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像) The Portrait
김아타 지음 / 학고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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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보는 대로 아름다운 삶과 사람과 사진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30] 김아타, 《상, The Portrait》



- 책이름 : 상, The Portrait
- 사진·글 : 김아타
- 펴낸곳 : 학고재 (2008.3.20.)
- 책값 : 40000원


 (1) 잡지 《뿌리깊은 나무》


 1975년에 인천에서 태어나 1995년에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갔고, 이해 11월에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 군대로 끌려가 1997년 12월에 인천로 돌아왔으나 1998년 1월에 다시 서울로 떠납니다. 2003년 9월에 서울을 떠나 충청북도 충주 산골마을로 들어왔고, 2007년 4월에 다시금 인천으로 왔으나, 2010년 6월 끝무렵에 거듭 충청북도 충주 산골마을로 들어옵니다. 굵직하게 보면 이래저래 옮긴 셈인데, 가깝지 않은 곳을 오가며 살림을 옮기는 동안 1995년부터 거의 해마다 살림집을 새로 옮겼지 싶습니다. 이제 더는 살림집을 옮기고 싶지 않으나 앞날은 모르는 노릇입니다. 푸진 돈으로 마음껏 살림집을 뿌리내리는 형편이 아니니까요. 다만, 이렁저렁 1995년부터 거의 해마다 살림집을 옮기는 동안, 내 살림집에 늘 가까이 모셔 놓는 책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잡지 《뿌리깊은 나무》입니다.

 잡지 《뿌리깊은 나무》는 1980년 가을로 접어들 무렵, 군사독재를 일으킨 전두환 씨 힘에 짓밟혀 그만 이슬처럼 사라집니다. 1976년 봄에 태어난 잡지는 고작 다섯 해를 버티었습니다. 아니, 잡지 《뿌리깊은 나무》한테는 ‘버티었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섯 해 동안 이 나라 얕은 문화밭을 튼튼하게 일구었습니다. 한때에는 정기구독자가 7만이 넘었다고 했는데, 군사독재 정권 총칼에 무너지지 않았다면 오늘날까지 살아숨쉬며 수십만 독자를 거느리며 이 나라 문화밭을 한결 알차게 북돋았을는지 모릅니다.

 꿈이야 좋으니 꿈을 꾸지만, 꿈이기만 하다면 굳이 꿈을 꾸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지난날 우리 삶터를 곱게 어루만지던 잡지를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한 권씩 두 권씩 장만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짝은 다 맞추지 못하고 두 권이 비었으나 이럭저럭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 결과 흐름을 찬찬히 읽으며 즐길 수 있습니다. 한두 권씩만 장만해서 찬찬히 읽으며 모으다 보니, 딱 한 번, 《뿌리깊은 나무》 첫 책부터 마지막 책까지 한꺼번에 헌책방에 나왔을 때에, 헌책방 사장님이 무척 싼값에 팔 테니 가져가라 했을 때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무렵은 신문배달을 하며 먹고살던 터라 한 달 벌이가 십육만 원이었는데, 《뿌리깊은 나무》 예순 권쯤 한 질을 고작 5만 원에 주겠다 하셨습니다. 눈이 동그래질 만한 값이지요. 제가 그 헌책방 단골이요 책을 아끼는 ‘고학생’이라 다른 장사꾼이나 교수한테는 안 팔고 자네한테 팔겠네 하던 헌책방 사장님입니다. 참말 그때 외상이라도 그으며 사고 싶었지요. 그렇지만 십육만 원으로 한 달을 가까스로 버티는데 오만 원을 그날 하루에 다 바칠 수 없었습니다.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어요.

 한 권씩 두 권씩 사서 모아 온 잡지 《뿌리깊은 나무》는 숱하게 살림집을 옮기면서도 늘 끈 자국이 나지 않게끔 살살 다루었고, 짐을 끌를 때에도 거의 맨 먼저 끌르며 다른 데도 아닌 늘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자리에 얹어 놓습니다. 틈틈이 들추고 꾸준히 읽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외려 이렇게 가까이 두는 데에도 잘 안 들추곤 합니다. 어쩌면 너무 가까이에 있기에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할 수 있습니다. 몹시 사랑하고자 가까이에 두지만, 정작 가까이에 있기에 참멋과 참모습을 사랑하지 못한다고 할까요. 늘 가까이에 있다 보니, 바람처럼 햇살처럼 물처럼 흙처럼 얼마나 소담스러우며 아름다운가를 잊는다고 할까요.

 엊저녁, 1979년 1월치 《뿌리깊은 나무》를 꺼내어 봅니다. 나중에 잡지가 문을 닫은 뒤 ‘해뜸’ 출판사를 차린 사진쟁이 윤주심 님이 사진을 찍은 기사 〈명창 강도근〉을 읽습니다.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는 이무렵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던 예용해 님이 〈민중의 유산〉이라는 꼭지에 이 나라 ‘수수한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 이야기를 꾸준히 적바림하곤 했습니다. 예용해 님은 1960년대 첫머리에 ‘인간문화재’라는 낱말을 처음으로 써서 신문에 기사를 띄웠고, 어문각 출판사에서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붙인 두툼하며 멋들어진 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익히 아는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은 예용해 님이 만들었고, 정부에서 인간문화재를 법으로 삼아 도움돈을 내어 주도록 하기까지에도 예용해 님 힘이 대단히 컸습니다. ‘이 나라 수수한 자리에서 수수한 손길로 수수한 살림살이 만들던 사람들 손품과 다리품’이 바로 ‘사람 문화재’임을 온누리에 밝힌 예용해 님입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수많은 사람들한테 들씌워져 있던 손가락질과 푸대접을 차츰 벗을 수 있었어요. 제주섬에서는 진성기 님이 이러한 일을 알뜰히 하셨지요.

 윤주심 님 사진에 호원숙 님 글이 붙은 〈명창 강도근〉을 차근차근 읽습니다. 예전에 이 글을 읽을 때에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헤아려 보지만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는 수업 시간에 조금도 늦지 않을 뿐더러 한 시간도 빼먹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모습에선 광대라든지 쟁이라든지 예술을 한답시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흔히 가지기 쉬운 거만함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고 …… 오후 다섯 시쯤에 수업을 모두 끝내고 나면 곧장 시장으로 간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가는 것이다. 이리 가서 생선도 몇 마리 사고 저리 가서 과일도 몇 알 사서 보자기에 싸 자전거 뒤에 올려놓는 그의 모습은 궁상스러워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정겨워 보인다. 그리고 나서 그가 부지런히 페달을 저어 가는 곳은 생각할 것도 없이 그의 집이다.” 서울 바닥에서는 놀 마음이 없이 전주 바닥에서만 논다는 명창 강도근 님 삶을 살뜰히 살피면서 담아낸 글이 좋고 사진이 좋습니다. 어김없이 인간문화재라 할 만한 강도근 님인데(강도근 님은 인간문화제 5호이며 1996년 5월 15일에 일흔여덟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글과 사진으로 마주하는 당신 삶은 참 ‘가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낱낱이 보이는 당신 가난한 삶이 참 부드럽습니다. 따숩고 좋습니다. 더 많은 돈이나 이름이나 힘보다는 올망졸망 사랑스러운 식구들하고 시골집에서 조용히 어우러지면서 고향 후배한테 소리를 가르치는 품새가 더없이 애틋하구나 싶습니다. 명창이자 인간문화재이면서도 손수 밭갈이를 하고 자전거를 타며 저잣거리에서 찬거리를 장만하여 집으로 돌아온 다음, 자그마한 집에서 온식구 둘러앉아 밥을 먹습니다. 꽤 늦은 나이에 얻은 아이들을 몸소 업어 주고 안아 주며 함께 복닥입니다.

 흔히들, 아니 으레 잘 모르거나 잘 알고자 하지 않으니 그러하겠지만,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얻은 이들이라 해서 떵떵거리거나 배불리 잘 사는 사람이란 드물거나 거의 없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좀 달라지거나 나아졌는지 모르지요. 내 삶을 사랑하며 내 넋을 고이 건사하는 사람이 인간문화재 이름을 얻습니다. 전통문화를 지킨다는 사람이 인간문화재가 아닙니다. 인간문화재 이름을 얻는 이들이 건사하는 ‘전통문화’란 여느 사람들 여느 삶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수수한 삶입니다.

 때로는 임금님 자시는 밥거리를 장만하는 분들이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임금님 밥상은 누가 차리나요. 양반이 차리나요, 사대부가 차리나요. 임금님 옷은 누가 지어 주나요. 양반이 바느질을 하나요, 사대부가 뜨개질을 하나요, 지식인이 길쌈을 하나요.

 인간문화재 이름을 얻는 이들은 하나같이 농사꾼입니다. 농사꾼 아들이거나 딸입니다. 뿌리가 농사꾼이고 벗과 이웃과 살붙이가 농사꾼인 인간문화재입니다. 스스로 땅에 뿌리를 두고 스스로 땅인 몸뚱이로 살아가며 ‘삶을 곧 문화로 일구는’ 사람인 인간문화재예요.

 예용해 님 글을 즐겁게 만나는 잡지 《뿌리깊은 나무》인데, 예용해 님 글이 아니더라도 우리네 수수하고 가난하며 투박한 여느 삶 사람들 이야기를 알뜰살뜰 여미어 내는 잡지 《뿌리깊은 나무》이기도 합니다. 인간문화재 이름을 얻은 이들이 왜 인간문화재요, 인간문화재 이름을 얻은 이들 삶이 어떠한가를 꾸밈없이 보여주는 잡지 《뿌리깊은 나무》예요. 그래, 이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나 이 잡지를 읽는 사람이나 이 잡지에 실리는 사람이나 한결같이 ‘수수한 사람’입니다. 하나같이 못생기거나 투박하거나 수수하거나 하잘것없는 사람이에요.

 다른 호수를 하나하나 들추어 봅니다. 어느 호수를 들추든 잘난 구석 없는 사람들, 그러면서 못난 구석 또한 없는 사람들 이야기가 알뜰히 담겨 있습니다. 그예 바라보는 그대로 아름다운 사람들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마주하고 앉은 자리에서 참 좋다고 느낄 만한 사람들 이야기로 쏠쏠합니다. 내 삶부터 수수하고, 인간문화재라 하는 사람들 삶도 수수하며, 정치꾼이건 운동선수건 청소부이건 하나같이 수수합니다. 겉으로는 떵떵거릴지라도, 어디에선가 우쭐거릴지라도, 모두모두 수수한 사람이요 이웃입니다. 이름표를 떼고 보셔요. 주민증을 집어넣고 보셔요. 다 같은 사람이요, 다 착한 사람이며, 다 고운 사람입니다. 신비스럽다든지 신령스럽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그저 살가운 사람이고, 좋은 이웃입니다. 좋은 아재요 푸진 아짐씨입니다.


 (2) 새로운 사진과 이야기는 내 삶에 있습니다


 온누리에 내로라 할 만큼 손꼽힌다는 사진쟁이 김아타 님 사진책 《상, The Portrait》를 읽습니다. 한국땅에서 인간문화재라 하는 분들을 한 분씩 찾아뵙고 한 장이나 두 장쯤 얼굴사진이나 몸통사진을 담아서 엮은 사진책입니다. 책 왼쪽에는 인간문화재 소개글을 짤막하게 붙이고, 오른쪽에는 사진을 넣습니다. 사진은 모두 흑백입니다.


- 서한규, 그는 대나무 살을 발라 채상을 만든다. 그의 손줄이 가파르면 대나무는 벌거벗고 춤을 춘다. 담양은 대나무가 많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담양에 대나무가 많은 것은 땅이 고와서 그럴 것이다. 땅을 닮아서 그의 심성도 곱다. 조모가 만들었다는 백 년이 넘은 채상, 낡은 시간을 세웠다.


 사진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이분들이 인간문화재라 하니까 인간문화재로구나 하고 생각하지,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따로 밝히지 않으면, 이냥저냥 어디에서나 흔히 마주할 할머니나 할아버지겠구나 싶다고. 날카로운 눈매와 고즈넉한 매무새를 보이는 할매와 할배 모습이 있습니다만, 해병대 나왔다는 할배라든지 온갖 시집살이 고된살이 다 치렀다는 할매한테서도 날카로운 눈매나 고즈넉한 매무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앞에서 어깨띠와 머리띠를 두르고 으싸으싸 하면서 목청을 돋우는 할배한테서도 얼마든지 깊은 이야기와 너른 삶을 귀기울여 들을 수 있습니다.

 문득, 인천 전동 골목길을 마실하며 이제 지친 다리를 쉴까 하며 여관집을 찾으려 할 무렵(인천에서 살다가 시골로 살림을 옮겼기에 인천 골목마실을 하고 난 다음에는 동네 여관집에서 묵어야 합니다) 가물가물 기울어지는 저녁햇살을 받으며 대문 앞 걸상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던 ‘월남전 참전 군인’이던 할배하고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일이 떠오릅니다. 동네 할배는 제 모습이 당신 막내아들을 닮았다면서 월남싸움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때 베트공한테 목숨을 앗긴 숱한 동료들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며, 그 일을 떠올리기만 하면 눈물이 앞을 가로막는다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에서도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전동 골목집 할배로서는 동료 전우가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슬퍼하는 마음은 있으나, 당신하고 아무런 등진 일이 없는 애먼 베트남사람들을 죽여야 하고, 또 이들을 죽이려 하며 죽어야 하던 숱한 사람들 구슬픈 아픔까지는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깨닫습니다. 어찌 되든 ‘전쟁은 나쁘다’는 한 가지. 골목집 할배한테서 이야기를 들으며 당신이 ‘불쌍한 베트남사람 삶’을 헤아려 주기를 바랄 수는 없으나, ‘불쌍한 한국사람 삶’을 헤아릴 수 있는 대목으로도 반갑고, 이와 같은 마음을 곱다시 건사하면서 할배가 살아가는 골목동네 이웃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으면 그지없이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느냐고 느낍니다. 저는 골목동네 할배가 내미는 손을 꼬옥 붙들면서, 당신 눈을 마주 보면서, 사람도 삶도 사랑도 하나로구나 하고 새삼 느꼈습니다.


- 장인은 스스로 안다. 옻칠이 손을 덮고. 하얀 눈 내린 태산 같은 눈썹, 달콤하고 나른하게 말을 건넨다. 풀 소리 가득한 봉원사. 무심한 가부좌는 겁의 시간을 낚고 있다. 8×10인치의 필름 위에 선 하나를 십만 번 넘게 그었다는 그를 가둔다. 숨이 멈춘, 사진을 찍었다.


 김아타 님은 《상, The Portrait》라는 사진책에서 한국땅 인간문화재인 분들을 퍽 신비스럽고 신령스럽게 담아내어 보여줍니다. 어쩌면, 김아타 님 삶부터 신비스럽고 신령스럽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문화재인 분들이 신비스럽고 신령스럽기 때문에 김아타 님이 이분들 삶자락을 이와 같이 담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대로 바라보면서 찍는 사진이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면서 찍는 사진이니까요. ‘있는 그대로’ 찍을 수 있는 사진이 되자면, 사진으로 찍고자 하는 사람이나 사물이나 짐승이나 자연하고 내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같이 숨쉬고 같이 밥먹으며 같이 똥오줌 누고 같이 잠자며 같이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한동아리 한몸 한마음이 될 때에는 누구나 ‘있는 그대로’ 찍는 사진을 얻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로 모두어 움직이는 삶이 아니라 하면, ‘바라보는 대로’ 찍는데, 바라보는 대로 찍는 사진이란 바로 ‘내가 살아가는 대로’ 찍는 사진입니다. 아직 생각이 얕다면 ‘아는 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김아타 님은 생각이 얕은 분이 아닌 터라 ‘아는 대로 찍는 사진’이 아니라 ‘바라보는 대로 찍는 사진’입니다.

 그래요, 김아타 님은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얻은 분들하고 마주하고 만나며 어울리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 ‘김아타라는 사진쟁이가 바라보는 결’을 고스란히 살립니다.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얻은 아무개라는 삶결’을 고스란히 살리지 않습니다.


- 무당 김금화. 그를 처음 만나던 날, 내가 올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신의 밥을 먹고 사는 사람. 신이 될 수 없는 사람이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내림굿을 받아 40년 동안 작두를 타고 있다. 마음이 편치 않으면 작두가 까칠하다. 정한 마음으로 작두 위에 올라야 한다. 연두색 치마에 하얀 저고리. 새털처럼 가볍게 자리에 앉았다.


 내 어머니를 만나거나 옆지기 어머니를 만나거나 노상 생각합니다. 두 분 어머니한테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붙일 사람은 없을 텐데, 굳이 인간문화재를 나한테 두 사람 뽑으라 한다면 내가 아는 어머니 두 분을 뽑겠다고. 10분은커녕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사이 밥상을 후다닥 차려내는 솜씨란 고스란히 인간문화재라 할 만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푸짐하게 차려 놓고 언제나 “차린 것 없는데 많이 먹어.” 하고 말씀합니다. “차린 게 없어서 어쩌나.” 하는 말씀을 되풀이합니다.

 바느질을 못하나 빨래를 못하나 아이를 못 보나 청소를 못하나 설거지를 못하나 …… 그렇다고 집안이 기울어질 때에 소매 걷어붙이며 돈벌이를 못하나. 저하고 옆지기로서는 두 분 어머니를 빼놓고 다른 누구를 놓고 인간문화재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두 분 어머니를 기르신 어머니들(할머니들)이 살아 있다면 이분들한테 이 이름을 붙여 보겠지요.

 그런데 우리 살붙이를 낳고 기른 두 분 어머니만 인간문화재라 할 수 없습니다. 내 벗을 낳고 기른 어머님이든, 내 옆지기 벗님들을 낳고 기른 어머님이든, 우리 둘레 모든 어머님들을 놓고도 인간문화재라 말 안 할 수 없어요. 아버님들은 또 어떻고요.


.. 많은 시간이 흐른 기억 저편에서 그들을 다시 만난다. 나의 ‘젊은 날의 초상’을 다시 만난다. 그날들, 그들은 아까운 시간을 내게 주었다. 남도의 끝에서 서울 깊숙한 마을 안길까지 그들은 터를 잡고 있었다. 때로는 리어카에 장비를 싣고 신작로를 달리기도 하고, 며칠 밤낮을 그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완고함으로 이태에 걸쳐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려야 했던 사람도 있다. “자네가 일가를 이루면 그때 찾아오라”는 사람도 만났다 ..  (책머리에)


 김아타 님은 틀림없이 온누리에 손꼽는 사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뉴욕에서, 또 이탈리아에서, 숱한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거나 손꼽힐 만한 분이라고 여깁니다.

 다만, 한 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로서는 첫손을 꼽을 인간문화재인 우리 어머니한테도 김아타 님 사진이 첫손을 꼽을 만큼 아름다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옆지기 어머님한테도 김아타 님 사진이 온누리에 손꼽을 만한 작품이 되도록 멋들어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 누가 8만 달러에 김아타 님 사진을 사들인들, 빌 게이츠라는 사람이 김아타 님 사진을 장만한들, 이런저런 값과 이름과 힘이 사진을 돋보이도록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삶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보자면 나부터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하는데, 나와 내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알 때에 비로소 사진찍기가 이루어집니다. 내 나름대로 바라보면서 내 풀이(해석)에 따라 내 작품(신비스러움)을 만든다고 해서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나 잘 모르겠습니다. 정부에서 받아들여 몇몇 어르신들한테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붙이니, 온누리 평론가와 큐레이터나 업자들 또한 김아타 님한테 사진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이름이야 얼마든지 붙일 수 있어요.

 그런데 이름이란 얼마나 아름다웁거나 뜻있거나 값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한테는 대단한 돈도 부질없지만 대단한 이름 또한 부질없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찾을 한 가지란, 즐거우며 착하고 참된 내 삶 한 자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착한 인간문화재를 마주하여 착한 사진 하나 얻자면 내 삶이 착하면 됩니다. 참다운 인간문화재를 맞이하여 참된 사진 하나 이루자면 내 삶이 참다우면 됩니다. 고운 인간문화재를 만나서 고운 사진 하나 찍자면 내 삶이 고우면 돼요.

 주제를 먼저 세워 놓고 다큐멘타리 사진을 찍겠다고 나서는 분들 가운데 제대로 된 다큐멘타리 사진을 내놓는 분을 아직 못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주제는 따로 잡아 놓지 않았다지만, 소재를 먼저 잡아 놓고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분들치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알뜰살뜰 나누는 분을 아직 못 보았습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입니다. 그림 또한 그저 그림입니다. 예술은? 글쎄요, 예술은 내가 하루하루 즐겁고 신나게 꾸리는 삶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 아닐는지요.

 예술은 만들 수 없고 가르칠 수 없으며 배울 수 없습니다. 문화 또한 만들거나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습니다. 마땅한 소리인데, 삶이란 만들거나 가르치거나 배우지 못해요. 삶은 내 모습 내 길 내 넋 내 손 내 꿈이면서 내 꾸덕살이고 내 손빨래이며 내 설거지인 가운데 내 똥기저귀입니다. (4343.11.2.불.ㅎㄲㅅㄱ)
 

  

사진을 찍기 앞서 삶을 배우거나, 삶을 다부지게 껴안아야 한다.

 

뿌리깊은 나무에 실린 윤주심 님 사진 - 명창 김도근 (인간문화재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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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분홍... 분홍! - 창작 이야기 곧은나무 그림책 1
나다니엘 호비 지음, 조슬린 호비 그림, 노은정 옮김 / 곧은나무(삼성출판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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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달래빛 함께 있어 아리따운 삶
 [즐기는 그림책 22] 나다니엘 호비(글)+조슬린 호비(그림), 《분홍? 분홍… 분홍!》(곧은나무,2005)


 미국에서는 《Priscilla and the Pink planet》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그림책 《분홍? 분홍… 분홍!》을 읽습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이 그림책을 펼치면, 아이는 제가 아는 뭔가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한 마디씩 합니다. “와, 나비다.” “여기도 나비야.” 그러다가는 “꼬옷, 꽃, 꼬시야.” 합니다. 아이 아빠가 혀가 짧아 ‘꼬치야’라 말하지 못하는 바람에 아이는 이 소리를 그대로 따라합니다. 이럴 때 아이 엄마가 곁에 있으면 아이 아빠가 또 말을 잘못한다며 나무랍니다.

 아이는 마당이나 숲이나 산이나 논밭에서 한들거리는 나비를 보면서도 나비인 줄 알아보고, 《분홍? 분홍… 분홍!》에 나오는 나비를 보면서도 나비라고 알아봅니다. 들판에서 보는 나비라든지 그림책에서 보는 나비는 다 다릅니다. 생김새가 다르고 크기가 다릅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모두 나비임을 알아차립니다. 꽃을 볼 때에도 그래요. 노란꽃이든 하얀꽃이든 빨간꽃이든 파란꽃이든 분홍꽃이든 모두 꽃임을 잘 알아보아요. 그러니까 이 땅 이 터전에는 한 가지 빛깔 나비나 꽃만 있지 않음을 압니다. 이 누리 이 나라에는 한 가지 얼굴 사람만 있지 않음 또한 잘 압니다.


.. 분홍 사과, 분홍 바나나에 분홍 오렌지! 자전거도 분홍, 구두 밑창의 고무도 분홍! 분홍 강물, 분홍 물고기, 분홍 유리, 그리고 분홍 하늘!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전부 분홍이에요. 빛깔 중에 분홍이 최고라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꼬마 아가씨 프리실라는 분홍이 지겨웠어요. 이제 분홍빛 죽은 단 한 숟가락도 먹고 싶지 않았어요. 온통 분홍뿐인 물건들도 더 이상 보기 싫어져서 창고에 넣어 버렸답니다 ..  (5∼6쪽)


 온통 분홍빛이기만 별나라에서 살아가는 프리실라는 어디에서나 무엇에서나 분홍이기만 한 모습이 싫습니다. 보기 싫고 견디기 싫으며 살아내기 힘듭니다. 이리하여 프리실라는 먼 길을 떠나기로 해요. “세상 어딘가에 꼭 하나는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빛깔을 찾아 힘차게 길을 떠(7쪽)”납니다. 어머니한테 말을 않고, 아버지한테 말을 않으며, 다른 살붙이나 동무나 선생님이나 어른한테까지 말을 하지 않고 홀로 꿋꿋하게 길을 나섭니다.

 어쩌면, 둘레 다른 사람들은 ‘분홍이기만 한 삶은 좋은데, 왜?’ 하면서 하나도 질려 하지 않을 뿐더러 싫어하지 않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모두들 ‘분홍이면 분홍이지, 뭘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라 프리실라로서는 마음을 활짝 열고 이야기를 나눌 동무가 없어서인지 몰라요. ‘분홍이든 까망이든 무슨 대수람? 바빠 죽겠는데 그런 데까지 어떻게 마음을 쓰나?’ 하니까 아예 아무하고도 말을 못 섞고 말아, 홀로 길을 나서기로 했는지 모르지요.

 혼자 길을 떠나는 프리실라는 외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허전해 보인다거나 힘들어 보이지조차 않아요. 프리실라로서는 새로운 삶을 찾고 싶거든요. 무엇이든 똑같은 틀에 맞추어 버리는 삶을 벗어던지고 싶거든요. 홀가분하고 싶으며, 꿈꾸고 싶은 프리실라입니다. 기쁘고 싶으며, 아름답고 싶은 프리실라예요. 틀에 박힌 삶에서는 스스로 즐거울 수 없으며 아름다울 수 없음을 느낀 프리실라입니다. ‘틀에 안 박힌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정작 ‘틀에 안 박힌 삶을 찾아내기는 했는데 조금도 아름답지 않아 슬플는’지 모르지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숨을 쉬지 못하도록 옥죄는 갑갑한 틀을 떨치고픈 프리실라입니다.


.. “절대로 안 돼!” 여왕은 부르르 화를 냈습니다. “아무리 예쁘게 봐 주려고 해도 그 나비는 너무 꼴사나워! 저렇게 알록달록하다니, 우아하지 못해! 뭐니뭐니 해도 분홍이 제일이야. 그래서 내가 이 별에 분홍 마법을 걸었지.” ..  (21쪽)


 지난밤, 내내 잠을 못 이루며, 또는 자꾸 잠에서 깨며 아빠 또한 잠을 못 자게 하던 아이가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아빠는 졸음이 가득한 몸으로 겨우겨우 아침 일을 붙잡으려 하는데, 아이는 벌써부터 아빠를 붙잡고 놀자 합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혀 그림책을 펼쳐 놓다가는 홍초를 따순 물에 타서 먹입니다. 달짝지근한 물을 마시니 아이가 몹시 조용합니다. 더 어릴 때에는 당근을 갈아서 주면 아주 조용하게 먹기만 했는데. 한 달 두 달 한 살 두 달 나이를 먹어 가며 이 아이는 이 아이 나름대로 좋아하는 길을 따라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우리 집 아이는 우리 집에서 이렇게 살아내며 스스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무언가를 가슴에 담는다면, 다른 집 아이는 다른 집에서 다르게 살아가며 저 깜냥껏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무언가를 마음에 두겠지요.

 둘레에서 아이를 키우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우리 집 아이만 한 아이들을 꽤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보냅니다. 아니, 첫돌조차 안 지난 갓난쟁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분이 무척 많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엄마랑 아빠가 늘 집에서 아이랑 붙어 지내며 똥기저귀 빨고 오줌기저귀 갈며, 똥오줌 가리기를 시키려고 아침에 깨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기저귀를 채우지 않으며 지냈습니다. 첫돌이 지난 뒤부터 이렇게 하자니 그야말로 집안은 똥투성이에 지린내범벅이 되더군요. 그러나 이렇게 했기에 어버이는 손이 많이 가며 고단하지만, 아이는 즐겁고 튼튼히 기저귀를 (낮에는) 뗍니다. 스스로 오줌과 똥을 가려요.

 어린이집(또는 보육원)이라는 곳은 아이를 맡아 무언가를 가르치는 곳이라 합니다. 아마 영어도 가르치고 놀이도 가르치며 뭣도 뭣도 보여줄 테지요. 아빠랑 엄마 둘이 바깥일을 하며 ‘뜻과 꿈을 이루려’ 하는 집이라든지 ‘돈을 많이 벌어야’ 할 집에서는 마땅히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엄마도 바쁘고 아빠도 바쁜 집에서는 당신들이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지 못하거든요. 어린이한테는 무엇보다 사랑을 먹이고 사랑을 가르치며 사랑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똥오줌 가리기를 비롯해 말 배우기나 물건 다루기 모두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몸가짐입니다. 지식이 아닌 사랑으로.

 지난날 한 집안 식구가 꽤 많아, 집이 곧 어린이집이라 할 만하던 때에는 아주 마땅히 아이들을 어떤 시설에 넣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유치원이든 초등학교이든 굳이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초등학교(국민학교/소학교)가 생긴 지는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거든요. 기껏 백 해쯤 된 일인데, 백 해쯤 되었다 해도 그무렵부터 학교에 아이를 넣은 집은 아주 드뭅니다. 왜냐하면 아이한테 무엇인가 가르치면서 튼튼하고 씩씩한 한 사람으로 서도록 하는 몫은 ‘다른 사람 손’이 아닌 ‘내 손’이나 ‘내 살붙이 손’이었으니까요. 저마다 다른 살림집에서 저마다 다른 살림살이에 따라 저마다 다른 삶으로 아이들한테 새 삶결을 불어넣었어요.


.. 프리실라는 초록 나무를 보고서 입이 딱 벌어졌어요. 정말 예뻤거든요. 보랏빛 꽃을 보고는 하도 기뻐서 다리까지 후들거렸답니다. 눈부시게 밝은 노란 해님! 파란 하늘! “어쩜! 세상이 정말 새롭게 보여!” 프리실라가 외쳤어요 ..  (26∼27쪽)


 프리실라는 분홍이 아닌 다른 빛깔을 찾으려고 길을 나서며 ‘도시 아닌 자연’에서 수많은 빛깔을 마주합니다. 프리실라는 제 손으로 제 빛을 찾았어요. 책을 읽다가 퍼뜩 궁금합니다. 프리실라가 자연이 아닌 도시에서 다른 빛깔을 찾으려 했다면? 프리실라가 도시에서 다른 빛깔을 찾았다면?

 오늘날 사람들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아가거나 도시에 몸을 기대어 살아갑니다. 시골이라 하더라도 참말 시골인 곳은 드뭅니다. 시골 읍내나 면내는 도시 모습을 닮아 가고, 작은 도시이든 큰 도시이든 ‘남다른 빛깔’을 찾아볼 수 없어요. 서울이 서울답거나 부산이 부산답거나 광주가 광주답지 않습니다. 모두 한 가지 빛깔로 물들어 갑니다. 어디이든 한 가지 빛깔에 갇히고 맙니다.

 자전거를 즐긴다는 사람들이 다 다른 모습과 다 다른 빠르기로 다 다른 삶결에 따라 자전거를 즐기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책을 즐긴다는 사람들이 다 다른 넋과 다 다른 슬기로 다 다른 사랑에 따라 다 다른 책을 즐기는 모습을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길을 찾아 다 다른 일거리를 빛내거나 다 다른 대학교를 다닌다든지 다 다른 삶결에 걸맞게 대학교나 고등학교나 중학교나 초등학교를 처음부터 안 다니면서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는 모습을 만날 수 없이 됩니다.

 하늘에 높이 떠서 우리를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해님이 얼마나 아름다이 노란빛인가를 깨달을 요즈음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나뭇가지가 어떤 빛깔이요 나뭇잎은 어떤 빛깔인지 가만히 들여다보며 고운 내음을 맡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가을녘 골목동네나 시골 고샅에서 씩씩하게 자라난 맨드라미를 보며 어여쁘다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나한테 느끼려는 가슴이 있다면 “기뻐서 다리까지 후들거”릴 만큼 내 둘레 아름다운 삶을 얼싸안을 수 있습니다. 나한테 사랑스레 살아가고픈 빛줄기 하나 마음밭에 비추고 있다면, ‘진달래빛만 있는’ 누리가 아닌 ‘진달래빛이 함께 있는’ 누리가 그야말로 즐거우며 밝고 좋은 누리임을 알아채겠지요. 진달래빛이 함께 있어 참으로 아리따우며 신나는구나 하고 방실방실 웃으며 반기겠지요. (4343.11.3.물.ㅎㄲㅅㄱ)


― 분홍? 분홍… 분홍! (나다니엘 호비 글,조슬린 호비 그림,노은정 옮김,곧은나무 펴냄,2005.9.1./6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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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목과 글쓰기


 아이가 어젯밤부터 손목이 아프다며 “아야.” 하면서 운다. 오늘 낮까지 이렇게 울더니, 저녁때에 그 아프다던 오른손목에 시계를 차며 신나게 뛰어논다. 속으로 ‘내 아이이지만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 싶다. 그러나 오른손목이 살짝 저릿한 아픔이 가셨으니 이렇게 놀 수 있겠지. 어제 밤 동안 아프다며 거의 삼십 분인가 이십 분인가 …… 틈틈이 “아부지!” 하면서 내 얼굴을 툭툭 치며 깨우더니. 그래, 생각해 보니 아이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며 아버지를 깨웠으니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밤잠을 못 자고 아이는 아이대로 밤잠을 못 잔 셈이다. 아버지로서는 새벽부터 쌀을 씻어 불려 놓다가 아침에 밥을 안치고, 또 찌개 하나 끓이며 빨래를 하고, 이러며 이부자리 개고 뭐 하고 밥상 차린 다음 밥 먹이고 그러고 나서 설거지를 하고, 가을녘 햇살 자리에 따라 마당가에 널어 놓은 빨랫대 자리 옮기고 …… 하면서 죽어나느라 나 혼자 졸음이 쏟아져 괴롭다 노래하지만, 아이 또한 손목이 아프다며 밤새 잠을 못 이루었으니 고단한데 손목이 아픈 탓에 제대로 놀지 못해 더 짜증스러워 투정을 부리고 하겠지. 참 어린 나이부터 애먹는구나. 돌 무렵에 밥상 모서리에 눈썹을 박으며 몇 센티미터 찢어져서 맨살에 마취주사 없이 꿰매지를 않나, 툭하면 넘어지고 박고 까지고. 그나마 아이가 손목이 아프다며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쥐지 못하니 아빠랑 엄마가 떠먹이는 밥을 날름날름 잘 받아 먹어 주었다. 오늘 아침에는 이제까지 함께 밥을 먹어 온 날 가운데 가장 빨리 밥상을 치울 수 있었다. 아, 늘 한 시간은 쉽게 걸리던 밥먹기를 이토록 일찍 끝마칠 수 있다니. 아이가 늘 아프다면 엄마랑 아빠 말을 잘 들어 줄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설핏 했지만,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니까 그렇게 밥을 먹으면서도 간지러운 몸을 어쩌지 못해 엉덩이 들썩들썩하면서 뛰어놀아야 맞겠지. 앞으로 몇 살 나이까지 이렇게 놀겠는가. 아버지로서, 어버이로서 조금 더 찬찬히 바라보고 마주하며 얼싸안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창 무럭무럭 크면서 말을 제법 익히는 때인데, 더 안고 더 어르며 더 따스히 말을 걸어야 한다고 느낀다. 아이가 어느 한 군데 아프기라도 하면 차라리 내 몸이 아프기를 바라는데, 아이가 아파해 보는 나날을 겪으며 제 몸이 아프듯 제 이웃과 둘레 사람들 몸도 아플 수 있거나 몸이 아플 때에 얼마나 괴로운가를 살갗으로, 온몸으로 잘 삭이거나 받아들여 줄 수 있기를 비손한다. 아이야, 모레까지이든 글피까지이든 늦게늦게까지 오래오래 잠자며 손목이며 다른 곳이며 아픈 자리 싹 씻고 다시금 말괄돼지처럼 개구지게 놀아 보렴. (4343.11.2.불.ㅎㄲㅅㄱ) 


(이렇게 까불며 놀다가 손목을 삐끗한 돼지 한 마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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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은 아무래도 잠든 모습. ㅋㅋㅋ. 둘째는 밥먹는 모습. ㅠ.ㅜ 그래그래, 책읽는 모습도 예쁘다. 호미 쥔 모습도 참 예뻤다. 사진기 든 모습도 더없이 예뻤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잠든 모습처럼 어여쁜 모습이 없네 :p

 

 책읽는 돼지. 

 

 어느새 책은 내팽개친 돼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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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녘 꽃그릇을 보고 싶어 애타게 기다린 끝에 하루 짬을 내어 모자라나마 둘러보다. 자그마한 꽃그릇에 소담스레 자라는 배추포기 사진을 얼마나 찍고 싶었는데. 국민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뻔질나게 드나들던 신흥시장 한쪽 자리를 돌아보며 꽃그릇을 만나다.

 - 2010.10.28. 인천 중구 선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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