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앞에 바로 서려는 어른의 이야기
김남선 지음 / 풀빛 / 1995년 1월
평점 :
품절


한 사람이 아끼거나 보듬을 책
― 김남선, 《아이들 앞에 바로 서려는 어른의 이야기》



- 책이름 : 아이들 앞에 바로 서려는 어른의 이야기
- 글 : 김남선
- 펴낸곳 : 풀빛 (1994.12.21.)


 뜻하지 않게 ‘사진읽기’를 하면서 ‘사진비평’을 한다는 이름을 얻습니다. ‘사진찍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사진읽기’를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저절로 사진책을 말하기 마련이고, 사진책을 말하던 글이 시나브로 ‘사진비평’이 됩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어머니 마음을 조금씩 느끼며 배웁니다. 그러나 어머니 마음을 조금씩 느끼며 배운달지라도 알차거나 아름다이 느끼거나 배우지는 못합니다. 어수룩하고 어줍잖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깨닫습니다. 사진은 누구한테서 따로 배울 수 없고 가르칠 수 없다고 깨닫습니다. 아이키우기 또한 누구한테서 따로 배우거나 가르치지 못합니다. 배우거나 가르치는 사진이나 아이가 아니요, 배우거나 가르치지 못하는 삶입니다. 하루하루 맞아들이며 보내는 삶이면서 사진이고 아이입니다.

 내가 누구를 가르칠 수 없지만, 내가 누구한테서 배울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선생님’이라며 부를 수 없고, 누군가 나를 ‘선생님’이라며 부르지 못합니다. 서로 같은 자리 사람입니다. 서로 나란히 어깨동무할 사람입니다. 어른은 아이 앞에서 말을 놓는다지만, 어른과 아이가 똑같은 사람이요 삶임을 헤아리거나 곰삭일 줄 안다면, 말이 아닌 마음을 열며 이야기를 나눌 노릇입니다.


.. 김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러저러한 성격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김씨이다. 그런데 김씨가 김씨의 모습을 지녔다고 싫어하고 미워한다. 나 자신의 얼굴 모습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생긴 것이 나인데 마음에 들지 않게 생겼다고 스스로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 민주화와 민족자주화에 절실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그 사람이 항상 바른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의 가슴에도 제국주의 근성, 독재자의 근성이 살아서 해독을 끼치고 있는 것을 내 모습을 통해 보게 된다 … 과거의 교장·교감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초인적인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도저히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노력이 부질없는 짓이라고 비웃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인간이고 다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이들이다. 적으로가 아니라 같이 잘 살아야 할 존재로 애정을 가지고 진심을 다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  (44∼45쪽)


 《못 다 가르친 역사》라는 책을 써 냈던 김남선 님이 쓴 《아이들 앞에 바로 서려는 어른의 이야기》라는 책을 헌책방에서 만납니다. 이런 책이 나온 적 있구나 새삼스럽게 생각하다가는, 책이 나온 1994년을 더듬으니, 1994년은 제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갓 대학교에 들어가 본 해입니다. 대학교는 다섯 학기를 다니고 그만두었는데, 첫 해를 보낸 1994년에 대학교 앞 책방들을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이듬해 1995년에는 대학교 도서관과 구내서점에서 일꾼 노릇을 했습니다만, 이때에 《아이들 앞에 바로 서려는 어른의 이야기》라는 책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왜 못 보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못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책을 다 알아볼 수 없을 뿐더러,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렇게 놓치는 책이 있기 마련입니다. 놓치는 책이 있는 줄 자그마치 열예닐곱 해 뒤에서야 깨닫는 책이 있습니다. 어쩌면 놓치는 책인 줄 죽는 날까지 알아채지 못하는 책도 많을 테지요.

 한 사람이 알아채는 책은 몇 가지가 되려나요. 한 사람이 받아들이는 책은 몇 권이나 될까요. 한 사람이 곰삭이며 사랑할 책은 얼마나 될는지요. 한 사람이 아끼거나 보듬을 책은 얼마쯤이면 넉넉한가요.


.. 적당히 살자는 생각이 없어지면서, 얽혀 있던 인간관계도 적극적으로 풀어 가자는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 이해는 온정으로 나타났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었다. 따뜻하게 보아주고 싶었다 … 내 마음에 맞는 사람만 만나기를 바라는 것은 일종의 독재자의 마음이나 도둑의 심보와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하니 내 불쾌감이라는 것이 쓸데없는 감정의 낭비처럼 느껴졌다 ..  (56, 57, 133쪽)


 모든 책은 한 사람 땀방울을 담습니다. 모든 책은 한 사람 꿈을 싣습니다. 모든 책은 한 사람 넋을 통째로 담습니다. 모든 책은 한 사람 사랑을 남김없이 싣습니다. 모든 책은 한 사람 이야기를 송두리째 바칩니다.

 모든 책은 사랑이기 때문에, 책을 찾아서 읽는 사람 스스로 어떠한 사랑을 나누어 받고픈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모든 책은 믿음인 터라, 책을 살피어 읽을 사람 스스로 어떠한 믿음을 즐기려 하는지를 곱씹어야 합니다. 모든 책은 삶이니까, 책을 장만하여 읽겠다는 사람이 기쁘게 어깨동무할 고운 이야기꽃을 피워야 합니다.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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