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성을 둘 다 쓴다고 평등이 아니지만
― 오숙희, 《내가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


- 책이름 : 내가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
- 글 : 오숙희
- 펴낸곳 : 그린비 (1991.4.30.)



 오숙희 님은 이제 오한숙희 님입니다. 아직 오숙희 님이던 1991년에 내놓은 《내가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는 당신이 대학교에서 한창 여성학을 강의하던 서른 안팎 나이 이야기를 소록소록 담습니다. 스물을 갓 넘은 풋풋한 젊은이하고 마주한 첫 자리에서 오숙희 님은 큰 벽이 부딪혔다고 말합니다. “강의 처음부터 나는 뜻밖의 벽에 부딪혔다. 학생들의 상당수가 여성이 차별당하고 있는 현실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었다(12쪽).”

 어느덧 2011년을 바라보는 2010년 12월 한겨울 복판에서 생각합니다. 다음해면 이 책이 나온 지 스무 해인데, 2011년에 새롭게 대학교에 들어가는 젊은 넋들은 ‘2011년을 잣대로 놓고 볼 때에 이 나라 여성은 푸대접을 안 받는다’고 여길는지 ‘2011년을 잣대로 놓든 2021년을 잣대로 놓든 이 나라 여성은 푸대접을 받는다’고 여길는지 궁금합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오숙희 님이 오한숙희 님으로 바뀐 일은 아주 조그마한 몸부림입니다. 찻잔 안쪽에서 비바람이 치는 셈입니다만, 이나마라도 보여주며 살고픈 일입니다. 왜냐하면 ‘오’씨는 숙희 님을 낳은 아버님이요, ‘한’씨는 숙희 님을 낳은 어머님인데, 한씨 어머님이란 당신 아버님, 곧 숙희 님 할아버님입니다. 이래 보나 저래 보나 하나같이 아버님들한테서 물려받은 씨입니다. 그나마 당신 코앞에 있는 어머님을 헤아리며 이렇게나마 몸부림을 칠밖에 없는 오늘날입니다. 우리 나라는 혼인을 해도 ‘여자 성이 안 바뀐다’고 하지만, 우리 나라 여자는 처음에 태어날 때부터 ‘제 성을 못 받으며, 그러니까 제 성이 없는 채’ 살아갑니다.


.. 우리가 배운 여성학은 실천학문입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실천의 기회를 드리겠어요. 여성들이 느끼는 최대의 공포가 뭐라고 했죠? ..  (337쪽)


 어느 책을 읽다가 김홍도 님이 그린 그림 가운데 ‘자상한 남편’이 ‘아내는 소에 태워 앉아서 가도록’ 하고 큰 아이를 등에 업고 짐도 등에 짊어진 채 걷는 모습이 있다는 풀이말을 보고는 흠칫 놀랐습니다. ‘자상한 남편이라고? 그러면 자상한 아내란 무엇이지?’

 여자 집식구가 남자 집식구한테 물을 갖다 주거나 술을 따라 주거나 밥상을 차려 줄 때에 ‘자상하다’거나 ‘고맙다’거나 ‘따스하다’고 말하는 일은 거의 못 봅니다. 남자 집식구가 여자 집식구한테 물을 갖다 주거나 술을 따라 주거나 밥상을 차려 줄 때에 ‘저 남자 미쳤군’ 하는 소리를 으레 듣습니다. ‘아내한테 꽉 잡혀 사는군’ 하는 소리를 덩달아 듣습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하나둘 바뀔 수 있겠지요. 여자들은 여성학을 하니까요. 아직 남자들이 남성학을 안 하니 걱정입니다만, 무엇보다 남자들이 ‘참 남자다움이란 무엇이고, 남자로서 사람다이 사는 길이란 어떠한가’를 깨닫고 살피며 받아들여야 온누리가 달라지겠지만. (4343.12.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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