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당근풀 어린이


 텃밭에서 씩씩하게 자라나는 당근풀을 바라본다. 당근씨를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모르면서 용케 심었고, 이 당근씨는 고맙게 하나하나 싹을 틔워 제법 잎이 돋는다. 더 기운을 내 주기를 바라면서 냇물에서 물을 길어 조금씩 붓는다. 그동안 비가 퍼붓느라 흙이 많이 깎였기에 손바닥으로 토닥토닥 두들기며 북을 돋운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저도 북을 돋우겠다고 나선다. 냇가에서 자라는 꽃을 한 송이 꺾어 놀다가, 한손으로는 꽃을 쥔 채 북을 돋우더니, 이내 꽃송이는 고랑에 살며시 내려놓고 두 손으로 북을 돋우며 논다. (4344.5.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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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문장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김철호 지음 / 유토피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말솜씨가 밥을 먹여 준다지만
 [책읽기 삶읽기 59] 김철호,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문장편》(유토피아,2010)



 사람들은 나날이 학교를 더 오래 다닙니다. 가방끈 길어지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납니다. 나날이 새로운 책이 쏟아집니다. 이 나라 도서관은 퍽 어설프거나 모자라다 하지만, 이곳저곳에 새 도서관이 들어서며, 사람들이 손에 쥐어들 책이 꾸준히 늡니다. 신문은 무척 많이 나오고, 방송은 온갖 이야기가 하루 내내 끊이지 않으며, 셈틀을 켜고 인터넷을 열면 갖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말이며 글이며 어마어마하다 싶도록 넘칩니다. 잘난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못난 사람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름난 사람만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라, 이름 안 난 사람도 쓸 수 있는 글입니다.

 ‘문장작법’에서 ‘작문’을 거쳐 ‘글짓기’를 지나 ‘글쓰기’로 오면서, 여느 사람들 여느 말씨로 여느 사람하고 나누는 이야기를 글로 담아 나눌 수 있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계급과 지식과 학력과 정보를 뽐내려고 잔뜩 힘을 주거나 멋을 부리는 말씨로 엮는 책이 새삼스레 쏟아집니다.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 같은 책은 지난날에는 꿈을 꿀 수 없던 책입니다. 지난날 같으면 이와 같은 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글 바로쓰기》(이오덕 씀)가 처음으로 ‘여느 우리 말로 사랑하는 여느 우리 삶’ 이야기문을 연 뒤로 수많은 여느 우리 말 이야기책이 나왔고,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는 이러한 흐름 한켠에 야무지게 자리합니다.


.. 마지막으로, 글맛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워야 한다. 문장이 뜻도 분명하고 표현에도 군더더기가 없는 데다 ‘맛있는 글’이니 ‘향기 나는 문장’이니 하는 이야기까지 듣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한마디로 ‘문학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말은 나의 일부이다. 내가 쓰는 글도 나의 일부이다. 나의 말, 나의 글은 나의 정신이자 나의 인격이다 ..  (14쪽)


 ‘낱말편’에 이어 ‘문장편’이 나온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는 책이름 그대로 ‘우리 말을 잘 쓰면 내 삶에 도움이 된다’는 줄거리를 담습니다. 참말 그렇겠지요. 오늘날 이 나라 사람들은 온통 영어사랑에 푹 빠지는데, 영어를 제아무리 잘 하는 한국사람이라 하더라도 ‘한국사람하고 한국말로 내 생각을 나눌 수 없다’면 그토록 대단하다는 영어 솜씨라 하더라도 부질없습니다.

 영어를 잘 한다는 몇몇 사람 때문에 이 나라 사람들 모두 영어를 하면서 살아갈 수 없어요. 영어를 잘 해야 나라힘을 북돋울 수 있대서 시골 흙일꾼한테 영어를 쓰며 벼를 거두거나 배추를 기르라 할 수 없어요.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이들이 왜 영어를 써야겠습니까.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영어를 써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영어로 경기를 해야 할까요. 영어신문이나 영어방송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연속극을 영어로 듣는다든지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영어로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건 수업을 하건 한국말로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가’를 또렷하게 주고받으면서 생각을 살찌워야 아름답습니다.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라는 책은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막대접할 뿐 아니라 짓밟기까지 하는 어설프며 슬픈 모습을 뉘우치거나 돌아보자는 목소리를 들려주어요.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옳게 배우자고 외치며, 한국사람인 만큼 한국말을 알맞게 쓰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좀 궁금합니다. 왜 글쓴이 김철호 님은 ‘나의’와 같은 일본 말투를 쓰지요? 이제 이러한 일본 말투는 한국 말투로 스며들었다 할 만큼 두루 쓰니까 그냥 써도 될는지요? 글쓴이 스스로 토씨 ‘-의’를 다루는 대목에서 “눈과 머리로만 글을 쓰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또 다른 자리에서는 “말의 중요도를 높여주는” 구실이라든지 “한국어 쓰임을 넓힌”다고까지 덧붙입니다.


.. ‘한국의 문학’에서는 뒤의 ‘문학’보다 앞의 ‘한국’에 초점이 놓여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의’의 효과이다. 즉, ‘의’는 자신이 붙게 되는 말의 중요도를 높여주는 구실을 한다 … 이렇게 ‘의’의 쓰임이 넓어졌다는 것은 한국어에서 동사의 비중이 작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명사의 비중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 위 예들(분홍색이 티셔츠, 34평의 아파트, 세 가지의 의문, 양쪽의 콧구멍)에서 ‘의’는 의미 전달에 공헌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읽는이들이 의미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런 표현들이 빈발하는 까닭은, 눈과 머리로만 글을 쓰기 때문이다 ..  (62∼63, 65, 68쪽)


 말은 하는 사람 나름입니다. 글 또한 쓰는 사람 나름입니다. 말을 하는 사람 나름대로 사랑스레 잘 하면 되는 말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 나름대로 올바로 잘 쓰면 되는 글입니다.

 말을 잘 한대서, 곧 말솜씨가 뛰어나다 한다면 아마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겠지요. 글을 잘 쓴대서, 그러니까 글재주가 훌륭하다 한다면 아마 책을 꽤나 팔 수 있겠지요.

 다만, 말을 좀 못 하거나 글을 퍽 못 쓰더라도 말에 담는 넋과 글에 싣는 얼이 아름다우며 착하고 참다울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솜씨로 부리는 말이 아니라, 착하게 나누는 말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재주를 피우는 글이 아니라 참다이 주고받는 글이어야 한다고 느껴요.


.. 그런데 우리가 글을 쓸 때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고유어는 고유어끼리, 한자어는 한자어끼리 더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뒤집어 말하면, 고유어와 한자어는 친화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  (229쪽)


 글쓴이는 “토박이말은 토박이말끼리 잘 어울리고 한자말은 한자말끼리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합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토박이말을 쓰려고 애쓰는 사람은 낱말뿐 아니라 글월도 토박이 낱말과 토박이 말투로 가다듬습니다. 한자말을 쓰려고 힘쓰는 사람은 낱말을 비롯해 글월까지 한자 낱말과 한자 말투로 추스릅니다.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낱말에다가 글월까지 영어로 펼치겠지요.

 쉬우면서 바르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쉬우면서 바르다 싶은 말글을 나눕니다. 지식과 학식을 뽐내려는 사람이라면 아주 마땅히 지식과 학식을 뽐내려는 글을 쓸밖에 없습니다.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를 읽으면, ‘쉽다고 할 만한 한국말’은 거의 안 보입니다. 이 책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에는 ‘일본 한자말이건 중국 한자말’이건, 또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이 나라 지식인한테 스며들었다 하는 ‘일본 말투’에다가 ‘서양 번역 말투’까지 골고루 드러납니다. 글쓴이는 이러한 글매무새를 다독이거나 손질하지 않으면서 “우리 말 솜씨가 밥 먹여 준다”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책을 덮으며 조용히 생각합니다. 참말, 말솜씨가 밥을 먹여 준다 할 만하며, 오늘날 수많은 글쓰기책이 나오고 말지식책이 나오는 만큼, 영어 지식 못지않게 한국말 지식을 쌓는 일도 ‘내 경력’과 ‘내 소개서’에 적바림할 좋은 보배덩이가 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식으로 얽어매려는 한국말 이야기보다는, 옳고 바르면서 착하고 참다이 꾸려 아름다운 삶으로 북돋우려는 한겨레 한글과 말꽃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무슨 보람이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말솜씨는 없어도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글재주는 없어도 믿음직하게 땀흘려 일하며 어깨동무할 줄 아는 사람이면 반갑겠습니다. (4344.5.29.해.ㅎㄲㅅㄱ)


―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문장편 (김철호 글,유토피아 펴냄,2010.10.15.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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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간 이십 분


 밤 0시를 갓 넘긴 때부터 한 시간 이십 분 동안 갓난쟁이 둘째 똥기저귀가 다섯 차례 나온다. 똥기저귀는 그냥 담그면 안 되기에 밑빨래로 똥 기운을 빼내어 목초물 탄 물에 담그는데, 이렇게 세 차례를 하자니, 잠자리에 들기 앞서 담근 기저귀 빨래 두 장까지 해서 다섯 장이 된다. 더 쌓이면 안 되겠구나 싶어 석 장을 두벌빨래를 한다. 옆지기 핏기저귀도 두 장 빤다. 이제 숨을 좀 돌릴 만한가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고 싶지만, 갓난쟁이는 넉 장째 똥기저귀를 내놓는다. 똥기저귀이기에 곧바로 애벌빨래를 한다. 옆지기 핏기저귀가 한 장 새로 나오기에 이제 더 없겠지 생각하며 애벌빨래를 마친 뒤 두벌빨래를 한다. 핏기저귀 또한 애벌빨래하고 두벌빨래를 해야 손빨래로 핏기를 빼낸다. 핏기저귀가 나온 지 조금 지나면 손빨래로 핏기를 빼기 몹시 힘들다. 아니, 못 빼낸다. 이때에는 두 장이나 석 장까지 기다렸다가 삶아서 핏기를 뺀다. 깊은 밤에 빨래를 하면, 갓난쟁이와 옆지기를 함께 보살피려고 찾아오신 외할머니가 주무시다가 깰밖에 없다. 밤에는 되도록 빨래를 안 하고 싶으나, 물 소리와 헹굼 소리와 비빔 소리와 털기 소리를 내고야 만다. 손에 물이 마를 틈이 없네 하고 생각하며 방으로 돌아와 빨래대에 빨래를 너는데 다섯 장째 똥기저귀가 나온다. 이런이런. 아가야, 뭐니? 밤에 왜 이다지도 똥개놀이를 시키니? 그러나,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해야 하는 사람보다, 속이 썩 안 좋아 한 시간 이십 분 사이에 똥기저귀를 다섯 장이나 내놓아야 하는 아기야말로 힘들 테지. 나야 손에 물기 마를 겨를이 없이 몰아친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몸이 버틴다. 속이 꾸르르해서 자꾸 똥기저귀를 내놓는 갓난쟁이는 속이 더부룩한데다가 똥꼬까지 아플 테지.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대로 있고, 힘든 사람은 힘든 사람대로 있다. 힘드는 사람한테 힘들겠군요 하고 걱정하려 한다면, 힘드는 사람이 보살피는 아픈 사람이 얼마나 아파서 괴로운가를 함께 근심해 주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책을 읽는 사람은 앎조각을 쌓재서 책읽기를 할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쌓고 믿음을 다지재서 책읽기를 할 사람이다. 내 삶을 보고 힘들 사람 삶을 보며 아플 사람 삶을 보도록 이끄는 책읽기이다. (4344.5.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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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5-30 22:22   좋아요 0 | URL
흠 이젠 된장님 같으신 분은 없지요.대부분 힘들다고 종이 기저귀를 이용하니까요.
된장님이 빠시는 방법을 보니 옛날 우리 할머님들이 하신 방법과 같으신가봐요^^

파란놀 2011-05-30 22:53   좋아요 0 | URL
예전부터 누구나 하던 빨래가 이제는 다 사라지고... 쓰레기만 나오는 빨래가 되고 말아요. 빨래하고 나오는 헹굼물뿐 아니라, 종이기저귀나 세탁기도 오래지 않아 쓰레기가 되니까요...
 

 



 두 손과 어린이


 둘째가 태어난 날부터 옆지기 어머니(아이한테는 할머니)가 시골집으로 찾아와서 함께 지낸다. 옆지기 어머니는 첫째하고 잘 놀아 주시기도 하고, 옆지기 미역국도 펄펄 끓여 주시기도 하며, 아버지가 집에서 치우지 못한 곳을 알뜰히 찾아내어 말끔히 치우시기도 한다. 무엇보다 둘째를 보살피는 몫을 많이 거들어 주신다. 두 사람이 함께 집일을 하니 아침부터 붙잡은 일손을 열한 시 반에 마무리짓는다. 한 사람이 홀로 집일을 하던 때에는 이른새벽부터 붙잡은 일손이 낮 한 시 즈음에 겨우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마무리된다고 하나, 청소나 빨래까지 끝마치지는 못하기 일쑤.

 옆지기 어머니가 집일과 집살림을 크게 거들어 주시기 때문에, 한 시름 덜면서, 밤에 둘째 기저귀를 갈고 빨며 잠이 모자라 조금 지쳐 쓰러질 때에 걱정을 안 하면서 살짝 등허리를 펼 수 있다. 등허리를 펴며 곰곰이 생각한다. 우리 집 첫째랑 둘째가 무럭무럭 자라서 저희 사랑하는 짝꿍을 만나 함께 살아가고 아이를 낳는다 할 때에,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몸이 몹시 나쁠 옆지기는 조금도 집일과 집살림을 거들지 못하리라 본다. 이때에 할아버지가 될 내가 첫째랑 둘째네에 찾아가서 일손을 거들어야 할 테지. 옆지기 어머니가 이 시골집에서 하는 일처럼 내가 첫째나 둘째네에서 이 일 저 일 쪼물딱쪼물딱 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오래오래 튼튼하게 살아야 한다. 오래오래 내 몸을 잘 건사해야겠다.

 할머니가 그림책 하나를 쥐어 아이한테 읽힌다. 나는 할아버지가 될 때에 이렇게 또 그림책 읽기를 할 테지. 내 아이한테 읽힌 그림책을 내 아이가 낳을 아이한테도 읽힐 수 있기를 비손한다. (4344.5.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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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부신 빨래


 아기 기저귀를 마당에 넌다. 아침에 빨아서 마당에 넌 기저귀 빨래는 다 마른다. 다 마른 빨래를 걷고 새 빨래를 넌다. 다 마른 빨래를 걷을 때에 눈이 부시다. 하얗게 잘 마른 빛깔에 눈이 부시고, 기저귀로 비치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

 인천에서 살던 때, 옥상마당에 기저귀를 널면서도 늘 눈이 부셨다. 기저귀 빨래란 언제나 눈부신 빨래이다. 갓난쟁이는 날마다 서른 장쯤 기저귀 빨래를 내놓으니까, 하루 내내 눈 붙일 겨를이 없이 빨래를 해야 하지만, 이 기저귀 빨래를 다 마치고 해바라기 하듯이 빨래줄에 널면, 차츰차츰 보송보송 마르는 기운이 내 마음까지 산뜻하게 비추는 눈부신 빛깔이다. 햇볕을 올려다보면서 빨래를 말릴 수 있는 집이란 참 좋구나. 게다가, 온통 시멘트 건물 숲이 아닌, 흙에 뿌리를 내린 나무로 이루어진 숲 한 귀퉁이에서 햇볕과 나무와 바람 기운을 듬뿍 맞아들이면서 금세 마르는 기저귀 빨래는 한결 눈부시다.

 이 좋은 기저귀 빨래를 기계한테 맡길 수 없다. 옆지기가 몸이 워낙 아파 기저귀 빨래이건 옆지기 빨래이건 엄두를 못 내지만, 옆지기가 안 아프더라도 옆지기 몫 빨래까지 손수 하면서 이 눈부신 빛깔을 듬뿍 맞아들이는 날이란 참으로 즐거우며 아름답다. (4344.5.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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