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ildren (Paperback) - Refugees and Migrants
Sebastiao Salgado / Aperture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5] 사람들과 사진으로 사랑을 나누기
 - 세바스티앙 살가도(Sebastiao Salgado), 《the children》(aperture,2000)



 돈없는 사람이 돈있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일이란 없습니다. 드물다 할 만한 일이 아니라,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돈없는 사람은 사진을 찍을 일조차 드뭅니다. 그러나, 사진길을 걷고픈 꿈을 꾸는 돈없는 사람이 저와 비슷한 돈없는 이웃을 사진으로 찍는 일이 있습니다.

 돈없는 사람이 저와 비슷한 돈없는 이웃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둘로 갈립니다. 첫째, 사진을 찍기 앞서와 사진을 찍는 동안과 사진을 찍고 나서 한결같이 살가이 이웃으로 지내려는 매무새입니다. 둘째, 사진을 찍고 나서 돈있는 사람 자리에 서려는 매무새입니다.

 돈있는 사람은 돈있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돈있는 사람은 돈없는 사람도 사진으로 찍습니다. 돈있는 사람은 돈을 들여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돈없는 사람은 아주 드물게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으나, 말 그대로 너무 드문 일입니다. 돈없는 사람이 ‘돈없는 삶으로 담은 사진’을 기꺼이 책으로 엮는다든지 두루 알린다든지 하는 일이란 참으로 드뭅니다.

 다큐멘터리라 하는 갈래를 이루는 사진을 생각합니다. ‘돈있는 사람’을 찍은 사진을 놓고 다큐사진이라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아직 이러한 사진은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돈없는 사람’을 찍은 사진을 가리켜 인물사진이라 하거나 패션사진이라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이제껏 이러한 사진은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큐사진이라 하면 으레 ‘가난하거나 힘들거나 어렵거나 고단한 사람’을 찍어야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듯 여기곤 합니다.

 사진기를 쥐고 다큐멘터리를 이루려 하는 이들은 ‘가난한 사람’을 찾아나섭니다. 가난한 사람하고 여러 날 여러 달 여러 해를 함께 지내곤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동무로 삼는다면서 자주 찾아가곤 합니다. 그런데, 다큐사진을 하는 이들 가운데 ‘한 가지 이야기만 온삶을 붙잡으며 사진찍기를 하겠다’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다른 이야기를 찾아나섭니다. 사진책 한 권 또는 사진잔치 한 번 할 만한 부피만큼 사진을 찍고는 ‘또다른 가난한 사람’을 찾아나섭니다.

 이효리 님을 찍은 패션사진을 헤아립니다. 이효리 님을 더 예뻐 보이도록 하는 사진이 가득합니다. 아프리카나 중남미 가난하다는 아이들을 찍은 사진을 떠올립니다. 하나같이 가엾어 보이거나 굶주려 보이거나 슬퍼 보이는 사진입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Sebastiao Salgado) 님 사진책 《the children》(aperture,2000)을 들춥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은 《아이들》이라는 사진책을 내놓았으나, 그냥 아이들이 아니라 ‘가난한 아이들’입니다. 그렇지만, 사진책 이름은 ‘가난한 아이들’이 아닌 ‘아이들’입니다.

 한국에서 다큐사진을 하는 분들이 내놓은 사진책에 붙은 이름을 곱씹습니다. 한국 다큐사진쟁이 가운데 ‘아이들’이라는 이름을 수수하게 붙이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스스로 다큐사진이라 여기지 않고 ‘놀이를 즐기는 아이’를 찍은 편해문 님은 《소꿉》이라는 사진책을 내놓은 적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은 김기찬 님은 ‘골목’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골목 안 풍경’이라고 덧말을 달았습니다.

 《the children》을 한 장 한 장 넘깁니다. 사진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가난한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제 모습을 제 사진기로 저희 스스로 찍을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바깥에서 누군가 찾아와서 저희 모습을 찍은 다음 돌아갑니다.

 사진책에 드러나는 아이들은 한결같이 가난합니다. 한결같이 외롭습니다. 한결같이 고단합니다.

 그런데, 이 가난하고 외로우며 고단한 아이들은 모조리 ‘아이들’입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은 《workers》라는 사진책에서도 ‘일꾼’ 모습만 보여주었습니다. 가난하며 외롭고 고단한 일꾼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그저 ‘일꾼’이라는 이름만을 붙이며 일꾼만을 보여주었습니다.

 돈있는 집 아이도 아이입니다. 돈없는 집 아이도 아이입니다. 이름있는 집 아이도 사랑스럽습니다. 이름없는 집 아이도 사랑스럽습니다. 힘있는 집 아이도 예쁩니다. 힘없는 집 아이도 예쁩니다. 아이는 누구나 아이이면서 사랑스러운데다가 예쁩니다.

 한국에서 다큐사진을 하는 분들이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 사진책을 차분히 들여다보면서 살가이 배우면 좋겠습니다. 겉모습을 키우거나 겉치레를 부리려고 ‘사진솜씨’를 북돋우는 길은 그만 배우면 좋겠습니다. 아이를 아이로 바라보고, 일꾼은 일꾼으로 바라보는 눈길과 손길과 몸길과 마음길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가난한 사람 스스로 사진으로 담는 일이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가난한 사람 스스로 글로 써서 이야기하거나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는 일 또한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든 가멸찬 사람이든, 제법 돈이 있는 사람이 글·그림·사진으로 이야기를 꾸립니다. 가난한 사람 스스로 가난한 살림살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진을 찍지 못하는 줄 또렷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려는 삶 가운데 하나로 사진찍기를 합니다.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려는 삶 가운데 하나로 글쓰기를 할 수 있고, 밥짓기를 해서 나눌 수 있으며, 옷짓기를 해서 나눌 수 있어요. 언제나 ‘사람들과 사랑 나누기’를 하는 흐름에서 어깨동무를 하는 사진찍기입니다.

 가난하니까 더 꾀죄죄해 보인다거나 더 슬퍼 보이도록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가난하니까 이 가난한 아이들을 불쌍히 여긴다거나 도와주도록 생각하게끔 이끄는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 ‘아이들’입니다. 가난한 아이가 아닌 ‘아이’입니다. 사랑스러운 목숨을 선물받은 아이요, 아름다운 목숨을 곱게 이을 아이입니다.

 사진은 하나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책 《the children》은 사진은 조금도 대단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은 사진이야기를 묶으면서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사람을 잇는 고리를 보여줍니다.

 아이를 사랑해 주셔요, 이뿐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며 살아요, 이뿐입니다.

 누군가는 당신 살림집 네 살 아이를 한 번 더 꼬옥 껴안으면서 사랑하겠지요. 누군가는 군수공장에서 일하며 집식구 먹여살리는 짓은 그만두고 자전거공장이나 두부공장으로 일터를 옮긴다든지, 아예 시골마을에서 흙을 일구는 터로 보금자리를 몽땅 옮기면서 사랑하겠지요.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은 아이들을 아이들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길을 걷는 사랑을 나눕니다. (4344.5.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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