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꽃


 아직 흐드러지게 피어난 모과꽃은 아니다. 이제 막 꽃봉오리가 터지려는 모과꽃이다. 나무가 단단하고 매끄러우며, 잎이 참 어여쁜데다가 꽃까지 곱다. 모과는 맛이나 내음이 얼마나 좋은가. 모과 열매를 일컬어 못생겼다 하는 사람이 꽤 많은데, 생김새를 놓고 잘생겼다느니 못생겼다느니 할 수 없다. 마음이 착해야 예쁜 사람이듯이, 속알이 여물어야 고운 열매라고 느낀다.

 모과는 이토록 고운 빛깔 꽃을 피우기에 그토록 속이 꽉 차며 야물딱진 열매를 맺는구나 하고 느낀다. 따뜻한 곳에서는 4월 끝무렵에 벌써 꽃을 피운 듯한데, 우리 멧골자락에서는 이제부터 꽃봉오리가 터진다. (4344.5.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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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둑


 보리둑 꽃은 퍽 작습니다. 오얏나무 꽃이나 복숭아나무 꽃하고 견주면 참 작습니다. 화살나무 꽃하고 비슷한 크기라 할 텐데, 화살나무 꽃은 풀빛이라서 보리둑 꽃봉오리하고 견주면 눈에 거의 안 뜨입니다. 보리둑 꽃하고 화살나무 꽃이 나란히 있으면, 사람들은 보리둑 꽃만 알아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리둑 꽃이랑 오얏나무 꽃이 나란히 있으면 으레 오얏나무 꽃을 알아보겠지요.

 보리둑 꽃봉오리가 벌어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단풍나무 꽃봉오리가 벌어질 때하고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단풍나무 씨앗은 꽃보다 조금 클 뿐 퍽 작은데, 보리둑은 꽃봉오리가 터지니까 단풍꽃하고 대면 퍽 크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꽃 크기만큼 열매 크기가 달라질는지 모르겠습니다. 능금이나 배는 꽃 크기를 헤아리면 더욱 큰 열매가 맺힙니다만, 능금꽃이나 배꽃은 보리둑꽃보다 훨씬 커요. 훨씬 큰 꽃이니 훨씬 큰 열매를 맺을 테지요. 그런데 감꽃은 보리둑꽃보다 조금 더 크다 할 만하지만, 보리둑 열매는 자그맣고 감 열매는 제법 큽니다.

 더 생각해 보면, 보리둑 꽃은 흐드러지게 수없이 핍니다. 감꽃도 흐드러지게 핀다 할 테지만, 감꽃은 비바람에 쉬 떨어져요. 감꽃이 모두 감열매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감꽃이 알뜰히 여물지 못하고 제법 떨어지고, 또 차츰 여물던 감열매 또한 푸른 빛깔일 때에 꽤 떨어져야 다른 감알이 잘 여뭅니다.

 바알간 열매를 맺는 보리둑 꽃봉오리는 하얗습니다. 오얏 열매를 헤아리면, 오얏도 열매는 불그스름하거나 검붉다 할 만한데 꽃은 하얗습니다. 하얀 꽃에서 불그스름하거나 검붉은 열매가 맺히는구나 하고 또 한 번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4344.5.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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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머리 앤〉을 그린 마음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은 소설책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납니다. 그러나, 소설책 〈빨간머리 앤〉만 있었다 해서 이 만화영화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소설책을 읽으며 살아가던 누군가한테 마음으로 우러나는 사랑이 샘솟을 숱한 다른 책과 수많은 사람들 살가운 이야기가 만날 때에 새로운 책이나 영화나 그림이나 사진이 태어납니다. 그러면,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본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새로운 책이나 영화나 그림이나 사진을 빚을 수 있을까요. (4344.5.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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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5.11. 

숲에 대고 소리를 지르며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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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5-12 13:02   좋아요 0 | URL
야야야~~~~ 덩달아 숲보면서 소리한번 질러봅니다^^

파란놀 2011-05-13 07:53   좋아요 0 | URL
아... 이웃집이 시끄럽다 하더라도
그냥 소리질러 보셔요~ ^^;;;
 
The Children (Paperback) - Refugees and Migrants
Sebastiao Salgado / Aperture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5] 사람들과 사진으로 사랑을 나누기
 - 세바스티앙 살가도(Sebastiao Salgado), 《the children》(aperture,2000)



 돈없는 사람이 돈있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일이란 없습니다. 드물다 할 만한 일이 아니라,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돈없는 사람은 사진을 찍을 일조차 드뭅니다. 그러나, 사진길을 걷고픈 꿈을 꾸는 돈없는 사람이 저와 비슷한 돈없는 이웃을 사진으로 찍는 일이 있습니다.

 돈없는 사람이 저와 비슷한 돈없는 이웃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둘로 갈립니다. 첫째, 사진을 찍기 앞서와 사진을 찍는 동안과 사진을 찍고 나서 한결같이 살가이 이웃으로 지내려는 매무새입니다. 둘째, 사진을 찍고 나서 돈있는 사람 자리에 서려는 매무새입니다.

 돈있는 사람은 돈있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돈있는 사람은 돈없는 사람도 사진으로 찍습니다. 돈있는 사람은 돈을 들여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돈없는 사람은 아주 드물게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으나, 말 그대로 너무 드문 일입니다. 돈없는 사람이 ‘돈없는 삶으로 담은 사진’을 기꺼이 책으로 엮는다든지 두루 알린다든지 하는 일이란 참으로 드뭅니다.

 다큐멘터리라 하는 갈래를 이루는 사진을 생각합니다. ‘돈있는 사람’을 찍은 사진을 놓고 다큐사진이라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아직 이러한 사진은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돈없는 사람’을 찍은 사진을 가리켜 인물사진이라 하거나 패션사진이라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이제껏 이러한 사진은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큐사진이라 하면 으레 ‘가난하거나 힘들거나 어렵거나 고단한 사람’을 찍어야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듯 여기곤 합니다.

 사진기를 쥐고 다큐멘터리를 이루려 하는 이들은 ‘가난한 사람’을 찾아나섭니다. 가난한 사람하고 여러 날 여러 달 여러 해를 함께 지내곤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동무로 삼는다면서 자주 찾아가곤 합니다. 그런데, 다큐사진을 하는 이들 가운데 ‘한 가지 이야기만 온삶을 붙잡으며 사진찍기를 하겠다’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다른 이야기를 찾아나섭니다. 사진책 한 권 또는 사진잔치 한 번 할 만한 부피만큼 사진을 찍고는 ‘또다른 가난한 사람’을 찾아나섭니다.

 이효리 님을 찍은 패션사진을 헤아립니다. 이효리 님을 더 예뻐 보이도록 하는 사진이 가득합니다. 아프리카나 중남미 가난하다는 아이들을 찍은 사진을 떠올립니다. 하나같이 가엾어 보이거나 굶주려 보이거나 슬퍼 보이는 사진입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Sebastiao Salgado) 님 사진책 《the children》(aperture,2000)을 들춥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은 《아이들》이라는 사진책을 내놓았으나, 그냥 아이들이 아니라 ‘가난한 아이들’입니다. 그렇지만, 사진책 이름은 ‘가난한 아이들’이 아닌 ‘아이들’입니다.

 한국에서 다큐사진을 하는 분들이 내놓은 사진책에 붙은 이름을 곱씹습니다. 한국 다큐사진쟁이 가운데 ‘아이들’이라는 이름을 수수하게 붙이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스스로 다큐사진이라 여기지 않고 ‘놀이를 즐기는 아이’를 찍은 편해문 님은 《소꿉》이라는 사진책을 내놓은 적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은 김기찬 님은 ‘골목’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골목 안 풍경’이라고 덧말을 달았습니다.

 《the children》을 한 장 한 장 넘깁니다. 사진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가난한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제 모습을 제 사진기로 저희 스스로 찍을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바깥에서 누군가 찾아와서 저희 모습을 찍은 다음 돌아갑니다.

 사진책에 드러나는 아이들은 한결같이 가난합니다. 한결같이 외롭습니다. 한결같이 고단합니다.

 그런데, 이 가난하고 외로우며 고단한 아이들은 모조리 ‘아이들’입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은 《workers》라는 사진책에서도 ‘일꾼’ 모습만 보여주었습니다. 가난하며 외롭고 고단한 일꾼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그저 ‘일꾼’이라는 이름만을 붙이며 일꾼만을 보여주었습니다.

 돈있는 집 아이도 아이입니다. 돈없는 집 아이도 아이입니다. 이름있는 집 아이도 사랑스럽습니다. 이름없는 집 아이도 사랑스럽습니다. 힘있는 집 아이도 예쁩니다. 힘없는 집 아이도 예쁩니다. 아이는 누구나 아이이면서 사랑스러운데다가 예쁩니다.

 한국에서 다큐사진을 하는 분들이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 사진책을 차분히 들여다보면서 살가이 배우면 좋겠습니다. 겉모습을 키우거나 겉치레를 부리려고 ‘사진솜씨’를 북돋우는 길은 그만 배우면 좋겠습니다. 아이를 아이로 바라보고, 일꾼은 일꾼으로 바라보는 눈길과 손길과 몸길과 마음길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가난한 사람 스스로 사진으로 담는 일이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가난한 사람 스스로 글로 써서 이야기하거나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는 일 또한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든 가멸찬 사람이든, 제법 돈이 있는 사람이 글·그림·사진으로 이야기를 꾸립니다. 가난한 사람 스스로 가난한 살림살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진을 찍지 못하는 줄 또렷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려는 삶 가운데 하나로 사진찍기를 합니다.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려는 삶 가운데 하나로 글쓰기를 할 수 있고, 밥짓기를 해서 나눌 수 있으며, 옷짓기를 해서 나눌 수 있어요. 언제나 ‘사람들과 사랑 나누기’를 하는 흐름에서 어깨동무를 하는 사진찍기입니다.

 가난하니까 더 꾀죄죄해 보인다거나 더 슬퍼 보이도록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가난하니까 이 가난한 아이들을 불쌍히 여긴다거나 도와주도록 생각하게끔 이끄는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 ‘아이들’입니다. 가난한 아이가 아닌 ‘아이’입니다. 사랑스러운 목숨을 선물받은 아이요, 아름다운 목숨을 곱게 이을 아이입니다.

 사진은 하나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책 《the children》은 사진은 조금도 대단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은 사진이야기를 묶으면서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사람을 잇는 고리를 보여줍니다.

 아이를 사랑해 주셔요, 이뿐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며 살아요, 이뿐입니다.

 누군가는 당신 살림집 네 살 아이를 한 번 더 꼬옥 껴안으면서 사랑하겠지요. 누군가는 군수공장에서 일하며 집식구 먹여살리는 짓은 그만두고 자전거공장이나 두부공장으로 일터를 옮긴다든지, 아예 시골마을에서 흙을 일구는 터로 보금자리를 몽땅 옮기면서 사랑하겠지요.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은 아이들을 아이들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길을 걷는 사랑을 나눕니다. (4344.5.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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