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물러서는 봄비를 맞는 멧골자락 겨울나무. 

겨우내 잎사귀 몇 닢 떨어지지 않고 대롱대롱 있다가 봄까지 맞이하는구나. 

- 20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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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1-03-12 21:23   좋아요 0 | URL
동글동글 매달려 있는 봄비가 참 예쁘네요^^~~

파란놀 2011-03-13 03:09   좋아요 0 | URL
네, 이 어여쁜 봄비를 찍느라 손발이 다 얼었습니다 ^^;;;
 
집시 바람새 바람꽃
한금선 사진 / 눈빛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빛깔 고이 살아가는 사람들 삶자락
 [찾아 읽는 사진책 23] 한금선, 《집시 바람새 바람꽃》(눈빛,2007)



 사진을 찍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늘 마실을 다닙니다. 사진을 찍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이곳저곳으로 사진마실을 다닙니다. 온누리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이야기를 사진으로 살포시 적바림하고자 꾸준하게 사진마실을 즐깁니다.

 누군가는 한국땅 곳곳을 누빕니다. 누군가는 여권 빈자리가 없을 만큼 나라밖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일본사람 타누마 타케요시 님은 “지구별 어린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사진책으로 낸다면서 자그마치 백 나라가 넘는 숱한 나라를 밟습니다. 한 나라에서 마주하는 한 아이 이야기만으로도 사진책 하나는 거뜬히 나올 텐데, 백 군데가 넘는 나라에서 마주한 숱하게 많은 아이들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서리거나 깃들었을까요.

 겨우내 우리 멧골집 물이 꽁꽁 얼어붙어 날마다 웃마을 집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물을 긷고 빨래를 했습니다. 집살림을 알뜰히 건사했다면 집안 물꼭지가 얼지 않았을 테고, 밥하기며 빨래하기며 집치우기를 한결 알뜰살뜰 했겠지요. 눈이 오건 눈바람이 모질건 날마다 물통과 빨랫감을 짊어지고 멧길을 오르내리기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으레 아이는 아버지 손을 잡고 멧길을 오르내립니다. 빨래하며 물 긷는 길을 함께 다녔습니다. 아이는 멧길을 걸으며 노래를 부르고, 아버지는 이런 아이 모습을 틈틈이 사진으로 찍습니다.

 오늘은 겨울이 물러서는 봄비가 내리니 이제 우리 멧골집 물도 녹을까 싶어 한낮까지 기다려 보지만, 도랑에 남은 얼음이나 계단논에 펼쳐진 얼음은 아직 안 녹습니다. 아마 우리 살림집 얼음도 한참 먼 듯합니다. 하는 수 없다 생각하며 또 물통이랑 빨랫감을 짊어지고 멧길을 오릅니다. 빨래를 마치고 물통을 들고 내려오는데, 봄비를 맞는 멧자락 작은 나무에 대롱대롱 겨우내 매달리던 잎사귀에 달린 물방울이 아주 예쁘다고 느낍니다. 문득 발걸음을 멈춥니다. 빨래하고 물 긷느라 사진기를 안 챙겼는데, 집으로 얼른 돌아가 사진기를 들고 나올까 생각합니다. 나는 내 눈으로 이 예쁜 모습을 보았으니까 굳이 사진으로 안 담아도 되잖나 생각합니다. 터덜터덜 내려옵니다. 집에 닿아 물통과 빨래를 내려놓습니다. 무언가 떠오르듯 사진기를 집어들고 우산을 쓰고는 후다닥 달려나옵니다. 내려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도랑 둘레 겨울잎 천천히 썩으며 흙으로 돌아가는 빛깔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어느덧 조금 아까 보던 겨울나무 앞입니다. 가쁜 숨을 고르며 사진기를 듭니다. 감도 200에 셔터빠르기 1/15초 조리개값은 4.0으로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흔들렸나?’ 생각하며 다시 한 장, ‘아닌데? 또 흔들린 듯하군.’ 하면서 거듭 한 장.

 감도를 높이고 셔터빠르기를 올릴 수 있습니다만, 감도 400이나 800은 내키지 않습니다. 감도가 높아질수록 사진은 뿌얘지니까요.

 인천에서 살면서 골목동네 마실을 하며 사진 찍던 피 퍼붓던 날을 되새깁니다. ‘이때에도 감도는 200까지만 놓고 찍었지. 감도 400으로 놓고 사진 찍은 적은 없잖아?’ 하도 1/15초이니 1/8초이니 하고 사진을 찍어댔기에, 넉 장째에 이르러 흔들림 없다 싶은 사진을 얻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노릇입니다. 집으로 돌아가 셈틀을 켜고 사진을 옮겨 크게 보면 가늘게 떨렸을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니까 시골살이 사진을 찍습니다. 골목에서 살던 지난날에는 골목살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예나 이제나 시골에서든 골목에서든 헌책방마실을 즐겼기 때문에 헌책방을 찾아다닐 때면 으레 헌책방마실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저는 제 삶결에 따라 제 사진을 찍습니다. 제 삶이 남들하고 견주어 빛깔이 더 고운지 거무튀튀하거나 꾀죄죄한지는 모릅니다. 그저 저는 제 삶을 좋아하면서 하루하루 맞이하니까, 이렇게 제 삶을 좋아하며 맞이하는 하루하루를 고스란히 사진으로 옮깁니다. 딱히 감추거나 애써 꾸미면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제 삶이 못나지 않으니까 딱히 감추지 않습니다. 제 삶이 도드라지게 훌륭하니까 애써 꾸미지 않습니다. 잘났거나 못났다고 느끼지 않는 제 삶인 만큼, 오늘 하루를 보내는 그대로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그리며 글로 씁니다. 제 사진은 제 삶이며 제 빛깔입니다.

 우리 멧골집 살림은 가난합니다. 인천 골목동네에 살던 때에는 더 가난했는데, 그래도 용케 잘 살아 밥을 굶지 않았습니다. 우리 살림살이는 정부에서 말하는 최저생계비만큼 닿지 않기에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였지만, 옆지기 아버님은 파산을 해서 빚이 많고, 우리 아버지는 교사로 정년퇴임을 해서 연금을 받기 때문에, 기초생활보호 급여를 줄 수 없다 했습니다. 한쪽 어버이가 빚쟁이이고, 한쪽 어버이는 살림이 그럭저럭 괜찮대서 두 어버이네 아이들이 똑같이 빚쟁이가 되거나 그럭저럭 괜찮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버이한테 얹혀 사는 살림이 아니라, 독립된 호적으로 제금나서 살아가는 부부요 애 아빠이고 애 엄마이니까요.

 우리 살림집 둘레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든 우리 살림을 돌아보든, 가난하다 해서 슬퍼야 하지 않습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우리 동네 사람들이니까 우리들이 웃을 때에 더 해맑지 않습니다. 내 둘레 알 만한 부자들도 울고, 우리들도 웁니다. 부자인 사람도 웃으면서 살고, 가난뱅이인 사람도 웃으면서 살아요. 어디에서나 삶입니다. 누구한테서나 꿈입니다. 서로서로 좋은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한금선 님 다큐사진 《집시 바람새 바람꽃》(눈빛,2007)을 읽습니다. 집시로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한금선 님이 이 책에서 전미정 님을 만나 들려준 이야기, “편견이 생기려 하면 아예 그 반대 행동을 선택하는 게 습성처럼 되어 버렸죠. 솔직히 저도 겁이 안 나는 건 아니에요. 그러면 스스로 마취를 걸어요. 편견을 넘어서면 더 아름다운 세상이 있는데 용기를 내자. 사실 사진을 찍으며 겪는 경험들은 스스로를 검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편견과 바로 마주한 공간에서 가장 솔직한 자신을 발견하는 현실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더 투명하게 볼 수 있거든요(149쪽).”가 아니더라도, 집시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으레 ‘편견’에 젖습니다. 한금선 님도 편견이 있었다 밝힙니다. 다만, 한금선 님은 ‘편견을 딛고 서려 애씁’니다.

 아마, 한금선 님은 한금선 님 나름대로 ‘편견을 딛고 섰’기 때문에 집시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아 사진책 하나 내놓을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편견’이란 집시가 집시 아닌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아닙니다. 집시 아닌 사람이 집시를 바라보는 눈이 편견입니다.

 집시가 집시 삶을 사진으로 담는다면 어떤 이야기가 태어날까요. 가난한 사람 스스로 가난한 이웃을 사진으로 찍는다면 어떤 모습을 빚어낼까요. 아니, 빚어내지 않겠지요. 가난한 살림살이를 고스란히 사진으로 찍을 뿐입니다.

 다큐사진은 가난하게 살아가는 ‘안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밀어낸’ 모습을 담는 사진이 아닙니다. 다큐사진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는 사진입니다. 부자를 담든 가난뱅이를 담든,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곳에서 제 삶을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좋아하거나 믿으면서 어우러지는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사진쟁이 스스로 이들하고 이웃이 되어’ 찍는 사진입니다.

 다큐사진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입니다. 다큐사진은 ‘편견 없이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다큐사진을 찍는 사람은 ‘편견이 있어도 아름다운 사진’을 찍습니다. 외려 ‘편견 때문에 더 돋보이는 사진을 얻는 날’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편견이 있든 없든,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내 사진에 담을 사람들 삶에 어떠한 이야기가 깃들었는가를 만나려 하거나 사귀려 하는 흐름’으로 사진을 찍기 때문입니다. 온누리에 빛나거나 온누리를 비추는 손꼽히는 아름다운 다큐사진쟁이들이란 ‘그림 그럴싸한 사진’을 낳는 사람이 아닙니다. 온누리에 빛나는 다큐사진쟁이는 사진으로 담기는 사람들하고 즐거이 손을 맞잡으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동무입니다. 놀이동무요 마음동이며 밥동무입니다. 밥 한 그릇 함께 나누어 먹고, 잠자리 함께 나누어 자며, 술 두어 잔 싱긋 웃으면서 나누는 동무예요.

 빛깔 고이 살아가는 사람들 삶자락을 ‘빛깔 고이’ 담으면 한결 좋습니다. 다큐사진쟁이가 할 몫이란 내 사진으로 담을 사람들이 얼마나 ‘빛깔 고이’ 살아가는가를 동무로 지내면서 깨닫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다큐사진을 하는 분들은 으레 흑백사진만 찍습니다. 아니, 흑백사진이어야 비로소 다큐사진이 되는 듯 여깁니다.

 흑백사진으로도 훌륭하다 싶은 다큐사진이 태어납니다. 흑백사진에도 짙기가 달라 0부터 10까지이든 하나부터 열까지이든, 까망과 하양이 아리따이 어우러지는 빛그림을 낳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무지개빛인 사람들 삶을 까망과 하양이라는 두 갈래로만 못박는다면 ‘빛깔 고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여느 사람들은 어떻게 마주하려나요. 여느 때부터도 ‘편견 품으며 바라보는 여느 사람들’은 흑백으로 이루어진 다큐사진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편견씻이’를 하며, ‘동무되기’를 하려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책 《집시 바람새 바람꽃》은 사람들한테 얼마나 편견씻이에 이바지하는 사진책이 될까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한금선 님은 이 사진책을 당신 스스로 품던 편견을 씻고자 애쓰면서 찍었기 때문입니다. 한금선 님은 당신이 마주한 사람들(집시)이 얼마나 ‘빛깔 고이’ 살아가는가를 느끼면서 사진으로 담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집 안팎에 빨래를 널며 이쁘게 웃는 이 사람들은 무지개빛 모습으로 바라보면 얼마나 싱그럽거나 아리땁거나 사랑스러울까요. 편견씻이를 하는 데에도 사진찍기는 제몫을 하겠으나, 편견씻이보다 사랑하기를 하는 데에도 사진찍기는 제몫을 톡톡이 합니다.

 한국땅에서 사랑하기를 나누려는 다큐사진을 일구는 사진쟁이를 만날 수 있기를 꿈꾸고 싶습니다. 한국땅에서 살가운 내 동무와 이웃을 내 살림집 가까이에서 마주하면서 이쁘게 담는 결 고운 다큐사진쟁이를 만날 수 있는 날을 손꼽고 싶습니다. (4344.2.27.해.ㅎㄲㅅㄱ)


― 집시 바람새 바람꽃 (한금선 사진,눈빛 펴냄,2007.8.22./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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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에 책읽기


 봄비라 해야 할는지 모르겠지만, 봄맞이 비가 내린다. 지난밤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그러나 틀어 놓은 물꼭지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는 나지 않는다. 아침에 뒷간에 다녀오면서 도랑을 들여다보니, 얼음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제법 넘친다. 그러나 도랑에도 얼음이 다 녹지 않는다. 우리 집 물꼭지에도 얼음이 다 녹아 물이 콜콜콜 흐르자면 아직 멀었겠지. 한낮이 되어 빗줄기가 더 굵어지거나 날이 좀 포근해지면 물이 녹을까. 삼월이 되어야 녹을까, 삼월이 되어도 한참 동안 안 녹으려나.

 이 봄맞이 비가 내리는 이월 끝물, 나는 무슨 책을 읽을까 생각하다가, 《초원의 집》 둘째 권하고 《엉클 톰스 캐빈》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초원의 집》 아홉 권을 얼른 끝낼 수 있지만, 다 읽으면 너무 서운해서 한 해에 한 권씩만 읽을까 싶기도 하고, 여섯 달에 한 권을 읽을까 싶기도 하다. 《엉클 톰스 캐빈》은 을유문화사에서 1973년에 옮긴 판을 헌책방에서 찾아냈다. 옛날 자잘한 세로쓰기 판으로도 500쪽 가까운데, 《엉클 톰스 캐빈》이든 《톰 아저씨 오두막》이든 알뜰히 옮긴 ‘요즈음 나오는 책’은 하나도 없다. 더구나 스토우 아줌마가 쓴 다른 문학은 한글판으로는 거의 찾을 길이 없다.

 어느덧 아침이 밝았고, 아이도 일어난다. 이제는 셈틀을 끄고 아침밥을 차려야겠네. 오늘은 봄동을 넣은 봄맞이 떡볶이를 해 볼까. (4344.2.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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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은 왜 이렇게 우리말을 못 할까요


 올봄에 내려 했으나 아무래도 봄에는 힘들지 않을까 싶은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에 담을 글을 쓴다. 이제 큰 고비는 지났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어른들이 잘못 쓰는 말’ 꼭지를 다 썼으니까. ‘어른들이 잘못 쓰는 말’이란 수천 가지가 아닌 수만 가지나 수십만 가지가 되기 때문에, 이 가운데 삼사백 가지쯤 추려서 갈무리하는 내내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드디어 이 골머리 터지는 글쓰기를 마쳤다. 아마 오늘 저녁이나 다음주부터 아이들하고 푸름이들이 궁금해 하는 이야기를 쓸 텐데, 얼추 쉰 가지 물음을 추리면서 맨 마지막에 내가 쓴 물음 하나를 넣는다.

 “어른들은 왜 이렇게 우리말을 못 할까요?”

 내가 어린이나 푸름이라 할 때에 어른들한테 들려주고 싶은 한 마디이다. 왜 이렇게 어른들은 우리말을 엉터리로 하면서, 우리말을 알맞고 바르게 배우려 하지 않을까요? 우리말을 엉터리로 쓰면서 엉터리로 쓰는 모습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말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책 많이 읽거나 가방끈 길거나 교수이니 국회의원이니 뭐니뭐니 하고 내세운들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4344.2.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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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지를 파는 아빠


 아이 코에 소금물을 먼저 두어 방울씩 넣는다. 아빠가 코를 킁킁거리며 아이도 코를 킁킁거리라고 이른다. 아이 가슴에 천손수건을 올려놓고 솜막대기를 아이 콧구멍에 살살 넣고 돌린다. 소금물로 콧속이 젖으면서 아이 콧속에 붙던 코딱지가 살며시 떨어지고, 솜막대기에 크거나 작은 코딱지가 콧물하고 엉겨붙는다. 때때로 아이한테 콧물 어린 코딱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큼지막한 녀석이 콧속에 들어갔으니 숨쉬기가 힘들지.” 코를 말끔히 판 다음, 모처럼 귀도 파기로 한다. 아이는 아빠 허벅지에 풀썩 드러눕는다. 귓구멍에 찰싹 붙어 안 떨어지려 하는 귀지를 살살살 판다. 옆에서 뜨개질을 하던 애 엄마는 ‘무슨 귀지 파는데 그렇게 무거운 얼굴’이느냐며 사진기를 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하고 붙어 지내지만, 정작 애 아빠는 아이하고 나란히 찍히는 사진이 거의 없다. 아니, 한두 장 있을까 말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찍어 주어야 애 아빠가 아이하고 복닥이는 나날을 사진으로 담는다만, 이렇게 해 주는 사람이란 없다.

 드디어 굵직하거나 길다란 귀지를 파낸다. 아이한테 귀지를 보여준다. “오, 나왔져?” “응, 나왔어. 이제 귀지도 나왔으니까 아버지가 하는 말 좀 잘 들어 줘.” 아이는 뒷말에는 대꾸를 하지 않는다.

 아이 이를 닦이고 손발을 닦아 주며, 낯을 닦는다. 수건으로 손·발·낯을 훔친다. 아이는 폴짝폴짝 뛰면서 “벼리 이 닦았어요. 손 닦았어요. 발 닦았어요.” 하고 제 엄마한테 가서 외친다. 그러나 저녁 열 시가 넘고 열한 시가 되도록 잠들려 하지 않으니까 아주아주 괴롭다.

 지난날 우리 어머니는 두 아들 코며 귀며 어떻게 다 파 주고, 손톱과 발톱 어떻게 다 깎아 주며, 손발이랑 낯을 어찌 다 씻겨 주었을까. 한 아이 귀지를 파는 데에도 등허리가 쑤시고 눈이 따끔따끔하다. 뒷덜미가 저리고 손가락이 떨린다. (4344.2.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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