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과 글쓰기


 깊고 깜깜한 밤,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일어섰다. 왜지? 애 엄마가 무어라 말하니 아이는 다시 눕는다. 갑자기 일어서기 앞서 아빠 가슴 께로 슬슬 기어오르기도 했는데, 털푸덕 하고 엎어진다. 숨이 좀 가쁘다. 아이가 제법 컸기에 꽤 무겁다. 기저귀가 젖어서 일어났나 싶어, 아이를 살살 들어 옆으로 누인 다음 만진다. 젖었다. 기저귀싸개를 풀어 젖은 기저귀를 뺀다. 이불을 덮고 젖은 기저귀는 치운 다음 새 기저귀를 가져와서 댄다. 바지를 다시 입히고 이불을 잘 덮어 토닥토닥하니까 새근새근 잠이 든다. 여러 해 익숙한 일이라 어두운 방에서 눈을 감고 이 모든 일을 한다.

 바깥이 훤하다. 무슨 빛이 이렇게 들어오나 싶어 궁금하다. 벌써 새벽이 다가오는가 생각하며 마당으로 나와 쉬를 눈다. 달이 아주 밝다. 설이 가깝다고 문득 깨닫는다. 겨우내 이토록 밝은 달은 보지 못했다. 한 해 가운데 달이 가장 밝은 날은 대보름이랑 설날이다. 이맘때 이토록 고운 달빛이란 다른 때에는 구경할 수 없다. 그런데 설을 앞둔 보름달 빛깔도 참으로 밝으며 곱구나. 아무렴, 설을 지나고 대보름을 지났어도 달빛은 한동안 이토록 밝으면서 고왔는걸. 대보름을 앞둔 반달이나 대보름을 지난 반달 또한 이렇게 밝으며 고운걸.

 나한테 설날이란 명절이라는 이름도 있으나, 한껏 달아오르던 겨울이 비로소 잠을 자는 때가 다가온다는 뜻도 있다. 길디길던 겨울이 올해에도 이렇게 저무는구나 하고 깨닫는 설날이다. 참말, 설날이 찾아오면 어느 하루 꽁꽁 얼어붙지 않던 날이 없어 날마다 기름 걱정 물 걱정 집안 걱정을 하던 나날을 마감할 수 있을까. 달력이 아닌 달빛으로 느끼는 설부터는 우리 집살림을 조금이나마 알뜰살뜰 꾸리거나 여미는 슬기로운 애 아빠로 살아갈 수 있을까.

 몸뚱이에 찬바람을 묻혀 방으로 들어와서 셈틀 앞에 무릎 꿇고 앉는다. 나는 글을 쓸 때에 늘 무릎을 꿇는다. (4344.1.17.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