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29] 무지개아파트

 자전거를 타고 읍내 장마당을 찾아가서 먹을거리를 잔뜩 장만한 다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왼편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를 살피다가 문득 읍내 아파트 한 곳을 올려다봅니다. 아파트 이름은 ‘무지개아파트’입니다. 시골 읍내에 선 아파트라 서울 한복판에 서는 아파트들마냥 갖가지 영어로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합니다. 참 예쁜 이름을 붙였구나 싶고, 이십 층이든 삼십 층이든 하는 아파트들도 이와 같이 이름을 붙이면 한결 나으리라 싶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길을 오르며 생각합니다. 무지개아파트도 좋고 흰구름아파트도 좋으며 실개천아파트도 좋습니다. 솜구름아파트라든지 소나기아파트라든지 사마귀아파트도 좋습니다. 그런데, 다른 보금자리가 아닌 아파트한테 이러한 이름을 붙일 때에 참말로 어울릴까 하고 생각하니 어쩐지 아니다 싶습니다. 고갯마루에서 자전거를 멈춥니다. 가방 무게에 눌려 안장이 조금 낮아졌다고 느껴 안장을 삼 밀리미터쯤 올립니다. 내리막을 신나게 달리며 춥지만 시원하다고 느낍니다. 시골 읍내 아파트이니까 무지개아파트란 이름을 붙일 만하지만, 시골 읍내 아파트라도 그냥 영어로 이름을 붙여야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아파트이니까요. 아파트라서요. (4343.1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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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2월 20일부터 2011년 1월 31일까지, 서울 시립미술관 별관이 있는 '경희궁 한켠'에서 "서울사진축제"가 펼쳐집니다. 이 서울사진축제에서는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자리가 함께 있는데, 이 자리에는 제가 꾸리는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에서 책 300권을 빌려서 꽂아 놓았습니다. 

 여느 자리에서는 거의 구경해 보기 어려운 책을 많이 내놓고 더 널리 보도록 해 놓았습니다. 틈 나는 분들은 경희궁으로 마실을 해 보소서... (그나저나 행사 안내종이네는 저한테 책을 잔뜩 빌려가 놓고 '협조'나 '후원'이나 '자료제공' 같은 말은 한 마디도 안 적어 놓았더군요. 쓸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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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는 마음


 즐겁게 길을 걷습니다. 내 걸음이 누구보다 빨라 가장 앞장서서 걸을 수 있지 않더라도 즐겁게 길을 걷습니다. 내 걸음이 누구보다 느려 가장 뒤처져 걸을지라도 즐겁게 길을 걷습니다. 내가 걷는 이 길에는 사랑하는 짝꿍이랑 아이가 함께 있습니다. 짝꿍이랑 손을 잡고 걷든 어깨동무를 하며 걷든 혼자 걸을 때보다 한참 더디 걸어야 합니다. 때로는 오래도록 한 자리에 머물거나 아예 며칠을 지내거나 때로는 그예 눌러살아야 합니다. 아이하고 손을 잡고 걷든 아이를 품에 안고 걷든, 아이 빠르기와 결을 살펴야 합니다. 더욱이, 아이가 힘들면 새근새근 잠들도록 바람 안 불고 따스한 보금자리를 찾아들어야 합니다.

 글을 쓰는 길을 걷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길을 걷습니다. 사진을 찍는 길을 걷습니다. 집살림을 도맡으며 집식구를 돌보는 길을 걷습니다. 조그마한 몸뚱이 하나로 버티기란 버겁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튼튼하다지만, 알고 보면 퍽 여린 몸뚱이로 이 숱한 일을 해내자니 벅찹니다. 그런데 용케 죽지 않고 살아갑니다. 어쩌면, 다가올 밤에 잠든 채 다시는 못 일어날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고맙게 다시 눈을 뜨며 새날을 맞이합니다. 새날을 맞이하며 새롭게 글을 쓰고 새롭게 사진을 찍으며 새롭게 아침을 마련하고 설거지를 하며 빨래를 합니다. 글과 사진은 날마다 새롭게 빚는데, 빨래랑 밥 또한 날마다 새롭게 보듬어야 합니다. 아이랑 어제 하루 신나게 놀았으니 오늘은 아이 혼자 내버릴 수 없습니다. 엊저녁 옆지기 다리를 주물렀으니 오늘은 못 본 척하며 지나칠 수 없습니다.

 요즈음은 시골에 사람이 크게 줄어 시골길을 거닐 때에 사람을 마주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드문드문 할매랑 할배를 마주칩니다. 시골길을 거니는 동안 사람보다 자동차를 훨씬 자주 마주칩니다. 그래도 도시처럼 어마어마하게 많은 자동차를 부대껴야 하지 않습니다. 고즈넉한 시골길을 걷는 동안 바람소리를 듣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구름이 흐르는 소리와 해가 기우는 소리를 가만히 고개를 갸웃하면서 느껴 봅니다.

 걷다 보면 땀이 나고, 땀이 나면서 가방을 멘 등허리가 쑤시고, 아이가 힘들어 할 때에는 아이를 안느라 팔다리가 몹시 결립니다. 때때로 도시로 마실을 나와 시내를 걸어야 하면 아이는 잠들지 못합니다. 시끄럽기도 시끄럽지만, 아이 눈을 사로잡는 가게 불빛이며 온갖 모습이 번쩍거리기 때문입니다. 시골길이나 골목길을 거닐 때에는 조용하기도 조용하지만, 시골자락과 골목자락이 보드라이 아이를 품어 줍니다. 아이는 시골길이나 골목길 마실을 할 때에 아빠 품에 안기거나 엄마 등에 업혀 새근새근 잠들곤 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더 자주 책방마실을 하고 더 많이 책을 사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는 우리처럼 가난뱅이 식구는 조그마한 집을 빌려도 달삯을 많이 치러야 합니다. 밑돈(보증금)을 거의 못 내는 살림이니까요. 도시에서는 밑돈 꾸랴 달삯 벌랴 눈썹 휘날리도록 휘둘리며 바빠야 하고, 쓰기 싫은 글이나 찍기 싫은 사진을 뽑아내려고 돈을 벌어야 합니다.

 기계처럼 글과 사진을 뽑아낼 때에도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만합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 착하고 참다이 내 삶을 사랑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고 싶습니다. 아이가 아빠 품에 안겨 조용히 잠들면서 바람결을 볼따구니로 느끼는 삶자리에서 일하며 땀흘리고 싶습니다. 더 많이 쏟아내어 더 많이 읽힐 글도 나쁘지 않겠지요. 더 빨리 달리는 자동차로 음성 읍내가 아니라 충주 시내로 다녀오면서 더 값싼 먹을거리나 살림살이를 장만해도 나쁘지 않겠지요. 그래도, 저랑 옆지기랑 아이로서는 읍내 조그마한 롯데리아 몇 백 원짜리 얼음과자로도 즐겁습니다. 그냥 작은 구멍가게 막대얼음과자로도 기쁩니다. 장마당 500원짜리 어묵꼬치를 우물우물 냠냠해도 신납니다. 빨래하느라, 밥하느라, 설거지하느라, 방바닥 쓸고닦느라, 이불 털고 빨고 말리느라, 아이랑 놀고 아이한테 그림책 읽어 주느라, 하루가 몇 해나 되는듯 아침부터 밤까지 등허리 펼 겨를이 없는데, 이런 삶이지만, 이런 삶밖에 안 되지만, 이냥저냥 즐거이 내 길을 걷습니다. 저녁나절 잠자리에 일찌감치 드러누워 아이를 부릅니다. 아이가 안 오고 놀겠다면 그냥 놀라 하고 아빠는 이동안 책이라도 몇 줄 읽으려고 합니다. 이러면 아이는 으레 “아빠 책 읽어 줘.” 하면서 달려옵니다. 그냥 너 혼자 더 놀다 오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다가는, 아이가 책을 읽어 달라 하는데 안 읽어 주는 못된 어버이가 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잠자리맡에 늘 놓아 두는 그림책을 집고 아이는 아빠 오른팔 베개로 눕히며 그림책을 읽습니다. 그림책에 적힌 글은 ‘어린이 눈높이에 걸맞지 않게 잘못 쓴 말투와 어려운 낱말이 잔뜩 깃들었’기에, 아빠는 이 말투를 모조리 고쳐서 새로 읽습니다. 아이는 눈알을 초롱초롱 빛내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도 이렇게 나한테 그림책을 읽어 준 적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안 읽어 주었는지 모릅니다. 뭐, 못 읽어 주었다고 해야 옳습니다. 먹고살기에 빠듯하고, 돈을 벌랴 집살림 꾸리랴 등허리가 휘셨으니까요. 출퇴근에 네 시간이 걸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돌아오는 평교사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면 그대로 뻗어서 쓰러지고 형이랑 나는 날마다 아버지 다리와 허리를 주물렀는데 아버지가 우리한테 그림책이건 동화책이건 읽어 줄 틈이 어디 있겠어요. 학교에서 학교 아이들한테는 읽어 주겠지만요.

 참말 돈은 못 벌고, 살림을 꾸린다지만 꽤 엉터리로 꾸리는데, 이럭저럭 어설프며 어줍잖은 하루하루라지만, 짝꿍이 있고 아이가 있기에 시골집에서 내 길을 내 깜냥껏 더디더디 걷습니다. (4343.1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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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읽는 책과 사람과


 나는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하고는 달리 살아간다. 그래서 내가 읽는 책은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이 읽는 책하고 다르다. 내가 사귀거나 만나는 사람 또한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이 사귀거나 만나는 사람하고 사뭇 다르다.

 삶이 다르니 넋이 다르다. 삶이 다르기에 쓰는 말이 다르다. 삶이 다른 만큼 찾아서 읽는 책이 다르고, 삶이 다른 터라 읽어서 아로새기거나 곰삭이는 이야기가 다르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달리 살아가며 다 달리 말을 하고 다 달리 책을 읽고 다 달리 사랑을 하며 다 달리 책을 읽는다. 이 다 다른 사람들은 몇 가지 잘 팔린다는 책을 읽으며 삶을 살찌울 수 없다. 그렇지만 이 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른 줄을 까맣게 잊는다.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인데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인 줄 생각조차 못하고 만다.

 몇 가지 책들이 수십 수백만 권 팔리는 모습을 보면 몹시 슬프다. 수천 수만 가지 책이 골고루 사랑받지 못할 때에 이 나라 앞날은 새까맣게 어둡기만 하다. 새로 나오는 책은 애써 광고를 할 까닭이 없어야 하고, 광고 하는 데에 돈을 써서는 안 된다. 책을 써내는 사람한테 알맞게 글삯이 돌아가야 하고, 책값은 가난한 사람 누구나 사 읽을 만큼 알맞게 붙여야 하며, 도서관마다 새로 나오는 책을 도서관 빛깔에 따라 골고루 갖추어야 한다. 출판사는 새로운 책을 꾀하는 데에 돈을 써야지, 몇 가지 책을 수십 수백만 권 팔아치우는 일에 돈을 써서는 안 된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달리 살아가며 다 달리 사랑하고 믿으며 나누는 나날을 일굴 때에 아름답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달리 읽은 책을 다 다른 느낌으로 나누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때에 아름답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아이를 낳아 다 다른 목숨을 빛내며 돌볼 때에 아름답다.

 나는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고, 발을 움직이며 다니기를 좋아한다. 나는 내 손을 써서 일을 하고 싶고, 내 발을 움직이며 걷거나 마실을 하고 싶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결대로 책을 찾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삶무늬대로 글을 써서 책을 내놓는다.

 2004년 6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책방에 넣는 책 아홉 가지에, 1인잡지로 내놓는 책 열 가지에, 책방에 넣지 않는 비매품 책 네 가지를 만들었다. 2011년에는 몇 가지 책을 만들 수 있을까. 새해에는 열 권쯤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꾼다. 아이가 일어났다. 아이가 깨기 앞서 밥물을 올렸다. 이제 슬슬 밥이 익겠구나. 집식구 먹을 아침을 차려야겠다. (4343.1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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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ferry 2010-12-22 13:05   좋아요 0 | URL
다 다르게 생긴 모양새 만큼 생각하는 것도 다른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인데, 저 또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 그럴 수도 있지...겉으로만 그런 체 하고 속으로는 존중하지 아니하며 발끈하는 나날 속에 중생의 삶을 삽니다.정말 마음으로 다름을 인정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쉽지 않은 수행입니다.^-^;

파란놀 2010-12-22 16:46   좋아요 0 | URL
저라고 이런 글을 쓰면서 '내가 잘났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때그때 내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내가 옳고 착하게 잘 걸어가는가를 헤아려 봅니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아름다운 내 삶이자 길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내 모자라거나 아쉬운 대목을 예쁘게 쓰다듬어 주셔요~
 



 사진 나누는 기쁨 ㉠ 글과 그림과 사진
 ― 한 사람으로 서며 이웃을 사랑하다



 강운구 님 사진이야기 하나 새로 나왔습니다. 진작부터 이런 책이 나와야 했지만, 아직 한국 사진밭은 그리 깊지 못한 탓에 이제서야 한 권 나옵니다. 강운구 님이든 주명덕 님이든 윤주영 님이든, 나라안에서 손꼽을 만한 사진밭 어르신들은 당신이 온삶을 들여 일구어 온 사진을 놓고 ‘사진이란 무엇인가’하고 ‘내가 찍은 사진이란 무엇인가’에다가 ‘내가 보거나 읽는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알뜰살뜰 풀어 놓아 주실 때에 아름답습니다. 젊은 사람이나 아직 어리숙하다 할 풋내기나 새내기 사진쟁이는 사진 한길 오래도록 걸어간 어르신들 땀방울을 고맙게 받아먹으면서 한결 씩씩하거나 튼튼히 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며 어른이 아이 앞에서 주절주절 늘어놓는 말은 따분합니다. 이른바 훈계는 아이한테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러나 아이들은 옛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냥 이야기를 좋아해요. 어른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이야기, 어른들도 아이였을 적에 어떻게 지냈는가 하는 이야기, 어른들은 무슨 놀이를 즐겼나 하는 이야기, 어른들이 좋아하는 삶이란 무엇이라는 이야기 들을 아이들한테 ‘훈계나 교훈이라는 허울’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이야기’라는 따스함으로 조곤조곤 오순도순 아기자기 소근소근 도란도란 들려줄 때에 아름다우면서 도움이 됩니다. 《강운구 사진론》은 이와 같은 이야기책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기지 않으랴 생각합니다. 다만, 책이름이 너무 딱딱한데요, “강운구가 즐긴 사진”이라든지 “사진을 찍는 즐거움”이라든지 “사진과 살아온 기쁨”처럼 수수하게 붙이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선물을 베푼다면 더 좋았으리라 싶어요. 왜냐하면 사진을 하는 분들한테 강운구 님 이름은 드높기도 하지만, 사진을 하는 분들 가운데 강운구 님 이름 석 자 모르는 사람 또한 많거든요.

 강운구 님 사진을 알거나 강운구 님 이름을 안다 해서 강운구 님이 내놓은 작품을 더 잘 헤아리거나 읽거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진을 하는 마음이 아름다울 때에 강운구 님 사진작품도 알뜰히 헤아리거나 읽거나 받아들여요. 이름난 분들 작품이라서 더 좋아할 수 없습니다. 이름없는 이들 작품이라서 하찮게 여길 수 없어요. 우리는 오로지 사진으로만 바라보고 사진으로만 읽습니다. 서로서로 계급이나 신분으로 나누지 않고, 오직 사람으로 껴안거나 어깨동무하며, 그예 사람으로 사랑하거나 믿습니다. 내 삶을 꾸리지, 겉치레를 하지 않아요.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읽거나 씁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거나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을 찍거나 읽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때에, 황순원이나 박수근이나 임응식을 안다 해서 글을 더 잘 쓰거나 그림을 더 잘 그리거나 사진을 더 잘 찍거나 하지 않습니다. 이분들을 모른다고 글을 더 잘 쓰거나 그림을 더 잘 그리거나 사진을 더 잘 찍지도 않습니다. 대학교를 마쳤건 유학을 다녀왔건 아랑곳할 일이 아닙니다. 내 삶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내 길을 어찌 걷는 가운데 내 벗과 살붙이랑 어떠한 결로 어우러지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벨라스케스를 아는 그림쟁이가 그림을 훌륭하게 그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벨라스케스를 모르는 그림쟁이는 벨라스케스가 베푸는 선물을 받아먹지 못합니다. 벨라스케스가 베푸는 선물을 받아먹지 못할지라도 그림은 알뜰히 그릴 만합니다. 아흔 가까운 나이에도 수채그림을 즐기는 박정희 할머님을 모른대서 그림을 못 그릴 까닭 없습니다. 그러나 아흔을 앞둔 그림쟁이 할머님을 가까이에서 모시거나 이분한테서 그림을 배우고자 말미를 마련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면서 또다른 선물을 받아먹습니다.

 벨라스케스는 내 어머니하고 같다고 여깁니다. 아흔을 앞둔 그림 할머님은 내 아버지하고 같다고 생각합니다. 벨라스케스를 헤아리듯 내 어머니를 헤아리고, 그림 할머님을 톺아보듯 내 아버지를 톺아봅니다. 꼭 이름난 글쟁이·그림쟁이·사진쟁이를 알아야 하지 않아요. 내 둘레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거나 아낄 사람을 알아보면서 껴안을 줄 알면 넉넉해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내 글에 담을 사람이나 삶을 꾸밈없이 껴안으면 되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내 그림에 싣는 사람이나 삶을 너그러이 감싸안으면 되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내 사진에 넣을 사람이나 삶을 아리땁게 보듬으면 됩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쿠델카를 읽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조반니노 과레스키를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데즈카 오사무를 읽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다 아름다운 넋으로 아름다운 꿈을 아름다운 삶으로 일구거든요. 내 이웃을 알려고 가까이하거나 사귀듯, 유진 스미스이든 구와바라 시세이이든 가까이하거나 사귑니다. 내 살붙이를 헤아리거나 아끼듯, 전민조이든 이해문이든 헤아리거나 아낍니다. 내 어버이를 사랑하거나 믿듯, 기무라 이헤이이든 토몬 켄이든 사랑하거나 믿습니다.

 글을 좋아하거나 사랑하기에 그림과 사진을 아울러 좋아하거나 사랑합니다. 그림을 좋아하거나 사랑하기에 글과 사진을 함께 좋아하거나 사랑합니다.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랑하기에 글과 그림을 좋아하거나 사랑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내 한길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삶을 예쁘게 건사하고픕니다. 글만 쓸 수 없고 그림만 그릴 수 없으며 사진만 찍을 수 없습니다. 글만 읽거나 그림만 읽거나 사진만 읽을 수 없습니다. 빨래도 하고 밥도 하며 설거지도 합니다. 아이도 돌보고 아이랑 놀며 아이를 씻깁니다. 옆지기하고 사랑하며 옆지기 아픈 곳을 주무르는 가운데 옆지기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집살림을 꾸리고 이웃살림을 돌아보면서 서로 도울 만한 일은 돕고, 도움받을 일은 도움받습니다. 나 스스로 예쁜 한 사람으로서 내 삶터에 씩씩하게 두 다리를 버티고 섭니다. 다만, 나는 사진쟁이인 까닭에, 내 이웃하고는 꼭 한 가지, 내 손에 언제나 사진기를 쥐는 대목 하나만 다릅니다. (4343.1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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