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4] 어른

 어린 날 제 꿈은 어른이 되기였습니다. 몸집이 커지고 나이가 늘어난 어른이 아닌, 어린이 앞에서 슬기롭고 똑똑하며 올바르고 아름다운 가운데 참되고 착한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 둘레 어른이 못났다거나 엉터리라든가 어설펐다든가 짓궂었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이분들 가운데 어린 나한테 어른다운 매무새로 하루하루를 알차고 아름다이 가꾸는 분으로 누구를 손꼽을 수 있을는지 몰랐습니다. 제 둘레뿐 아니라 우리 터전을 두루 돌아볼 때에도 어른다운 어른을 찾기란 아주 힘들었습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제 둘레에 좋은 어른이 곳곳에 조용히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한 권 두 권 읽는 책이 늘며 제 먼발치에서 몹시 힘내고 땀흘리는 당차고 씩씩한 어른이 꽤 있음을 알아냅니다. 그러나 제가 꿈꾸던 어른은 아직 만나지 못합니다. 제가 꿈꾸던 어른이란 없을는지 모릅니다. 저 스스로 제가 꿈꾸던 어른으로 살아내어 우리 아이를 비롯하여 이 땅 아이들 앞에서 어른이라는 사람은 왜 ‘어린이’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아닌 ‘어른’이라는 이름인가를 살갗으로 느끼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4343.6.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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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36] 새봄맞이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따지면,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살아온 투박한 사람들은 늘 우리 말을 사랑했습니다. 다만, 우리 말을 사랑해 온 여느 수수한 사람들 투박한 삶에는 ‘우리 글’이 없었을 뿐입니다. 글은 없으나 얼마든지 즐거웠고, 글은 쓰지 않았어도 말과 넋으로 아름다운 삶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말이 아닌 ‘중국사람 글’을 아끼며 섬기던 사람들은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해야 옳습니다. 새해를 맞이했으면 ‘새해맞이’라 하면 될 뿐인데, 이제껏 ‘謹賀新年’ 언저리에서만 맴돌았습니다. 새로 맞이하는 봄을 기쁘게 나누려는 마음을 ‘새봄맞이’라든지 ‘새봄사랑’이라든지 ‘새봄새날’이라든지 ‘새봄한빛’이라고 글월을 적어 붙이지 않았어요. 이 또한 조금 더 생각하면, 가을걷이를 마친 볏짚으로 지붕을 이은 여느 수수한 사람들 살림집 문에는 ‘立春大吉’ 같은 글월이 붙지 않습니다. 중국사람 글을 우러르며 돈과 이름과 힘을 거느리던 사람들 기와집 대문에만 붙은 한문입니다. (4344.1.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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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1
콘노 키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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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을 물려주고 죽는 사람
 [만화책 즐겨읽기 22] 콘노 키타,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1)》



 치마처럼 길게 내려오는 겉옷을 잠자리맡에서까지 입으려 하고, 머리띠와 머리핀을 누워서까지 하려는 아이한테 “안 돼. 이제 자야 해. 얼른 벗어.” 하고 말하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해서 아이가 말을 들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응, 이제 그만 벗고 다음날 또 입자.” 하고 말하면 으레 말을 듣습니다. “내일 또 입자.” 하고 말하면 “내일 또 입자? 내일 또 입어?” 하고 되묻고, “다음날 또 입자.” 하고 말하면 “다음날 또 입어? 응, 다음날 또 입어.” 하고 되묻습니다. 이러면서 옷을 벗겨 달라 하거나 스스로 벗습니다. 서른두 달째 함께 살아가는 아이는 제 아버지 어머니하고 이렇게 말을 섞습니다.

 제 어버이가 짜증스레 말하면 아이 또한 짜증스레 대꾸합니다. 제 어버이가 살가이 말하면 아이도 살가이 대꾸합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옛말을 굳이 들추지 않아도, 살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나부터 듣기 좋도록 말해야 할 노릇이고, 내 입에서 나올 때부터 말하기 좋도록 말해야 할 일입니다.

 내 입에서 톡톡 쏘는 말투라 한다면, 듣는 사람에 앞서 말하는 사람 입이 망가집니다. 내 입에서 포근하게 우러나오는 말씨라 한다면, 듣는 사람에 앞서 말하는 사람 입이 어여쁩니다.

 예부터 ‘어른이 되라.’고 말해 왔습니다. 옛사람들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라 하지 않았고 ‘멋진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늘 ‘어른이 되라.’고 말했으며, ‘어른이 그게 무슨 짓이냐.’고 말했습니다.

 한편, ‘아이라면 아이답게 굴어야지.’ 하고 말해 왔습니다. 내 주제를 알고 내 나이값을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어른처럼 군다든지 일찍부터 철이 든 애늙은이 같은 모습을 보이지 말라 했습니다. 아이들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집일을 거들고 논밭일을 함께해야 했으나, 아이한테는 어른과 똑같이 일을 시키지는 않습니다. 꼭 아이 몸과 마음에 걸맞게 일을 시켰습니다. 아이들이 일을 하다가 놀러 나간다며 내쁘든 일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든 나무라지 않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며 살살 어루만질 뿐입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얼마든지 잘못을 저지를 만하고, 잘못을 저지르면서 크며, 잘못을 하나하나 딛으며 삶을 깨우칩니다.


- “그 (엄마) 사진 좋아? 그럼 사야가 가져.” (8쪽)
- “그래. 국수는 엄마가 좋아하던 거였지.” (12쪽)
- “따라한다고?” “반만. 엄마가 해 주는 얘기는 신데렐라도 엄지공주도 ‘끝’이 없었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다음엔 늘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라고 했거든.” (24쪽)


 내 삶자국을 곰곰이 돌아보면, 어느 하루도 더없이 올바르거나 아름답거나 훌륭히 걸었던 적은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삐딱하게 걷는다든지 흔들흔들 걷는다든지 엉터리로 걷는다든지 뒤로 걷는다든지 옆길을 걷는다든지 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용케 오늘까지 죽 살아옵니다. 어느 하나 잘 나거나 잘 하는 일이란 없으나,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도란도란 살아냅니다. 가만히 살피면, 한 사람 삶이란 ‘뜻한 모든 일을 빈틈없이 이룰 때’에 아름답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즐거울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참사랑을 열다섯 나이부터 깨달아, 열다섯부터 티없고 훌륭하며 멋스러이 사랑을 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습니다. 엉뚱하든 뚱딴지 같든 어설프든 어리숙하든, 스스로 부딪히거나 마주하거나 복닥이면서 살아내는 하루입니다. 잘못 보았다 싶은 사랑이라지만 내 마음을 쏟아서 사랑합니다. 엉터리로 본 사랑이라 하더라도 내 삶을 바치면서 껴안습니다.

 아이들이 나뭇가지로 땅을 파는 일은 부질없을 수 있습니다. 쓸데없이 힘을 버리는 셈일는지 모릅니다. 제 어버이가 애써 차린 밥을 먹고 엉뚱한 데에 힘을 쏟는다 할 테지요.

 그러나, 뜻없는 놀이를 하든 값없는 시간죽이기를 하든, 아이한테는 아이대로 부질없는 짓으로 하루를 보내는 삶이 즐겁습니다. 아직 말이 또렷하지 않은 아이한테 또박또박 말하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글을 쓰라 할 수 없습니다. 예닐곱 살쯤 되었으면 잔심부름이나 잔일쯤 거들어야 할 터이나, 다 큰 어른처럼 도마질을 하든 국을 끓이든 하라고 도맡길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배울 일이 아니라, 차근차근 익히는 삶입니다.


- “저번 학교에도 그런 애가 있었어. 교실 창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쉬는 시간엔 혼자서 책을 읽곤 했던 애야. 반에서 겉돈다는 느낌보단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고양이 같았어. 고양이의 눈으로 우리랑은 뭔가 다른 것을 보고 있달까. 하지만 나도 가끔 알 것 같아. 아, 이 아이는 지금 여행 중이구나. 그 시끄러운 교실 안에서 그 아이는 자기 시간 안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있어.” (47∼48쪽)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1권을 봅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림을 그리 잘 그리지는 못하는 만화라고 알아챕니다. 그러나, 모든 만화쟁이가 처음부터 그림을 빼어나게 잘 그리라고 바랄 수 없습니다. 만화를 그리든 그림을 그리든 그림은 그림대로 제대로 그려야 하는데, 새내기나 풋내기인 만화쟁이한테는 지나치게 바라서는 안 됩니다. 다만, 하루하루 한 해 두 해 차근차근 발돋움해야지요.

 그런데 그림결은 몹시 빼어나다 할지라도 마음이 와닿지 않는 만화가 많습니다. 그림투는 아주 대단하다 할지라도 가슴을 적시지 못하는 그림이 많아요. 사진과 글도 마찬가지이고, 춤과 노래도 비슷합니다. 놀랍게 부르는 노래가 있으나, 놀랍기만 할 뿐, 가슴이 울렁거리지 않는다면, 이러한 노래를 노래라 할 만할까요. 엄청난 작품이라고 손가락을 추켜세운달지라도, 내가 차분히 바라보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 불처럼 일어나는 기쁨이나 슬픔이 없다면, 이런 작품을 작품으로 여겨야 할는지요.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는 초등학생쯤, 얼추 열한두 살부터 열서너 살쯤 되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내놓은 만화라고 느낍니다. 어린이들은 만화를 보면서 ‘만화를 잘 그렸다’라든지 ‘만화를 못 그렸다’라든지를 따질까 궁금한데, 아예 안 따지기도 할 테고, 어린이 나름대로 따지기도 하겠지요. 그림이란 누구나 보면 느낌으로 아니까요. 그림이란(또 글과 사진이란) 전문가가 바라보는 잣대로 값을 매기는 그림이 아닙니다. 그림이란, 즐기는 내가 바라보는 눈썰미로 사랑할 그림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는 아직 옹글게 영글기까지는 한참 멀었지만, 수수한 내 삶을 수수한 그대로 아끼면서 보듬으려는 만화쟁이 넋을 어렴풋이 느끼며 집어듭니다. 공상과학이라든지 판타지라든지 하는 줄거리를 짜야만 놀라울 만화는 아니에요. 여느 삶자리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또한 놀라울 만화이며, 줄거리가 그닥 놀랍다 할 만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알뜰히 즐길 만한 만화입니다.

 왜냐하면 만화 또한 삶이거든요. 사람들이 살아가며 부딪히거나 부대끼거나 겪거나 치르는 이야기를 담는 만화이기에, 만화는 고스란히 삶입니다.


- “봐,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고. 어제까진 못했던 일도 내일은 할 수 있거나, 여태 손이 안 닿았던 곳에 닿기도 한단 말야.” (71쪽)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1권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는 틈틈이 펼칩니다. 아이가 밥을 먹다가 자꾸 딴짓을 하니, 아빠는 아이가 밥을 언제 먹나 기다리다 지쳐, 그만 한손에 책을 펼칩니다. 아이가 딴짓을 쉬고 입을 벌릴 때에 비로소 밥을 퍼서 입에 넣어 줍니다. 이럭저럭 하는 동안 어느새 1권을 다 읽고, 아이한테도 밥을 다 먹입니다.

 줄거리를 살핍니다. 이웃집에 새로 옮겨 온 사람들을 마주하는 ‘이쪽 한 동네에서 오래오래 살아오던 식구’들이 ‘일찍 죽은 엄마’를 그리워 하는 말마디로 가득합니다. 아,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는 1권에서 그리움을 말하는구나.


- “앗. 편지도 들어 있다. ‘사야에게. 물려주는 거라 미안해. 내 몫까지 예쁘게 신어 줘. 하라다 사호.’ (씨익 웃고) 그럼 상자에 넣어 둬야지.” “구두를?” “사호 언니 편지! 사야가 처음 받은 편지잖아. 첫 편지.” (127∼128쪽)
- “사야가 답장 썼어.” “와. 고마워.” “빨랑 읽어 봐.” “‘예쁜 구두 고마워. 너무 좋아. 아껴서 신을게. 사야가.’ 기뻐. 얼른 휴대폰이 생겼으면 했는데, 편지도 나름 좋은걸.” (145쪽)


 문득문득 우리 집 딸아이 손금을 들여다봅니다. 아마 여러 달 만에 한 번쯤 들여다보지 싶은데, 어린이라서 그럴는지 몰라도, 참 정갈합니다. 다른 아이들 손금도 이렇게 정갈할는지 궁금합니다. 꼭 어린이라서 정갈하다 할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아이가 몇 살 나이로 클 때까지 아버지랑 어머니 될 우리 둘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헤아려 보곤 합니다. 내가 앞으로 꾸릴 수 있는 삶은 얼마나 되며, 내가 아주 오래오래 살아서 우리 딸아이가 아이를 낳아 손녀를 볼 즈음까지 살 수 있을는지, 갑작스레 차에 치여 꼴까닥 하고 숨을 거둘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오래오래 산다고 더 즐거울는지 모르고, 일찍 흙으로 돌아간다고 더 슬플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되어도 삶이고, 저렇게 되어도 삶입니다. 삶이란, 어떠한 길에서 뒹굴거나 맴돌더라도, 내 목숨을 고이 여기면서 즐기는 하루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에 나오는 어머님은 일찍 숨을 거두는 바람에 아이들이 한껏 큰 모습을 못 보아서 서운할까요. 이제 좀 귀엽게 말꽃을 피우면서 마음꽃 또한 무럭무럭 흐드러지는 모습을 못 보기에 슬플까요. 숨을 거두기 앞서까지 돌보거나 어루만지거나 보살핀 나날로 흐뭇할까요. 그동안 그만큼 얼굴을 보고 살결을 부비며 지냈으니 즐거울까요.


- “하늘이 모르는 물은 눈물을 말하는 거야.” (116쪽)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들 이야기하지만, 글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은 이름있고 힘있으며 돈있는 사람한테나 할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로서는 사람은 죽으면서 사랑을 남긴다고 느낍니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누구나 손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 손가락이 천천히 벌어지는 이때에, 여태껏 고이 움켜쥐던 사랑을 가만히 내려놓으면서 뒷사람들이 더욱 따사롭거나 넉넉히 살아가도록 사랑을 남겨 준다고 느낍니다.

 돈이 아닌 사랑을 물려주는 어버이입니다. 아이들이 어버이보다 일찍 흙으로 돌아간달지라도 이 아이들 또한 제 어버이한테 사랑을 남기고 떠난다고 느낍니다.

 하늘이 모르는 물처럼, 사람은 한삶을 사랑으로 얼싸안습니다. 하늘이 아는 물처럼, 사람은 온삶을 사랑으로 마무리짓습니다. (4344.1.30.해.ㅎㄲㅅㄱ)


―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1 (콘노 키타 글·그림,김승현 옮김,대원씨아이,2010.12.15./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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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한 줄로 읽는 사진 1
 : 문두근 님 시 〈판잣집에서 오키드꽃 피운다〉



.. 우리 대한민국 / 외국의 누가 다녀갈 때 / 빌딩이 서고 / 고층 아파트촌이 생긴다 / 그곳에 살던 철거민들 / 생활을 잃고 / 투사가 된다 // 오늘도 / 타일랜드 사람들은 / 세계의 모든 사람들 보든 말든 / 세계의 모든 사람들 웃든 말든 / 메남강에 붙어 / 판잣집 난간에 / 오키드꽃 피운다 ..  (판잣집에서 오키드꽃 피운다)


 시쓰는 문두근 님이 쓴 《아, 우리 비행기는 무사하다》(혜화당,1993)를 읽으며 무척 좋았습니다. 이 나라에 이러한 시도 있었구나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이 시집에 실린 시 가운데 〈판잣집에서 오키드꽃 피운다〉를 읽다가 글월 한 줄 두 줄에 내 눈길을 오래오래 박았습니다.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봅니다. 한국 사진쟁이들은 나라밖으로 나가서 태국이든 인도이든 티벳이든 베트남에서든 ‘가난한 사람들 모습’을 마음껏 사진으로 담습니다. 이렇게 담은 사진으로 ‘가난한 나라 사람들’ 헐벗은 모습을 선보인다든지 가난하면서도 웃음꽃 잃지 않는 모습을 알려준다든지 합니다. 때때로 한국땅 가난한 사람들 터전을 찾아가서 이런 사진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내 삶터를 꾸밈없이 들여다보며 담지는 않습니다. 사진으로든 그림으로든 글로든 내 삶터를 스스럼없이 밝히지는 않습니다.

 래미안 아파트에서 살며 래미안 이름 석 자 도드라지게 보이는 글자를 사진으로 아리땁게 찍어서 나누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자이 아파트에서 살며 자이 이름 두 자 돋보이도록 사진으로 어여삐 찍어서 사진잔치 여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눈오고 비오며 바람불고 안개낀 날마다 다 달리 보일 ‘아파트 높은 벽 글씨’ 하나 새삼스레 돌아보며 사진으로 나누는 사람은 못 봅니다. 그러나, 나라 안팎 가난한 사람들 집터를 속속들이 들추듯 들여다보면서 사진으로 찍어서 선보이는 사람은 참으로 많습니다.

 문두근 님 시가 아니더라도, 태국사람은 태국사람으로서 태국땅에서 잘 살아갑니다. 바깥에서 구경온 손님들이 사진을 신나게 찍든 말든 당신들 스스로 좋아하며 알맞게 일구는 삶입니다. 눈치를 볼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 즐길 삶입니다.

 이 나라에도 눈치를 볼 삶이 아닌 하루하루 즐길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 동네나 마을이 곳곳에 소담스레 남았습니다. 다만, 이 소담스럽고 보배스러우며 대단한 동네나 마을 가운데 ‘재개발 대상’이 아닌 곳 없을 뿐입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오붓하게 잘 살아가는데, 문화를 하느니 예술을 하느니 하는 이들이 벽에다 페인트로 죽죽 그림을 그려 놓습니다.

 우리는 무슨 사진을 하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무슨 모습을 바라보는 사진쟁이인가요. 우리는 어떻게 사진을 찍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무슨 모습을 사랑스레 바라보는 사진쟁이인가요. 우리는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껴안는 삶으로 마주서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모슨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어 사진으로 엮을 줄 아는 사진쟁이인가요. (4344.1.2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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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 봐서 아는데요


 사람은 누구나 철없던 적이 있기 때문에 철들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헤아려 보곤 합니다. 왜냐하면 손가락 끝이 다친 적 있기 때문에 손끝 한 번 다치면서도 얼마나 고달픈가를 깨달으니까, 손끝이 아닌 팔 하나 잘린다든지 다리 하나 부러진다든지 하면 어느 만큼 괴로우면서 힘든가를 어렴풋하게나마 돌아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손끝이 아파 보았기 때문에 팔이 잘리는 사람 아픔과 괴로움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렴풋이 헤아릴 뿐입니다. 똑같이 팔이 잘려서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팔이 잘리는 아픔을 알 수 없어요.

 책을 읽을 때에는 어떠할까요. 같은 책을 읽었기에, “나, 그 책 읽어 봐서 아는데요.” 하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같은 영화를 보았기에, “나, 그 영화 한번 봐서 아는데요.” 하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사랑을 해 본 사람이기에, “나, 사랑 한번 해 봐서 아는데요.” 하고 읊을 수 있을는지요.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생각합니다. 나는 내 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다른 사람 앞에서 “나, 아이 키우는 아버지로서 아는데요.” 하고 말해도 괜찮을까요. 아이를 둘이나 셋, 넷이나 다섯, 여섯이나 일곱을 키운 어버이는 아이키우기를 한결 잘 안다 할 수 있는가요.

 야구를 일곱 해쯤 지켜본 사람은 야구를 얼마나 잘 안다 할 만할까요. 야구를 열일곱 해쯤 돌아본 사람은 야구를 얼마나 잘 안다 할 수 있나요. 야구를 스물일곱 해나 서른일곱 해, 또는 마흔일곱 해나 쉰일곱 해쯤 바라본 사람은 야구를 얼마나 잘 안다 해야 하나요.

 깊이 있게 보아서 좋을 때가 있고, 두루 보아서 나을 때가 있으며, 오래 보아서 훌륭한 때가 있습니다. 살짝 보아서 알맞을 때가 있고, 사랑스레 보아서 기쁠 때가 있으며, 따스히 보아서 즐거울 때가 있어요. 읽기에 따라 다른 삶이고, 읽는 매무새에 따라 새로운 삶이에요.

 읽어 본 사람은 틀림없이 읽었기에 아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아직 못 읽었거나 곧 읽으려 하거나 애써 읽은 사람이라면, 이 사람들 나름대로 무언가 가슴으로 느끼거나 보듬으려는 이야기가 있겠지요.

 모든 책은 앎(지식)이 아닙니다. 모든 책읽기는 앎읽기(지식쌓기)가 아닙니다. 모든 책은 삶이고, 모든 책읽기는 삶읽기입니다. 삶을 읽는 책이기 때문에, “읽어 봐서 아는데.” 같은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살아 봐서 아는데.” 같은 말은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그이한테는 여태껏 살아 봤으니 “그이가 살아온 나날”을 알겠지만, 이이한테는 “이이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은, 참말 앞으로 살아 봐야 아니”까 어느 누구도 이이한테 ‘네 앞날이 이렇게 되거나 저렇게 되거나’ 하고 섣불리 짚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이가 살아왔다는 나날조차 그이 스스로 얼마나 잘 안다 밝힐 수 있을는지요.

 이렇게만 살라는 법이 없는 나날처럼, 이렇게만 읽으라는 법이 없는 책입니다. 책은 저마다 살아가는 나날대로 읽습니다. 책은 사람들마다 꾸리는 삶자락대로 엮어서 내놓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내 오늘 하루에 따라 책을 받아들입니다. 책을 쓰는 사람은 내 오늘 하루를 고이 담아 책을 내놓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내 삶에 따라 내 삶을 읽지, 책을 쓴 사람 삶을 읽지는 않거나 못합니다. 책을 쓴 사람 삶은 책을 쓴 사람만 압니다. 그러니까, 책을 쓴 사람 넋과 마음을 ‘책 읽는 이’가 알 수 없을 뿐더러, 어설피 비평이나 비판을 할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는 ‘나는 이 책 하나를 받아들이면서 내 삶을 어떻게 돌보겠다’ 하고만 말할 뿐입니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이란 없습니다. 좋은 내 삶이냐 나쁜 내 삶이냐만 있습니다. 아, 어쩔 수 없이 이 땅에는 나쁘다 할 만한 책이 있겠지요. 그러나, 이 나쁘다 할 만한 책들조차, 이 책을 쥐어든 사람이 어떻게 삭여내거나 곰삭이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사랑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이 사랑을 바꿉니다. 삶이 책을 바꾸고, 책이 삶을 바꿉니다. 사랑하는 넋으로 보듬는 책이란 내 삶을 사랑하는 넋이 더욱 따숩고 넉넉하도록 이끌고, 사랑하는 넋으로 보듬으며 꾸리는 내 삶은 내가 손에 쥔 책이 사랑씨를 고이 나눌 수 있도록 거름이 되어 줍니다. (4344.1.2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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