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지를 파는 아빠
아이 코에 소금물을 먼저 두어 방울씩 넣는다. 아빠가 코를 킁킁거리며 아이도 코를 킁킁거리라고 이른다. 아이 가슴에 천손수건을 올려놓고 솜막대기를 아이 콧구멍에 살살 넣고 돌린다. 소금물로 콧속이 젖으면서 아이 콧속에 붙던 코딱지가 살며시 떨어지고, 솜막대기에 크거나 작은 코딱지가 콧물하고 엉겨붙는다. 때때로 아이한테 콧물 어린 코딱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큼지막한 녀석이 콧속에 들어갔으니 숨쉬기가 힘들지.” 코를 말끔히 판 다음, 모처럼 귀도 파기로 한다. 아이는 아빠 허벅지에 풀썩 드러눕는다. 귓구멍에 찰싹 붙어 안 떨어지려 하는 귀지를 살살살 판다. 옆에서 뜨개질을 하던 애 엄마는 ‘무슨 귀지 파는데 그렇게 무거운 얼굴’이느냐며 사진기를 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하고 붙어 지내지만, 정작 애 아빠는 아이하고 나란히 찍히는 사진이 거의 없다. 아니, 한두 장 있을까 말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찍어 주어야 애 아빠가 아이하고 복닥이는 나날을 사진으로 담는다만, 이렇게 해 주는 사람이란 없다.
드디어 굵직하거나 길다란 귀지를 파낸다. 아이한테 귀지를 보여준다. “오, 나왔져?” “응, 나왔어. 이제 귀지도 나왔으니까 아버지가 하는 말 좀 잘 들어 줘.” 아이는 뒷말에는 대꾸를 하지 않는다.
아이 이를 닦이고 손발을 닦아 주며, 낯을 닦는다. 수건으로 손·발·낯을 훔친다. 아이는 폴짝폴짝 뛰면서 “벼리 이 닦았어요. 손 닦았어요. 발 닦았어요.” 하고 제 엄마한테 가서 외친다. 그러나 저녁 열 시가 넘고 열한 시가 되도록 잠들려 하지 않으니까 아주아주 괴롭다.
지난날 우리 어머니는 두 아들 코며 귀며 어떻게 다 파 주고, 손톱과 발톱 어떻게 다 깎아 주며, 손발이랑 낯을 어찌 다 씻겨 주었을까. 한 아이 귀지를 파는 데에도 등허리가 쑤시고 눈이 따끔따끔하다. 뒷덜미가 저리고 손가락이 떨린다. (4344.2.27.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