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책 읽는 즐거움 ㉣ 사진책과 함께 놀기
 ― 내 삶인 사진을 새롭게 빚어내기



 누군가는 프랑스라는 나라를 수월히 오가면서 프랑스 문화와 삶과 사진을 온몸으로 맛봅니다. 누군가는 프랑스는커녕 이웃한 일본이나 중국조차 거의 드나들지 못할 뿐더러, 아예 드나들 틈을 못 내는 가운에 이 나라에서 살아갑니다. 프랑스를 맛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는 프랑스를 맛보지 못하는 사람하고 견주어 프랑스를 한결 잘 알거나 한껏 가슴으로 껴안는다 여길 만합니다. 이와 함께 한국땅에 뿌리박은 채 나라밖 마실은 못하는 사람으로서는 한국땅 삶터와 삶자락과 사진을 조금 더 헤아린다 할 만할까요.

 가난한 사진쟁이인 저는 프랑스라는 나라를 밟아 보지 못했고, 이 나라를 밟을 만한 살림돈은 없지만,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프랑스 사진잡지 《PHOTO》를 곧잘 장만합니다. 그나마 새책으로도 못 보고 헌책으로 보지만, 이 사진잡지를 새책으로 장만하여 읽어 준 ‘한국 사진쟁이’나 ‘여느 한국사람’이 있기 때문에 고맙게 헌책방에서 조금 눅은 값으로 장만하여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잡지 《PHOTO》는 다달이 나옵니다. 얼마 앞서 서울마실을 하면서 이 사진잡지를 대여섯 권 장만했습니다. 2008년 12월치를 보니 455호라 합니다. 한 해에 열두 권이니 열 해면 백스무 권, 서른 해일 때에 삼백예순 권이니만큼, 마흔 해가 조금 못 되는 발자취인 《PHOTO》입니다. 사진잡지 하나가 마흔 해 가까이 꾸준하게 나올 수 있다니 대단한데, 일본에서는 《アサヒカメラ》라는 사진잡지가 1949년부터 한결같이 나오니까 훨씬 대단하다 할 만하겠지요. 사진잡지 나이만 보아도 예순한 살이 넘잖아요.

 문득 궁금해서 잡지를 뒤적여 누리집이 있나 살핍니다. “www.PHOTO.fr”이라는 주소가 있어 들어가 봅니다. 프랑스 사진잡지를 그때그때 사 읽을 수는 없으나 프랑스 사진잡지 누리집에 틈틈이 들어가며 프랑스에서 일구는 사진밭 흐름을 찬찬히 살필 만합니다. 사진잡지 《PHOTO》를 보면 다달이 눈여겨볼 만한 사진책을 죽 보여주는 자리가 있으나 언제나 그림떡이라고 느껴 슬픈데, 아쉬우나마 이렇게 누리집으로 나라밖 사진 이야기를 엿볼 수 있으니 고마워요. 참말, 프랑스 사진잡지 《PHOTO》에서 다루는 숱한 사진책이랑, 일본 사진잡지 《アサヒカメラ》에서 손꼽는 수많은 사진책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기쁘게 들여다보며 사진을 익힐 나날을 언제쯤 맞이하려나 궁금합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나라에는 어린이책 도서관부터 제대로 있지 않지만, 청소년책 도서관이든 어른책 도서관이든, 또한 문학책 도서관이든 잡지책 도서관이든 과학책 도서관이든 철학책 도서관이든 그림책이나 사진책 도서관이든 무엇 하나 알뜰히 건사하는 도서관이란 없어요. 사진책을 마음껏 즐기며 사진놀이를 하고파도 좀처럼 숨구멍을 트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예 없는 터전을 하루아침에 바랄 수 없습니다. 아예 없으니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일구어야 합니다.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일구되 잔뜩 찌푸린 얼굴이 아닌 활짝 웃거나 방그레 웃음짓는 매무새로 일구어야지 싶어요. 왜, 예부터 어릴 적에 마을에서 놀이를 할 때에는 돌멩이나 나뭇가지 하나로도 신나게 놀잖아요. 흙땅에 금을 죽 긋고는 갖가지 놀이를 즐겼어요. 사진기가 없으면 손가락으로 사진기 모양을 만들어 찰칵찰칵 하면서 신나게 사진을 찍었고요.

 빼어나거나 뛰어난 사진책을 기쁘게 맞아들일 수 없는 이 나라이지만, 우리가 알차며 어여쁜 사진책을 하나씩 엮으면 됩니다. 다른 사람한테 바라기 앞서 나 스스로 아리땁게 사진책 하나 만들 수 있어요. 내 살가운 벗을 찍은 사진으로 사진책을 만들고, 내 아버지나 내 아이 사진을 찍어서 사진책을 빚으면 돼요. 꼭 책방에 꽂혀 여러 사람한테 사랑받아야 하지는 않아요. 우리 집 책꽂이에 곱게 꽂아 놓고는, 우리 집에 찾아오는 손님한테 즐거이 보여주면 흐뭇해요. 사진책 《윤미네 집》이 괜히 태어났겠어요. 다시 나온 책을 읽으면, 집식구들은 이렇게 사진책을 새롭게 펴내는 일을 썩 달가이 여기지 않으셨다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 살붙이 살림살이를 어여삐 사진으로 담아내면서 먼 뒷날 또다른 “아무개네 집” 사진책을 내놓을 만해요. 사진이란 삶이잖아요. 사진이란 삶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 내 삶을 마음껏 즐기며 노는 모양새 그대로 신나게 가꾸거나 보듬거나 보살피거나 꾸미면 넉넉합니다. 사진으로 놀고 사진으로 일하면서 사진으로 이야기하면 돼요.

 삶인 사진이기에, 사진은 언제나 내 곁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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