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사랑할 어른들 삶을 생각해
― 이오덕, 《이 땅에 살아갈 아이들 위해》



- 책이름 : 이 땅에 살아갈 아이들 위해
- 글 : 이오덕
- 펴낸곳 : 지식산업사 (1986.2.25.)


 얼마 앞서 흙으로 돌아간 리영희 님을 비롯해, 앞서 흙으로 돌아간 권정생 님, 전우익 님, 이오덕 님, 성래운 님 같은 어르신들은 입으로 떠들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같이 몸으로 살아간 사람입니다. 이분들이 우리한테 선물처럼 남기고 간 책이란 이분들이 몸부림치며 살아온 발자국이 담긴 땀방울입니다. 머리로 떠올리거나 헤아리며 엮은 앎조각이 아닙니다.


.. 이른 봄 시장에 가면 냉이와 씀바귀를 살 수 있다. 그러나 될 수 있으면 아이들과 함께 들에 나가 그것들을 캐면서, 또 죽을 끓여 먹으면서 봄날의 산과 들에 피어나는 풀이름 몇 가지라도 알리도록 하자. 이것이 이 땅에 태어나서 이 땅에 살아갈 아이를 둔 부모의 할 일이다. 그리고 도시에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봄날에 한 번쯤은 (관광놀이 가는 것이 아니라) 진달래가 만발한 산을 찾아가, 이것이 조국의 강산이란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하자. 절대로 꽃을 꺾어다 꽃병에 꽂는 따위 철없는 짓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  (115∼116쪽)


 사람들이 책을 잘 읽어 주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생각합니다만, 책을 잘 읽자면 삶을 먼저 잘 읽어야 합니다. 삶을 먼저 잘 읽는 사람이라면 당신 삶을 알뜰히 꾸리기 마련입니다. 곧, 내 삶을 알뜰히 꾸리는 사람이라면 으레 내 삶을 잘 읽기 마련이요, 내 삶을 잘 읽는 사람이라면 책을 잘 헤아려 주기 마련입니다.

 주머니에 돈이 많아 ‘참 좋다고 하는 책’을 잔뜩 사들인달지라도, 스스로 삶을 알뜰히 꾸리지 못한다면, 애써 사들인 ‘참 좋다고 하는 책’마다 무엇을 말하거나 밝히며 보이는가를 깨닫지 못합니다. 더러 알아챈다고는 하나 머리속에 가두는 앎조각으로 그칠 뿐, 막상 이 이야기들을 내 삶으로 받아들이거나 삭이지 못합니다.

 삶으로 삭일 때에 책이고 앎입니다. 삶으로 녹일 때에 책이며 앎입니다. 삶으로 태어나는 책이자 삶입니다. 이 땅에 살아갈 아이들 생각하여 내놓은 책 하나는 이 땅에 살아갈 어른들 헤아리며 내놓은 책입니다. 이 땅에 살아갈 아이들하고 이 땅에 살아갈 어른들은 살가운 벗이 되어야 하고, 서로를 아끼는 고운 동무가 되어야 합니다. (4343.12.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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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성을 둘 다 쓴다고 평등이 아니지만
― 오숙희, 《내가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


- 책이름 : 내가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
- 글 : 오숙희
- 펴낸곳 : 그린비 (1991.4.30.)



 오숙희 님은 이제 오한숙희 님입니다. 아직 오숙희 님이던 1991년에 내놓은 《내가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는 당신이 대학교에서 한창 여성학을 강의하던 서른 안팎 나이 이야기를 소록소록 담습니다. 스물을 갓 넘은 풋풋한 젊은이하고 마주한 첫 자리에서 오숙희 님은 큰 벽이 부딪혔다고 말합니다. “강의 처음부터 나는 뜻밖의 벽에 부딪혔다. 학생들의 상당수가 여성이 차별당하고 있는 현실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었다(12쪽).”

 어느덧 2011년을 바라보는 2010년 12월 한겨울 복판에서 생각합니다. 다음해면 이 책이 나온 지 스무 해인데, 2011년에 새롭게 대학교에 들어가는 젊은 넋들은 ‘2011년을 잣대로 놓고 볼 때에 이 나라 여성은 푸대접을 안 받는다’고 여길는지 ‘2011년을 잣대로 놓든 2021년을 잣대로 놓든 이 나라 여성은 푸대접을 받는다’고 여길는지 궁금합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오숙희 님이 오한숙희 님으로 바뀐 일은 아주 조그마한 몸부림입니다. 찻잔 안쪽에서 비바람이 치는 셈입니다만, 이나마라도 보여주며 살고픈 일입니다. 왜냐하면 ‘오’씨는 숙희 님을 낳은 아버님이요, ‘한’씨는 숙희 님을 낳은 어머님인데, 한씨 어머님이란 당신 아버님, 곧 숙희 님 할아버님입니다. 이래 보나 저래 보나 하나같이 아버님들한테서 물려받은 씨입니다. 그나마 당신 코앞에 있는 어머님을 헤아리며 이렇게나마 몸부림을 칠밖에 없는 오늘날입니다. 우리 나라는 혼인을 해도 ‘여자 성이 안 바뀐다’고 하지만, 우리 나라 여자는 처음에 태어날 때부터 ‘제 성을 못 받으며, 그러니까 제 성이 없는 채’ 살아갑니다.


.. 우리가 배운 여성학은 실천학문입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실천의 기회를 드리겠어요. 여성들이 느끼는 최대의 공포가 뭐라고 했죠? ..  (337쪽)


 어느 책을 읽다가 김홍도 님이 그린 그림 가운데 ‘자상한 남편’이 ‘아내는 소에 태워 앉아서 가도록’ 하고 큰 아이를 등에 업고 짐도 등에 짊어진 채 걷는 모습이 있다는 풀이말을 보고는 흠칫 놀랐습니다. ‘자상한 남편이라고? 그러면 자상한 아내란 무엇이지?’

 여자 집식구가 남자 집식구한테 물을 갖다 주거나 술을 따라 주거나 밥상을 차려 줄 때에 ‘자상하다’거나 ‘고맙다’거나 ‘따스하다’고 말하는 일은 거의 못 봅니다. 남자 집식구가 여자 집식구한테 물을 갖다 주거나 술을 따라 주거나 밥상을 차려 줄 때에 ‘저 남자 미쳤군’ 하는 소리를 으레 듣습니다. ‘아내한테 꽉 잡혀 사는군’ 하는 소리를 덩달아 듣습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하나둘 바뀔 수 있겠지요. 여자들은 여성학을 하니까요. 아직 남자들이 남성학을 안 하니 걱정입니다만, 무엇보다 남자들이 ‘참 남자다움이란 무엇이고, 남자로서 사람다이 사는 길이란 어떠한가’를 깨닫고 살피며 받아들여야 온누리가 달라지겠지만. (4343.12.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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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서재에서는 [알림글 쓰기]가 퍽 까다롭다. 아니, 내가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니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모를 뿐이겠지. 

 어쨌거나, 오늘부터 [리뷰]와 [페이퍼] 자리에 '헌책방에서만 만나는 책' 이야기를 다시 쓰기로 했다. 느낌글을 쓸 때에 으레 '꽤 길게' 쓰곤 해서 정작 소개하거나 알리지 못하는 책이 몹시 많은데, 앞으로는 길게 쓸 글은 길게 쓰되, 짧게 써도 즐거운 책이야기는 단출하게 적바림하면서 조금 더 널리 책삶을 펼칠 수 있도록 해 보고자 한다. 

 새책방에서 살 수는 없으나, 아직 자취가 남았다든지, 새로운 판으로 다시 나왔다면 [리뷰] 자리에 글을 올리고, 아예 자취가 사라졌거나, 헌책방 아니고는 만날 수 없다면 [페이퍼] 자리에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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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책에서 맨 끝에 '日' 밑에 있는 한자를 아는 분 있으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山に生かされた日○... 늘 이런 대목에서 걸리고 마네요... 뭐라고 읽어야 할까요...

ㅠ.ㅜ 

옥편에서 찾고 또 찾아도 늘 잊고 다시 잊어버리고 마네요... 

에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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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Pei 2010-12-13 17:22   좋아요 0 | URL
그 한자는 일본에 독특한 한자로서 앞에 붙은 한자를 되풀이하는 겁니다.
생략한자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그 제목은 "山に生かされた日日(야마니 이카사레타 히비"라고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한자지요. 뜻은 마침 "나날". "날"의 복수형. ^^
참고하십시오. ^^

ChinPei 2010-12-13 17:43   좋아요 0 | URL
人(ひと:히토 = 사람) + 생략한자
--- 人人(히토비토) = 사람들

我(われ:와레 = 우리) + 생략한자
--- 我我(와레와레) = 우리들

個(こ:코 = 개인, 각자 등) + 생략한자
--- 個個(코코 : "코고"가 아님) = 개개(개개인 등)

一(いち:이치 = 일, 하나) + 생략한자
--- 一一(이치이치) = 일일히, 하나하나, (많은 걸)하나씩

파란놀 2010-12-13 18:15   좋아요 0 | URL
아아, 그렇게 쓰면 되는군요
고맙습니다.
그러면, 이 말은 일본어 문자표에서 찾아야 나오겠네요~~

덧붙여 주신 풀이말 또한 고맙습니다~

글샘 2010-12-13 17:25   좋아요 0 | URL
조거는 한자가 아니구요...
같은 글자를 반복할 때... 그러니깐 "이나 같은 뜻으로 쓰던 글자입니다.
옛날에 한문 서적에서도 볼 수 있구요. 세로쓰기 한글책에서도 볼 수 있던 글자.
한자는 똑같은 글자를 연달아 내려쓰기를 싫어했답니다.
그래서 같은 페이지에 같은 자가 있으면 조금 다른 글자로 쓰곤 했는데,
연달아있으면 저 글자를 썼죠. 일본어에선 아직도 쓴답니다.

파란놀 2010-12-13 18:20   좋아요 0 | URL
오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사진삶과 사진앎
 ― 사진을 사랑하여 맞아들이는 길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사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림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나 춤을 추는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는 사람이라면 학교와 아이들을 내 삶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리하여 사진쟁이한테는 사진삶입니다.

 사진책을 읽고 싶다든지 사진을 읽어내고 싶다면 사진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다면 아이를 알아야 할 뿐더러 아이 삶과 아이 목숨을 알아야 하고, 아이가 하는 옹알이부터 더듬더듬 하는 말 모두를 알아야 합니다. 남녀가 짝짓기를 한다 해서 낳는 아이가 아닙니다. 남녀가 사랑으로 어우러지면서 즐겁게 만날 때에 비로소 아이를 낳습니다. 이리하여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랑하고픈 분들한테는 사진앎입니다.

 그저 사진책과 사진을 좋아하면서 사진삶을 함께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진쟁이인 한편 사진즐김이로서 사진앎에 한 발 두 발 다가설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진삶과 사진앎을 함께 어우를 수 있으면 가장 좋습니다. 다만 가장 좋은 길이라 해서 모두 이 길을 걸어야 하지는 않아요. 저마다 내 주제와 그릇과 깜냥과 슬기와 몸가짐과 살림살이에 맞추어 차근차근 가다듬으면 됩니다.

 사진기를 늘 곁에 둘 뿐 아니라, 뒷간에 똥을 누러 갈 때마저 사진기를 챙기는 사람이 있겠지요. 꼭 사진을 찍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사진기를 내 몸과 같이 여기면서 언제나 어깨에 걸거나 손에 쥐는 사람이 있어요. 사진을 찍는 자리에서는 번개같이 찍되, 구태여 사진기를 안 챙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사진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둘 모두 다른 빛깔 다른 내음 다른 소리로 사진을 즐기거나 맞아들인다고 여겨야 옳습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사진기가 다르고, 저마다 살림살이가 다르기 때문에, 누구나 다른 사진기를 씁니다. 대형사진기 쓰는 사람이 있을 테고, 조그마한 사진기 쓰는 사람이 있을 테며, 똑딱이 쓰는 사람이 있겠지요. 사진기를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사진이 달라지기는 하는데, 더 값비싼 사진기를 쓰는 사람이 더 값있는 사진을 얻지 않아요. 더 비싸고 빠른 차를 가졌다 해서 더 빨리 달리지는 않잖아요. 더 값나가는 자전거를 달린다고 해서 자전거 달리기에서 1등을 하지 않아요. 내 사진기를 내가 얼마나 받아들이며 좋아하느냐에 따라 내 사진이 달라져요. 내가 사진책이나 사진을 어떻게 좋아하려는가에 따라 내 눈썰미와 눈길과 눈높이가 거듭나요.

 운동경기에서는 등수를 가리지만, 정작 따지고 보면 등수란 부질없습니다. 문화와 예술을 ‘상품이나 작품으로 사고팔 때’에 돈으로 값을 매기곤 하지만, 숫자란 덧없습니다. 우리가 마음쓸 대목은 ‘내 사진’이냐 아니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냐 아니냐입니다. ‘내 마음을 담은 사진’이냐 아니냐예요. ‘내 삶을 깃들여 놓은 사진’이냐 아니냐입니다.

 사진을 읽을 때에도 ‘내 눈길로 읽은 사진’이냐 아니냐에 마음을 쓸 노릇입니다. ‘내 눈높이를 즐기는 사진’이냐 아니냐에 마음을 기울일 노릇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든 말든 아랑곳할 일이 아닙니다. 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울 만한 사진인가 아닌가를 읽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깎아내리든 말든 돌아볼 일이 아닙니다. 내 눈으로 들여다볼 때에 참말 깎아내릴 만큼 값없거나 어설픈 사진인가 아닌가를 살펴야 해요.

 잘난 사진삶이 없고, 잘난 사진앎이 없습니다. 빈틈없는 사진삶이란 없으며, 빈틈없이 들어맞는 사진앎이란 없습니다. 더 나은 사진삶을 바랄 수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늘 받아들이며 꾸리는 사진삶 한 가지만 있습니다. 더 깊은 사진앎을 꿈꿀 수조차 없습니다. 꾸밈없이 내 가슴과 마음과 손길과 눈길에 따라 노상 맞아들이며 다독이는 사진앎 한 가지만 있어요.

 사진 한 장으로 사회를 바꾼다는 얘기가 있으나, 사진 한 장으로 사회를 바꿀 일이란 없습니다. 사진 한 장이 사람들 삶으로 스며들 때에 사회를 찬찬히 바로세울 수 있습니다. 사진 한 장을 사람들이 삶으로 아로새기면서 생각과 마음을 갈고닦을 때에 비로소 사회는 제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글 한 줄과 그림 한 장도 마찬가지이며, 노래 한 가락과 춤 한 자락 또한 매한가지입니다. 혁명을 하는 노래나 책이나 그림이 아닙니다. 혁명을 하는 내 삶을 담는 노래나 책이나 그림이에요. 사진을 하는 삶이라면, 내 삶을 혁명을 하는 삶으로 북돋울 노릇이요, 사진을 읽는 앎이라면, 내 삶을 아름다우며 착하게 가꿀 노릇입니다. (4343.12.1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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