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책읽기


 돈을 버느라 바쁜 사람은 돈을 버느라 바쁜 삶에 도움이 되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또는, 돈을 버느라 바쁜 나머지 책 따위야 읽을 겨를이 없습니다.

 집에서 살림을 하는 사람은 집식구가 맛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또는, 구태여 책을 찾아 읽지 않더라도 밥하기나 빨래하기나 아이돌보기는 거뜬히 잘 해낸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남아돌아 주식을 산다든지 은행계좌에 숫자를 푼푼이 쌓는 사람은 으레 돈굴리기를 다루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또는, 요사이는 인터넷을 또닥거리면 숱한 정보와 지식이 쏟아지니까, 애써 책이란 찾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여깁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농사짓기를 다루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농사짓기를 다루는 책을 갖추는 책방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시골 읍내에 있는 책방일지라도 농사책은 한 권조차 없습니다. 밑뿌리를 살핀다면, 농사책을 내놓는 출판사부터 없습니다. 시골마을에는 책방이 남아 나지도 않으나, 잘 살아남은 곳일지라도 흙을 일구는 손길과 넋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결을 보듬는 책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농사꾼은 그예 흙이랑 빗물이랑 햇볕이랑 바람이랑 마주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도시사람은 도시를 다루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도시사람은 다른 도시를 다루거나 시골을 다루는 이야기책을 읽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이 읽는 ‘다른 도시나 시골 이야기 다룬 책’이란, 여행책일 뿐입니다. 서울사람은 인천 이야기를 읽지 않고, 인천사람은 수원 이야기를 읽지 않으며, 수원 사람은 당진 이야기를 읽지 않고, 당진사람은 옥천 이야기를 읽지 않습니다. 큰 틀로 따지면 어느 곳 이야기이든 ‘한국사람과 한국땅’ 이야기입니다. 내 이웃 이야기요, 내 동무 이야기입니다. 우리들 한국사람은 내 이웃과 내 동무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살피거나 찾아보지 않습니다. 우리 이웃과 동무들 살림살이 이야기를 귀담아듣거나 눈여겨보지 못합니다.

 바쁘게 살아간다니까 바쁜 나머지 책을 바삐 읽거나 그냥 안 읽습니다.

 느긋하게 살아간다면 느긋하게 책을 읽기도 하지만, 느긋한 나머지 책은 나중에 언제라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잘 읽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잘 읽습니다. 책을 못 읽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못 읽습니다.

 그렇지만, 몸이 몹시 아프기 때문에 몹시 좋아하는 책을 못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무척 괴롭기 때문에 무척 사랑하던 책을 멀리하고 마는 사람이 있어요.

 제아무리 맛나며 좋은 밥이랄지라도, 숟가락을 들어 스스로 떠먹어야 합니다. 손이 없으면 옆사람이 숟가락을 떠서 먹일 수 있겠지요. 그런데, 누가 떠먹여 준달지라도 몸으로 받아들여 삭이는 몫은 나한테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내 몸으로 삭여야지, 옆사람이 삭여서 살아가 줄 수 없어요.

 제아무리 훌륭하며 좋은 책이랄지라도, 스스로 장만해서 스스로 읽어야 합니다. 때로는 누군가 선물해 줄 수 있고, 옆에서 책을 읽어 주거나 줄거리를 간추려 알려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누가 장만해 주거나 읽어 준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맞아들여 곱새기는 몫은 나한테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내 마음으로 곱새겨야지, 옆사람이 곱새겨서 살아가 주지 못합니다.

 해골바가지에 든 물일지라도 나 스스로 맛난 물이라고 여긴다면 내 몸에 도움이 됩니다.

 그야말로 쓰잘데기없을 뿐 아니라 엉망진창 엉터리 책일지라도 나 스스로 좋게 받아들이며 착하게 어루만질 수 있으면 내 마음에 보탬이 됩니다.

 책이란, 쓰는 사람부터 잘 써야 합니다. 책이라면, 만드는 사람부터 옳고 바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책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잘 읽어야 합니다. 책은 책인 나머지, 읽는 사람이야말로 옳고 바르게 읽어서 기뻐해야 합니다. (4344.3.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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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3
― 일본 사진책, 한국 사진책


 일본 사진쟁이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 님이 담은 《실크로드》 여덟 권을 봅니다. 일본에서 1982년에 나온 여덟 권짜리 사진책에 붙은 일본 이름은 《シルクロ-ド》(集英社)입니다. 우리는 ‘비단길’이라 일컫는 문화흐름이 어디에서 비롯하여 일본까지 닿았는가를 밝히는 사진책입니다.

 사진책 1권은 “일본”이고 2권은 “한국”이며 3권과 4권은 “중국”입니다. 파키스탄과 이란과 이라크와 이집트와 아프가니스탄과 터키 들을 거쳐 그리스와 이탈리아로 가며 마무리를 짓습니다. 책은 한 권에 5800엔. 요즈음 돈으로 친다면 6만 원 꼴이라 할 텐데, 책 크기와 무게와 엮음새와 사진결을 보았을 때에, 2011년에 이 책을 새로 찍는다면 아무래도 1만 엔, 곧 10만 원이 웃도는 값이 붙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진책 여덟 권이면 자그마치 100만 원 가까이 되는 셈이겠다고 느낍니다.

 일본에서 만든 ‘비단길 사진책’이 100만 원쯤 된다면, 이러한 사진책을 거리낌없이 즐겁게 장만할 한국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있을 수 있을까요. 아니, 이러한 사진책은 한국땅 새책방 책꽂이에 보란 듯이 꽂힐 수 있는가요. 한국땅 도서관 가운데 100만 원쯤 될 일본 사진책 여덟 권을 기쁘게 맞아들여 갖춘 다음, 널리 읽도록 알리거나 보여줄 곳이 있으려나요.

 헌책방에서 시노야마 기신 비단길 사진책을 15만 원을 치르며 삽니다. 매장에서 구경할 수 있는 헌책방이 아닌 인터넷에 목록만 올려진 헌책방에서 삽니다. 매장에서 이 사진책을 보았다면 15만 원이라는 값이 대단히 싸게 붙인 책값이라고 느낍니다. 인터넷에서 목록으로만 보니, 책크기를 알 수 없고, 쪽수도 모르며, 엮음새를 알 길이 없는데다가, 어떤 사진을 담았는지조차 모릅니다. 시노야마 기신이라는 분이 찍은 사진을 생각한다면 이 사진책을 15만 원 들여 장만한다 하더라도 아쉽다 여길 일이 없을 테지만, 오래도록 망설이거나 머뭇거려야 했습니다.

 한국사람이 한국 모습을 담아 큼직한 판으로 내놓는 사진책에 붙는 값을 돌아봅니다. 그다지 사랑스레 찍지 못한 작품밖에 안 되는 녀석을 ‘사진’이라 이름붙이며 거들먹거리는 숱한 사진책을 곱씹습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 비단길 사진책 가운데 2권인 “한국”을 읽습니다. 옆지기하고 아이하고 셋이 함께 책을 펼쳐 읽습니다. 제법 잘산다 싶은 사람들 살림집이 많이 나오지만, 잘산다 싶은 사람이건 가난하다 싶은 사람이건, 꾸밈없이 마주하거나 들여다보면서 사진으로 담는 한국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못 담거나 안 담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 스스로 잘사는 한국사람이든 못사는 한국사람이든 그럭저럭 살아가는 한국사람이든 굶주리는 한국사람이든 사진으로 못 담거나 안 담습니다.

 사진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다음 다시 읽으며 생각합니다. 한국사람 눈으로 볼 때에 이 사진책에 나오는 한국사람은 먹고사는 걱정을 그렇게까지 크게 안 하는 사람이라 여길 만하지만, 일본사람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퍽 가난한’ 사람이 되겠지요. 한국사람이 비싼 요리집 같은 데에 어떻게 섣불리 들어가겠습니까. 1982년에 사진책이 나왔고, 책에 실린 사진은 1970년대 끝무렵부터 1980∼1981년 사이에 찍은 사진이리라 봅니다. 요즈음에도 일본돈과 한국돈을 견줄 때에 한국돈 값어치는 일본돈보다 크게 낮지만, 지난날에는 한국돈 값어치가 더욱 낮았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나 더 생각하고 살피면, 시노야마 기신 님은 한국사람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흑백필름’을 하나도 안 씁니다. 모조리 ‘무지개빛필름’만 씁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시노야마 기신 님이 바라보는 모습은 오로지 ‘무지개빛필름’에 담겨요.

 사진을 함께 보던 옆지기가 문득 말합니다. “이 사람은 예쁘게 찍는 사람이네.”

 사진책을 세 번째 다시 읽습니다. 옆지기가 문득 뱉은 말을 되새깁니다. 그래, 문득 뱉은 말이란 사진을 보면서 저절로 느낀 이야기입니다. 저절로 느끼기로 “예쁘게 찍힌 사진”이라면, 시노야마 기신이라는 사진쟁이는 한국을 찍든 일본을 담든 파키스탄을 돌아보든, ‘예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터전을 예쁜 모습과 예쁜 이야기 그대로 담아서 나누고픈 마음’이겠구나 싶습니다. 스스로 예쁘게 살아가고픈 마음이기에, 사람들을 마주할 때에 늘 예쁜 매무새요, 이 예쁜 매무새대로 사람들한테 다가서면서 ‘예쁘구나’ 하고 느낄 만한 사진을 낳는구나 싶습니다.

 옆지기는 “한국” 사진 가운데 무엇보다도 ‘아기를 안을 때에 쓰는 포대기 빛깔’을 눈여겨봅니다. “여태까지 포대기 사진을 칼라로 찍은 사람을 못 봤어요.” 하고 말합니다. 옆지기가 이렇게 말하기 앞서까지 나부터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을 찍은 사진을 수만 장, 아니 수십 수백만 장을 보았을 텐데, 이들 사진 가운데 무지개빛 감도는 필름이든 메모리카드로 담은 사진쟁이는 아직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예전에는 무지개빛필름이 꽤 비쌌기 때문에 흑백필름을 쓴다고도 했지만, 사진쟁이로서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삶’을 담으려 할 때에는 무지개빛필름을 써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골목 안 풍경》을 담은 김기찬 님도 그지없이 아름다운 골목사람 골목삶을 마주할 때에는 차마 흑백필름을 쓰지 못했어요. 김기찬 님 또한 무지개빛필름으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았어요.

 일본 사진쟁이는 한국을 사랑하는 넋으로 사진책을 일굽니다. 한국 사진쟁이는 일본을 사랑하는 얼로 사진책을 일구지 못합니다. 일본 사진쟁이는 일본이든 한국이든 당신들 스스로 사랑하는 결을 고이 아끼면서 사진을 찍어 사진책을 엮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우리 스스로 사랑하는 무늬를 좀처럼 못 느끼는 나머지 사진이든 사진책이든 너무 어둡거나 한쪽으로 치우치고 맙니다.

 사진은 사랑입니다. 사진책은 사랑으로 맺은 열매입니다. 사진은 사랑씨앗입니다. 사진책은 사랑씨앗이 새롭게 뿌리를 내리며 줄기를 올리고 잎을 틔운 다음 피우는 남다른 꽃봉우리예요.

 한국 사진쟁이가 찍은 아름다운 한국사람 ‘이야기’를 만나고 싶습니다. 예쁜 마음과 착한 손길과 고운 넋과 참다운 매무새로 한국사람이 어디에서 어떻게 복닥이거나 어깨동무하면서 웃고 우는 이야기를 이루는지 사진으로 고마이 만나고 싶습니다. (4344.3.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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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국어사전 - 남녘과 북녘의 초.중등 학생들이 함께 보는
토박이 사전 편찬실 엮음, 윤구병 감수 / 보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 국어사전


 나는 지난 2001년부터 두 해하고 여덟 달 동안 ‘어린이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했다. 내가 함께 만들던 어린이 국어사전은 내 손을 거쳐 태어나지 못했다. 나는 밑일만 하다가 그만두어야 했다. 내 손을 거쳐 태어나지 못한 어린이 국어사전이 책으로 나온 모습을 책방에서 보고는 더없이 슬퍼서 눈물이 났다. 내 손으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슬프지 않았다. 사전이 너무 엉터리여서 눈물이 났다.

 아니, 제대로 말해야겠다. 말풀이가 엉터리여서 눈물이 났다. 짜임새와 엮음새는 훌륭했다. 책은 참 예쁘장했다. 꾸밈새도 뛰어났다. 곧, 짜임새와 엮음새와 꾸밈새는 좋다. 겉으로 보기에 참 괜찮다 싶은 사전이다.

 그러나, 사전은 속을 읽는 책이지, 겉을 살피는 책이 아니다. 아무리 잘 엮거나 짜서 낱말을 찾거나 살피기에 좋은들 무엇하랴. 사전은 말풀이를 옳고 바르게 하지 않으면 사전이라 이름붙일 수 없다. 사전은 말풀이 때문에 사전이 되지, 짜임새와 엮음새와 꾸밈새 때문에 사전이 되지 않는다.

 오늘 돌이키면, 지난날 그 어린이 국어사전 한 권이 내 손을 거쳐 태어났다면 나로서는 덜 슬퍼 했을는지 모르겠지만, 덜 슬퍼 하는 만큼 왜 슬퍼 하지 않아도 되는가를 몰랐으리라 생각한다. 지난날 그 어린이 국어사전 만드는 일에서 손을 떼고 다른 길을 걸어서 오늘에 이르렀기에, 비로소 지난날 그 국어사전을 안 만들어서 어쩌면 잘된 일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나는 아직 가장 옳고 바른 말을 쓰지 못한다. 나는 아직 가장 옳고 바른 말을 배우는 사람이다. 아마, 죽는 날까지 가장 옳고 바른 말만 배우다가 조용히 흙으로 돌아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 스스로 가장 옳고 바른 말을 쓰지 못하면서 국어사전을 만든다 한다면 얼마나 슬프며 안타까운 노릇일까.

 국어학자가 우리 말을 가장 옳고 바르게 쓰지 않는다. 국어학자란, 한 가지를 파고들어 논문을 쓴 다음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지, 우리 말을 가장 옳고 바르게 쓰는 사람은 아니다. 한자말이나 영어 같은 외국말을 안 써야 우리 말을 가장 옳고 바르게 쓰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한자말이나 영어 같은 외국말을 안 쓰려 한다면, 왜 이러한 외국말을 안 써야 하는가를 살뜰히 깨달으면서, 알맞으면서 즐거이 쓸 우리 말이 무엇인가를 또렷하면서 살가이 느껴야 하고, 우리 말을 재미나며 알차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여섯 살 어린이부터 열네 살 푸름이가 모인 자리에서 ‘어린이 국어사전’을 함께 펼친다. 국어사전 읽기와 찾기를 함께 한다. 아이들은 국어사전이 참 따분하다 이야기한다. 국어사전을 읽어도 ‘내가 찾으려는 낱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 다다르다 : 목적한 곳에 가서 닿다. 어떤 곳에 이르다
 ├ 닿다 : 목적지에 다다르다
 └ 이르다 : 어떤 곳에 다다르다


 두 가지 어린이 국어사전을 펼친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다. 두 가지 어린이 국어사전 모두 돌림풀이를 한다. 나는 국어사전을 만들 때에 이런 돌림풀이가 나오지 않도록 하려고 말풀이를 모두 새롭게 지었다. 열 가지가 넘는 국어사전을 나란히 펼치고 말풀이를 다 달리 붙이면서 돌림풀이가 아닌 참풀이가 되도록 땀을 흘렸다. 그렇지만, 내가 그만둔 다음 나온 어린이 국어사전조차 돌림풀이만 판친다. ‘다다르다’하고 ‘이르다’ 말풀이를 어떻게 붙여야 할까. 말풀이는 어떻게 새겨야 하는가.

 곰곰이 생각한다. ‘다다르다’라 한다면, “가려고 하는 곳에 다 가다”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르다’라 한다면, “어떤 곳으로 가서 있다”라 해야 한다고 느낀다. ‘다다르다’라 할 때에는 처음부터 어떤 곳으로 “가려고 하는 마음”으로 가서 “다 갔다”고 하는 느낌이고, ‘닿다’라 할 때에는 ‘다다르다’하고 같은 마음으로 가되, “다 가서 그곳에 있다”나 “다 가서 그곳에 있게 되다”라는 느낌이며, ‘이르다’는 딱히 “가려고 하는 마음”이라기보다 어떤 곳으로 “가서 있”기만 하는 느낌이라고 본다.

 ┌ 가늠 : 형편이 어떤지 짐작하는 것
 ├ 짐작(斟酌) : 사정이나 형편 같은 것을 어림잡아 헤아리는 것
 ├ 어림 : 짐작으로 대충 헤아리는 것
 └ 헤아리다 : 어떤 일을 미루어 짐작하거나 살피다


 어린이 국어사전 일러두기에 나온 ‘가늠’이라는 낱말에 달린 풀이를 아이들한테 읽어 준다. 아이들은 ‘가늠하다’라는 낱말을 어느 자리에 써야 할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왜 ‘생각하다’라고만 쓰면 안 되느냐고 묻는다.

 ‘가늠하다’는 ‘재다’와 ‘따지다’와 ‘살피다’와 ‘헤아리다’와 ‘생각하다’를 모두 한 자리에 놓고 견주어야 말뜻을 알 수 있다. 이 낱말 하나만 똑 떨어뜨린 채 알도록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형편이 어떤지 짐작하는 것” 같은 말풀이를 달면 이 낱말을 알 수 있도록 이끌지 못한다.

 “될까 안 될까, 또는 어떻게 될까 하고 품는 마음”쯤으로는 적어야 ‘가늠’이라는 낱말뜻을 어렴풋이나마 알도록 하리라 본다. 아이들이 “품는 마음”이라 할 때에 ‘품다’를 어떻게 느끼느냐가 걱정스러운데, 그러면 “될까 안 될까, 또는 어떻게 될까 하는 마음”이라고 하면 되리라. ‘어림’은 쉽다. “잘 모르지만 어느 만큼 될는지, 또는 어떻게 될는지 하는 마음”이라 하면 된다. ‘가늠’과 ‘어림’은 “잘 모르지만”이라는 꾸밈말이 붙고 안 붙고에서 갈린다고 여길 수 있다. ‘가늠’은 “잘 모르지만”을 따지지 않는다. 그냥 “될까 안 될까” 하는 마음이 ‘가늠’이다.

 말풀이를 꼭 어찌저찌 해야 잘 된 국어사전이라 할 수 있다. 돌림풀이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고, 사전을 읽어서 환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야 잘 된 국어사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낱말을 싣거나 저런 낱말을 실었대서 알찬 사전이 되지 않는다. 어느 사전이든 모든 낱말을 낱낱이 싣지 못한다. 모든 낱말을 싣지 못하는 사전이지만, 사전에 싣는 낱말만큼은 제대로 풀이해야 하고, 살뜰히 읽으며 말을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말풀이가 엉터리라 해서 사전이 엉터리라 말할 수 없다. 짜임새는 훌륭한 사전이 있고, 엮음새는 빼어난 사전이 있다. 우리 나라에는 짜임새가 훌륭하거나 엮음새가 빼어난 사전조차 드물다. 어린이 국어사전 가운데에는 짜임새와 엮음새가 괜찮은 사전이 있다. 다만, 말풀이를 제대로 다룬 사전은 없다. 말풀이에 넣는 낱말을 옳으면서 바르게 가다듬은 사전 또한 없다.

 나는 이 때문에 슬프다. 말풀이가 제대로 된 사전이 없을 뿐 아니라, 말풀이에 넣는 낱말이 옳으면서 바른 사전이 없기 때문에 몹시 슬프다.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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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든 사람


 오늘도 어김없이 이오덕학교 책이야기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 오늘은 어인 일인지 빨랫감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 몹시 홀가분하다. 지난밤 아이는 오줌을 누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 어머니 곁에서 변기에 앉아 쉬를 누었다. 모처럼 밤새 오줌기저귀가 나오지 않았고, 아이 웃옷이나 바지는 어제 빨았기에 오늘 할 빨래가 없다. 행주와 수건 한 장만 단출하게 빨래하면 끝.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따순 햇살을 받으며 집으로 내려온다. 풀어놓고 키우는 까만염소 다섯 마리가 나를 보더니 길 한켠에 붙어 쪼르르 내뺀다. 지난해에는 후다닥 내달리며 내뺐지만, 이제는 내 걸음 빠르기하고 똑같이 걸어서 물러선다. 날마다 보는 사람이니까 나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풀을 뜯어도 될 테지만, 짐승답자면 이렇게 사람을 꺼리며 내뺄 줄 알아야겠지. 그러나 내가 무청이나 배추꼭지 따위를 염소한테 내밀면 어김없이 가만히 있거나 가까이 다가온다. 먹이를 손에 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집에 닿는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쬔다. 새벽에 민방위훈련 다녀올 때에만 해도 꽤나 추운 날씨였는데 한낮에는 퍽 따스하구나. 다만, 이런 햇살에도 우리 집 물은 아직 안 녹으니, 참.

 집 문을 열고 들어선다. 집이 조용하다. 문을 열고 들어설 즈음 아이는 늘 “아빠 왔어? 왔네.” 하고 인사하는데, 오늘은 말이 없다. 영화라도 보나? 아닌데. 어, 아이하고 어머니하고 나란히 누워서 자는구나.

 요사이 늘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던 아이였던 만큼 몸이 힘들었겠지. 이렇게 낮잠을 좀 자야지. 낮잠을 한두 시간쯤 자야 더 씩씩하고 신나게 놀지. 아이야, 네 어머니하고 포근하고 달콤하게 잤다가 해가 기울기 앞서 일어나렴. 아버지가 자전거 태워 줄 테니까.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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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42] 푸른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들어서는 길목, 멧자락마다 푸른 풀싹이 돋습니다. 아직 눈이 안 녹은 자리에도 새 풀이 납니다. 푸릇푸릇한 빛깔로 바뀌는 들판을 바라봅니다. 머잖아 이 멧자락이며 들판이며 푸른빛이 가득하겠지요. ‘푸른들’이 될 테지요. 겨울이 지나가는 들머리에서 비가 내리니 하늘은 더욱 새파랗습니다. 파랗디파란 시골자락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합니다. 밤과 새벽에는 까맣디까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헤아립니다. 낮하늘은 파란하늘이고 밤하늘은 까만하늘이구나. 이 넓은 파란하늘이 끝나는 자리는 어디일까요. 아마 땅끝하고 만날 테고, 저기 끝에는 바다하고 만나겠지요. 바다는 사람들이 어지럽히는 쓰레기가 아니라면 파란 빛깔로 눈부시도록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그러니까, 하늘도 파랗고 바닷물도 파랗습니다. 파란하늘이고 파란바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하늘도 바다도 들판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아무래도 도시가 커지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들어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만, 우리 푸른들을 모르니 ‘綠色’ 같은 일본말에 ‘풀 草’라는 한자를 덧단 ‘草綠’에 얽매인다든지 영어로 ‘green’을 말하기도 하지만, ‘파란들’이라는 엉뚱한 이름을 쓰기까지 합니다.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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