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모모씨 1
타카하시 신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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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으로 이루어진 밥을 먹는 삶이란
 [만화책 즐겨읽기 12] 다카하시 신, 《꽃과 모모씨 (1)》



 가만히 앉아 밥상을 받을 때하고, 칼질을 하면서 밥상을 차릴 때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세 식구 밥상일 뿐이지만, 아침을 차리느라 부산을 떨고는, 아침을 먹고, 치우며 설거지를 하고, 기지개를 켜며 살짝 쉬다가도, 어느덧 저녁에 무엇을 차려서 먹어야 할까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변변하지 못한 살림꾼은 살림꾼답게 아침저녁을 차려 내지 못합니다. 차리기야 하고 치우기야 하지만, 얼마나 알뜰하고 알차게 밥을 받아들여 하루를 즐겁게 보내도록 이끄는지를 살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어머니가 차려 주던 밥은 그저 배만 채워 주는 밥이었을까요. 내가 차리는 밥은 내 살붙이한테 배만 채워 주는 밥이고 말까요.


- ‘저(토끼)는 태어난 뒤로 대부분 모모씨가 만든 밥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한 마디로 제 몸은 모모씨의 애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61쪽)


 오늘 하루는 아침과 저녁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니 책을 읽을 수 없고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다른 일을 하자며 틈을 낸다든지 겨를을 얻지 못합니다. 고작 밥그릇 하나라 할는지 모르지만, 기껏 반찬 하나라 여길는지 모르지만, 이 하나 마련하여 차리기까지 퍽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얼추 헤아려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고 새삼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날마다 밥을 차리느니 밥을 새로 하느니 복닥거리기는 하지만, 정작 밥상을 받는 사람들 마음이나 느낌을 옳게 헤아리지는 않았습니다.

 ‘고맙다’ 소리를 들으려고 밥상을 차릴 수 없습니다. 먹는 사람 스스로 절로 ‘고맙다’ 말할 수 있으면 기쁠는지 모르지만, 먹는 사람을 바라보며 ‘고맙구나. 오늘은 무언가 먹을 만하게 차렸구나.’ 하고 생각하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프거나 힘든 짝꿍 다리를 주무를 때에 ‘고마워’ 소리를 듣기를 바라겠습니까. ‘내가 제대로 주무르기나 하나?’ 하고 생각하며 주무를 뿐입니다. 국이나 찌개가 간이 잘 맞았는지, 밥물을 옳게 맞추었는지, 그나마 젓가락질을 하며 집을 찬거리가 있는지를 돌아볼 노릇입니다. 만화책 《꽃과 모모씨》에 나오는 토끼가 속으로 읊는 말마따나 ‘살림꾼 땀과 사랑으로 우리 살붙이 삶이 이루어지’니까요. 우리 살붙이 삶이 살림꾼 땀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데, 얕은 마음이나 넋으로 밥을 차릴 수 없어요.


- ‘모모씨의 하루는 정말 바빠요. 아침식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저녁식사를 걱정한답니다.’ (10∼11쪽)
- “밥 먹고 나서 설거지, 빨래, 청소, 그리고 곧장 밭일. 진짜 열심히 일하네요. 엄청 힘들겠네요.” “전혀. 편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닌걸.” (208∼209쪽)
- “엄마, 여기는, 내 집이야.” (159쪽)
- “모모씨는 남편을 위해 매일 저녁밥상을 차린대.” “우와, 그건 좀 심한 거 아니에요?” “하하, 솔직히 우린 그 정도까지는 안 해.” “그래도 얼마나 근사해.” “소중한 사람을 위해 접시를 놓는다는 게.” (216쪽)



 아이는 언제나처럼 일찍 깨어납니다. 일찍 깨어나니 일찍부터 배가 고플 테지요. 배가 고플 아이한테 아침부터 무언가 집어먹을 이런저런 밥거리를 마련해 주어야겠지요. 능금알을 깎아 주든 뭐를 마련해 주든 할 노릇입니다. 슬슬 배가 고플 무렵에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그릇을 내어줄 수 있게끔 밥때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밥상에서 깨작거린다면 아이가 투정을 부리거나 골을 부린다고만 여기지 말고, 아이가 즐겁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상차림이 알뜰하지 못했다고 여길 일입니다. 억지스레 먹인다고 밥을 잘 먹으려나요. 가붓하며 기쁘게 차려서, 서로서로 즐겁게 밥술을 들어야지요.

 참말, 아침부터 집일이란 줄줄이 이어집니다. 밥하고 치우고 빨래하고 쓸고닦는 데에만도 하루해가 꼴딱 넘어갑니다. 겨울해는 한결 짧아 빨래 널어 말리는 데에도 더 마음을 들여야 하고, 아이도 씻기고 아이랑 즐거이 놀며 아이가 새로운 말을 기쁘게 익히도록 그림책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 살림살이를 북돋울 벌이를 해야 합니다.

 아침 일곱 시 반에 무를 다섯 뿌리 씻어 놓습니다. 우리 텃밭에서 뽑은 그리 굵지 않은 무인데, 이듬해 새로 텃밭을 일굴 때에는 거름을 제때 잘 내어 한결 굵게 거둘 수 있겠지, 하고 헤아립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손수 일구어 마련해 준 당근도 씻어 놓습니다. 아침 여덟 시 십 분쯤, 아이한테 당근을 갈아서 작은 밥그릇에 담아 줍니다. 아이는 잘 먹어 줍니다. 당근을 아침마다 갈아서 주면 아이가 제법 잘 먹는데, 가만히 돌아보니 이제까지 아침마다 제대로 당근을 갈아서 준 일이 무척 드뭅니다. 길어야 오 분쯤일까요.

 당근을 마저 갈아 국그릇에 담습니다. 남은 녀석은 달걀 둘을 풀어 달걀말이를 할 생각입니다. 저는 달걀부침을 잘 못합니다. 더욱이 노른자를 예쁘게 살린 달걀말이는 거의 해내지 못합니다. 그래도 용케 달걀말이는 합니다. 어릴 적부터 달걀부침은 잘 안 되었고, 달걀말이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 해냈습니다.

 감자와 고구마를 얇고 동그랗게 썹니다. 감자나 고구마를 길쭉하게 썰어서 무치면 아이는 건드리지 않고 입을 앙 다물기만 하기에, 저번에 한 번 ‘설마 동그랗게 썰면 먹으려나? 호박지짐이나 다른 지짐은 동그랗게 해 놓으면 잘 먹었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해 보았는데, 생각대로 잘 받아먹어 주었습니다. 여기에 양파를 썰어 물을 조금 부은 널찍한 냄비에 작은불로 졸이듯 끓입니다. 고구마랑 감자가 다 익을 무렵 텃밭 배추를 잘게 썰어 넣고 불을 끈 다음 조청과 어간장을 넣어 버무립니다. 텃밭 배추는 벌레가 잔뜩 먹은 녀석인데 국이나 이런 데에 잘게 썰어 넣으면 냄새와 맛이 꽤 괜찮구나 싶습니다. 잘게 썰어 넣고 남은 배추는 달걀말이 하는 데에 넣기로 합니다. 맑은 무채를 한번 해 볼 생각으로 무도 채 썰어 놓았으나 손이 모자라 무채까지는 못하고 그냥 소금물에 담가 놓습니다. 이러는 사이 흰쌀과 검은쌀과 보리랑 차조랑 수수랑 밀쌀로 짓는 밥이 다 되어 갑니다. 어제까지는 하루에 밥을 한 번만 했으나, 오늘부터는 하루에 두 번씩 할까 생각합니다. 손이 조금 더 갈 뿐, 새로 한 밥을 먹는 맛과 느낌이 훨씬 좋으니, 이 또한 하루에 오 분쯤 더 쓰자고 생각합니다. 반찬을 하든 밥을 하든 여기에 들이는 품과 겨를만큼 서로서로 한결 즐거울 테니까요.


- ‘후훗, 그럼 이제, 간식을 먹어 볼까. 식빵 자투리로 만든 러스크와 마당에서 뜯은 허브 티. 날씨가 정말 좋다. 빨래도 바싹바싹 잘 마르겠네.’ (24쪽)
- ‘모모씨는 큰 고구마나 감자만 보면 왠지 즐거워한답니다.’ (56쪽)
- “옛날에는 농사지을 때 온 동네 사람끼리 서로 도와가며 했거든. 그래서 도와주는 사람들을 위해 정성껏 ‘새참’을 만들어 대접했지. 요리 정보도 교환하고 말이야.” (153쪽)
- “이 논도 모모씨가 얘기를 꺼내서 시작한 거야. 정말 아름다워. 매일 봐도 질리지가 않아. 모모씨가 맡은 구역만 벼가 더 잘 자라는 것 같은 게 마음에 걸리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저렇게까지 정성을 쏟지 못하니까.” (215쪽)


 여덟 시부터 부산을 떨며 아침을 차리면서 아이한테 접시를 밥상에 올려놓아 달라고 부릅니다. 스물여덟 달짜리 아이는 아빠 심부름을 잘 해냅니다. 그런데 달걀말이 담은 접시를 밥상에 올려놓고는 한참을 돌아오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혼자 한두 점 냠냠짭짭 할 테지요. “벼리야.” 하고 부르니 그제야 오고, “혼자 먹었니?” 하고 물으니 “응.” 하고 말합니다. 두부 담은 접시랑 도토리묵 담은 접시도 하나씩 들려 방으로 들입니다. 아이는 또 안 옵니다. 보나 마나 혼자 묵이랑 두부를 손가락으로 집어먹겠지요. 밥을 담은 냄비랑 국을 담은 냄비를 하나씩 아빠가 들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 제 밥그릇을 벌써 자리에 착착 놓았습니다. 수저는 자리에 놓지 못했군요.

 먹다가 놀려 하고, 먹으면서 안 먹으려는 듯 땡깡을 부리는 아이를 구르고 달래며 나무라면서 그예 밥을 다 먹이고 설거지를 합니다. 아이가 기름을 쏟은 두꺼운 깔개 하나는 아직 빨지 못했기에 오늘은 빨아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녀석이 씻는방에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거든요. 아이 옷가지랑 기저귀를 빱니다. 옆지기 두꺼운 겉옷을 빨고 깔개를 빱니다. 다 빤 깔개를 큰 대야에 담아 마당으로 나옵니다. 번쩍 들어 빨랫줄에 걸칩니다. 물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겨울에 얼른 말라 주기를 바라면서 휘 돌아가며 깔개 밑자락을 꾹꾹 쥐어짭니다. 손아귀가 저릿저릿할 때까지 한참 쥐어짭니다. 허리를 토닥이며 방으로 들어갑니다. 엄마랑 아이가 씻는다 해서 엄마 먼저 씻고, 조금 뒤 아이 옷을 벗겨 씻는방으로 들입니다. 이제 좀 기지개를 켤 만한가 싶어 시계를 봅니다. 열한 시 사십 분. 귤 하나 까먹고 멍하니 앉아서 쉬자니 아이가 어느새 다 씻고 나올 무렵. 아이한테 옷을 입힙니다. 옷을 다 입은 아이는 조고마한 손으로 귤을 까서 반을 갈라 아빠한테 나누어 줍니다. 아이 얼굴에 신나게 뽀뽀질을 하고는 “이제부터 아빠는 아빠 일 할 테니까 좀 도와줘.”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아빠 옆구리에 등을 기대 앉아 다른 귤을 또 신나게 깝니다. 귤을 먹는 재미보다 귤을 까는 재미가 더 좋은 듯합니다.


- “설령 앞날이 어둡다고 해도, 생선이 이런 맛이고 이렇게 생겼었다는 걸 사,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35쪽)
- ‘아저씨는 버려진 자전거가 많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 주셨어요. 바람이 약간 빠진 바퀴는 비탈길을 피해 강을 따라 난 길을 힘차게 도라갑니다. 모모씨는 자전거를 탈 때 가슴을 쭉 펴고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달립니다.’ (41쪽)
- “저기, 이, 쌀.” “그렇지? 밥이 반짝반짝!” (232∼233쪽)


 만화책 《꽃과 모모씨》 1권을 더듬습니다. 올해에는 2권이 나오기 힘들 테고 2011년 봄께에는 2권이 나올까 궁금합니다. 《꽃과 모모씨》는 일본 도쿄에 갑자기 피어난 어마어마하게 큰 꽃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사라진 가운데, 이 사라진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큰꽃 둘레에서 외로우면서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립니다. 모모씨는 이들 ‘사라진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가운데 하나로, 몸소 텃밭을 일구어 먹을거리를 장만하여 날마다 밥상을 차리는 새댁입니다. 갓 시집을 가서 남편을 ‘잃었다’고 해야 할는지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을 그리워한다’고 해야 할는지 알쏭달쏭하지만, 한결같은 사랑과 믿음으로 밥 한 그릇을 마련합니다. 땀을 들여 땅을 일구고, 땀을 들여 일군 땅에서 고마운 곡식과 푸성귀를 얻고, 이 곡식과 푸성귀를 혼자서 즐길 수 없다고 여깁니다.

 메말랐을 뿐 아니라 거칠고 쓸쓸하다 싶은 도쿄라는 커다란 도시 한복판에서 벼를 손수 길러 먹자며 논을 일구는 마음결이요, 힘겨운 사람한테는 스스럼없이 손을 내미는 마음씨요, 배고픈 이하고 즐거이 도시락이든 밥이든 나누어 먹는 마음가짐입니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밥을 마련하고, 사랑으로 이루어진 밥을 나누며, 사랑으로 이루어진 밥으로 다시금 기운을 차립니다.

 꿈 같은 소리입니다만, 한국땅 서울에도 큼지막한 꽃 한 송이 피어나 군대도 정치꾼도 재벌총수도 어찌하지 못하면서 전기가 끊기고 신문과 방송 모조리 끊어지면서, 내 집 마당에 내 자그마한 텃밭을 일구면서 내 밥상을 내 손으로 차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긴다면 얼마나 새삼스러우랴 싶습니다. 아, 그러나저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나 이제나 도심지 한복판 조그마한 골목집에서 꽃밭이랑 텃밭이랑 살뜰히 일구면서 당신 살림을 예쁘게 보듬는 분들은 어김없이 있습니다. (4343.12.6.달.ㅎㄲㅅㄱ)


― 꽃과 모모씨 1 (다카하시 신 글·그림,강동욱 옮김,삼양출판사,2010.10.7./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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