사진잡지를 새책으로 장만하여 읽어 준 ‘한국 사진쟁이’나 ‘여느 한국사람’이 있기 때문에 고맙게 헌책방에서 조금 눅은 값으로 장만하여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잡지 《PHOTO》는 다달이 나옵니다. 얼마 앞서 서울마실을 하면서 이 사진잡지를 대여섯 권 장만했습니다. 2008년 12월치를 보니 455호라 합니다. 한 해에 열두 권이니 열 해면 백스무 권, 서른 해일 때에 삼백예순 권이니만큼, 마흔 해가 조금 못 되는 발자취인 《PHOTO》입니다. 사진잡지 하나가 마흔 해 가까이 꾸준하게 나올 수 있다니 대단한데, 일본에서는 《アサヒカメラ》라는 사진잡지가 1949년부터 한결같이 나오니까 훨씬 대단하다 할 만하겠지요. 사진잡지 나이만 보아도 예순한 살이 넘잖아요.

 문득 궁금해서 잡지를 뒤적여 누리집이 있나 살핍니다. “www.PHOTO.fr”이라는 주소가 있어 들어가 봅니다. 프랑스 사진잡지를 그때그때 사 읽을 수는 없으나 프랑스 사진잡지 누리집에 틈틈이 들어가며 프랑스에서 일구는 사진밭 흐름을 찬찬히 살필 만합니다. 사진잡지 《PHOTO》를 보면 다달이 눈여겨볼 만한 사진책을 죽 보여주는 자리가 있으나 언제나 그림떡이라고 느껴 슬픈데, 아쉬우나마 이렇게 누리집으로 나라밖 사진 이야기를 엿볼 수 있으니 고마워요. 참말, 프랑스 사진잡지 《PHOTO》에서 다루는 숱한 사진책이랑, 일본 사진잡지 《アサヒカメラ》에서 손꼽는 수많은 사진책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기쁘게 들여다보며 사진을 익힐 나날을 언제쯤 맞이하려나 궁금합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나라에는 어린이책 도서관부터 제대로 있지 않지만, 청소년책 도서관이든 어른책 도서관이든, 또한 문학책 도서관이든 잡지책 도서관이든 과학책 도서관이든 철학책 도서관이든 그림책이나 사진책 도서관이든 무엇 하나 알뜰히 건사하는 도서관이란 없어요. 사진책을 마음껏 즐기며 사진놀이를 하고파도 좀처럼 숨구멍을 트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예 없는 터전을 하루아침에 바랄 수 없습니다. 아예 없으니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일구어야 합니다.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일구되 잔뜩 찌푸린 얼굴이 아닌 활짝 웃거나 방그레 웃음짓는 매무새로 일구어야지 싶어요. 왜, 예부터 어릴 적에 마을에서 놀이를 할 때에는 돌멩이나 나뭇가지 하나로도 신나게 놀잖아요. 흙땅에 금을 죽 긋고는 갖가지 놀이를 즐겼어요. 사진기가 없으면 손가락으로 사진기 모양을 만들어 찰칵찰칵 하면서 신나게 사진을 찍었고요.

 빼어나거나 뛰어난 사진책을 기쁘게 맞아들일 수 없는 이 나라이지만, 우리가 알차며 어여쁜 사진책을 하나씩 엮으면 됩니다. 다른 사람한테 바라기 앞서 나 스스로 아리땁게 사진책 하나 만들 수 있어요. 내 살가운 벗을 찍은 사진으로 사진책을 만들고, 내 아버지나 내 아이 사진을 찍어서 사진책을 빚으면 돼요. 꼭 책방에 꽂혀 여러 사람한테 사랑받아야 하지는 않아요. 우리 집 책꽂이에 곱게 꽂아 놓고는, 우리 집에 찾아오는 손님한테 즐거이 보여주면 흐뭇해요. 사진책 《윤미네 집》이 괜히 태어났겠어요. 다시 나온 책을 읽으면, 집식구들은 이렇게 사진책을 새롭게 펴내는 일을 썩 달가이 여기지 않으셨다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 살붙이 살림살이를 어여삐 사진으로 담아내면서 먼 뒷날 또다른 “아무개네 집” 사진책을 내놓을 만해요. 사진이란 삶이잖아요. 사진이란 삶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 내 삶을 마음껏 즐기며 노는 모양새 그대로 신나게 가꾸거나 보듬거나 보살피거나 꾸미면 넉넉합니다. 사진으로 놀고 사진으로 일하면서 사진으로 이야기하면 돼요.

 삶인 사진이기에, 사진은 언제나 내 곁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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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모모씨 1
타카하시 신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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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으로 이루어진 밥을 먹는 삶이란
 [만화책 즐겨읽기 12] 다카하시 신, 《꽃과 모모씨 (1)》



 가만히 앉아 밥상을 받을 때하고, 칼질을 하면서 밥상을 차릴 때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세 식구 밥상일 뿐이지만, 아침을 차리느라 부산을 떨고는, 아침을 먹고, 치우며 설거지를 하고, 기지개를 켜며 살짝 쉬다가도, 어느덧 저녁에 무엇을 차려서 먹어야 할까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변변하지 못한 살림꾼은 살림꾼답게 아침저녁을 차려 내지 못합니다. 차리기야 하고 치우기야 하지만, 얼마나 알뜰하고 알차게 밥을 받아들여 하루를 즐겁게 보내도록 이끄는지를 살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어머니가 차려 주던 밥은 그저 배만 채워 주는 밥이었을까요. 내가 차리는 밥은 내 살붙이한테 배만 채워 주는 밥이고 말까요.


- ‘저(토끼)는 태어난 뒤로 대부분 모모씨가 만든 밥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한 마디로 제 몸은 모모씨의 애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61쪽)


 오늘 하루는 아침과 저녁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니 책을 읽을 수 없고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다른 일을 하자며 틈을 낸다든지 겨를을 얻지 못합니다. 고작 밥그릇 하나라 할는지 모르지만, 기껏 반찬 하나라 여길는지 모르지만, 이 하나 마련하여 차리기까지 퍽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얼추 헤아려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고 새삼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날마다 밥을 차리느니 밥을 새로 하느니 복닥거리기는 하지만, 정작 밥상을 받는 사람들 마음이나 느낌을 옳게 헤아리지는 않았습니다.

 ‘고맙다’ 소리를 들으려고 밥상을 차릴 수 없습니다. 먹는 사람 스스로 절로 ‘고맙다’ 말할 수 있으면 기쁠는지 모르지만, 먹는 사람을 바라보며 ‘고맙구나. 오늘은 무언가 먹을 만하게 차렸구나.’ 하고 생각하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프거나 힘든 짝꿍 다리를 주무를 때에 ‘고마워’ 소리를 듣기를 바라겠습니까. ‘내가 제대로 주무르기나 하나?’ 하고 생각하며 주무를 뿐입니다. 국이나 찌개가 간이 잘 맞았는지, 밥물을 옳게 맞추었는지, 그나마 젓가락질을 하며 집을 찬거리가 있는지를 돌아볼 노릇입니다. 만화책 《꽃과 모모씨》에 나오는 토끼가 속으로 읊는 말마따나 ‘살림꾼 땀과 사랑으로 우리 살붙이 삶이 이루어지’니까요. 우리 살붙이 삶이 살림꾼 땀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데, 얕은 마음이나 넋으로 밥을 차릴 수 없어요.


- ‘모모씨의 하루는 정말 바빠요. 아침식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저녁식사를 걱정한답니다.’ (10∼11쪽)
- “밥 먹고 나서 설거지, 빨래, 청소, 그리고 곧장 밭일. 진짜 열심히 일하네요. 엄청 힘들겠네요.” “전혀. 편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닌걸.” (208∼209쪽)
- “엄마, 여기는, 내 집이야.” (159쪽)
- “모모씨는 남편을 위해 매일 저녁밥상을 차린대.” “우와, 그건 좀 심한 거 아니에요?” “하하, 솔직히 우린 그 정도까지는 안 해.” “그래도 얼마나 근사해.” “소중한 사람을 위해 접시를 놓는다는 게.” (216쪽)



 아이는 언제나처럼 일찍 깨어납니다. 일찍 깨어나니 일찍부터 배가 고플 테지요. 배가 고플 아이한테 아침부터 무언가 집어먹을 이런저런 밥거리를 마련해 주어야겠지요. 능금알을 깎아 주든 뭐를 마련해 주든 할 노릇입니다. 슬슬 배가 고플 무렵에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그릇을 내어줄 수 있게끔 밥때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밥상에서 깨작거린다면 아이가 투정을 부리거나 골을 부린다고만 여기지 말고, 아이가 즐겁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상차림이 알뜰하지 못했다고 여길 일입니다. 억지스레 먹인다고 밥을 잘 먹으려나요. 가붓하며 기쁘게 차려서, 서로서로 즐겁게 밥술을 들어야지요.

 참말, 아침부터 집일이란 줄줄이 이어집니다. 밥하고 치우고 빨래하고 쓸고닦는 데에만도 하루해가 꼴딱 넘어갑니다. 겨울해는 한결 짧아 빨래 널어 말리는 데에도 더 마음을 들여야 하고, 아이도 씻기고 아이랑 즐거이 놀며 아이가 새로운 말을 기쁘게 익히도록 그림책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 살림살이를 북돋울 벌이를 해야 합니다.

 아침 일곱 시 반에 무를 다섯 뿌리 씻어 놓습니다. 우리 텃밭에서 뽑은 그리 굵지 않은 무인데, 이듬해 새로 텃밭을 일굴 때에는 거름을 제때 잘 내어 한결 굵게 거둘 수 있겠지, 하고 헤아립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손수 일구어 마련해 준 당근도 씻어 놓습니다. 아침 여덟 시 십 분쯤, 아이한테 당근을 갈아서 작은 밥그릇에 담아 줍니다. 아이는 잘 먹어 줍니다. 당근을 아침마다 갈아서 주면 아이가 제법 잘 먹는데, 가만히 돌아보니 이제까지 아침마다 제대로 당근을 갈아서 준 일이 무척 드뭅니다. 길어야 오 분쯤일까요.

 당근을 마저 갈아 국그릇에 담습니다. 남은 녀석은 달걀 둘을 풀어 달걀말이를 할 생각입니다. 저는 달걀부침을 잘 못합니다. 더욱이 노른자를 예쁘게 살린 달걀말이는 거의 해내지 못합니다. 그래도 용케 달걀말이는 합니다. 어릴 적부터 달걀부침은 잘 안 되었고, 달걀말이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 해냈습니다.

 감자와 고구마를 얇고 동그랗게 썹니다. 감자나 고구마를 길쭉하게 썰어서 무치면 아이는 건드리지 않고 입을 앙 다물기만 하기에, 저번에 한 번 ‘설마 동그랗게 썰면 먹으려나? 호박지짐이나 다른 지짐은 동그랗게 해 놓으면 잘 먹었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해 보았는데, 생각대로 잘 받아먹어 주었습니다. 여기에 양파를 썰어 물을 조금 부은 널찍한 냄비에 작은불로 졸이듯 끓입니다. 고구마랑 감자가 다 익을 무렵 텃밭 배추를 잘게 썰어 넣고 불을 끈 다음 조청과 어간장을 넣어 버무립니다. 텃밭 배추는 벌레가 잔뜩 먹은 녀석인데 국이나 이런 데에 잘게 썰어 넣으면 냄새와 맛이 꽤 괜찮구나 싶습니다. 잘게 썰어 넣고 남은 배추는 달걀말이 하는 데에 넣기로 합니다. 맑은 무채를 한번 해 볼 생각으로 무도 채 썰어 놓았으나 손이 모자라 무채까지는 못하고 그냥 소금물에 담가 놓습니다. 이러는 사이 흰쌀과 검은쌀과 보리랑 차조랑 수수랑 밀쌀로 짓는 밥이 다 되어 갑니다. 어제까지는 하루에 밥을 한 번만 했으나, 오늘부터는 하루에 두 번씩 할까 생각합니다. 손이 조금 더 갈 뿐, 새로 한 밥을 먹는 맛과 느낌이 훨씬 좋으니, 이 또한 하루에 오 분쯤 더 쓰자고 생각합니다. 반찬을 하든 밥을 하든 여기에 들이는 품과 겨를만큼 서로서로 한결 즐거울 테니까요.


- ‘후훗, 그럼 이제, 간식을 먹어 볼까. 식빵 자투리로 만든 러스크와 마당에서 뜯은 허브 티. 날씨가 정말 좋다. 빨래도 바싹바싹 잘 마르겠네.’ (24쪽)
- ‘모모씨는 큰 고구마나 감자만 보면 왠지 즐거워한답니다.’ (56쪽)
- “옛날에는 농사지을 때 온 동네 사람끼리 서로 도와가며 했거든. 그래서 도와주는 사람들을 위해 정성껏 ‘새참’을 만들어 대접했지. 요리 정보도 교환하고 말이야.” (153쪽)
- “이 논도 모모씨가 얘기를 꺼내서 시작한 거야. 정말 아름다워. 매일 봐도 질리지가 않아. 모모씨가 맡은 구역만 벼가 더 잘 자라는 것 같은 게 마음에 걸리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저렇게까지 정성을 쏟지 못하니까.” (215쪽)


 여덟 시부터 부산을 떨며 아침을 차리면서 아이한테 접시를 밥상에 올려놓아 달라고 부릅니다. 스물여덟 달짜리 아이는 아빠 심부름을 잘 해냅니다. 그런데 달걀말이 담은 접시를 밥상에 올려놓고는 한참을 돌아오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혼자 한두 점 냠냠짭짭 할 테지요. “벼리야.” 하고 부르니 그제야 오고, “혼자 먹었니?” 하고 물으니 “응.” 하고 말합니다. 두부 담은 접시랑 도토리묵 담은 접시도 하나씩 들려 방으로 들입니다. 아이는 또 안 옵니다. 보나 마나 혼자 묵이랑 두부를 손가락으로 집어먹겠지요. 밥을 담은 냄비랑 국을 담은 냄비를 하나씩 아빠가 들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 제 밥그릇을 벌써 자리에 착착 놓았습니다. 수저는 자리에 놓지 못했군요.

 먹다가 놀려 하고, 먹으면서 안 먹으려는 듯 땡깡을 부리는 아이를 구르고 달래며 나무라면서 그예 밥을 다 먹이고 설거지를 합니다. 아이가 기름을 쏟은 두꺼운 깔개 하나는 아직 빨지 못했기에 오늘은 빨아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녀석이 씻는방에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거든요. 아이 옷가지랑 기저귀를 빱니다. 옆지기 두꺼운 겉옷을 빨고 깔개를 빱니다. 다 빤 깔개를 큰 대야에 담아 마당으로 나옵니다. 번쩍 들어 빨랫줄에 걸칩니다. 물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겨울에 얼른 말라 주기를 바라면서 휘 돌아가며 깔개 밑자락을 꾹꾹 쥐어짭니다. 손아귀가 저릿저릿할 때까지 한참 쥐어짭니다. 허리를 토닥이며 방으로 들어갑니다. 엄마랑 아이가 씻는다 해서 엄마 먼저 씻고, 조금 뒤 아이 옷을 벗겨 씻는방으로 들입니다. 이제 좀 기지개를 켤 만한가 싶어 시계를 봅니다. 열한 시 사십 분. 귤 하나 까먹고 멍하니 앉아서 쉬자니 아이가 어느새 다 씻고 나올 무렵. 아이한테 옷을 입힙니다. 옷을 다 입은 아이는 조고마한 손으로 귤을 까서 반을 갈라 아빠한테 나누어 줍니다. 아이 얼굴에 신나게 뽀뽀질을 하고는 “이제부터 아빠는 아빠 일 할 테니까 좀 도와줘.”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아빠 옆구리에 등을 기대 앉아 다른 귤을 또 신나게 깝니다. 귤을 먹는 재미보다 귤을 까는 재미가 더 좋은 듯합니다.


- “설령 앞날이 어둡다고 해도, 생선이 이런 맛이고 이렇게 생겼었다는 걸 사,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35쪽)
- ‘아저씨는 버려진 자전거가 많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 주셨어요. 바람이 약간 빠진 바퀴는 비탈길을 피해 강을 따라 난 길을 힘차게 도라갑니다. 모모씨는 자전거를 탈 때 가슴을 쭉 펴고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달립니다.’ (41쪽)
- “저기, 이, 쌀.” “그렇지? 밥이 반짝반짝!” (232∼233쪽)


 만화책 《꽃과 모모씨》 1권을 더듬습니다. 올해에는 2권이 나오기 힘들 테고 2011년 봄께에는 2권이 나올까 궁금합니다. 《꽃과 모모씨》는 일본 도쿄에 갑자기 피어난 어마어마하게 큰 꽃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사라진 가운데, 이 사라진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큰꽃 둘레에서 외로우면서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립니다. 모모씨는 이들 ‘사라진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가운데 하나로, 몸소 텃밭을 일구어 먹을거리를 장만하여 날마다 밥상을 차리는 새댁입니다. 갓 시집을 가서 남편을 ‘잃었다’고 해야 할는지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을 그리워한다’고 해야 할는지 알쏭달쏭하지만, 한결같은 사랑과 믿음으로 밥 한 그릇을 마련합니다. 땀을 들여 땅을 일구고, 땀을 들여 일군 땅에서 고마운 곡식과 푸성귀를 얻고, 이 곡식과 푸성귀를 혼자서 즐길 수 없다고 여깁니다.

 메말랐을 뿐 아니라 거칠고 쓸쓸하다 싶은 도쿄라는 커다란 도시 한복판에서 벼를 손수 길러 먹자며 논을 일구는 마음결이요, 힘겨운 사람한테는 스스럼없이 손을 내미는 마음씨요, 배고픈 이하고 즐거이 도시락이든 밥이든 나누어 먹는 마음가짐입니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밥을 마련하고, 사랑으로 이루어진 밥을 나누며, 사랑으로 이루어진 밥으로 다시금 기운을 차립니다.

 꿈 같은 소리입니다만, 한국땅 서울에도 큼지막한 꽃 한 송이 피어나 군대도 정치꾼도 재벌총수도 어찌하지 못하면서 전기가 끊기고 신문과 방송 모조리 끊어지면서, 내 집 마당에 내 자그마한 텃밭을 일구면서 내 밥상을 내 손으로 차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긴다면 얼마나 새삼스러우랴 싶습니다. 아, 그러나저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나 이제나 도심지 한복판 조그마한 골목집에서 꽃밭이랑 텃밭이랑 살뜰히 일구면서 당신 살림을 예쁘게 보듬는 분들은 어김없이 있습니다. (4343.12.6.달.ㅎㄲㅅㄱ)


― 꽃과 모모씨 1 (다카하시 신 글·그림,강동욱 옮김,삼양출판사,2010.10.7./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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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섬 골목이니까 이런 귤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마당에 있구나.

 - 2010.11.14.제주시 이도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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