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책읽기


 돈을 버느라 바쁜 사람은 돈을 버느라 바쁜 삶에 도움이 되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또는, 돈을 버느라 바쁜 나머지 책 따위야 읽을 겨를이 없습니다.

 집에서 살림을 하는 사람은 집식구가 맛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또는, 구태여 책을 찾아 읽지 않더라도 밥하기나 빨래하기나 아이돌보기는 거뜬히 잘 해낸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남아돌아 주식을 산다든지 은행계좌에 숫자를 푼푼이 쌓는 사람은 으레 돈굴리기를 다루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또는, 요사이는 인터넷을 또닥거리면 숱한 정보와 지식이 쏟아지니까, 애써 책이란 찾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여깁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농사짓기를 다루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농사짓기를 다루는 책을 갖추는 책방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시골 읍내에 있는 책방일지라도 농사책은 한 권조차 없습니다. 밑뿌리를 살핀다면, 농사책을 내놓는 출판사부터 없습니다. 시골마을에는 책방이 남아 나지도 않으나, 잘 살아남은 곳일지라도 흙을 일구는 손길과 넋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결을 보듬는 책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농사꾼은 그예 흙이랑 빗물이랑 햇볕이랑 바람이랑 마주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도시사람은 도시를 다루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도시사람은 다른 도시를 다루거나 시골을 다루는 이야기책을 읽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이 읽는 ‘다른 도시나 시골 이야기 다룬 책’이란, 여행책일 뿐입니다. 서울사람은 인천 이야기를 읽지 않고, 인천사람은 수원 이야기를 읽지 않으며, 수원 사람은 당진 이야기를 읽지 않고, 당진사람은 옥천 이야기를 읽지 않습니다. 큰 틀로 따지면 어느 곳 이야기이든 ‘한국사람과 한국땅’ 이야기입니다. 내 이웃 이야기요, 내 동무 이야기입니다. 우리들 한국사람은 내 이웃과 내 동무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살피거나 찾아보지 않습니다. 우리 이웃과 동무들 살림살이 이야기를 귀담아듣거나 눈여겨보지 못합니다.

 바쁘게 살아간다니까 바쁜 나머지 책을 바삐 읽거나 그냥 안 읽습니다.

 느긋하게 살아간다면 느긋하게 책을 읽기도 하지만, 느긋한 나머지 책은 나중에 언제라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잘 읽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잘 읽습니다. 책을 못 읽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못 읽습니다.

 그렇지만, 몸이 몹시 아프기 때문에 몹시 좋아하는 책을 못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무척 괴롭기 때문에 무척 사랑하던 책을 멀리하고 마는 사람이 있어요.

 제아무리 맛나며 좋은 밥이랄지라도, 숟가락을 들어 스스로 떠먹어야 합니다. 손이 없으면 옆사람이 숟가락을 떠서 먹일 수 있겠지요. 그런데, 누가 떠먹여 준달지라도 몸으로 받아들여 삭이는 몫은 나한테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내 몸으로 삭여야지, 옆사람이 삭여서 살아가 줄 수 없어요.

 제아무리 훌륭하며 좋은 책이랄지라도, 스스로 장만해서 스스로 읽어야 합니다. 때로는 누군가 선물해 줄 수 있고, 옆에서 책을 읽어 주거나 줄거리를 간추려 알려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누가 장만해 주거나 읽어 준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맞아들여 곱새기는 몫은 나한테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내 마음으로 곱새겨야지, 옆사람이 곱새겨서 살아가 주지 못합니다.

 해골바가지에 든 물일지라도 나 스스로 맛난 물이라고 여긴다면 내 몸에 도움이 됩니다.

 그야말로 쓰잘데기없을 뿐 아니라 엉망진창 엉터리 책일지라도 나 스스로 좋게 받아들이며 착하게 어루만질 수 있으면 내 마음에 보탬이 됩니다.

 책이란, 쓰는 사람부터 잘 써야 합니다. 책이라면, 만드는 사람부터 옳고 바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책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잘 읽어야 합니다. 책은 책인 나머지, 읽는 사람이야말로 옳고 바르게 읽어서 기뻐해야 합니다. (4344.3.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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