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말(인터넷말) 6] more, go, top

 반 해 남짓 한글학회 일을 거든 적 있다. 이때에 우리 나라 모든 지자체랑 공공기관 누리집에서 어떤 말을 쓰는가를 살폈는데, 말과 글을 알차게 가다듬은 지자체랑 공공기관이 드물게 있었으나, 웬만한 지자체랑 공공기관은 말글을 아주 엉터리로 내팽개쳤다. 가장 높은 자리 정치꾼이 내리는 말에 따라 움직이니까, 산 말이 아닌 죽은 말일밖에 없는지 모르지만, 웃사람 말을 따른다면, 청와대 누리집에서도 ‘more’는 안 쓰니까 ‘더보기’라 쓸 수 없는가 궁금하곤 했다. 가만히 살피면, 뜻있거나 생각있는 모임에서도 ‘more, go, top’을 쓰지만, 뜻없거나 생각없는 모임에서도 ‘더보기, 가기(바로가기), 위로(맨위로)’를 쓴다. 왼쪽 사람들이 말을 더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고, 오른쪽 사람들이 말을 더 짓밟거나 어지럽히지 않는다.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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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5] 널리 읽힌 책

 책을 말한다는 사람들은 예전에는 ‘신간’이니 ‘구간’이니 ‘서평’이니 하는 말을 썼으나, 오늘날에는 ‘북’이니 ‘북리뷰’이니 하는 말을 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주워섬기는 사람은 하나같이 “어른한테 읽힐 글”만 살핀다. 아이들 앞에서 책을 말하려 할 때에는 ‘신간’이니 ‘북’이니 읊지 못한다. 아이들 앞에서는 어떤 지식인이나 기자라 할지라도 ‘책’이라고만 말한다. 책을 말하는 사람들이 “나는 늘 어린이 앞과 할머니 앞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하고 생각해 주면 고맙겠다.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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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책·삶·글


 새벽에 글을 써서 누리집에 걸칠 때에 느낌이 좋다. 새벽 두 시나 세 시나 네 시 무렵이라는 시간이 새겨질 때에는 무언가 새삼스럽다. 글을 마치면서 내 글 끄트머리에 날짜를 적바림하지만 시간까지는 적지 않는다. 누리집에 글을 걸칠 때에만 몇 시 몇 분에 걸치는 글인가 자국이 남는다.

 생각해 보면, 글을 쓰고 난 다음에 시간을 함께 적으면 한결 새삼스러울 수 있겠구나 싶다. 내가 어느 때에 이렇게 생각하거나 마음을 쏟으면서 이야기 하나 풀어냈는가를 더듬는 보람이 있을 테니까.

 그러나, 굳이 몇 시 몇 분 글이라고 안 밝히더라도 내 글에 이러한 때가 살포시 묻어나도록 하면 넉넉한 일인지 모른다. 시시콜콜 밝혀 적어야만 알 수 있다면, 이런 글을 글이라 할 수 있는가. 지식쪼가리나 정보조각일 뿐 아닌가. 글이란 삶인데, 삶을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 몇 분이라는 숫자놀음으로 밝힐 수 없다.

 가만히 보면, 삶이란 책으로 알아채거나 읽을 수 없다. 책을 더 읽는다고 더 빼어난 삶이 아니고, 책을 덜 읽는다고 모자란 사람이 아니다. 책을 가까이한다 해서 아름다운 삶이 아니요, 책하고 동떨어진 채 일한대서 못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애써 책을 말해야 할 까닭이 있는가. 애써 책을 생각하거나 돌아볼 값어치가 있을까.

 책은 그예 책이기도 하지만, 책은 사람이기도 하다. 책은 종이뭉치이면서 삶이기도 하다. 사람은 고운 목숨이기도 하나, 숱한 이야기보따리이기도 하다. 사람은 삶이면서 죽음이다. 책을 보며 사람을 느끼고, 사람을 느끼며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가운데 사람 삶을 돌아보고, 사람 삶을 돌아보다가는 책을 살핀다.

 책 하나는 고운 이웃이다. 이웃사람 또한 고운 책이다. 책이란 살가운 이야기꽃이다. 이야기꽃은 살가운 사람한테서도 마주한다. 책은 온통 사랑이다. 이웃한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 또한 온통 사랑이다. 책에는 하느님이 깃들고, 하느님한테는 책이 깃든다. 우리 아이한테도 하느님이 깃들며, 우리 옆지기한테도 하느님이 자리한다. 더 많은 책을 읽거나 더 많은 글을 쓰자는 삶이 아니라, 더 많이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믿거나 보살필 꽃과 열매와 꿈과 이야기가 어우러질 삶을 살펴야겠다고 다짐한다.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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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과 글쓰기


 깊고 깜깜한 밤,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일어섰다. 왜지? 애 엄마가 무어라 말하니 아이는 다시 눕는다. 갑자기 일어서기 앞서 아빠 가슴 께로 슬슬 기어오르기도 했는데, 털푸덕 하고 엎어진다. 숨이 좀 가쁘다. 아이가 제법 컸기에 꽤 무겁다. 기저귀가 젖어서 일어났나 싶어, 아이를 살살 들어 옆으로 누인 다음 만진다. 젖었다. 기저귀싸개를 풀어 젖은 기저귀를 뺀다. 이불을 덮고 젖은 기저귀는 치운 다음 새 기저귀를 가져와서 댄다. 바지를 다시 입히고 이불을 잘 덮어 토닥토닥하니까 새근새근 잠이 든다. 여러 해 익숙한 일이라 어두운 방에서 눈을 감고 이 모든 일을 한다.

 바깥이 훤하다. 무슨 빛이 이렇게 들어오나 싶어 궁금하다. 벌써 새벽이 다가오는가 생각하며 마당으로 나와 쉬를 눈다. 달이 아주 밝다. 설이 가깝다고 문득 깨닫는다. 겨우내 이토록 밝은 달은 보지 못했다. 한 해 가운데 달이 가장 밝은 날은 대보름이랑 설날이다. 이맘때 이토록 고운 달빛이란 다른 때에는 구경할 수 없다. 그런데 설을 앞둔 보름달 빛깔도 참으로 밝으며 곱구나. 아무렴, 설을 지나고 대보름을 지났어도 달빛은 한동안 이토록 밝으면서 고왔는걸. 대보름을 앞둔 반달이나 대보름을 지난 반달 또한 이렇게 밝으며 고운걸.

 나한테 설날이란 명절이라는 이름도 있으나, 한껏 달아오르던 겨울이 비로소 잠을 자는 때가 다가온다는 뜻도 있다. 길디길던 겨울이 올해에도 이렇게 저무는구나 하고 깨닫는 설날이다. 참말, 설날이 찾아오면 어느 하루 꽁꽁 얼어붙지 않던 날이 없어 날마다 기름 걱정 물 걱정 집안 걱정을 하던 나날을 마감할 수 있을까. 달력이 아닌 달빛으로 느끼는 설부터는 우리 집살림을 조금이나마 알뜰살뜰 꾸리거나 여미는 슬기로운 애 아빠로 살아갈 수 있을까.

 몸뚱이에 찬바람을 묻혀 방으로 들어와서 셈틀 앞에 무릎 꿇고 앉는다. 나는 글을 쓸 때에 늘 무릎을 꿇는다.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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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앞에 바로 서려는 어른의 이야기
김남선 지음 / 풀빛 / 1995년 1월
평점 :
품절


한 사람이 아끼거나 보듬을 책
― 김남선, 《아이들 앞에 바로 서려는 어른의 이야기》



- 책이름 : 아이들 앞에 바로 서려는 어른의 이야기
- 글 : 김남선
- 펴낸곳 : 풀빛 (1994.12.21.)


 뜻하지 않게 ‘사진읽기’를 하면서 ‘사진비평’을 한다는 이름을 얻습니다. ‘사진찍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사진읽기’를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저절로 사진책을 말하기 마련이고, 사진책을 말하던 글이 시나브로 ‘사진비평’이 됩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어머니 마음을 조금씩 느끼며 배웁니다. 그러나 어머니 마음을 조금씩 느끼며 배운달지라도 알차거나 아름다이 느끼거나 배우지는 못합니다. 어수룩하고 어줍잖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깨닫습니다. 사진은 누구한테서 따로 배울 수 없고 가르칠 수 없다고 깨닫습니다. 아이키우기 또한 누구한테서 따로 배우거나 가르치지 못합니다. 배우거나 가르치는 사진이나 아이가 아니요, 배우거나 가르치지 못하는 삶입니다. 하루하루 맞아들이며 보내는 삶이면서 사진이고 아이입니다.

 내가 누구를 가르칠 수 없지만, 내가 누구한테서 배울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선생님’이라며 부를 수 없고, 누군가 나를 ‘선생님’이라며 부르지 못합니다. 서로 같은 자리 사람입니다. 서로 나란히 어깨동무할 사람입니다. 어른은 아이 앞에서 말을 놓는다지만, 어른과 아이가 똑같은 사람이요 삶임을 헤아리거나 곰삭일 줄 안다면, 말이 아닌 마음을 열며 이야기를 나눌 노릇입니다.


.. 김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러저러한 성격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김씨이다. 그런데 김씨가 김씨의 모습을 지녔다고 싫어하고 미워한다. 나 자신의 얼굴 모습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생긴 것이 나인데 마음에 들지 않게 생겼다고 스스로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 민주화와 민족자주화에 절실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그 사람이 항상 바른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의 가슴에도 제국주의 근성, 독재자의 근성이 살아서 해독을 끼치고 있는 것을 내 모습을 통해 보게 된다 … 과거의 교장·교감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초인적인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도저히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노력이 부질없는 짓이라고 비웃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인간이고 다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이들이다. 적으로가 아니라 같이 잘 살아야 할 존재로 애정을 가지고 진심을 다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  (44∼45쪽)


 《못 다 가르친 역사》라는 책을 써 냈던 김남선 님이 쓴 《아이들 앞에 바로 서려는 어른의 이야기》라는 책을 헌책방에서 만납니다. 이런 책이 나온 적 있구나 새삼스럽게 생각하다가는, 책이 나온 1994년을 더듬으니, 1994년은 제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갓 대학교에 들어가 본 해입니다. 대학교는 다섯 학기를 다니고 그만두었는데, 첫 해를 보낸 1994년에 대학교 앞 책방들을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이듬해 1995년에는 대학교 도서관과 구내서점에서 일꾼 노릇을 했습니다만, 이때에 《아이들 앞에 바로 서려는 어른의 이야기》라는 책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왜 못 보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못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책을 다 알아볼 수 없을 뿐더러,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렇게 놓치는 책이 있기 마련입니다. 놓치는 책이 있는 줄 자그마치 열예닐곱 해 뒤에서야 깨닫는 책이 있습니다. 어쩌면 놓치는 책인 줄 죽는 날까지 알아채지 못하는 책도 많을 테지요.

 한 사람이 알아채는 책은 몇 가지가 되려나요. 한 사람이 받아들이는 책은 몇 권이나 될까요. 한 사람이 곰삭이며 사랑할 책은 얼마나 될는지요. 한 사람이 아끼거나 보듬을 책은 얼마쯤이면 넉넉한가요.


.. 적당히 살자는 생각이 없어지면서, 얽혀 있던 인간관계도 적극적으로 풀어 가자는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 이해는 온정으로 나타났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었다. 따뜻하게 보아주고 싶었다 … 내 마음에 맞는 사람만 만나기를 바라는 것은 일종의 독재자의 마음이나 도둑의 심보와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하니 내 불쾌감이라는 것이 쓸데없는 감정의 낭비처럼 느껴졌다 ..  (56, 57, 133쪽)


 모든 책은 한 사람 땀방울을 담습니다. 모든 책은 한 사람 꿈을 싣습니다. 모든 책은 한 사람 넋을 통째로 담습니다. 모든 책은 한 사람 사랑을 남김없이 싣습니다. 모든 책은 한 사람 이야기를 송두리째 바칩니다.

 모든 책은 사랑이기 때문에, 책을 찾아서 읽는 사람 스스로 어떠한 사랑을 나누어 받고픈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모든 책은 믿음인 터라, 책을 살피어 읽을 사람 스스로 어떠한 믿음을 즐기려 하는지를 곱씹어야 합니다. 모든 책은 삶이니까, 책을 장만하여 읽겠다는 사람이 기쁘게 어깨동무할 고운 이야기꽃을 피워야 합니다.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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