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5.14.
 :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찾아가다



- 어린이날에도 생각하고 어버이날에도 생각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찾아가지 못했다. 좀처럼 짬을 내지 못한다. 둘째가 곧 태어나기 때문에 이 일 저 일 건사하느라 몸이 고단해서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이웃 생극면 도신리까지 가는 길을 못 가곤 했다.

- 바람 제법 불지만 따스한 토요일, 오늘은 꼭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 두툼한 겨울옷 한 벌을 빨고 나서 수레에 태운다. 아침부터 아이한테 할머니 뵈러 가자고 말해 두었다.

- 자전거를 달리면서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한다. 할아버지는 집에 계신다며, 얼른 오라고 말씀하신다. 곧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온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헤엄터에 가시는데, 오늘 미리 전화를 하지 왜 이렇게 갑자기 오느냐고 말씀하신다. 어머니(아이 할머니)는 오늘 헤엄터를 안 가기로 했다며 집에서 기다리신단다. 어머니, 죄송해요.

- 바람이 퍽 세게 분다. 광월리 집에서 생극면 가는 길은 야트막한 내리막인데 페달을 밟으면서 힘이 든다. 이따가 돌아가는 길에도 맞바람이지는 않겠지.

- 인천에서 살아갈 때에 골목꽃을 보러 바지런히 마실을 다녔지만, 곳곳에 조용히 깃든 꽃과 나무가 겨우 목숨을 이을 뿐이었다. 시골에서는 한참 신나게 달리더라도 이리로도 숲이고 저리로도 푸른 멧자락이다. 두 다리로 걸어서 멧길을 오르든, 이렇게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든, 어디에서나 푸른 바람을 쐴 수 있는 곳이 더없이 시원하면서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되겠지.

-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닿다. 문간에서 단추를 눌러도 소식이 없다. 어디 가셨나 했더니 꽃밭에서 일하시는구나. 아이는 이내 할머니 손을 잡고 꽃밭 사잇길을 걷는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밥 먹었어요?” “네. 밥 먹었어요.” “무슨 반찬 먹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와 먹었어요.” 뜬구름 잡는 대꾸이지만, 아이는 차츰차츰 말수가 늘어난다. 할머니가 닭장 앞으로 데려가 준다. 집 둘레에는 어른 닭만 있고 새끼 닭, 곧 병아리가 없는데, 할머니 닭장에는 중병아리가 있다. 할머니가 열무김치 담가 보라며 손수 다듬어 주셔서, 자잘한 잎사귀를 아이와 함께 들고 닭장으로 가져가서 내려놓는다.

-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문을 닫고 나오려는데, 아이가 할아버지 따라가느라 바쁘다. 할아버지가 아이한테 “문 닫고 와야지.” 하니, “네.” 하고 뒤를 돌아보다가는 한눈으로는 할아버지한테 달라붙고 싶어서 “아버지가 문 닫아. 파리가 들어가잖아.” 하고 외친다.

- 집으로 들어가 아이를 찍은 사진을 아이한테 쥐어 주며, 아이보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드리라고 이야기한다. 이제 이러한 심부름을 곧잘 해낸다. “응, 뭐야?” “사진이요, 벼리 사진이요.” 할머니가 “우는 사진 있네. 왜 울었어?” 하고 묻는다. “말 안 들어서 울어요. 밥 안 먹어서, 벼리가.” 언제 왜 이렇게 울었는가를 아는구나. 용한 녀석. 그런데 오늘도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오기 앞서, 집에서 밥 잘 안 먹었잖니?

- 할아버지가 “벼리 짜장면 먹을 줄 알아? 짜장면 좋아해?” 하시더니, 짜장면 먹으러 가자고 말씀한다. 아버지가 타고 온 자전거와 수레를 접어 할아버지 자동차 짐칸에 싣는다. 모처럼 수레까지 접어 본다. 덮개 단추를 떼고 등받이를 뗀 다음 왼편과 오른편 칸막이를 안쪽으로 눕히면 끝. 바퀴도 뗄 수 있지만, 짐칸에 넉넉히 들어가니 떼지 않는다.

- 무극 읍내 짜장면 집에 들어간다. 아이는 퍽 졸립지만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노느라 졸음을 잘 참는다. 배는 그닥 안 고프기에 얼마 안 먹는다. 사이에 할머니한테서 얻어먹은 까까가 좀 많았으니까. 이제 우리 집까지 태워 주신다고 하기에 고맙게 얻어탄다. 집으로 돌아가자며 차에 타니, 아이는 할머니 품에서 금세 잠든다. 이제껏 잠을 잘 참았구나. 벼리야, 오늘은 네가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 일곱 시 반까지 안 자고 놀다가 고작 한 시간 잔 다음에 이렇게 나왔으니까 곯아떨어지지.

- 아이는 세 시간쯤 낮잠을 잔다. 낮잠에서 깨어나 일어나자 마자, “어, 할아버지 어디 있어?” 하고 묻는다. “할아버지가 벼리 집까지 태워다 주셨어. 할아버지하고 할머니는 다음에 또 찾아가서 뵈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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