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 줄로 읽는 사진 1
: 문두근 님 시 〈판잣집에서 오키드꽃 피운다〉
.. 우리 대한민국 / 외국의 누가 다녀갈 때 / 빌딩이 서고 / 고층 아파트촌이 생긴다 / 그곳에 살던 철거민들 / 생활을 잃고 / 투사가 된다 // 오늘도 / 타일랜드 사람들은 / 세계의 모든 사람들 보든 말든 / 세계의 모든 사람들 웃든 말든 / 메남강에 붙어 / 판잣집 난간에 / 오키드꽃 피운다 .. (판잣집에서 오키드꽃 피운다)
시쓰는 문두근 님이 쓴 《아, 우리 비행기는 무사하다》(혜화당,1993)를 읽으며 무척 좋았습니다. 이 나라에 이러한 시도 있었구나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이 시집에 실린 시 가운데 〈판잣집에서 오키드꽃 피운다〉를 읽다가 글월 한 줄 두 줄에 내 눈길을 오래오래 박았습니다.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봅니다. 한국 사진쟁이들은 나라밖으로 나가서 태국이든 인도이든 티벳이든 베트남에서든 ‘가난한 사람들 모습’을 마음껏 사진으로 담습니다. 이렇게 담은 사진으로 ‘가난한 나라 사람들’ 헐벗은 모습을 선보인다든지 가난하면서도 웃음꽃 잃지 않는 모습을 알려준다든지 합니다. 때때로 한국땅 가난한 사람들 터전을 찾아가서 이런 사진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내 삶터를 꾸밈없이 들여다보며 담지는 않습니다. 사진으로든 그림으로든 글로든 내 삶터를 스스럼없이 밝히지는 않습니다.
래미안 아파트에서 살며 래미안 이름 석 자 도드라지게 보이는 글자를 사진으로 아리땁게 찍어서 나누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자이 아파트에서 살며 자이 이름 두 자 돋보이도록 사진으로 어여삐 찍어서 사진잔치 여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눈오고 비오며 바람불고 안개낀 날마다 다 달리 보일 ‘아파트 높은 벽 글씨’ 하나 새삼스레 돌아보며 사진으로 나누는 사람은 못 봅니다. 그러나, 나라 안팎 가난한 사람들 집터를 속속들이 들추듯 들여다보면서 사진으로 찍어서 선보이는 사람은 참으로 많습니다.
문두근 님 시가 아니더라도, 태국사람은 태국사람으로서 태국땅에서 잘 살아갑니다. 바깥에서 구경온 손님들이 사진을 신나게 찍든 말든 당신들 스스로 좋아하며 알맞게 일구는 삶입니다. 눈치를 볼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 즐길 삶입니다.
이 나라에도 눈치를 볼 삶이 아닌 하루하루 즐길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 동네나 마을이 곳곳에 소담스레 남았습니다. 다만, 이 소담스럽고 보배스러우며 대단한 동네나 마을 가운데 ‘재개발 대상’이 아닌 곳 없을 뿐입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오붓하게 잘 살아가는데, 문화를 하느니 예술을 하느니 하는 이들이 벽에다 페인트로 죽죽 그림을 그려 놓습니다.
우리는 무슨 사진을 하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무슨 모습을 바라보는 사진쟁이인가요. 우리는 어떻게 사진을 찍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무슨 모습을 사랑스레 바라보는 사진쟁이인가요. 우리는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껴안는 삶으로 마주서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모슨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어 사진으로 엮을 줄 아는 사진쟁이인가요. (4344.1.29.흙.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