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라는 곳은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5.16.


 살림을 시골자락으로 옮긴 지 한 해가 가깝다. 책짐은 살림을 옮기고 나서 두 달 뒤에 옮겼으니 시골자락 도서관이 된 지 한 해가 되려면 조금 더 남은 셈이기는 한데, 꽤 오래도록 책살림을 알뜰히 갈무리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날마다 조금씩 갈무리하면서 차츰차츰 꼴이 나고, 오래도록 바라보며 천천히 갈무리하기 때문에 이 책들 한 번 더 만지작거리면서 생각할 수 있기도 하다.

 언제쯤 여느 바깥사람한테까지 도서관을 열 수 있을까. 여느 바깥사람은 시골자락 사진책 도서관으로 찾아왔을 때에 무슨 책과 어떤 이야기를 스스로 건져올릴 수 있을까. 사진을 보는 눈길과 삶을 붙잡는 손길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도서관이란 더 많은 사람들한테 책을 나누는 일이 된다기보다, 이 도서관을 마련한 사람 스스로 제 삶을 책과 엮어 한결 사랑스레 돌보고프다는 뜻이 되지 않느냐고 느낀다. 도서관이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이 책 저 책 그저 잔뜩 들여놓아도 될 곳인가. 널리 사랑받는 책을 갖추어야 하는 곳인가. 온누리 모든 책을 건사할 만한 도서관은 없다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부질없는 막공사 하는 모습을 바라본다면, 이렇게 막공사를 하는 데에 들일 돈과 품에다가 건물을 도서관으로 탈바꿈한다면, 온누리 모든 책을 알뜰히 갖출 수 있는지 모른다. 사람들 스스로 돈과 땀과 품과 겨를을 어디에 들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같은 책을 백 번쯤 되읽거나 즈믄 번쯤 곱새기며 읽을 수 있을 때에 넋이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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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과 빨래와 햇살과


 먼지바람이 중국부터 불어온다고 하지만, 중국에서 먼지바람이 불 수밖에 없는 까닭은 한둘이 아닙니다. 숱한 까닭 가운데 하나로, 한국에서 사고파는 수많은 물건을 중국에서 지은 공장에서 만듭니다. 얼마 앞서 삼천리자전거 한국 공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지만, 얼마 앞서까지는 한국 자전거회사에서 만드는 모든 자전거를 중국이나 대만에서 만들었습니다.

 한국땅에도 공장이 많으나 중국땅에는 공장이 훨씬 많습니다. 게다가 중국땅 공장에서 만드는 물건을 한국에서 꽤나 많이 사들이거나 또다른 나라로 팔기 때문에, 중국에서 한국 쪽으로 부는 바람은 먼지바람이나 공해바람이 될밖에 없습니다.

 봄날 봄바람 같지 않은 거세거나 드센 바람이 붑니다. 그래도 이 바람은 숲나무 사이를 지나 멧골자락 작은 집 앞마당 빨랫줄에 걸린 빨래를 건드려 나부껴 줍니다. 햇살하고 숲하고 바람을 쐬면서 빨래가 보송보송 마릅니다.

 집식구 빨래를 하는 아버지는 그저 비누질과 헹굼질을 할 뿐입니다. 비누질과 헹굼질을 마친 빨래는 숲과 바람과 햇살한테 맡깁니다. 숲과 바람과 햇살은 모든 빨래를 따사롭고 넉넉하게 보듬어 안습니다. (4344.5.1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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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5] 눈고양이

 

 읍내 장마당에 마실을 가든, 도시에 있는 헌책방에 나들이를 가든, 우리 식구들은 가방과 장바구니를 챙깁니다. 가방에 넣을 수 있을 때에는 가방에 넣습니다. 가방으로 모자라면 장바구니를 꺼냅니다. 장바구니라 하지만, 천으로 짠 바구니라 할 테니까, 천바구니라고 해야 옳습니다. 가방을 쓰든 천바구니를 쓰든, 따로 환경사랑이나 자연사랑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가방과 바구니를 쓰는 일이 옳고 바르며 한결 즐겁다고 느낄 뿐입니다. 가방과 천바구니를 쓴대서 이 천바구니가 ‘에코백’이 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천으로 만든 바구니일 뿐입니다. “GO GREEN”이라 새겨진 예쁘장한 ‘눈고양이 천바구니’를 잡지 선물로 끼워 주기도 한다던데, “푸르게 살자”라거나 “푸르게 걷자”라거나 “풀과 함께 걷자”라거나 “풀과 함께 살자”라 적는 천바구니는 없을는지, 또 ‘스노우캣’이나 ‘SNOWCAT’이 아니라 ‘눈고양이’라 적는 천바구니는 없을는지 궁금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스노우 퀸’이나 ‘스노우스 퀸’이라 안 하고 ‘눈의 여왕’이라 했어요. 조금 더 생각했으면, ‘눈 색시’나 ‘눈 아가씨’라 이름을 붙였겠지만. (4344.5.1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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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아빠가 된 날 작은 곰자리 10
나가노 히데코 지음, 한영 옮김 / 책읽는곰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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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낳기’를 모르는 아버지들한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3] 나가노 히데코, 《아빠가 아빠가 된 날》(책읽는곰,2009)



 첫째를 집에서 낳으려다가 마지막때에 옆지기 몸이 많이 나빠져서 병원으로 가서 낳았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어버이로서 집살림을 살뜰히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에 한여름날이더라도 방에 불을 넣어야 하는 줄 살피지 못했습니다. 방을 어둡게 해야 하는 줄 알더라도, 여름날이고 겨울날이고 아이 낳을 방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둘째는 집에서 즐거이 낳으려고 하는 요즈음, 지난일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여러 가지를 살피거나 갖추는 일도 해야겠으나, 아이가 어머니 몸속에서 어떻게 크면서 어떤 몸과 마음으로 지내다가 바깥으로 나오는가를 먼저 잘 살피며 깨닫지 않고서야, 아이를 집에서건 병원에서건 조산원에서건 즐거이 낳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함께 살아갈 새 살붙이를 헤아려야 하고, 무엇보다 따사로운 손길과 마음길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를 집에서 낳는 요즈음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이제 아이는 아주 마땅히 병원에서 낳고, 아기를 낳은 다음에 산후조리원에 다녀야 하는 줄 여깁니다.

 아이를 낳다가 힘들다든지, 어머니나 아이가 많이 아프다든지 할 때에 찾아가는 병원인 줄을 잊습니다. 아이를 낳고 몸풀이를 할 때에는 집식구가 궂으면서 기쁜 일을 맡아야 하는 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집처럼 아이를 집에서 낳고픈 이들은 따순 이야기를 듣기가 어렵습니다. 따순 이야기에 앞서 정보조차 거의 없습니다. 보건소나 병원에서 ‘아이를 집에서 낳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려주거나 가르치는 일이란 없습니다. 아니, 병원에서 아이를 낳더라도 새로운 한식구가 될 오롯한 목숨하고 앞으로 지낼 나날을 찬찬히 톺아보는 일부터 없습니다. 어두운 방(어머니 몸속)에 있다가 바깥으로 나오는 아이한테 눈부신 전등불을 비출 뿐 아니라, 다 다른 어머니마다 다 다른 겨를(더 일찍 낳거나 더 더디 걸려 낳거나 하는)을 들여 아이가 새 누리로 나오는 줄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 곁에서 몸풀이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갓 태어난 아이한테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기저귀를 채우는 일뿐 아니라, 아이가 쓸 물건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낱낱이 밝히며 가르치는 일이란 몹시 드뭅니다.


.. 아빠랑 엄마는 마음먹었단다. 온 식구가 함게 아기를 맞이하기로. 우리 집에서 말이야. 준비는 다 되었고, 엄마는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어 ..  (4∼5쪽)


 아이를 낳아 아이와 어떻게 함께 살고 싶은가를 헤아리지 못할 때에는 아기를 어디에서 어떻게 낳아 누가 얼마나 몸풀이를 맡아서 하는가를 헤아릴 수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낳고, 어머니는 한 집안 살가운 사람인 줄 생각하지 못할 때에,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흐름과 길과 삶을 옳게 바라볼 수 없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마을에서나 가르치지 못하고 배우기 어렵습니다. 어른들부터 젊은이와 푸름이한테 아이낳기를 물려주지 못합니다. 교사라 해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나이와 마음과 몸에 걸맞게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합니다. 마을에서 이웃이라 하더라도 집안 어른과 어슷비슷한 생각과 앎조각으로 아이낳기를 바라볼 뿐입니다. 왜 종이기저귀나 가루젖을 선물할까요. 종이기저귀를 쓰면 쓰레기가 얼마나 많이 나오고, 이 쓰레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왜 생각하지 않을까요. 공장에서 만드는 가루젖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드는가를 얼마나 생각할까요. 아이한테 맞히려는 예방주사는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졌는가를 얼마나 생각할까요. 입에 넣는 먹을거리를 비롯해서 휴지 한 장까지 어떻게 건사해야 하는가를 얼마나 생각할까요.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는 성교육을 하지만, 사람교육과 사랑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배움과 사랑배움에 삶배움이 되도록 이끌지 못해요. 사람은 저마다 어떻게 목숨을 얻고, 사람은 서로서로 어떻게 사랑을 나누며, 사람은 다 함께 어떻게 삶을 일구는가를 가슴으로 깊이 느끼고 온몸으로 또렷이 아로새기도록 돕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교육을 하면서도 막상 ‘성별에 따라 어떠한 몸이며 마음인가’를 비롯해서, 다른 성별에 따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바라보거나 서로를 아끼면서 함께 살아야 하는가를 옳게 이야기하지도 못합니다.

 기껏 성교육이나 ‘아이낳기’ 교육을 한달지라도 여자한테만 하지, 남자한테 하는 일은 드물 뿐더러, 남자(아버지)들 스스로 아이낳기를 배우려고 나서지 않습니다.

 성별 교육이든 교과서 교육이든 지식을 이야기하는 테두리에서 그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면서 사랑을 나누어야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졸업장이 아닌 따사로운 손길로 살아갑니다. 누구나 통장이나 재산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너그러운 마음길로 살아갑니다.


.. “엄마는 아기를 낳아서 엄마가 된 거예요?” “그럼.” “그러면 아빠는 언제 아빠가 되었어요?” ..  (7쪽)


 그림책 《아빠가 아빠가 된 날》(책읽는곰,2009)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그림결은 퍽 앙증맞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집에서 아이를 낳는 어버이와 식구들 이야기치고는 좀 엉성하구나 싶습니다. 더구나, 《아빠가 아빠가 된 날》이라는 그림책에는 아이가 둘씩 있으면서 셋째가 태어나는데, 아빠나 엄마 되는 사람이 갓난쟁이를 왜 이리도 서툴게 안는가 궁금합니다. 아기 어머니가 갓난쟁이를 무릎 꿇고 앉아서 ‘아기 안은 팔이 허벅지에 닿지 않도록 떨어뜨리’면서 젖을 물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기는 젖을 5초나 15초 물지 않습니다. 5분도 물고 15분도 뭅니다. 갓난쟁이가 아닌 책을 들더라도 ‘책을 쥔 손을 허벅지에 안 대고 5분쯤 든 채’ 읽으면 팔이 어떠한지 생각해야지요.

 그렇지만, 그림책 《아빠가 아빠가 된 날》을 보면, 무엇보다 큰 잘못이 있습니다. “준비는 다 되었고”라 말하지만, 무슨 준비를 다 했는지 하나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글로든 그림으로든 어떤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말로 이렇게 “준비는 다 되었고”라 해서 끝날 아이맞이가 될 수 없어요. 그림책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배냇저고리뿐 아니라 기저귀와 손수건조차 안 보입니다. 가위와 봉투는 보이고, 아기를 씻긴다는 목욕통은 보입니다(목욕통이 하나만 있으니 냉온욕이 아닌 따뜻한 물에 태지를 벗기는 목욕만 하겠군요). 그런데, 아기를 낳은 다음 커텐을 젖혀 햇볕이 집안으로 들어오도록 합니다. 아기와 어머니가 얼마나 눈부셔 하는가를 모르기에 그렸구나 싶지만, 이렇게 할 바라면, 아기를 병원에서 낳는 일하고 다를 구석이 조금도 없습니다. 새근새근 잠든 갓난아기를 ‘아빠가 팔을 허벅지에 안 붙이고 엉거주춤하게 안은 모습(31쪽)’에서도 창문까지 열어 햇볕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 아름이는 말이야, 외갓집에서 태어났어. “귀여운 딸이 태어났다네.” 하는 전화를 받고, (아빠는)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지 ..  (13쪽)


 그림책을 그린 이는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아빠도 아빠로 새롭게 태어난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쓰고 그렸(33쪽)”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아이가 태어나면 새롭게 어머니와 아버지로 살아내기 마련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앞서부터 두 어버이는 새롭게 어머니 노릇과 아버지 노릇을 하기 마련이고, 혼인을 하기 앞서부터 두 어른은 새로운 여자 구실과 남자 구실을 하기 마련인데다가, 무럭무럭 몸이 크고 마음이 자라면서 씩씩한 한 사람이자 착하고 참다운 한 사람으로 살아내기 마련입니다.

 아기를 안고 귀엽게 바라본다든지, 자그마한 아기를 바라보며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 주겠다고 다짐했어(18쪽)” 같은 말을 할 줄 알아야 ‘아빠가 아빠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누리를 돌아보면, 이만 한 다짐조차 못 하거나 안 하는 아버지가 너무 많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어도 철이 안 들 뿐더러 옳게 살아내지 못하는 아버지가 참으로 많습니다.

 《아빠가 아빠가 된 날》이라는 그림책은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그림책이라기보다, 바보스러운 나날을 그치지 못하는 아버지들한테 ‘아이를 낳는 일’부터 얼마나 대단한 선물이요 사랑이며 아름다움인가를 깨달아, 이제부터라도 따스하고 사랑스레 살아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길잡이책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이들한테 읽히는 그림책이라기보다 아버지한테 읽힐 그림책이구나 싶고, 철없는 아버지들은 ‘아이 낳는 흐름’이나 ‘아이를 낳고 몸풀이를 맡거나 집일을 맡는 삶’이 어떠한지 거의 모를 테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는 싹둑 자른 다음 ‘씩씩하며 튼튼히 마음을 다스리자’는 이야기만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아버지가 아버지가 되자면, 집 바깥보다 집 안쪽에서 더 오래 지내면서 집밖일 못지않게 집안일을 사랑스레 맞아들여 나누거나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4344.5.17.불.ㅎㄲㅅㄱ)


― 아빠가 아빠가 된 날 (나가노 히데코 글·그림,한영 옮김,책읽는곰 펴냄,2009.4.24./95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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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5.14.
 :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찾아가다



- 어린이날에도 생각하고 어버이날에도 생각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찾아가지 못했다. 좀처럼 짬을 내지 못한다. 둘째가 곧 태어나기 때문에 이 일 저 일 건사하느라 몸이 고단해서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이웃 생극면 도신리까지 가는 길을 못 가곤 했다.

- 바람 제법 불지만 따스한 토요일, 오늘은 꼭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 두툼한 겨울옷 한 벌을 빨고 나서 수레에 태운다. 아침부터 아이한테 할머니 뵈러 가자고 말해 두었다.

- 자전거를 달리면서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한다. 할아버지는 집에 계신다며, 얼른 오라고 말씀하신다. 곧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온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헤엄터에 가시는데, 오늘 미리 전화를 하지 왜 이렇게 갑자기 오느냐고 말씀하신다. 어머니(아이 할머니)는 오늘 헤엄터를 안 가기로 했다며 집에서 기다리신단다. 어머니, 죄송해요.

- 바람이 퍽 세게 분다. 광월리 집에서 생극면 가는 길은 야트막한 내리막인데 페달을 밟으면서 힘이 든다. 이따가 돌아가는 길에도 맞바람이지는 않겠지.

- 인천에서 살아갈 때에 골목꽃을 보러 바지런히 마실을 다녔지만, 곳곳에 조용히 깃든 꽃과 나무가 겨우 목숨을 이을 뿐이었다. 시골에서는 한참 신나게 달리더라도 이리로도 숲이고 저리로도 푸른 멧자락이다. 두 다리로 걸어서 멧길을 오르든, 이렇게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든, 어디에서나 푸른 바람을 쐴 수 있는 곳이 더없이 시원하면서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되겠지.

-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닿다. 문간에서 단추를 눌러도 소식이 없다. 어디 가셨나 했더니 꽃밭에서 일하시는구나. 아이는 이내 할머니 손을 잡고 꽃밭 사잇길을 걷는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밥 먹었어요?” “네. 밥 먹었어요.” “무슨 반찬 먹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와 먹었어요.” 뜬구름 잡는 대꾸이지만, 아이는 차츰차츰 말수가 늘어난다. 할머니가 닭장 앞으로 데려가 준다. 집 둘레에는 어른 닭만 있고 새끼 닭, 곧 병아리가 없는데, 할머니 닭장에는 중병아리가 있다. 할머니가 열무김치 담가 보라며 손수 다듬어 주셔서, 자잘한 잎사귀를 아이와 함께 들고 닭장으로 가져가서 내려놓는다.

-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문을 닫고 나오려는데, 아이가 할아버지 따라가느라 바쁘다. 할아버지가 아이한테 “문 닫고 와야지.” 하니, “네.” 하고 뒤를 돌아보다가는 한눈으로는 할아버지한테 달라붙고 싶어서 “아버지가 문 닫아. 파리가 들어가잖아.” 하고 외친다.

- 집으로 들어가 아이를 찍은 사진을 아이한테 쥐어 주며, 아이보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드리라고 이야기한다. 이제 이러한 심부름을 곧잘 해낸다. “응, 뭐야?” “사진이요, 벼리 사진이요.” 할머니가 “우는 사진 있네. 왜 울었어?” 하고 묻는다. “말 안 들어서 울어요. 밥 안 먹어서, 벼리가.” 언제 왜 이렇게 울었는가를 아는구나. 용한 녀석. 그런데 오늘도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오기 앞서, 집에서 밥 잘 안 먹었잖니?

- 할아버지가 “벼리 짜장면 먹을 줄 알아? 짜장면 좋아해?” 하시더니, 짜장면 먹으러 가자고 말씀한다. 아버지가 타고 온 자전거와 수레를 접어 할아버지 자동차 짐칸에 싣는다. 모처럼 수레까지 접어 본다. 덮개 단추를 떼고 등받이를 뗀 다음 왼편과 오른편 칸막이를 안쪽으로 눕히면 끝. 바퀴도 뗄 수 있지만, 짐칸에 넉넉히 들어가니 떼지 않는다.

- 무극 읍내 짜장면 집에 들어간다. 아이는 퍽 졸립지만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노느라 졸음을 잘 참는다. 배는 그닥 안 고프기에 얼마 안 먹는다. 사이에 할머니한테서 얻어먹은 까까가 좀 많았으니까. 이제 우리 집까지 태워 주신다고 하기에 고맙게 얻어탄다. 집으로 돌아가자며 차에 타니, 아이는 할머니 품에서 금세 잠든다. 이제껏 잠을 잘 참았구나. 벼리야, 오늘은 네가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 일곱 시 반까지 안 자고 놀다가 고작 한 시간 잔 다음에 이렇게 나왔으니까 곯아떨어지지.

- 아이는 세 시간쯤 낮잠을 잔다. 낮잠에서 깨어나 일어나자 마자, “어, 할아버지 어디 있어?” 하고 묻는다. “할아버지가 벼리 집까지 태워다 주셨어. 할아버지하고 할머니는 다음에 또 찾아가서 뵈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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