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사람
오늘도 어김없이 이오덕학교 책이야기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 오늘은 어인 일인지 빨랫감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 몹시 홀가분하다. 지난밤 아이는 오줌을 누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 어머니 곁에서 변기에 앉아 쉬를 누었다. 모처럼 밤새 오줌기저귀가 나오지 않았고, 아이 웃옷이나 바지는 어제 빨았기에 오늘 할 빨래가 없다. 행주와 수건 한 장만 단출하게 빨래하면 끝.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따순 햇살을 받으며 집으로 내려온다. 풀어놓고 키우는 까만염소 다섯 마리가 나를 보더니 길 한켠에 붙어 쪼르르 내뺀다. 지난해에는 후다닥 내달리며 내뺐지만, 이제는 내 걸음 빠르기하고 똑같이 걸어서 물러선다. 날마다 보는 사람이니까 나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풀을 뜯어도 될 테지만, 짐승답자면 이렇게 사람을 꺼리며 내뺄 줄 알아야겠지. 그러나 내가 무청이나 배추꼭지 따위를 염소한테 내밀면 어김없이 가만히 있거나 가까이 다가온다. 먹이를 손에 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집에 닿는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쬔다. 새벽에 민방위훈련 다녀올 때에만 해도 꽤나 추운 날씨였는데 한낮에는 퍽 따스하구나. 다만, 이런 햇살에도 우리 집 물은 아직 안 녹으니, 참.
집 문을 열고 들어선다. 집이 조용하다. 문을 열고 들어설 즈음 아이는 늘 “아빠 왔어? 왔네.” 하고 인사하는데, 오늘은 말이 없다. 영화라도 보나? 아닌데. 어, 아이하고 어머니하고 나란히 누워서 자는구나.
요사이 늘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던 아이였던 만큼 몸이 힘들었겠지. 이렇게 낮잠을 좀 자야지. 낮잠을 한두 시간쯤 자야 더 씩씩하고 신나게 놀지. 아이야, 네 어머니하고 포근하고 달콤하게 잤다가 해가 기울기 앞서 일어나렴. 아버지가 자전거 태워 줄 테니까. (4344.3.3.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