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말(인터넷말) 4] 신간도서

 어린이책 가운데 갓난쟁이부터 서너 살 아이가 보는 책을 놓고 ‘유아(幼兒)’ 책으로 갈라 놓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보기에 이 또래 어린이는 ‘아기’라 할 만합니다. 흔히들 ‘아기책’이라 말합니다. 놀이하듯 즐기는 책이라 놀이책이고, 어버이가 읽어 주는 책이라 읽기책이니,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이나 아기책이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아직 아기인 아이들한테 읽히기에 아기책이라 말할 수 있어야, 새로 나오는 책을 ‘신간도서(新刊圖書)’ 아닌 ‘새책’이라 말합니다. 새책을 ‘새책’이라 말할 때에 ‘유아 개념책’이라는 뜬구름 잡는 갈래 또한 사라지겠지요. ‘개념(槪念)’이란 참 무엇일까요. 아이들 생각을 키워 주는 책, 또는 지식을 늘려 주는 책이 아닐는지요. 생각해 보니, ‘신간 = 새책’입니다. ‘신간도서’라 하면 ‘새책 책’이 되니, 겹치기 소리입니다. (4344.1.1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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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3] cafe story

 ‘띠창’이라 해야 할까 싶은 ‘사이드메뉴’라는 데에는 한글로 ‘카페스토리’라 적지만, 막상 화면에 보이는 이름은 알파벳으로 ‘cafe story’입니다. ‘네이버’조차 아닌 ‘naver’이니까 어쩔 수 없는지 모르나, 오늘날 숱한 누리집 말매무새가 이와 같아요. 게다가 ‘카페지원센터’입니다. 동사무소를 ‘동주민센터’로 이름을 고칠 때에 나무라던 사람들 가운데 ‘지원센터’라는 이름이 얼마나 어설픈가를 느낄 분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카페지원마당’이나 ‘카페지원터’나 ‘카페도움마당’처럼 쓰기를 바라기는 참 힘듭니다. (4344.1.1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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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 한국의시인 2
김수영 지음 / 열음사 / 1988년 6월
평점 :
절판


‘시’는 문학이지 ‘입시 문제’가 아닙니다
― 김수영,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 책이름 :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 글 : 김수영
- 펴낸곳 : 열음사 (1984.3.1.)



 국민학교 다니던 때에 읽던 책을 고등학교 다니며 다시 읽을 때 느낌은 같을 수 없습니다. 줄거리를 더 깊이 읽거나 더 두루 읽을 뿐 아니라, 글쓴이 넋을 다른 눈길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남자라면 군대에서 개머리판으로 얻어맞아 내무반에서 모포를 뒤집어쓰고 울다가 읽는 책하고 혼인하여 낳은 아이를 어르며 읽는 책하고 느낌이 같을 수 없습니다. 젊은 날 받아들이는 이야기하고 한껏 무르익는 나이에 맞아들이는 이야기랑 차츰 늙는 길에 살피는 이야기는 때와 곳마다 다릅니다.

 시쓰던 김수영 님은 〈安壽吉〉이라는 수필을 쓰면서 소설쓰던 안수길 님을 놓고 “그가 자기의 작품을 따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또 그의 작품이 실제 그러한 따분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의 곰상스러운 성격이 시키는 오랜 인내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분은 하지마는, 그것은 비료나 진개는 아니다. 그것은 곧 작가 안수길의 예술이기 때문이다(11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예술이겠지요. 이와 함께 삶이겠지요. 문학일 테지요. 이러는 가운데 눈물일 테지요. 소설이며 시라고 말하겠지요. 마침내 목숨일 테고요.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한번 팽이를 돌려 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 (달나라의 장난)



 김수영 님 시를 고등학생 때 처음 읽습니다. 문학 교과서에 〈폭포〉가 실렸다고 떠오르는데, 교과서며 참고서며 교사며 으레 〈폭포〉라는 시가 무엇을 빗대어 나타내려 했는가를 읽어야 한다고 몰아세우는 한편, 싯귀 가운데 한 낱말을 지워 놓고 묶음표를 넣은 다음 알아서 채워 넣으라는 시험문제를 곧잘 내놓았습니다. 시를 통째로 달달 외우면서 어느 자리를 비워 놓아도 묶음표를 채우도록 해야 했고, 〈폭포〉가 아름다운 시인지 아닌지 느낄 겨를이 없었습니다. 논술시험에서 틀리지 않도록 잘 살필 ‘지문(보기글)’으로 여겼을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학교 수업으로 있던 고전문법이든 고전문학이든 현대문학이든 현대문법이든, 조금도 수업다이 한 적이 없습니다. 왜 우리 옛 말법을 배워야 하고, 우리 요즈음 말법을 이토록 어렵고 골때리도록 달달 외워야 하는지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 말을 우리 말답게 잘하도록 하는 학교 문법 시간이었을까요. 문학을 문학다이 즐기도록 이끌던 학교 문학 시간이었을는지요.

 체육은 체육이 아니라 공놀이였고, 음악은 노래를 즐기는 배움이 아닌 음계에 맞추어 악보를 읽지 못하면 몽둥이로 얻어맞아야 하는 매타작이었습니다.


 무식한 사랑이 여기 있구나
 무식한 여자가 여기 있구나
 평안도 기생이 여기 있구나
 滿州에서 해방을 겪고
 평양에 있다가 인천에 와서
 六·二五때에 남편을 잃고 큰아이는 죽고
 남은 계집애 둘을 다리고
 再轉落한 여자가 여기 있구나
 時代의 여자가 여기 있구나
   한잔 더 주게 한잔 더 주게
   그런데 여자는 술을 안 따른다
     건너편 친구가 내는 외상술이니까
 … (滿州의 여자)



 오래도록 제도권 입시 틀에 얽매인 눈썰미로는 김수영 님 시이든 신경림 님 시이든 신동엽 님 시이든 고정희 님 시이든 읽을 수 없습니다. 시를 시로 읽지 못합니다.

 시를 시로 읽자면 내 삶을 일구어야 합니다. 시를 시다이 껴안으면서 눈물과 콧물과 웃음과 노래로 맞이하자면 내 하루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이하고 복닥이면서 아프고 괴로우며 슬픕니다. 아이를 덥석 안고 하늘로 붕 띄우면서 신나고 재미나며 즐겁습니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동안 아빠는 아빠 다른 책을 못 읽지만, 그림책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그림책 가운데 사랑스러운 이야기와 엉터리 이야기를 찬찬히 알아챕니다. 돈장사 책이랑 사랑나눔 책이 뒤얽힌 이 나라 책마을을 아이랑 살아가는 동안 시나브로 온몸으로 느껴 받아들입니다.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 (꽃잎 一)



 2011년 1월 15일 겨울 한복판, 도무지 풀리지 않고 꽁꽁 얼어붙은 채 한 달이 훨씬 넘도록 언물이 녹지 않는 멧골마을 작은 집, 고단한 아이는 칼바람 부는 날씨에 아빠하고 자전거를 함께 타겠다며 떼를 쓰다가 울며 잠들고, 아빠는 집에 쌀이 떨어져 큰길가 보리밥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며 사오느라 얼굴과 손이 차갑게 얼어붙습니다. 앞으로 2034년 겨울은 어떠할까 궁금하고, 2034년 겨울날, 우리 첫딸이 서른일곱 나이가 될 무렵, 이때에도 김수영 님 시나 산문은 ‘문학이라는 시’나 ‘문학으로서 산문’으로 사람들한테 읽힐 만한지 궁금합니다. 아니, 뭐,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든, 아빠가 김수영 님 전집이며 낱권책이며 여러 가지로 알뜰히 건사해 놓았으니, 아이 스스로 김수영 문학을 좋아해 주고 싶거나 읽어 보고 싶다면 언제라도 우리 집 도서관에서 끄집어 내어 펼치겠지요. (4344.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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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나누는 기쁨 ㉧ 사진책, 사진잡지, 사진작품
 ― 참다운 문화와 착한 예술로 나아갈 사진밭



 모든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 팔리는 일이란 없습니다. 모든 책은 태어나는 만큼 숨을 거둡니다. 모든 책은 앞에 나온 책이 숨을 거두며 새롭게 빛을 보지만, 모든 책은 저 스스로 숨을 거두며 뒤에 나올 책한테 자리를 물려줍니다.

 수많은 사진책이 새롭게 나왔고, 오늘날 읽히며, 앞으로 새로 나옵니다. 예전 사진책이라 해서 더 놀랍거나 훌륭하거나 값있지 않습니다. 오늘 새책방에서 잘 팔리거나 제법 팔리는 책이라 해서 이름값 있다든지 알차다든지 사랑할 만하지 않아요. 앞으로 나올 책이 훨씬 훌륭하거나 아름다우리란 법은 없습니다.

 앞에서 사진길을 걸어간 사람이 있어 오늘 꿋꿋하게 사진길을 걷는 사람이 있고, 앞으로 이 길을 꾸준히 이을 사람이 있습니다. 앞에서 누군가 사진으로 담아낸 이야기라서 굳이 오늘로서는 다시 안 담을 만하지만, 오늘은 오늘인 만큼 오늘을 사는 사람이 오늘 눈썰미로 새삼스레 담을 만하기도 합니다.

 먼 옛날 모습이 더 아련하거나 더 살가울 수 없습니다. 2010년대에 거슬러 살핀다면 1970년대가 그립다거나 아름답다 여길 사람이 있을 텐데, 이와 마찬가지예요. 2050년대에 살아갈 뒷사람으로서는 2010년대 오늘을 그리워 하거나 아름다이 여길 수 있어요.

 사진이란 어제를 찍는 일이 아닙니다. 사진은 오늘을 찍는 일입니다. 글은 어제 이야기도 쓰고 앞으로 펼칠 이야기도 씁니다. 그림 또한 어제와 앞날을 그립니다. 그런데 그림은 사진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그릴 수 있어요. 다만, 사진은 어제도 앞날도 다루지 못합니다. 사진은 오직 오늘 하루 이날 이곳만 다룰 수 있어요.

 사진은 한계가 많습니다. 사진은 못하거나 못 담을 이야기가 몹시 많습니다. 사진은 반편장이나 외다리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진이란 한계가 많아 재미있습니다. 사진은 한계가 넘치기에 글을 붙여 사진수필을 엮기도 합니다. 사진으로 못하거나 못 다룰 이야기가 많은 탓에, 사진은 이 모자라거나 어수룩한 틀에서 새삼스레 바라보는 오늘 모습이 있고, 그 어느 매체나 예술보다 오늘 이곳을 더 날카롭거나 깊거나 넓게 아우른다든지 헤아린다든지 보듬는다든지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사진이란 사진을 찍은 날짜가 새겨집니다. 만드는 사진이든 찍는 사진이든 ‘사진이 태어난 날짜’는 고치지 못합니다. 셈틀을 만지작거리면서 포토샵으로 어찌저찌하더라도 ‘사진을 건드린 날짜’ 또한 고치지 못해요. 사진은 그야말로 ‘오늘이라는 테두리에 갇히고 오늘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달리 보면 ‘어떠한 매체와 예술도 할 수 없는 오늘 삶 보여주기’를 가장 멋스럽고 아름다이 펼칠 수 있습니다.

 사진책은 오늘을 사진으로 말하는 책입니다. 사진잡지는 오늘을 사진으로 말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러모으는 잡지입니다. 사진작품은 오늘을 사진으로 말하는 꼭 한 장짜리 이야기입니다.

 사진책에 따라 널리 팔리거나 사랑받는 책이 있으나, 거의 안 팔리거나 사랑스러운 손길 한 번 못 타고 잊히는 책이 있습니다. 사진잡지 가운데 오래도록 꾸준히 펴내는 잡지가 있으나, 몇 해 버티지 못하거나 오래도록 이었으나 이제 그만 목숨이 다해 사라져야 하는 잡지가 있습니다. 사진작품 가운데 매우 비싸다 싶은 값으로 팔리는 작품이 있는 한편 거저 주어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작품마저 있습니다.

 사진이란 오늘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끝과 끝처럼 갈립니다. 사진이란 바로 오늘을 보여주는 거울인 터라 이 끝과 저 끝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이란 그예 오늘을 밝히는 빛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저기까지는 끝없이 벌어졌으나 끝없이 이어집니다.

 여느 책방에는 들어가지 않는 사진책 《시간의 흔적, 동구의 공장들》이 있습니다. 2010년에 나온 이 사진책은 사진쟁이 김보섭 님이 인천 동구에 있는 공장들을 담은 사진을 엮습니다. 이 사진책은 2010년 3월 10일에 나왔는데, 김보섭 님이 2011년에 같은 이름으로 다른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진쟁이가 인천 동구에 있는 공장을 저 나름대로 다니면서 “내가 본 인천 동구 공장들은 이렇던데?” 하면서 다른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1980년에 나온 《日本の民家》(A.D.A. EDITA Tokyo)라는 두툼한 사진책이 있습니다. 일본땅 여느 사람 살림집을 다룬 사진책은 1980년에 나온 이 사진책 하나로 끝나지 않을 뿐더러, 이 한 권으로 그칠 수 없습니다. 1981년이든 1980년 같은 해이든 1990년이든 2010년이든 2030년이든 얼마든지 새로 나올 만할 뿐 아니라 새로 나와야 합니다. 한국땅 서울이라는 도시를 돌아보는 사진책 하나 나왔다면 이 사진책 하나가 ‘서울땅 모든 모습’을 보여준다 할 수 없습니다. 이 사진책 하나를 첫끈으로 하든 첫걸음으로 하든, 수많은 ‘서울땅 모습’ 사진책이 태어나야 합니다.

 사진잡지는 수많은 사진책이 태어나는 흐름에 발맞추어 사진밭 사람들을 살피는 가운데 온갖 이야기를 그러모읍니다. 사진작품은 온갖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더도 덜도 아닌 다문 한 장짜리 사진’으로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사진작품이 마루나 방에 걸릴 수 있다면, 이 한 장짜리 사진작품을 언제나 누구하고라도 오래도록 들여다보면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을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잡지란 다달이 호수를 채우는 잡지가 아니라, 다달이 다 다른 사람들 수많은 이야기가 어우러지거나 흐드러지는 사진놀이마당입니다. ‘사진 놀이마당’이나 ‘사진놀이 마당’이나 ‘사진 놀이 마당’이 아니라 ‘사진놀이마당’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든지 어느 한켠으로 치우쳐서는 안 돼요. 잡지이기 때문에 잡지다움을 건사해야 합니다. 잡지인 만큼 잡지스럽게 엮어야 해요. 살롱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다큐사진이든 한결같이 사랑해야 할 사진잡지입니다. ‘나라를 만든 사람들’ 사진이든 ‘빨갱이 좌파’ 사진이든 골고루 아껴야 할 사진잡지입니다. 풋내기이든 새내기이든 헌내기이든 어르신이든 다 같이 어깨동무할 사진잡지입니다. 나라안 사진쟁이이든 나라밖 사진쟁이든, 또 이주노동자인 사진쟁이이든 너나들이하듯 사귀어야 할 사진잡지예요.

 100만 원짜리 사진작품이 있다면 100원짜리 사진작품이 있습니다. 저는 제 사진을 ‘크기에 따라’ 팔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 거저 주거나 안 팔기도 합니다. 한 달 살림돈이 빠듯한 가운데 큰돈 들여 사진을 뽑아 사진틀까지 낀 사진작품을 스스럼없이 선물하기도 하지만, 달랑 종이에 뽑았을 뿐이며 그리 크지도 않은 사진작품을 50만 원이나 20만 원 값을 치르지 않고서는 넘겨주지 않기도 합니다. 작은 책에 앙증맞게 들어갈 만하게 사진작품을 여럿 만들어 놓고는 고마운 분한테 책을 선물할 때에 슬쩍 끼워넣기도 합니다. 사진잔치 전단지처럼 쓰려고 뒤쪽에는 안내글을 넣지만 앞쪽은 사진작품만 담아서, 이 종이를 ‘사진잔치 전단지’로 쓰기도 하는 가운데, 이 전단지에 매직으로 제 이름 석 자를 슥슥 적으면 ‘또다른 사진작품’으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사진쟁이 ㅇ님을 만났을 때에 ㅇ님께서는 사진책을 당신 돈을 들여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사진책을 내주더라도 ‘당신이 책을 선물할 사람이 많은’ 나머지, 언제나 ‘인세 몫에다 두 권’을 받을지라도 ‘선물해야 할 책이 모자라’니까 출판사에 돈을 주고 사야 한다더군요. 이렇게 책을 돈 주고 사야 하면, 당신 돈을 들여 사진책을 만들 때보다 돈이 더 들기 마련인데 출판사에서는 이런 형편을 보아주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아예 처음부터 당신 돈을 들여서 사진책을 만든다 말씀합니다. 듣고 보니 딱하지만, 생각해 보니 슬픕니다.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진을 아낀다면, 사진쟁이 ㅇ님이 손수 당신 이름 석 자를 적바림해서 봉투에 담아 선물할 때에, 이 사진책 선물을 받은 분들은 봉투에 책값 얼마를 넣어 사진쟁이 ㅇ님한테 쥐어 주어야 옳기 때문입니다. “아, 참 사진이 좋군요!”라든지 “이야, 사진책 멋진데요?” 하는 주례사 같은 입발린 칭찬은 접어 놓고, “이 사진은 어떻게 찍었나요?” 하고 묻는다든지 “이 사진은 좀 엉성해 보이는군요.” 하면서 사진쟁이 ㅇ님으로서 사진길을 더 알차며 튼튼히 걸어가도록 도움말을 들려주기라도 해야 옳기 때문이에요.

 사진책이 안 팔리는 까닭은, 한국땅에서 비싼 사진장비 갖추려는 사람은 많아도 좋은 사진책 사서 읽으려는 사람이 몹시 적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처음부터 너무 비싼값을 매겼기 때문이라고만 탓할 수 없습니다. 작가나 전문가나 어르신으로 사진을 하는 분들부터 이웃 사진쟁이 사진책을 기꺼이 제값 들여 책방마실을 하면서 사들여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책 소개하는 신문이나 잡지는 아주 드물기 때문에 새 사진책 소식을 못 들을 수 있겠지요. 더구나 사진잡지가 몇 가지 없을 뿐더러, 사진책 제대로 소개하는 사진잡지는 없다 할 만합니다. 이런 형편이니 사진밭 어르신들 스스로 ‘새 사진책 소식’을 못 듣는다든지, 다른 사진쟁이가 선물해 주는 책을 받고서야 ‘어, 이런 책이 나왔네?’ 하고 생각할 만합니다. 우리네 사진밭 높낮이는 이러하니까, 사진쟁이 어르신들 스스로 이러한 높낮이를 잘 살피면서 ‘사진책 선물을 받았’으면, 책방마실을 해서 선물받은 사진책을 한 권 새로 사 주어야 합니다. 새로 산 책은 사진밭 후배나 조수나 동료한테 다시 선물해 주어야 합니다. 사진책이 제대로 읽히거나 팔리거나 나오도록 하자면, 누구보다 사진밭 어르신들이 사진책 사들이고 읽는 데에 주머니를 털어야 해요. 주머니를 털어 사진책을 사서 읽을 때에 비로소 ‘사진비평’이 태어납니다. 거저로 선물받은 책을 이야기할 때에는 주례사비평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 살림이 가난하다면 가난한 가운데 비싼 사진책 하나 애써 사서 읽으면서 ‘이렇게 비싸다 싶은 값을 하는 사진책인지, 허울좋게 비싼값만 붙은 사진책인지’를 낱낱이 돌아보거나 짚으면서 사진비평을 내놓아야 합니다. 사진잡지사는 사진책 내놓은 출판사에서 보내온 보도자료에 따라 짤막히 소개하는 기사를 담으면 안 되고, 출판사한테 사진책 값을 계좌이체로 보내주고 나서, 차분히 곱씹고 헤아리는 가운데 참답고 올바른 사진비평을 잡지에 실어야 합니다.

 사진책이 사진책답게 나오지 못하고 읽히지 못할 때에는 사진잡지도 사진잡지답게 엮기 힘들며 읽히지 못합니다. 사진책이 사진책 노릇을 못하고 사진잡지가 사진잡지 노릇을 못하는 사진밭이라면, 사진작품이 뜬구름잡듯 너무 높은 값에 팔린다든지, 사진작품이 높은 값에 팔려야 좋은 사진이라도 되는 듯 여기는 엉터리 흐름이 퍼지고 맙니다. 사진작품은 사진작품에 걸맞게 값을 치러야 합니다. 사진작품은 예술작품이 아닌 사진작품입니다. 사진작품은 사진작품다이 비평을 받으면서 값을 치러 사고팔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작품은 사진작품으로서 내 집 내 방 내 일터 벽에 즐거이 붙여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비싼값 자랑하는 사진작품이란 덧없습니다. 이름값 내세우는 사진작품이란 부질없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고 따스한 사랑을 나누는 사진작품이어야 참 사진이요 착한 문화요 고운 예술입니다. (4344.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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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 꼬부랑 할머니 비룡소 창작그림책 34
김기택 지음, 염혜원 그림 / 비룡소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그림책 장만하는 신나는 삶길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7] 김기택·엄혜원,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비룡소,2008)



 날마다 수많은 책이 새로 나오고, 나날이 숱한 그림책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꽤 큰 출판사에서 내놓는 책만 하더라도 한 사람이 다 읽을 수 없다 싶을 만큼 많습니다. 햇수가 오래되고 살림이 큰 출판사에서 엮는 도서목록이라면 두툼한 책 하나입니다. 그림책을 내놓는 출판사에서 만드는 도서목록은 아직 두툼한 책 하나만큼 되지는 않으나,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뒤라면 그림책을 내놓는 출판사에서 엮을 도서목록 또한 묵직한 책 하나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도서목록만 이러하다면, 이 출판사에서 내놓은 그림책을 집안에 갖추려 하면 자리를 많이 차지할 뿐더러 책값 또한 몹시 많이 써야 하겠지요. 그림책 천 권을 갖추려 한다면, 한 권에 줄잡아 만 원이라 할 때에 천만 원입니다. 한꺼번에 천만 원을 들여 그림책 천 권을 장만하기란 벅차다 할 테지만, 하루에 한 권씩 그림책을 장만한다 생각하면 다달이 삼십만 원입니다. 세 해에 걸쳐 그림책 한 권씩 사들여 즐기면 천 권을 거뜬히 그러모읍니다.

 그림책을 날마다 한 권씩 사들이자면 살림돈이 바닥난다 여길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집에서는 하루아침에 천 권이든 만 권이든 장만할 만큼 돈이 넉넉할 테지요. 그런데 돈이 많아 하루아침에 그림책 천 권을 장만하거나 만 권을 장만한들, 아이로서는 이 많은 책을 다 볼 수 없습니다. 하루에 한 권씩 세 해에 걸쳐 천 권을 본다든지, 날마다 세 권씩 한 해에 천 권을 볼 수야 있겠지요. 어쩌면 하루에 열 권씩 볼 수 있어요. 아이이든 어른이든 참 좋다고 여기는 그림책은 보고 다시 보며 거듭 봅니다. 같은 소설책 한 권을 100번이나 1000번 다시 보기 힘들 테지만, 같은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사진책은 100번이나 1000번은 가뜬히 다시 볼 만해요. 더없이 좋다고 느끼는 그림책이라 할 때에는 날마다 10번씩 되읽기도 하니까, 열흘이면 금세 100번을 되읽는 셈입니다. 아빠나 엄마는 같은 그림책을 날마다 10번씩 읽어 주면 며칠쯤 뒤에 아예 줄거리를 꿸 테고 한두 달 뒤라면 책을 펼치지 않고도 몇 쪽 어디에 어떠한 그림이 있다고 읊을 수 있어요.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느라 다달이 학원삯을 꽤나 씁니다. 영어를 배우건 수학을 배우건 논술을 배우건 교과서 시험공부를 배우건, 학원에 바치는 돈이 꽤 커요. 대학교 학비가 한 해에 천만 원이라지만, 유치원에 아이들을 넣는 데에 들어가는 돈만 하더라도 한 해에 오백만 원 즈음 됩니다. 어버이가 아이들을 유치원에 안 넣고 집에서 함께 놀고 어울리면서 그림책을 읽어 준다면, 날마다 한 권은 못 될지라도 이틀이나 사흘에 한 권씩 사 줄 수 있습니다. 집에서 홀로 아이를 맡아 키우면 어버이라도 힘드니까, 이웃집 아이하고 함께 놀도록 하면 끼리끼리 어울리면서 한결 신납니다. 아이들은 놀려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지, ‘어버이가 밖에서 다른 일을 홀가분하게 하거나 바깥에서 돈벌이를 하자면’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습니다. 피아노학원에 보낼 돈을 한 해치 모아 피아노 한 대 들여놓고 아이 마음대로 악보를 보면서 치도록 하면 한결 즐거워요. 악보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치라 해도 되고요.

 아이들 어버이는 자가용을 모느라 기름값을 다달이 제법 씁니다. 자가용을 조금 덜 몬다면, 또는 자가용을 안 몬다면, 기름값으로 댈 돈으로 그림책을 장만할 만하며, 문학책이나 인문책이나 사진책이나 마음껏 장만할 만합니다. 자가용 한 대 값이라 하면, 한 집안 아이랑 어른이 ‘죽는 날까지 읽을 책’을 걱정없이 사서 읽을 만한 값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큰 아파트로 옮긴다든지 더 넓은 집으로 옮긴다든지 하면서 목돈을 모으기보다, 그때그때 좋은 책 사서 읽고 좋은 영화 찾아서 보며 좋은 노래 찾아서 듣고 부른다면, 하루하루 ‘더 돈 많은 부자’로 살아가지는 못할 테지만, ‘더 마음 너그러운 사람’으로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림책이란 아이들한테 ‘아이일 때에만 읽히는 책’이 아니라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어버이와 딸아들이 함께 즐기는 책’인 만큼, 아이는 아이대로 어릴 때에 즐기고,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한 살 두 살 더 무르익는 가운데 즐기며, 나중에 아이들이 무럭무럭 커서 제금나서 혼인하여 아이를 낳아 키운다 할 때에 고스란히 물려주면서 읽히는 책이 됩니다. 이때, ‘내 아이’이자 ‘손자 손녀 어버이인 아이’는 제 아이들하고 저희하고 같이 이 그림책들을 읽힐 테니까, 바로 오늘 장만하여 우리 아이한테 읽히는 그림책은 오늘 읽고 그치는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오래오래 즐기는 책이에요.


..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시골길을 가다가 길가에 활짝 핀 코스모스를 만났어요. “할머니, 왜 저희 같은 꽃한테 자꾸 절하시는 거예요?” “바람이 불 때마다 한들한들 하늘하늘 너희들은 신나게 춤추지 않니? 나는 춤은 못 추지만 허리가 꼬부라져서 꼬부랑꼬부랑 절은 잘 한단다.” ..


 두고두고 즐기는 그림책은 아무 그림책이나 골라서 장만할 수 없습니다. 오래오래 즐기는 그림책은 새로 나온 그림책이라 해서 무턱대고 몽땅 사들일 수 없습니다. 그림결을 살피고, 줄거리를 돌아보며, 책에 깃든 말투를 짚는 가운데, 짜임새와 엮음새를 낱낱이 헤아립니다. 모든 대목이 아름답다면 아주 기쁘게 장만하겠지요. 한두 대목이 아쉽다면, 아쉽기는 하지만 괜찮게 즐길 만하다고 여기며 장만합니다. 모든 대목이 아쉽다면, 말끔히 잊고 책방 책시렁 제자리에 얌전히 꽂아 놓습니다.

 그렇지만 엉터리로 그린 그림에 엉터리로 붙은 줄거리에 엉터리로 적바림한 말이 가득한 그림책도 제법 많습니다. 엊그제 경기문화재단에서 내놓는 소식지를 받아서 읽다 보니, 경기도 쪽에서 ‘골목동네 벽그림’을 그리는 어느 모임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이 모임에서 ‘가난하다는 골목동네에서 그린 벽그림’ 사진을 몇 장 보다가는 그만 쓸쓸하고 슬프며 답답했습니다. 예쁘장하다 싶게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은 모두 엉터리였기 때문입니다. 작은 동네 술집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술상과 걸상과 몸크기가 도무지 안 맞습니다. 비례와 균형이라 하지요? 술상과 걸상이 딱 붙었는데 사람이 사이에 찡기도록 그렸습니다. 적어도 사진을 찍어 그림을 그린다면 이렇게는 안 그릴 텐데, 이나마도 못합니다. 예쁘장한 아가씨가 꽃을 바구니에 담아 치마를 나풀거리며 자전거를 달리는 그림은 아주 형편없습니다. 바퀴와 자전거 몸체가 안 이어졌을 뿐 아니라 페달이 붙을 자리가 없고, 안장과 자전거 뼈대는 나타날 자리조차 없으며, 손잡이하고 꽃바구니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자전거라고는 타 본 적 없이 자전거를 그렸다 할까요. 어린이책에 자전거를 그리는 그림쟁이치고 제대로 그리는 이를 거의 못 봅니다. 어떤 이는 ‘자전거 체인을 앞바퀴에 이어 놓’고는 버젓이 책으로 내놓는데, 그림책 출판사 전문편집인조차 이를 알아채지 못해요. 잘못된 그림을 알려주어도 나중에 2쇄나 3쇄가 나오면서도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그림책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를 읽습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읽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들려주는 말투를 재미있어 합니다. 그런데 혼자서 “내가 볼게!” 하고 말하며 넘기지는 않습니다. 강아지랑 꽃이랑 할머니 모습을 보며 “멍멍이다!” 하고 “꽃이다!” 하고 “할머니다!” 하고 말할 뿐입니다. 몸져누운 할아버지 그림을 보며 “할아버지 아야 해?” 하고 묻지만 깊이 빨려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림책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를 즐겁게 장만했습니다. 아이가 썩 즐거이 읽을 만하지 못하는 줄 뻔히 알지만 기쁘게 장만했습니다. 우리 옛이야기 결을 살리며 그리는 그림책이 몹시 드문데다가, 제대로 그리는 그림책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가 아주 훌륭히 그렸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애쓴 품이 반가울 뿐입니다.

 “자꾸 절하시는 거예요?”처럼 ‘것’을 지나치게 자주 쓰는 대목도 걸리적거립니다. 옛이야기라 한다면 ‘것’은 한 군데에도 나오면 안 되지요. 옛사람들 말투가 이러할 수 없으니까요. 말투를 굳이 예스러이 할 까닭은 없지만, 시골 할매 할배 이야기라 할 때에는 “자꾸 절하셔요?”나 “자꾸 절하셔유?”처럼 적바림할 때에 한결 구수합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걷는 길은 틀림없이 ‘시골길’일 테지만, ‘흙길’이라든지 ‘논둑길’이라든지 ‘짐수레길’이라 말한다면 한결 잘 어울릴 테고, 시골인데 ‘코스모스’를 들먹이는 대목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코스모스는 시골꽃이 아닐 뿐더러, 코스모스로 시골꽃을 대표하기에는 너무 슬픕니다. 시골자락에는 숱한 꽃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 그림책을 볼 아이들은 거의 다 도시 아이들이기는 할 테지만, 도시 아이들도 시골 자연과 터와 꽃을 조금 더 깊고 넓게 살피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허리를 잔뜩 구부린 할머니라 한다면 키 높이 자라는 코스모스를 보기는 힘들어요. 차라리 냉이라든지 씀바귀라든지 꽃다지 꽃을 이야기할 때가 한결 어울립니다. 어쩌면 할미꽃이 나오도록 했다면 더 나았겠지요. 찔레꽃이나 진달래꽃도 좋고요.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보는 책이 아니고, 그림책은 갓난쟁이나 코흘리개만 보는 책이 아닙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즐겁게 보는 책이며, 그림책은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다 함께 신나게 보는 책이에요.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은 ‘아주 작디작은 대목’ 하나를 더 마음을 기울여 아름답고 사랑스레 보듬어야 합니다. 그림책이야말로 ‘작은 이야기가 아름답다’는 느낌을 살리거나 살찌워야 합니다.

 한 가지 더 헤아린다면, 할머니가 몸져눕고 할아버지가 꼬부랑 꼬부랑 다니면서 할머니를 보살피며 온누리 흙과 바람과 햇볕을 아끼는 넋을 보여주어도 퍽 남다르며 좋겠구나 싶습니다. (4344.1.15.흙.ㅎㄲㅅㄱ)


―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 (김기택 글,엄혜원 그림,비룡소 펴냄,2008.12.24./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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