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3
― 일본 사진책, 한국 사진책
일본 사진쟁이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 님이 담은 《실크로드》 여덟 권을 봅니다. 일본에서 1982년에 나온 여덟 권짜리 사진책에 붙은 일본 이름은 《シルクロ-ド》(集英社)입니다. 우리는 ‘비단길’이라 일컫는 문화흐름이 어디에서 비롯하여 일본까지 닿았는가를 밝히는 사진책입니다.
사진책 1권은 “일본”이고 2권은 “한국”이며 3권과 4권은 “중국”입니다. 파키스탄과 이란과 이라크와 이집트와 아프가니스탄과 터키 들을 거쳐 그리스와 이탈리아로 가며 마무리를 짓습니다. 책은 한 권에 5800엔. 요즈음 돈으로 친다면 6만 원 꼴이라 할 텐데, 책 크기와 무게와 엮음새와 사진결을 보았을 때에, 2011년에 이 책을 새로 찍는다면 아무래도 1만 엔, 곧 10만 원이 웃도는 값이 붙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진책 여덟 권이면 자그마치 100만 원 가까이 되는 셈이겠다고 느낍니다.
일본에서 만든 ‘비단길 사진책’이 100만 원쯤 된다면, 이러한 사진책을 거리낌없이 즐겁게 장만할 한국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있을 수 있을까요. 아니, 이러한 사진책은 한국땅 새책방 책꽂이에 보란 듯이 꽂힐 수 있는가요. 한국땅 도서관 가운데 100만 원쯤 될 일본 사진책 여덟 권을 기쁘게 맞아들여 갖춘 다음, 널리 읽도록 알리거나 보여줄 곳이 있으려나요.
헌책방에서 시노야마 기신 비단길 사진책을 15만 원을 치르며 삽니다. 매장에서 구경할 수 있는 헌책방이 아닌 인터넷에 목록만 올려진 헌책방에서 삽니다. 매장에서 이 사진책을 보았다면 15만 원이라는 값이 대단히 싸게 붙인 책값이라고 느낍니다. 인터넷에서 목록으로만 보니, 책크기를 알 수 없고, 쪽수도 모르며, 엮음새를 알 길이 없는데다가, 어떤 사진을 담았는지조차 모릅니다. 시노야마 기신이라는 분이 찍은 사진을 생각한다면 이 사진책을 15만 원 들여 장만한다 하더라도 아쉽다 여길 일이 없을 테지만, 오래도록 망설이거나 머뭇거려야 했습니다.
한국사람이 한국 모습을 담아 큼직한 판으로 내놓는 사진책에 붙는 값을 돌아봅니다. 그다지 사랑스레 찍지 못한 작품밖에 안 되는 녀석을 ‘사진’이라 이름붙이며 거들먹거리는 숱한 사진책을 곱씹습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 비단길 사진책 가운데 2권인 “한국”을 읽습니다. 옆지기하고 아이하고 셋이 함께 책을 펼쳐 읽습니다. 제법 잘산다 싶은 사람들 살림집이 많이 나오지만, 잘산다 싶은 사람이건 가난하다 싶은 사람이건, 꾸밈없이 마주하거나 들여다보면서 사진으로 담는 한국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못 담거나 안 담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 스스로 잘사는 한국사람이든 못사는 한국사람이든 그럭저럭 살아가는 한국사람이든 굶주리는 한국사람이든 사진으로 못 담거나 안 담습니다.
사진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다음 다시 읽으며 생각합니다. 한국사람 눈으로 볼 때에 이 사진책에 나오는 한국사람은 먹고사는 걱정을 그렇게까지 크게 안 하는 사람이라 여길 만하지만, 일본사람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퍽 가난한’ 사람이 되겠지요. 한국사람이 비싼 요리집 같은 데에 어떻게 섣불리 들어가겠습니까. 1982년에 사진책이 나왔고, 책에 실린 사진은 1970년대 끝무렵부터 1980∼1981년 사이에 찍은 사진이리라 봅니다. 요즈음에도 일본돈과 한국돈을 견줄 때에 한국돈 값어치는 일본돈보다 크게 낮지만, 지난날에는 한국돈 값어치가 더욱 낮았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나 더 생각하고 살피면, 시노야마 기신 님은 한국사람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흑백필름’을 하나도 안 씁니다. 모조리 ‘무지개빛필름’만 씁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시노야마 기신 님이 바라보는 모습은 오로지 ‘무지개빛필름’에 담겨요.
사진을 함께 보던 옆지기가 문득 말합니다. “이 사람은 예쁘게 찍는 사람이네.”
사진책을 세 번째 다시 읽습니다. 옆지기가 문득 뱉은 말을 되새깁니다. 그래, 문득 뱉은 말이란 사진을 보면서 저절로 느낀 이야기입니다. 저절로 느끼기로 “예쁘게 찍힌 사진”이라면, 시노야마 기신이라는 사진쟁이는 한국을 찍든 일본을 담든 파키스탄을 돌아보든, ‘예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터전을 예쁜 모습과 예쁜 이야기 그대로 담아서 나누고픈 마음’이겠구나 싶습니다. 스스로 예쁘게 살아가고픈 마음이기에, 사람들을 마주할 때에 늘 예쁜 매무새요, 이 예쁜 매무새대로 사람들한테 다가서면서 ‘예쁘구나’ 하고 느낄 만한 사진을 낳는구나 싶습니다.
옆지기는 “한국” 사진 가운데 무엇보다도 ‘아기를 안을 때에 쓰는 포대기 빛깔’을 눈여겨봅니다. “여태까지 포대기 사진을 칼라로 찍은 사람을 못 봤어요.” 하고 말합니다. 옆지기가 이렇게 말하기 앞서까지 나부터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을 찍은 사진을 수만 장, 아니 수십 수백만 장을 보았을 텐데, 이들 사진 가운데 무지개빛 감도는 필름이든 메모리카드로 담은 사진쟁이는 아직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예전에는 무지개빛필름이 꽤 비쌌기 때문에 흑백필름을 쓴다고도 했지만, 사진쟁이로서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삶’을 담으려 할 때에는 무지개빛필름을 써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골목 안 풍경》을 담은 김기찬 님도 그지없이 아름다운 골목사람 골목삶을 마주할 때에는 차마 흑백필름을 쓰지 못했어요. 김기찬 님 또한 무지개빛필름으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았어요.
일본 사진쟁이는 한국을 사랑하는 넋으로 사진책을 일굽니다. 한국 사진쟁이는 일본을 사랑하는 얼로 사진책을 일구지 못합니다. 일본 사진쟁이는 일본이든 한국이든 당신들 스스로 사랑하는 결을 고이 아끼면서 사진을 찍어 사진책을 엮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우리 스스로 사랑하는 무늬를 좀처럼 못 느끼는 나머지 사진이든 사진책이든 너무 어둡거나 한쪽으로 치우치고 맙니다.
사진은 사랑입니다. 사진책은 사랑으로 맺은 열매입니다. 사진은 사랑씨앗입니다. 사진책은 사랑씨앗이 새롭게 뿌리를 내리며 줄기를 올리고 잎을 틔운 다음 피우는 남다른 꽃봉우리예요.
한국 사진쟁이가 찍은 아름다운 한국사람 ‘이야기’를 만나고 싶습니다. 예쁜 마음과 착한 손길과 고운 넋과 참다운 매무새로 한국사람이 어디에서 어떻게 복닥이거나 어깨동무하면서 웃고 우는 이야기를 이루는지 사진으로 고마이 만나고 싶습니다. (4344.3.4.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